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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불멸 사상과 세상 종교의 근원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는 세계의 주요 종교이다. 그래서 이들 종교의 맹목상의 신자들이 세계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절대다수의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일상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종교들이 각각의 고유의 숭배 방식이 있겠지만 하나의 관점에서는 모두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 죽을 때에 영혼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인 것이 사람의 육신을 빠져나가 저승에 간다는 사상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혼이 불멸이며 사람의 육신은 죽었지만 영혼이 사후 저 세상에서 의식적인 삶을 계속한다는 관념은 이들 종교에서 공통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종교들이 영혼불멸의 사상에서 표현 방식과 견해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영혼불멸과 사후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에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종교들도 사후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가르치고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로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며 힌두교는 인간 영혼이 환생한다는 견해를, 힌두교에서 유래한 불교도 환생과 지옥을 가르친다.
결국 사후 세상에서 선한 사람은 천국에서 행복한 삶을 계속하거나 환생을 한다는 것이며 악한 사람은 죽어서 그 영혼이 지옥에서 영원한 고통 받거나 또는 짐승으로 환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지역과 국가와 문화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관념과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성서를 경전으로 하는 소위 그리스도교에 속하는 종교들은 성서가 영혼불멸과 사후 천국과 지옥을 가르친다고 주장하고 성서를 한 번도 읽어 본적이 없는 사람을 포함하여 성서를 읽어 본 사람들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성경이 과연 영혼불멸 사상과 사후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는가?
성서에서 영혼이라는 말이 소위 구약이라고 하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서에서 영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네페시가 754회 나오며, 또한 소위 신약이라고 하는 그리스어로 기록된 성서에 네페시에 대응되는 단어 그리스어 프시케가 102회로 성서전체에서 856회나 나오기 때문에 영혼이 무엇인지에 관해 종교학문을 전공하거나 신학박사가 아니라도, 영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보면 그렇게 많은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영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페시가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1장 20-23절인데 그곳을 네페시를 영혼으로 번역하여서 보게 되면 “이어서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물에는 산 영혼들이 떼 지어 살고, 날짐승들은 땅 위 하늘의 공간 표면 위를 날아다니라.’ 그리고 하느님이 큰 바다 괴물들과 물에 떼 지어 사는, 움직이는 모든 산 영혼을 그 종류대로, 날개 달린 모든 날짐승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기 시작하셨다. 하느님이 보시니 그것이 좋았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그것들을 축복하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의 물에 가득 차고, 날짐승들은 땅에 번성하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다섯째 날이었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이 성경 기록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하느님께서 지구와 관련한 창조하는 다섯째 날 또는 다섯째 기간에 물에서 사는 모든 영혼과 창공을 나는 모든 영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적 관점과 하느님의 관점에서는 물에 사는 모든 물고기나 모든 포유동물과 모든 파충류나 모든 양서류나 창공을 나는 모든 새들도 다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이 기록은 하느님이 지구에 생물, 영혼을 지구에 있는 물질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하며, 영혼이 육신과 따로 확연히 분리 될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 다음 지구와 관련하여 창조하는 일에서 여섯째 날 또는 여섯째 기간에는 땅에 있는 피조물을 창조하시는데 창세기 1장 24절은 “이어서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땅은 산 영혼들을 그 종류대로, 가축과 길짐승과 땅의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라.’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땅에 사는 모든 동물들이 산 영혼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관점과 하느님의 관점은 땅에 모든 동물들이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사람의 창조기록을 검토해 보자. 창세기 2장 7절에서 보면 “그리고 여호와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산 영혼이 되었다.”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결합시켜서 사람이 살아 있게 된 것이 아니라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자 사람은 산 영혼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육신과 영혼이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인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관점과 하느님의 관점은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것이 물고기든 포유동물이든 파충류든 양서류든 사람이든 간에 다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 이 땅의 물질인 흙으로 만들어 졌으며 흙으로 만들어진 모든 피조물이 모두 산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영혼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첫 사람 아담이 하느님께 불순종 했을 때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을 창세기 3장 19절에서 보면,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고 마침내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것에서 네가 취하여졌기 때문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성경 기록을 무엇을 알 수 잇는가? 먼저 하느님께서 아담을 창조하기 전에 그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담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하면 흙인 무생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아담이 지옥에 갔다는 말이 없으며 죽은 자에 대해서도 지옥이나 천국에 간다는 말이 없다.
죽음은 생명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도 전도서 9장 5절에서 “산 자들은 자기들이 죽을 것임을 의식하지만,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다시는 삯도 받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잊혀 졌기 때문이다.”라고 죽은 자는 생명의 현상들을 의식하는 것, 기억하는 것이 없는 무존재라고 한다.
성경 어디에도 영혼이 절대로 죽지 않은 불멸로 언급한 내용을 볼 수 없다. 오히려 에스겔 18장 4절은 “범죄 하는 영혼이 죽”는다고 한다. 그러면 범죄 하지 않은 영혼이 있는가? 전도서 7장 20절은 “늘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의로운 사람은 땅에 없다.”고 하며 로마 5장 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으며, 이와 같이 모두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다.”라고 아주 간결한 논리로 모든 사람이 근원적으로 죄를 유전 받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죽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관점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죄의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근원적 사형수라는 것이다. 이것은 실정법을 범하든 범하지 않든지 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관점에서 죄인이며, 그래서 인간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서는 영혼이라는 말을 영혼으로서 가지고 있는 생명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는데, 예수께서는 마태 16장 26절에서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또는 사람이 자기 영혼과 교환하여 무엇을 주겠습니까?”라고 한 말은 영혼으로서 가진 생명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영혼이라는 말 대신에 생명이라는 단어를 넣어 번역하여도 의미가 같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영혼불멸을 가르치지 않으며, 사후 저세상의 삶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그 점을 시편 115편 16, 17절에서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그분이 사람의 아들들에게 주셨도다. 죽은 자들은 야를 찬양하지 못하니, 잠잠함으로 내려가는 자는 누구도 하지 못한다.”고 사람이 생명을 누리고 살 곳이 땅이고 죽은 자는 하느님 여호와를 찬양할 수 없다고 명확히 말한다. 성서 어디에도 사람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하느님 곁에서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말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영혼불멸을 가르치지 않고 사후 저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 주지 않는
다. 그렇지만 성경은 영혼불멸 사상과 사후 저 세상에 대한 관념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창세기 3장 1-5절에서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느님이 만드신 땅의 모든 들짐승 중에 가장 조심성이 있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너희는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이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였다. ‘동산 나무들의 열매를 우리가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에 관하여는, 하느님께서 너희가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아니, 그것을 만져서도 안 된다. 그래야 너희가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바로 그 날에 필시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필시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서의 이 기록은 하느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되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반대로 뱀은 동산 중앙에 있는 그 열매를 먹어도 절대로 죽지 않고 하느님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 열매를 먹은 결과는 하느님의 말씀처럼 인간은 죽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죽게 되었다.
사실 성서는 첫 여자인 하와에게 접근하여 말한 자는 실제로 뱀이 아니라 영의 인격체인 천사라고 밝혀 준다. 계시록 12장 9절은 그의 정체에 대해 “그리하여 큰 용이 내던져졌는데, 그는 원래의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로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을 그릇 인도하는 자이다. 그가 땅으로 내던져졌으며,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내던져졌다.”라고 기록한다.
사실 뱀은 성대기관과 언어중추가 뇌에 없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뱀이 말하는 것처럼 가장한 배후의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 하는 자가 있었다. 그가 그의 천사들과 함께 땅으로 내 던져졌다는 것은 그가 세력을 가진 천사로서 그의 편에 선 천사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귀라는 단어의 의미는 중상자라는 뜻이고 사탄이라는 말은 반항자를 뜻하는 것을 볼 때, 그 천사의 이름이 본래는 마귀나 사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하느님을 중상하고 하느님을 대항함으로 사탄이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께 불순종 하고도 절대로 죽지 않고 하느님처럼 될 것이라고 말한 사탄이 영혼불멸 사상과 사후 저 세상이라는 거짓된 관념을 온 세상에 영향을 끼치도록 조정한 자 임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30절에서 사탄을 “세상의 통치자”라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4장 4절에서 “이 세상 제도의 신”이라고 했으며, 사도 요한도 요한 1서 5장 19절에서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 아래 있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사탄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카톨릭, 프로테스탄트,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가 가르치고 있는 영혼불멸 사상과 사후 저 세상의 관념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처럼 될 것이라는 말한 사탄의 말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영혼불멸 사상과 사후 저 세상의 관념은 거짓이고 허구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선언한 말과 부합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영혼불멸 사상과 사후 저 세상이라는 관념은 사탄이 근원이며 세상의 종교들 역시 이러한 가르침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하느님을 숭배하고 성경을 경전으로 하고 있더라도 종교의 근원은 사탄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진리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한다면
www.jw.org를 방문해 보시기를 바라며, 또한 필자와 대화를 원하시면 댓글로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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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죽음은 덧없슴을 의미 하는 것 아닌가요
죽으면 무존재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누구나 경험하는 실증입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자이든 상관없이 죽으면 그것으로 생명의 끝이며 그는 존재하지 않을 뿐입니다. 성서 전도서 9장 5절의 말처럼 " 산 자들은 자기들이 죽을 것임을 의식하지만,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다시는 삯도 받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기억이 잊혀졌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들의 견해 사람의 육신은 죽지만 그 영혼은 저승에 간다는 것은 허구이고 거짓말이며 사탄으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다만 사람에게는 사도행전 24장 15절에 다르면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이 있다"고 합니다. 이 희망을 알아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