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술을 마시느냐 마시지 않느냐는 그리스도인의 한 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술은 언약의 하나님의 언약적 복의 하나입니다. 홍수 후의 노아 생활에서 포도주나 술(독주)에 대한 성경의 언급을 바르게 살피면 그러합니다. 제사에도 술이 들어갑니다. 비유적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도 술을 드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술을 마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가 먹고 마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마신다는 것이 물을 마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마 11:19, 눅 7:34). 그것은 포도주였는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포도주가 물의 대용품일 수는 없습니다. 목마름의 해갈이라는 차원에서 포도주는 오히려 더 목마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사회의 잔치에 참여하셔서 즐겁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술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을 초래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술을 마셨지만 술에 취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술의 지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술은 언약적 복입니다.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유익하다고 합니다. 인간관계나 일에 있어서 윤활유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 복을 바르게 누리지 못하면 짐승과 같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이 성령의 열매인 절제입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술 취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당시 한국 사회의 상황과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의 행태에 대한 대응으로 술을 금지시킨 것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보다 스스로를 더 지혜롭다고 생각한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행태를 모르셔서 술 마시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고 술 취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교회는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데서 멈추어야 합니다. 복음 전파의 초기부터 술을 마시되 절제하여 술 취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본을 보이며 지체를 섬겼다면 지금은 정말 신앙적인 술 문화가 성도들에게서 만이라도 정착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의 행태를 생각할 때에 술은 강력한 복음 전파의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도가 그들과의 술자리에서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아 절제하는 모습, 그들이 술로 인하여 해를 입지 않도록 지혜롭게 선을 그어주는 역할, 술로 인해 짐승과 같이 되어질 때에 그들을 책임지고 가정으로 이끄는 섬김 등등.
위험성 때문에 금지를 말하는 것은 성경의 원리가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 접근한다면 성경에서 허용되는 많은 것들이 금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것이라도 도에 넘치면 해가 될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도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함이 하나님 사랑보다 더 앞설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위험성 때문에 결혼을 금지시킬 수는 없습니다. 돈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위험성 때문에 돈 소유를 금지할 수는 없습니다. 위험성 때문에 성령의 열매인 절제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의 위험성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금지를 말하면 편리하기는 합니다. 술을 마시지만 술에 취하지 않도록 세워가는 섬김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신자라고 하더라도 술을 마시게 되면 많은 경우에 술 취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기 쉽습니다. 술에 중독되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술을 마시지만 술에 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관심이 뒤따라야 합니다. 더 성숙한 누군가를 통하여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합니다. 당사자를 위한 눈물과 좋은 본을 통한 섬김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힘들고 어렵지만 그것이 성경적인 원리를 따르는 목회입니다.
술 마시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교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에 형성된 좋은 통념으로 굳이 깨뜨릴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 전통, 통념으로 인하여 술을 마셨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많은 신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시는 정죄에 빠져 고통을 겪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바를 앞세워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면 긍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만 부정적인 요소가 뒤따르게 됩니다.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말하고 개개인이 지키도록 섬겨야 합니다.
술을 마셔도 됩니다. 즐겨도 됩니다. 다만 절제하여서 술의 지배를 받는 방탕한 자리에 나아가지는 말아야 합니다. 함께 술을 마셔도 됩니다. 좋은 관계의 방편으로 활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의 방편으로 삼아야 합니다. 절제와 섬김으로.
그렇지만 스스로를 살펴서 절제의 열매를 맺지 못하겠다고 여겨지거든 더욱 힘써 처절하게 기도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절제의 열매를 맺는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는 성숙한 지체와 교제하며 도움을 받으면서 절제의 열매를 맺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면 술을 포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자신을 위하여 말입니다.
주의 할점이 있다면요 고대의 곡주와 현대의 화학주는 그 내용이 다릅니다. 화학주는 몸에도 않좋고요 또 독주라고 할수 있지요 . 포도주나 막걸리가는 일반적 술이라고 말할수 있지만 화학주는 독주라는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맥주는? 그 맥주도 확학주라면 안돠고요 좋은 상품은 홉아른 곡물로만 만드어졌다고하니,,,, 이렇게 보면 현실에서 독주를 피해가며 술을 먹기는 힘들갰지요
첫댓글 절제를 말하는것은 쉽지만, 그것을 지키기는 어렵죠. 술마시는것을 너무 권장하지맙시다.
동감합니다. 중독성이 강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약해졌을 떄 쉽게 찾게 됩니다. 그런건 애초부터 차단하는 것이..
술담배 해도 되요..자유롭게...
주의 할점이 있다면요 고대의 곡주와 현대의 화학주는 그 내용이 다릅니다. 화학주는 몸에도 않좋고요 또 독주라고 할수 있지요 . 포도주나 막걸리가는 일반적 술이라고 말할수 있지만 화학주는 독주라는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맥주는? 그 맥주도 확학주라면 안돠고요 좋은 상품은 홉아른 곡물로만 만드어졌다고하니,,,, 이렇게 보면 현실에서 독주를 피해가며 술을 먹기는 힘들갰지요
담배도 그렇답니다 과거에는 담배라는 것이 해충을 죽이는데 쓰여서 당연히 해야하는 관습이었지요 그러다가 문명이 발전하면서 약재가 발달되고 굳이 담배로 해충을 죽일 필요가 없어지게 되면서 담배를 안피는 문화가 확산 된것이지요..담배를 기호로 본다면 안피는 것이 옳지요
술담배를 하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성령안에 거하면 술담배를 끊을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는 전입니다....술담배로 마음대로 채우시겠습니까?
우리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셨습니다. 성전이니 더럽게해선 안된다 하셨지요.
갈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