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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일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생일은 당신이 태어난 날에 대한 기념일이다. 결혼한 부부들은 그들의 결혼 50주년을 기념한다. 나라들마다 각각의 기념일들을 가지고 있다: 인도는 8월 15일에 영국의 통치로부터 벗어난 것을 기념한다; 칭밍은 2008년에 본래대로 된 고대 중국의 휴일로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통해, 자유와 풍성한 음식이라는 선물을 주신 창조주를 기억한다.
하늘도 기념일을 가지고 있다. 성경에 자세하게 설명된 이러한 기념일들은, 야후와의 백성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그분의 계획들에 관한 많은 진리들을 가르쳐준다. 우리의 구원에 관한 기념일들은 세 그룹으로 나뉜다: 봄의 기념일들, 여름의 기념일들 [오순절],가을의 기념일들. 각 그룹은 특별한 월삭과 함께 시작되며, 곧 다가 오는 기억의 시간을 알려준다.
봄에 있는 첫 달의 월삭은 하늘의 진정한 새해다. 그리고 그 달의 14일인 유월절과 야후와의 구원을 한 주간 동안 기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념 절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며, 십자가에 못 박힌 것들이라고 가정한다. 그렇지 않다. 이 기념일들이 모든 시대에 걸쳐 기억을 위한 특별한 시간으로 지켜지는 것이 하늘의 계획이다. 왜냐하면 그 기념일들이, 그분을 싫어했던 세상을 위한 야후와의 위대한 사랑과 자기 희생을 우리 마음에 새롭게 불러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사탄은 야후와의 절기들을 모조할 방법을 찾아왔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교의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 진실을 더 잘아야 하는 크리스챤들 역시 부활절과 심지어 할로윈을 기념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모조품들로서 특별히 사람들의 관심을 진정한 성일들로부터 거짓 축제일들로 돌리기 위해 설계되었다.
새해의 초하루
새해의 첫 날은 헌신을 다시금 다짐하고 마음을 살피는 시간이다. 이 날은 그 상황과 가족의 필요들에 따라, 다양한 방법들로 기념될 수 있다.
개인
혼자 기념하는 개인들은, 언제나 이러한 거룩한 기념일들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시대마다, 그분을 위해 홀로 걸어가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계신다. 그분께서 “나의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느니라.”는 확증을 주셨다. 성경은 야후와께 헌신한 모든 사람에게 그들을 개별적으로 보호하는 천사가 지정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준다. 개인이 진실된 마음으로 창조주를 경배하고자 갈망할 때, 언제나 함께 있던 그 보호 천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둘째 존재가 되어, 그분께서도 거기에 계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이 성취된다.
모든 월삭들과 마찬가지로, 새해의 첫 날도 상거래를 하지 않는 날이다. 각 개인은 감사 드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살피면서 그 날을 보내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새해의 첫 날에 하기 좋은 일 하나는 지난 한 해 동안 감사한 모든 일들에 대한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시편이라는 책은 헌신과 다짐의 아름다운 기도들로 가득 차 있다. 시편을 읽는 것은 새해의 첫 날을 홀로 보내야 하는 사람이 이 날의 시간을 보내기에 의미 있는 방법이다. 당신이 배우고 연구하고 싶은 것들, 당신이 당신의 구주께 온전히 항복함을 통해 얻기 원하는 승리들, 새해의영적인 결심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만약 당신이 새해의 첫 날을 홀로 보낸다면, 좋은 방법이 된다.
가족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족들도 새해의 첫 날을 그들의 삶과 가족들을 야후와께 헌신하는 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가족 예배는 함께 모이는 특별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가족은 지난 해의 축복들을 다시 헤아려 보고, 하늘로부터 온 선물들에 대하여 하늘 아버지께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 예배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은 가족의 영적인 결심들을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거룩한 날들은 가족 기도를 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시간이다.
가족 기도는, 모든 사람이 함께 기도함으로 기도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방식의 기도와는 다르다. 한 사람의 기도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기도를 시작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다. 한 사람이 기도를 시작하고, 다른 사람이 생각이나 바람에 있어서 감동을 받을 때, “아멘”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 사람이 다음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고 심지어 당신이 그것을 시도하는 초기에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족이나 부부가 이 방법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운다면, 큰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을 때, 당신의 마음이 정처 없이 표류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영이 당신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대로 당신도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이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기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이에 대화가 된다.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이 이 흥미롭고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울 때, 20분, 30분 또는 더 많은 시간을 이와 같은 방식의 기도로 보내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이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에 편안해질 때, 그들도 이 기도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참여함으로써 모두가 큰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악마 숭배자는 개인의 생일을 일년 중 가장 큰 사탄의 축제로 본다.1그러므로, 우리는 새해의 첫 날에 작지만 의미 있는 선물들을 교환함으로써 전통적인 생일 축하 방식을 대신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할 때 자녀들이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물들은 비싸거나 수량이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자녀들의 개인적인 관심과 재능과 관련된 선물은 그들이 특별하며 사랑 받고 있으며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날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줄 것이다. 자녀들이 ‘주는 즐거움’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자녀들도 그들의 부모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데에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즐거움은, 애정을 나타낼 기회를 즐거워하는 사랑의 마음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이 날이 매우 좋아할 만한 기념일이 되게 해 줄 것이다.
그룹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룹도 시편을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만약 두 명 또는 더 많은 가족들이 모인다면, 각자에게 의미 있는 시편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족의 각 구성원은 그 특정 시편이 왜 자신에게 의미 있는지 말하는 기회를 갖는다. 찬양을 드리며 헌신을 다시 다짐하는 시간은 기도만큼이나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다. 헌신을 다시 다짐하는 날로서, 그룹으로 다른 이들을 방문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다가오는 해에 그들의 믿음을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원을 이루어 돌아가면서 한 명씩 기도하기 보다는, 가족 기도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기도하며 그룹 기도를 하는 것은 훨씬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말할 것을 잊어 버리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들에게 감동을 주시는 대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기도 시간을 그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만들 것이다. 주기도문으로 마치는 것은 그룹 기도와 가족 기도를 마무리 짓는 특별하고 아름다운 방법이다.
새해의 첫 날은 다가오는 한 해를 기대하며 자신과 자신의 삶과 자신의 가족을 창조주 우리의 사랑의 하늘 아버지께 다시 헌신하는 놀라운 날이다.
유월절
그 첫 달의 14일 저녁은 야후와의 유월절이라. (레위기 23:5)
유월절 (페이삭)은 일년 중 가장 의미가 깊은 기념일들 중 하나다.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원 받은 것만을 단순히 기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며, 이 날은죄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나를 위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야후와의 어린양으로 죽으신 날이 유월절이다. 일년 중 다른 어떤 날도 이 기념을 기억하기에 유월절만한 날이 없다.
성경상의 하루는 동틀녘에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 날의 “세” 시는 오늘날의 오전 9:00쯤, 즉 동틀녘과 정오의 중간에 해당한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세시쯤에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말한다. 오전 9:00에, 그리스도께서나를 위해 하셨던 일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 시간의 엄숙함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리스도께서나의 죄들에 대한 죄책감의 무게 때문에 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끼셨다는 것을 묵상한다. 그 정신적 고통이 너무 커서 육체적인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실 정도였다. 우리는 죄의 거대함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11시. 여전히 십자가에 계시다.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계신다. 여전히나 때문에,나의 죄들 때문에 그분의 아버지에 의해 거절당했다는 것을 느끼며,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며 그러한 사랑에 완전히 바치고자 하는 깊은 바람이 생긴다.
정오.어둠이 십자가를 덮는다. 이 날의 그 시간들이 천천히 지나간다. 왜냐하면당신을 위해 당신의 구주께서 죽으신 바로 이 날을 우리가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세시. 그리스도께서 제 구시, 곧 오후 3:00쯤에 죽으셨다. 마침내 끝났다. 야후와의 아들이 승리했다. 속죄의 피, 우리를 야후와와 하나가 되도록 허락한 그 피가 흘려졌다.
그러나, 유월절은 게으르게 보내는 날이 아니다. 바로 다음 날 시작되는 무교절 동안, 모든 누룩이 집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누룩 (여기를 클릭하면 내용이 나옵니다)
효모를 함유하는 가장 전형적인 음식의 범주들은 곡식들로 만들어진 제품들이다. 나라마다, 조리법마다, 음식이 다르기 때문에, 구매하거나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의 구성 성분들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효모는 누룩, 베이킹 이스트, 베이킹 소다, 베이킹 파우더, 팽창제와 같이 다양한 이름들로 불린다. 효모의 목적은 음식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더 가벼우면서도 크기는 더 커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것이 신에 의하여 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죄는 한 사람 전체에 스며들며 그의 성품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자아로 가득 차게 할 정도로 변화시킨다. 자기 분해되는 이스트와 양조시키는 이스트(영양상의 효모로도 알려진) 둘 다 풍미를 위해 사용된다. 그것들은 부풀리거나 팽창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피해야 할 품목으로서 부풀게 하는 능력이 없는 조미료들에 대해서는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면서 절기를 지키는 사람들은 누룩 대신에 달걀을 사용할 수 있다.
점검되어야 할 성분들이 포함된 내역들을 아래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다음의 사항들만으로 제한된 것은 아니다.
이스트, 베이킹 소다, 베이킹 파우더를 포함하여 부풀게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가족이나 혼자 사는 개인은, 이러한 품목들을 미리 다 사용하거나, 또는 집 밖의 냉동실, 차고나 어떤 다른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만약 개인이나 가족이 연합된다면, 유월절에 누룩을 끝까지 찾아내는 것은, 어떻게 우리 모두가 주의 깊이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죄들을 끝까지 찾아내야 하는 지에 대한 살아 있는 비유가 된다. 얼마나 많은 음식들과 혼합물들이 그것들 안에 효모의 유형을 갖고 있는지 놀랍다!
저녁(evening)에, 가족들이 특별한 유월절 식사를 위해 모인다. 이렇게 매우 특별하게 구별된 시간에, 진리로 마음이 향하고 있는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유월절을 지키는 데에 한 가지 방법만 옳은 것이 아니며, 또한 한 가지 방법만 틀린 것도 아니다. 명백하게, 야후와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이제 다시 어린양을 죽일 필요가 없다. 어린양이라는 동물은 야후와의 어린양을 가리킬 뿐이었다. 그분의 피가 흘려졌고, 우리는 그분의 위대한 희생에 대하여 사랑과 감사를 가지고 이 기념을 기억한다.
발을 씻겨 주는 것
십자가 사건 전 날의 마지막 저녁식사 때에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친교의 봉사는 이 거룩한 시간 동안에 하나의 예배가 될 수 있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발을 씻겨 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가장 아름다운 예식이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들을 씻어 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야후슈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고 봉사할 수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만약 누군가가 이 의미 있는 예식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발을 씻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이 예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각자를 개별적으로 깨끗하게 하시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가족들 중 일부는 세족식이 끝난 후 친교의 찬송을 부르며 즐거워한다.
유월절 저녁 식사
다양한 사람들이 유월절을 의미 있게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는다. 어떤 가족들은 유월절 식사의 모든 것을 상징적인 것으로만 지키기를 선호한다. “식사”의 주요 부분은 포도 쥬스, 쓴 나물, 무교병, 소금, 과일 소스다. 이러한 것들은 시식을 위한 것이고, 식사를 위한 것은 아니다. 다른 가족들은, 특별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집에서는, 성경 시대에 먹었을 만한 다른 음식들을 추가하여 식사하는 것을 선호한다. 유월절을 기념하는 데에 어떤 한 방법만이 옳은 것도 아니며, 어떤 한 방법이 틀린 것도 아니다. 주요 목적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으로 하여금, 우리의 참 유월절이신 그리스도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방식을 찾는 것이다.
포도 주스: 우리의 죄들을 씻겨 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쓴 나물: 쓴 나물은 우리 구주의 죽음을 가져온 죄의 씀의 상징이다. 신선한 나물이 가장 좋다. 그러나 그것을 구할 수 없다면, 으깨서 가루로 만들어진 것도 사용될 수 있다. 단지 상징으로 사용하기 위해, 맛보기 위한 것과 같이 히드라스티스처럼 정말로 쓴 것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것을 사용하기를 선택하는 가정에서는, 어린 자녀들에게 미리 말해주어야 한다. 이 목적이 아이들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 또 “쓴 나물”로 먹을 수 있는 것으로는, 가늘게 썬 녹색과 빨강 잎 양배추, 파슬리, 꽃상추, 등이 있다. 여기에 레몬 주스와 소금을 약간 뿌릴 수 있다. 식사 시간 동안에, 이러한 모든 상징들의 의미를 자녀들에게 설명하고 참석자 모두가 적합한 대화를 즐길 수 있다.
효모를 넣지 않은 빵: 죄에 대한 상징으로서 이스트에 대한 성경상의 묘사가 손님들과 자녀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기 전 날 밤에 무교병을 먹었다. 그들이 구원 받기 전에 그들의 집에서 누룩을 모두 제거해야 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은 어린양의 피로써 그들의 마음에서 모든 죄를 찾아내어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이 죄 많은 세상으로부터의 더 큰 탈출을 위해 준비하기 위함이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은 통밀 가루로 매우 쉽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은 간단하며, 만들기 쉽고 매우 맛있다.
소금: 소금은 회개의 눈물을 상징한다. 누군가 죄의 쓴 맛을 경험했을 때, 그리스도의 위로하는 은혜가 시작되고, 의지를 완전히 내어드리기 시작하며, 그분께로부터만 나오는 평안과 기쁨을 경험한다. 식사만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금 접시를 모두에게 돌리면서 조금씩 맛 볼 수 있다. 개인마다 소금을 담은 작은 접시를 놓아둘 수도 있다. 구할 수 있다면, 천일염이나 암염도 좋다.
과일 소스: 소스는 유쾌한 음식이다. 그리스도의 죽음 전의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요한이 야후슈아께 기대어 누가 그분을 배반할 것인지 물었을 때, 그분과 함께 소스에 손을 대는 자가 배반자일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챠로셋/하로셋으로도 알려진 과일 소스는 대추, 무화과, 건포도 등과 같은 신선한 과일이나 말린 과일로 만든 잼과 같은 것이다. 문화권마다 어떠한 과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만드는 방식이 다양하다.
성경 시대에 이루어졌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식사 준비 하기를 선호하는 가정에서는, 렌틸 스프, 오렌지, 포도, 아몬드, 무화과, 대추가 추가로 사용될 수 있다. 싹이 있는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빵을 함께 먹으면 좋다.
유월절에 온전한 식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녁 식사 후에 그 저녁 중 가장 의미 있는 예식을 진행한다. 무교병을 추가로 더 나누고 야후슈아의 잔을 돌리며 친교의 예식을 진행하는 것이다. 무교병이 식사의 일부분이었지만, 친교의 예식 자체를 위해서 추가적인 무교병을 담은 접시를 준비한다. 진행자는 마지막 저녁 식사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읽는다. 이 때는 성스럽고 거룩한 시간이다.
야후슈아의 잔을 돌리는 것이 이 저녁의 하이라이트다. 만약 그 집의 여인이 유리나 금속으로 된 포도주 잔, 고블릿을 가지고 있거나 빌릴 수 있다면, 그 야후슈아의 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이것은 여전히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유효한 특권이다. 한 사람이 그 잔을 마시고, 냅킨으로 입 댄 부분을 닦은 후에 다음 사람에게 건넨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모두가 그것을 마시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느 누구도 우리의 죄들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그 포도의 피”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많은 가정에서 자녀들로 하여금 그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12살까지 기다리도록 만드는데, 왜냐하면 12살이 그들 자신의 영혼을 야후와께 책임 지워질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 예식이 끝날 때, 헌신을 다시금 다짐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고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야후슈아의 위대한 희생에 대해 감사 드리고,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독생자를 기꺼이 희생하신 아버지께 감사 드려야 한다. 지도자/집의 주인/집의 여주인/부모가, 아내/자녀들/손님들에게 축복하는 말을 하며 이 예식을 마무리할 수 있다. 성경 구절을 읽어도 되고, 자기 자신의 말을 해도 좋다. 그 저녁 식사가 끝났을 때, 야후슈아와 제자들은 찬송을 부르고 밖으로 나갔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것은 슬픈 노래가 아니었고, 기쁨의 노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희생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구원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쁘셨다. 오늘날, 비록 우리는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그러한 희생이 요구되었다는 것에 대해 슬픔을 느끼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기뻐할 수 있고 우리가 그분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즐거워할 수 있다.
제안:
각 개인과 가족, 그룹은 이 거룩한 행사를 그들에게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들을 개발해 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거실 바닥에 다채로운 카페트를 깔기도 하고, 바구니와 작은 탁자를 이용하여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가장 좋은 접시들과 식탁포를 이용하기도 한다. 촛불은 언제나 특별한 불빛을 더해 주며, 크리스탈 받침대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불붙이개나, 다채로운 유리 그릇에 작은 봉헌물도 사용될 수 있다.
무교절
무교절은 언제나 첫째 달의 15일, 안식일에 해당하는 특별한 집회다. 그런 이유로 그 날은 큰 안식일이라 불린다. 무교절은 칠일간 진행되며, 그 달의 21일까지 지속된다. 이 절기에는 특별한 규칙들이 있다. 이 기간 동안, 효모를 먹어서는 안 된다. 유월절보다 더 큰 의미에서,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속박으로부터 구원된 것을 기념하며, 결국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된 것을 기념한다. 무교절은 일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무교절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이 때에 특별한 가족 예배나 가족이 함께 계획하는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무교절 기간에, 특별한 세가지가 있다: (1) 이 절기의 첫 날이 15일에 해당하며 큰 안식일이다. (2) 둘째 날은 곡식단을 흔들어 드리는 날로서, 초실절이라고도 불린다. (야후슈아께서 부활하신 날, 16일이다); (3) 이 절기의 마지막 날은 21일로서 “거룩한 집회”다. 그러므로 이 달의 21일과 22일이 연속해서 안식일이 된다. [모든 날짜들이 야후와의 태음태양력에 따라 그 해의 첫째 달에 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희 수확물의 첫 열매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한 것으로 내가 그 단을 받도록 야후와 앞에서 흔들되 안식일 다음 날에 그것을 흔들지니라.” (레위기 23:10-11)
바울은 초실절이 야후슈아의 부활의 상징임을 인정하며 말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 . . 먼저는 첫 열매인 야후슈아요, 그 다음은 야후슈아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라. (고린도전서 15:20, 22-23)
누룩 없는 빵의 첫 날
일년 중의 안식일들 중에서, 무교절의 첫 날은 가장 엄숙한 날이다. 이 날은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계셨던 날로 기념된다. 제자들이 아주 오래 전에 느꼈던 절망을 기억하면서, 이 날은 얼마나 긴 하루가 되는가! 그들은 죽어야 하는 메시아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 그들의 절망과 슬픔, 상심과 낙심은 끝이 없었다.
이 기념일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그 처음 제자들이 느꼈던 황폐함과 고통과 희망이 없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아버지의 사랑이 없었다면, 온세계가 느꼈을 황폐함과 비참함이다. 구주 없이, 전세계는어떤 희망도 없이 버림 당했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침착한 시간이며 우리는 죄의 거대함을 희미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야후와의 율법은 완벽하다. 그것은 영원하신 분의 생각들과 감정들이 겉으로 기록된 원고다. 그것을 변경한다는 것은 그것이 기록된 그분의 품성 안에 무엇인가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이것이 야후와의 거룩한 율법이 죄인들을 용서하기 위해 변경될 수 없었던 이유다. 거룩한 율법이 사랑의 율법이기 때문에, 무한하신 사랑은 죄인들을 구하기 위한 한 방법을 찾아 내셨다: 그 사랑 자체이신 분의 독생자의 희생이 그 죄 값을 치르는 것이었다.
사단은 하늘에서 그리스도를 [야후와]의 궁정에서 가지신 그 지위 때문에 미워하였다. 그가 쫓겨났을 때에는 그리스도를 더욱 미워하였다. 그는 죄에 빠진 인류를 구속하기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미워하였다. 그러나 [야후와]께서는 사단이 통치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 세상에, 당신의 아들이 인간의 연약함을 가진 무력한 어린 아기로 오는 것을 허락하셨다. [야후와]께서는 그분이 인간으로서 누구나 당하는 인생의 위험을 겪고 또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싸워야 할 싸움을 실패와 영원한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는 것을 허락하셨다.1
그리스도는 그분이 잃어버린 바 당할 수도 있는 진짜 전투에 들어가셨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심지어 그분의 마음 속에서, 한 번이라도 죄를 지으셨더라면, 그 전투에서 패배했을 것이다. 사탄이 승리했을 것이고, 죄가 전 우주에 퍼졌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아버지께서 이 싸움에서 그리스도 자신의 영원한 존재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으셨더라면 그분 역시 영원한 죽음이라는 죄의 값을 당하셨을 것이다.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애의 위험들을 생각하고 떤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사단의 권세에서 보호해 주고 시험과 투쟁에서 벗어나도록 붙잡아 주길 원한다. [야후와]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더욱 심한 투쟁과 더욱 무서운 위기를 당하게 하신 것은 우리 어린 자녀들을 위하여 인생의 길이 안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랑이 이 안에 있다”. 기이하도다, 하늘이여! 놀랍도다, 땅이여!2
아버지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의 위험을 감수하셨다. 우리는 죄의 극악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과 자연스럽게 지낸다. 그 안식일은 우리의 야후와와 그분의 아들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치르셨는지를 인지하기 위한 기념일이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세상의 죄들로부터 오는 죄에 대한 감각이 너무도 커서, 그분께서는 자신이 다시는 아버지의 임재로 결코 돌아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야후와]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인류의 대속자이신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3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은 죄에 속아 배반한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신 그러한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렇게 크고, 값비싸며 위험한 모험에 그분의 아버지와 협력하실 만큼 그분 자신의 영원한 존재성을 기꺼이 감수하신 그러한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계셨던 그 날의 고요함과 절망이 온 세계가 구주 없이 느껴야 하는 것을 희미하게 나타내준다.
너무도 크고 순결한 그러한 사랑이, 죄로 돌처럼 된 마음을 녹인다. 자기 희생적인, 신성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사람이 깨닫게 되면서, 그는 그 사랑의 통제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 복종은 그분 없이 존재하기 보다는 오히려 존재하기를 멈추는 그러한 수준의 복종이다.
바다 같은 주의 사랑
바다 같은 주의 사랑
내 맘속에 넘치네!
생명의 주,
우릴 위해
보혈 흘려 주셨네
영원하신 주의 사랑 어찌 우리 잊으리?
생명 주신 주님만을 영원히 찬양하리
주 못 박힌 언덕 위에
생명의 문 열렸네.
깊고 넓은 은혜의 샘
강과 같이 흐르고
야후와의 자비하심 이 땅 위에 넘치네
평강의 왕, 주 야후슈아
세상 죄 구속했네!
바다 같은 주의 사랑(Here is Love): (듣기)
https://youtu.be/H1A7tS1gtac?list=RDH1A7tS1gtac
제안:
무교절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매우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 가족 예배가 야후슈아의 삶으로 표현된 아버지의 사랑에 집중될 수 있다. 자녀들의 삶에 있어서 그들의 마음을 부모의 마음에 사랑의 코드로 가깝게 이끌어주며 가족 활동을 위해 구별한 특별한 시간이 이 주간을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절기의 모든 날이 안식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은 예비일에 해당하지만 안식일이다. 무교절의 끝은 일년 중 유일하게 연속되는 두 안식일을 제공한다.
1엘렌 G. 화잇,시대의 소망, 49쪽.
2위와 동일.
3위와 동일, 753쪽.
곡식단을 흔드는 것
곡식단을 흔드는 것은 봄 절기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이 날은 구주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신 날이다! 그분은 완벽하시고 죄가 없는 희생을 치르셨기 때문에 부활하셨고, 그분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날 동안, 우리 구주와 하늘 아버지께 사랑과 감사가 넘쳐야 하겠지만, 특별히 이 날은 더욱 기쁨과 감사와 희망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로마서 8:321)
현재의 부활절 기념이라는 모습으로 침투한 이교의 정신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을 무시하도록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왔다. 유월절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대로, 그 엄숙함이 지켜져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도 기억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 없이, 우리에게 도움도 없고 희망도 없을 것이다. 그분의 완벽한 삶으로 확실하게 된, 그분의 부활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하늘이 열려 있게 되었다. 모든 영원에 걸쳐 불사의 유업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도움, 격려, 지속이 열려 있게 되었다. 그러한 영광스러운 승리가 언제나 기억되어야 한다. 야후와께서 승리하셨다!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정당함이 입증되었으며 그분께서 하기를 갈망하셨던 일, 곧 죄에 속아 배반했던 죄인들을 구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셨다.
곡식단을 흔드는 것은 또한 영원한 미래, 곧 땅이 새롭게 되고 더 이상 죄와 죄인들이 없는 미래를 간절히기다리는 것에 대한 기념이 된다. 그분의 구원과 구속의 사역 후에, 야후슈아께서 안식일에 무덤에서 쉬셨다. 육 천년 동안, 사람들은 사탄과 죄의 짐 아래서 고생해왔다. 죄가 더 이상 없을 때, 구속 받은 자들은 하늘 궁전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주의 첫 날에 곡식단을 흔드는 것은, 그것이 다시 새롭게 되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의 첫 날, 곧 곡식단을 흔드는 날에 부활한 것은 영원한 세대에 걸쳐 끝없는 순환을 간절히 기다리게 한다. 그 영원한 시간 동안, 구속 받은 자들은 그들의 비할 데 없는 선물과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찬양할 것이다.
곡식단을 흔드는 것은 감사를 드리는 축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감사를 표현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 의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에 창조해 주신 새로운 영적 생명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의 삶과 축복들에 대해서도 감사 드려야 한다. 죽은 씨앗으로부터 자라난 기적은 위법과 죄로 죽었던 우리 안에 창조된 새로운 생명으로 비유된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주신 야후와의 아들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곡식단을 흔드는 것은 신성의 사랑의 영원한 능력을 기념하는 것이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 . .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 8:6, 7)
우리를 이렇게 감싸는 사랑으로, 우리는 원수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일 준비를 갖추게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소식을 전하는 기쁨을 가지고 타락한 세상에 곧 돌아간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기름부음 받은 자 야후슈아 안에 있는 야후와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5-39)
제안되는 활동들:
전통적으로, 곡식의 단을 흔들어 창조주께 드리기 위해 곡식단이 모여졌다. 도시나 날씨가 험한 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새로운 성장의 기적을 인식하는 대안적인 방법으로 씨앗의 싹을 트게 하는 것이 있다. 곡식단을 흔드는 날 며칠 전에, 옥수수나 다른 씨앗을 물기가 있는 곳이나 햇빛에 놓아둠으로써 싹을 틔운다. 렌틸은 삼일이면 싹이 튼다. 곡식단을 흔드는 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죄에 대해 죽을 것을 동의하면서 이것들을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새로움에 대한 상징으로 기도하며 올려드릴 수 있다. 강낭콩과 같이 큰 콩들을 사용하여 어린 자녀들에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학습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페이퍼 타월에 물을 적셔 투명한 유리병 안에 넣는다. 그 페이퍼 타월이 유리병에 확실히 접촉되도록 해야 한다. 페이퍼 타월과 유리병 사이에 콩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햇빛이 드는 창턱에 둔다. 타월을 촉촉하게 유지시켜준다. 콩이 싹을 틔우면서, 자녀들은 새로운 생명을 내기 위해 죽는 그 씨앗의 살아 있는 비유를 보게 될 것이다.
1곡식단을 흔드는 것에 대한 모든 성경 구절은 킹제임스 성경 또는 개역한글에서 발췌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성스러운 이름들도 대체되었다.
1“자기 자신의 생일 다음에, 사탄의 주요한 두 개의 기념일이 발부르기스의 밤 [5월 1일]과 할로윈이다.” Anton S. LaVey, The Satanic Bible, (New York: HarperCollins Publishers, Inc., 1992), p. 96.
출처: https://www.worldslastchance.com/yahuwahs-calendar/celebrating-the-spring-anniversaries-korean.html
첫댓글 구약시대에 절기를 가족과 함께 지켰는가?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신 16:16)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출 34:23-24)
신약시대는 절기는 지키야 하는가?
“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갈 4:10-11)
천국ㄱㅏ자님,
제발,... 이 글 좀 꼭 읽어보세요
http://m.cafe.daum.net/aspire7/9z7T/17168?svc=cafeapp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매우 명쾌하게 나오니까요.
@박형석 “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골 2:20)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5)
절기가 의문의 율법이 아니든가요?
@박형석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4-17)
천국가자님에게 이미 가르쳐준 바 있지만, 성경을 자기 지식때문에 거절하시더군요.
그러나 이 댓글을 볼 다른 분들을 위해 다시 알려드립니다
일곱째날 안식일이 절기에 들어간다는 명쾌한 성경구절입니다.
레위기 23장 1-4절
야후와의 절기는 이러하니...
엿새동안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아무 일도 하지말라.
제칠일 안식일이 절기가 아니라는 명쾌한 성경구절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지니
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 예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레 23:37-38)
여호와의 절기에 드리는 제사에 명확하게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라고 하네요
성경을, 순종하기 위해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군요.
정말 마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제칠일 안식일은 창세로부터 존재하였고
절기는 출애굽부터 존재하였습니다.
누가 자신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성경을 이용합니까?
님은 하루의 시작을 아침부터라고 주장을 하지요
그러나 절기는 하루의 시작을 저녁부터라고 주장하지요
님의 주장처럼 제칠일 안식일이 절기라면 하루의 시작이 저녁부터이지요?
하루의 시작이 아침부터인가요? 저녁부터인가요?
제칠일 안식일일 절기인가요? 절기가 아닌가요?
15일은 무교절인데 이 날을 제칠일 안식일이라고 주장하지요?
아직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어요
http://www.hebcal.com/converter/?hd=14&hm=Nisan&hy=5776&h2g=1
박형석님께서
아무리 날짜를 지키라고 주장하셔도,,
유월절을 3/22 로
본인부터 엉뚱한 날짜를 지키고 계시다는 것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자신부터 오류의 날짜를 붙잡고 있다는 걸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3월 22일이 아니고, 23일이었습니다.
그럼..언제죠?
@박형석 바른 유월절 날짜를 알려드리는 이유는
그 날짜를 지키라는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2016년 유월절 날짜는 4/22일입니다.
확인하시라고 앞의 댓글들에도 웹주소를 드렸었는데 보시지를 않는군요.
http://www.hebcal.com/converter/?hd=14&hm=Nisan&hy=5776&h2g=1
저는
박형석님께서 엉뚱한 날짜를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림으로써,
절기와 예식이 아직 구속력이 있으니 철저히 지켜야한다고 박형석님께서 말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고,
이후로도 박형석님께서는 온전하게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드리는 것입니다.
롬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가 되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그 약속은 효력을 잃게 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