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출마선언문을 접했을 때 내 머리를 스친 건 절묘한 두 DNA의 조화였다. 경제민주화·일자리창출·복지의 세 깃발은 강력한 성장의지와 베풀고 나누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새끼줄처럼 꼬여 있는 형상이었다. 두 DNA의 조화가 무슨 뜻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민주화와 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반영하기까지, 박근혜 후보가 보여줬던 치열한 진화와 변화에 대해서는 꼭 짚어둬야겠다.
사람들은 박근혜 후보가 북극성처럼 붙박이일 거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약속을 지키고, 삿된 생각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애국심 때문에 뿌리내린 인상이다. 그러나 박 후보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정치인이다. 10년 전 당권·대권 분리투쟁에 정치생명을 걸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정치민주화의 피뢰침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천막당사 시절 비례대표 공천권을 몽땅 ‘위원회’에 백지위임 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정치민주화의 제도화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한 대통령
노무현 정부 5년 만에 성장동력이 완전히 바닥나자 당내 경선에 임한 박 후보는 ‘줄푸세’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1년 남짓 지나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로 진화했고,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담은 사회보장기본법으로 구체화했다. 신자유주의 폐단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극복에 나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는 한결같고 변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나더러 말하라고 한다면 이렇다. “박근혜는 치열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하기 때문에 대통령감이다.”
지금 당장 주변을 살펴봐도 학생운동 때 그렸던 그림에 덧칠만 하는 후보들, 치열한 진화가 아닌 기회주의적 변신을 도모하는 군상들이 정치권에는 얼마나 많은가. 박근혜 후보는 예외다.
얼마 전 서로 다른 두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한쪽은 박정희 대통령 외에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다는 자리였고, 나중의 다른 쪽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빼고는 형편없는 대통령뿐이라는 자리였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벌써 망했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모든 대통령이 그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을 훌륭하게 해낸 덕분에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루었다고 믿는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 수많은 업적 외에 공명선거로 진정한 정권교체의 길을 터줬고,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 본격적인 사회안전망 구축,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관계 업적 부분은 노태우 대통령의 담대한 북방정책이 선행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특히 돈선거를 추방함으로써 지금도 국민 모두가 감사해 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 대통령의 임무는 이 모든 업적 위에 세워진 ‘성공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더 큰 대한민국, 더 성공한 대한민국으로 이끌어가느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안목으로 자신의 과제를 파악한 후보는 박근혜뿐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박근혜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약속을 반드시 지킬 사람은 누구인가
국회 대정부질의 때 제일 자주 인용되는 공자 말씀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지금 글을 읽는 이들에게 스쳐가듯이 묻는다. 거론되는 대통령 후보들 가운데, 아니 아예 모든 정치인들 가운데 ‘말씀’을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가 약속했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 학자들은 신용이나 신뢰를 유식한 말로 사회적 자본이라 한다. 그리고 산업설비나 사회간접자본이 두루두루 갖춰져도 이게 없으면, 그러니까 신뢰가 없으면 선진국이 못 된다고 말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다시 스쳐가듯 묻는다. 서로 믿는 사회란 ‘윗물이 맑아야’ 이루어지는 법인데 여기에 꼭 들어맞는 후보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어갈 지도자가 누구인가의 동어반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지하게 묻는다. 그게 누구인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박 후보의 두 개 DNA 중 근년 들어 고 육영수 여사의 DNA가 힘차게, 균형있게 약동하는 걸 보고 가슴이 벅찰 정도로 기분이 좋다. 김종인 박사를 모셔오고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깃발을 높이 세운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 일로도 기분은 좋아졌지만 가슴이 벅찰 수준까지는 아니다. 내 가슴을 벅차게 만든 것은 ‘100% 대한민국론’이다. 이로써 박근혜 후보는 지금까지 선거전략의 전가보도였던 편가르기 관행에 철퇴를 내렸다. 그리고 성장과 분배가 변증법적 발전을 할 수 있는 틀을 제시했다. 장하준 교수 그룹이나 복지국가소사이어티그룹의 담론도 ‘100% 대한민국론’과 접목되는 순간 유정란으로 변하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이 과업을 이루리라고 믿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사람을 쓰고 일을 맡기는 방식 때문이다. 8년 전 천막당사 시절 얘기를 하면 모두들 기억이 희미하겠지만 몇 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을 생각해 보라.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을 발탁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게 일을 맡기지 않았는가.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사람의 바탕은 변하지 않는다
내 나이가 되면 저절로 터득하는 게 하나 있다. 사람의 바탕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바탕을 갈고 다듬으면 더욱 빛나지만 바탕 자체가 없는 경우에는 연마 또한 불가능한 법이다.
그래서 나는 10·26(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다음날 아침 20대의 박근혜양이 “휴전선에는 별일 없느냐?”고 물었던 그 바탕을 너무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것은 애국심이나 사명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특별한 바탕에서나 나올 수 있는 울림이다.
생명이 위험했던 면도날 상처를 조용히 두 손으로 누르고 주변사람들까지 침착하게 만들었던 날, 그날 이후 여성에게 국가 안보를 맡기는 문제와 관련해 떠돌던 걱정이 사라진 것은 국민이 이 바탕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었다.
‘100% 대한민국론’과 이 바탕 때문에 내가 요즘 들어 한껏 펼치는 상상의 날개가 하나 있다. 박근혜 시대 5년이 끝나기 전 우리 청소년들이 수학여행 때 비행기를 타지 않고 중국을 가는 상상이다. 인위적인 섬나라에서 마침내 탈출하는 상상이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이지 않는가.
학교성적에 석차가 있듯이 나라에도 순위가 있다. 경제 규모를 놓고 매긴 대한민국의 순위는 이렇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순위 밖, 1975년 37위, 1980년 27위, 1985년 19위, 1990년 15위, 그 이후 20년간은 15위에서 아래위로 한두 계단씩 왕복하는 모양새다. 냉정하게 말해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가속페달이 풀리자 1990년대 이후 우리는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는 중이다.
‘100% 대한민국론’으로 속좁은 편가르기에서 벗어나야 다시 한번 떨쳐 일어날 수 있다. 선동가들이 내세우는 빼앗아서 나눠 주기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나아가야 5000만이 행복한 시대를 열 수 있다. 그리고 8000만이 행복해지는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박근혜다.
첫댓글 홍의원님이 멋지게 풀이하신 박근혜론..
글 행간마다 왜 박근혜라야 하는가?
잘 녹아 있습니다.
의원님의 글에서 박근혜의 인물됌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어 기쁨니다. 의원님 역시 그에 못지않는
지도자로서 훌륭하다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근혜님 대통령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에서
위대함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존경합니다. ^^
앞으로 5년 은 홍의원님이 함께 이끌어야 할 5년입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우리의 저력을 보였듯이 앞으로 5년을 후회없는 5년이 되길바랍니다.
대통합을 할 수 있도록 그 역활 잘 해 주실 선대위원장님 굿임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치우침이 없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절대 공감..!
그래서 의원님께서는 (나는 박근혜 대통령 만드는 도구 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