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셨다. 때문에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 되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십자가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 때문에 기독교를 고난의 종교,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 희망의 종교라고 말했다.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십자가’의 의미는, 한국교회가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면서, 본질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오히려 십자가는 퇴색되어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씁쓸하지만 어떤 외국인은 밤하늘을 수놓는 한국교회의 십자가를 보면서, ‘회칠한 공동묘지’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목에 걸린 ‘금장식의 십자가’는 부의 상징이 되었으며, 밤하늘을 수놓는 십자가 탑의 불빛은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 버려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귀찮은 흉물이 되었다. 심지어 십자가 탑의 불빛을 나이트클럽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한마디로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는 부의 상징으로 변질되어 빛을 잃어버린 나머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의 상징이며, 고난의 상징인 십자가가 변질된 것은, 성서에 나타난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 그리고 소망을 노래하지 못하고, 대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교인들에게 ‘축복’만을 강조한 결과이다. 따라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었고, 마음도 없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헌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등에 지기는커녕, 이를 이용해서 인간의 욕심을 채우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십자가 탑’을 높이는데 경쟁을 벌이고, ‘하나님의 영’ 성령의 역사를 내세워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제 건물 위에 세워진 십자가 탑은 높이에 따라 부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변질되면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희망을 걸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히려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 스스로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영미의 식민지신학과 지배자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당연하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의 십자가는 선교초기와 달리 더 이상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십자가 아래서 교인들을 성폭행하고, 교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폭력하고, 절도하고, 교인들이 드린 하나님의 헌금을 횡령하고, 각종질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의 주머니를 짜내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세습하고, 이혼하고, 폭행하고, 사기하고, 교회에서 부정한 돈을 세탁하고, 살인하고,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각종 언론에 연일 터져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의 범죄행위는 이를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 원인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정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 십자가를 장식품으로 변질시키고, 범죄에 악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는 부의 상징이 되었으며, 밤하늘을 수놓은 십자가 탑의 불빛은 회칠한 무덤이 되었다.
때문에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로 돌아가지를 않고서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 담긴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선교 130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
첫댓글 "누구든지 나를 좇아 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십자가의 도는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자기 희생입니다.
이러한 자기희생은 외면 하고 도리어 십자가를 이용해서 자기 사욕을 채우는 자는
바로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3:18)
십자가의 원수는 첫째 마귀요,두번째는 십자가를 버린 목사
들과 그를 추종하는 교인들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들과
자기의 모든 소유(모든욕심)를 버리지 않는 자들은 모두 다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피하게 하려고 안깐힘을 쓰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도 세가지 문제로 유혹하여 십자가없이 모든 것을 얻으라 하고 도전하였습니다.
한번만 자기에게 굴복하여 절하면 그 끔찍하고 참담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지 않고서도
이 세상의 모든 소유권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그 후 사랑하시는 제자,베드로를 이용하여 십자가의 길을 막으
@므비보셋 려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의 배후에서 그를 조종하는 마귀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 지게 하려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중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십자가에 내려 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27:40,42)
하며 십자가구속의 역사를 훼방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대적이요 우리 인류의 원수인 마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훼방하였을 뿐 아니라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져야 할 십자가도 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십자가는 마귀를 무력하게 만들고 그의 모든 권세를 꺾어 놓기 때문입니다.
@므비보셋 십자가는 주 예수님만 죽음에 넘겨 지는 것이 아니라 범죄하여
타락한 모든 인류와 죄악의 근본인 마귀까지도 죽이는 것입니다.
옛사람과 함께 저주받은 옛창조를 끝내고 새창조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옛창조를 끝내시고 부활로 새창조를 이루시는 그분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옛인류의 머리는 아담이요,
새 인류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마지막아담으로 옛창조에 속한 모든 피조물(마귀포함)과 함께 족으시고
새로운 인류의 머리가 되셔서 죽음가운데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오늘도 우리 자신의 죽음을 요구하며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므비보셋 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 하든지 죽은 자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1)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 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후4:10~12)
우리가 십자가를 피한다면 마귀는 쾌재를 부를 것이요 주님의 성령은 슬퍼 하실 것입니다.
우리 참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부활 생명 안에서
@므비보셋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사모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 버릴 것이요 나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