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
감독 Ang Lee
음악 Gustavo Santaolalla
주연 Jake Gyllenhaal 잭 트위스트 역
Heath Ledger 에니스 델마 역
The maker makes
One more chain I break
To get me closer to you
One more chain does the maker make
To keep me from bustin' through
나는 사슬을 하나 더 끊어
너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신은 사슬을 하나 더 엮지
내가 부숴버리지 못하게
One more notch I scratch
To keep me thinkin' of you
One more notch does the maker make
Upon my face so blue
나는 한번 더 상처를 할퀴지
너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신은 하나 더 상처를 만들어
내 얼굴에 그늘이 지도록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살아가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아
살아가자
One more smile I fake
And try my best to be glad
One more smile does the maker make
Because he knows I'm sad
나는 한번 더 미소를 가장해
그리고 기뻐하려 애쓰지
신은 한번 더 나를 미소짓게 해
실은 내가 슬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Oh Lord, how I know
Oh Lord, how I see
That only can the maker make
A happy man of me
신이여 제가 어떻게 아나요
신이여 저는 몰랐습니다
오직 당신이 제 행복을
쥐고 있다는 것을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little doggies
Get along
살아가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아
살아가자.
일년 삼백육십오일 눈으로 뒤덮여 있는 8월의 브로크백 산. 눈부신 풍광을
자랑하는 자연을 벗삼아 양떼 방목이 한창이다. 이제 막 스물을 넘긴 애니스
(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바로 이 장소에서 처음 만난다.
여름 한철 동안 방목장에서 눈과 야수들로부터 양을 지키는 일을 맡게 된
이들은 산 중턱에서 숙영을 하며 고된 하루하루를 보낸다.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친밀해지려던 찰라, 둘 사이의 우정은 어느 순간 고개를 넘어 사랑이 된다.
격정적이지만 성급하지 않은, 육체를 탐닉했으나 그에 매몰되지 않는 사랑이다.
스스로도 당황스럽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동성, 아니 서로에게 이끌린 이
들은 속내를 정확히 털어놓지도 못한 채 한철을 다 보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성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다. 남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에 젖어드는가 싶지만 브로크백 산에서의 기억은 이들의 운명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젊은 날의 치기와 충동이 빚어낸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었음을 직감하는 데 무려
4년의 시간을 낭비해버린 두 남자는 기어이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첫눈에 부둥켜
안고 키스를 나눌 만큼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지만,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20년간 이어질 두 남자의 밀회와 사랑, 질투와 너무 늦은 고백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 모든 해후는 브로크백 산에서 이뤄진다. 모든 것을 포용
하고도 남을 것 같은 대자연의 너그러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 산에서
말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끌벅적한 수상 결과와 평단의 반
응을 거론하는 것은 지면을 낭비하는 도배 행위다. 이것은 극도로 절제된 러브스토
리다. 아니, 사실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떤 감정에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불필요한 감정의 과잉이나 결핍, 신격화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면 <브로크백 마운틴
>이야 말로 그에 적합한 영화일 것이다.
영화는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의 참 의미 따위의 고전적 찬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부터 게이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영 마뜩찮을 보수적 평자들까지 모두를
품고 안아 흔들 만한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이안 감독이 포착한 풍경들,
특히 로키산맥의 험준한 봉우리와 만년설, 그 안의 푸른 초원으로 채워지는 브로크백
산의 이미지에 힘입은 바 크다.
애니스와 잭이 살아가는 인간 사회는 어딘가 결여돼 보이는 상실의 공간인 반면,
브로크백 산은 묵묵히 모든 것을 관조하는 절대자의 아우라를 불러온다. 산은 애니
스와 잭의 육체가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긴장과 낯선 감정의 교류, 그리고 서로를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지켜본 터다. 그 산은 언제나 그곳에
서 있었다. 조바심과 의구심을 품고 소유를 향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늘 인
간의 몫이다.
관객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드는 애니스의 마지막 대사를 들어주는 것 역시 어느
누군가가 아닌 브로크백 산이다. 이처럼 이안 감독은 대자연의 존재를 단지 보기
그럴싸한 병풍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갈등과 해소를 담아내는
공간이자 치유의 메타포로 격상시키고 있다.
물론 이런 식의 근사한 코멘트는 공간을 사유하는 여타 영화들의 경우에도 동일
하게 적용된다. 이들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결정적인 차이는 극도로 사려 깊은 광
각의 렌즈가 담아내는 세밀한 지점들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 잎 끝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조차 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시선의 힘을 목격한다. 산과 눈, 바람과 비, 풀과 꽃,
그리고 그 가운데 자리한 동성 커플이 온전히 한 화면에 담겨지는 그 순간, 우리는
이미지 앞에 숙연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논할 때 수상 결과와 평단의 반응을 다루는 것이 지면 낭비
라면, 배우와 음악 이야기를 거르는 것은 직무 유기다. 이 적막한 영화가 그토록 많은
눈물과 감정의 폭발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의 팔 할은 이 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히스 레저가 보여주는 발군의 연기는 단연 이 영화의 발견이자 백미다. 주인공들의
사랑을 억누르는 사회문화적 금기의 공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성기가 뽑혀나갈지 모르는’ 긴장과 억압의 기재가 느껴지는 것은 히스 레저의 낮은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이 직조해낸 정서들 탓이다.
감정을 쉽게 노출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 이상의 감정에 호소하는 침묵의 연기는
어떤 특별한 정서를 관객의 심장 주변 내밀한 지점까지 파고들게 한다. 이는 어느
순간 부지불식간에 폭발하는데, 신파적 대사나 장면들 없이도 사람을 정신 없이
흐느끼게 만드는 비결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그리움 속에서 괴로워하는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 역시 탁월한 것은 매한
가지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방법으로 관객에게 소구하는 질렌할의 연기는 히스 레저
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각별한 성취를 이룬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끝자락은 배우나 풍경이 아닌 음악의 힘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장면이 지나간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와중에 울려 퍼지는 두 개의 음악
은 끝내 울음을 참아낸 냉혹한 인간들마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후폭풍 속으로
인도하고 있다.
윌리 넬슨의 목소리로 듣는 밥 딜런의 명곡 ‘He Was a Friend of Mine'과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The Maker Makes'는 수십 년에 걸쳐진 애니스와 잭의 가슴 아픈 사연
을 한꺼번에 응축해 환기시킨다. 마치 애초부터 <브로크백 마운틴>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이 곡들을 듣지 않고서는 이 영화를 온전히 봤
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한 선곡이다.
인생에 단 한 번 마주칠 수 있을지 단정하기 힘든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는 내 친구였어요, 그는 내 친구였어요, 이제 그를 생각할 때마다 눈
물을 흘릴 수밖에 없어요, 그건 그가 내 친구였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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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성애를 다룬 영화라고 들었는데 ..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함 보고 싶기도 하네요~~
감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