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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의 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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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0년 전, 가톨릭 교회는 수세기 동안 연구자들이 지적한 사실을 조용하게 인정했다. 즉 회개한 창녀라는 막달라 마리아의 전통적 이미지는 성경의 텍스트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전제에서 해방된 학자와 팬들은 학문적 연구와 기발한 아이디어의 비율만 다를 뿐 다양한 막달라 마리아를 만들어냈다. 예수의 부유하고 존경받는 후원자, 예수의 제자, 메시아의 자식을 낳은 여자, 심지어 그의 뒤를 잇는 예언자까지. 이런 다양한 가능성들은 마가렛 조지(Margarett George)의 2002년 베스트셀러 역사 소설인 <막달라라고 불린 마리아Mary, Called Magdalene> 를 포함해서 학문적, 대중적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낳았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는 그녀에게서 여성의 유력한 역할 모델이자 여성 사제를 주장하는 근거를 발견한 일부 가톨릭교도들에게 새로이 추종을 받기도 했다. 세 개의 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했다고 지목한 이 여성은 그녀 자신이 일종의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제일(祭日)인 7월 22일에 그녀를 기리는 대체 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엘렌 터너는 이렇게 말했다. “막달라 마리아는 교회에 의해 조작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시 전면에 내세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예수의 실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88년에 나온 <막달라 마리아, 감사의 마음을 표한 여인 Mary Magdalene: A Woman Who Showed Her Gratitude> 은 성경에 등장하는 여자들을 다루는 아동용 도서 시리즈로 그 시절의 전형적인 산물이었는데, 막달라 마리아를 이렇게 설명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유명한 것은 그녀가 훌륭한 말을 하거나 훌륭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여성으로서 역사에 자리한다.” 이는 확실히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의 일부이기도 하다. 많은 교회에서는 여기에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인간조차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회개를 입증하는 일례로서 의미를 더할 것이다. (‘눈물이 많은’이라는 뜻의 maudlin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그녀의 명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세기에 이르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모든 나쁜 여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나쁜 여자라는 대중적 정체를 수립했다. 구원을 받은 마녀는 주일학교 학생들의 과열된 상상력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매춘부들을 수용하는 기관을 수호하는 성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Magdalene Sisters> 에 나오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끔찍한 세탁 공장 같은 곳 말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석되었을 뿐 알고 보니 실제로는 나쁜 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막달라 마리아(그녀의 이름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막달라라는 도시를 가리킨다)는 누가복음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예수가 귀신을 쫓아낸 여자들 중 한 사람(그녀에게는 일곱 귀신이 붙어 있었다)이었다. 이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하며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다” 그녀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였다. 남자 제자들은 전부 달아나버리고 그녀와 다른 여자들만이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부활절 아침, 예수의 무덤에 간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 때 그녀는 혼자였다고도 하고,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었다고도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예수가 다시 살아났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그녀에게 알린 것은 세 복음서에서는 천사들이고, 나머지 하나에서는 예수 본인인데,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의 이야기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요한복음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이 비어 있음을 혼자 발견하고 베드로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제자에게 알리는데, 예수가 부활했음을 이해한 사람은 이 이름없는 제자뿐인 것 같다. 두 사람이 떠난 뒤 홀로 남은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를 만나게 된다. 예수는 그녀에게 자기에게 매달리지 말고,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내 하느님께 올라간다”고 전하라고 한다. 한편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촌극이 벌어진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소식을 알렸으나 제자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나중에야 믿게 되었다. 비록 몇 가지 차이가 있지만 막달라 마리아의 종합적인 인상은 재산이 많고 용감하고 총명하고 헌신적인 여성,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순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여성이다. 심지어 그녀의 역할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화려한 이야기들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는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에 나오는 이름 없는, 혹은 성이 없이 이름만 알려진 여자들을 그녀의 이야기에 뭉뚱그리면서 왜곡되었다. 그중에는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발을 눈물로 씻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입을 맞춘 다음 향유를 부은 ‘죄인’도 있다.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그 외에도 누가복음에 나오는 베다니의 마리아가 있고 또 한 사람 이름 없는 여자가 있는데, 두 사람 모두 방법이 다를 뿐 예수에게 향유를 부었다. 이런 혼동은 59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설교에서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죄를 지은 여자,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베다니의] 마리아는 마가복음에서 일곱 귀신이 나갔다고 하는 마리아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식적인 교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훗날 그리스정교회와 개신교가 로마교회에서 갈라져 나갔을 때, 그들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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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라 마리아의 참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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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한 걸까? 일설에 따르면 여러 명의 마리아를 하나로 합치려는 시도였다고 한다. 요한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또 중요해 보이는 인물인데 배경이 빠져 있으므로 죄인이라는 요소를 덧붙였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여성 혐오 때문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동기야 무엇이었든 간에 이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여성학적 관점에서 보면 실로 비극적인 효과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것은 그녀에게 다른 남자 제자들보다 중대한 위치를 부여하는 핵심적 사건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대신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으로 물러앉고 말았다. 나름대로 감동적인 이야기이지만 중요성은 훨씬 못 미치지 않는가. 디트로이트 머시 대학에서 종교와 여성학을 가르치고 작년에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이라는 책을 낸 제인 샤버그는 이렇게 말한다.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죠. 강력한 여자에게서 힘을 빼앗고 창녀라는 이미지를 심는 거예요.” 샤버그는 이에 대해 “창녀 만들기”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1969년에 가톨릭교회는 기도서 개정의 일환으로 누가복음의 죄를 지은 여자와 베다니의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를 서로 별개의 인물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아직 신도들에게 퍼지지 못한 것 같다 (무덤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활약은 여전히 부활절 전례에 들어가지 못한다) 한편 막달라 마리아의 실각을 남성 우월주의에 의한 음모의 결과라고 보는 사람들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기독교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예수를 따르던 일단의 추종자들에 점점 더 주목하고 있는데, 영지주의자들로 알려진 이들은 막달라 마리아에 매료되어 있다. 소위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 복음은 서기 12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요한복음이 써지고 약 40년 후), 여기서 그녀는 예수가 보여준 환상을 남성 사도들에게 전한다. 정경의 복음서들이 대개 베드로에게 부여한 중개자 역할을 그녀가 가로챈 셈이다. 마리아 복음에서 베드로는 몹시 불쾌해 하며 “예수님께서 정말로 우리도 모르게 여자에게 말씀하셨다는 말인가?” 라고 묻는다. 그러자 사도 레위는 그녀를 옹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여, 너는 늘 성질이 급하다…… 주님이 저 여자를 가치 있게 하셨다면 네가 누구이기에 그녀를 거부하는가? 주님은 실로 그녀를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들보다 그녀를 더욱 사랑하셨다.” 교황청 권위가 베드로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로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물론 영지주의 복음서는 성경과는 다르지만, 사실 성경이 정경으로 통일된 것은 영지주의 복음서 같은 부분들을 배제하기 위해서라는 증거가 있다.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여러 이유로 이들을 이단으로 여겼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에게 마리아복음은 초기에 일부 집단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중요 인물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다. 또한 잊혀진 남성 대 여성의 싸움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싸움은 결국 남자들의 승리로 끝나고 여자들은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건 권력 다툼이었어요.” 샤버그의 말이다. “그리고 싸움의 승자가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정경을 만든 겁니다.” 샤버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지주의자들이 남긴 텍스트에 비추어 요한복음을 살펴보고 거기에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를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여기고 있었음을 ‘단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샤버그의 이런 견해는 아직까지는 동지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승자’의 지위를 되찾아줄 때, 현재와 같은 남성의 교회 지배라는 전제가 필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일례라고 하겠다. 1995년에 여성 사제라는 문제를 논하는 것조차 금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 근거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남성만을 그의 사도로 선택했음”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도 ‘새로운’ 막달라 마리아 앞에서는 힘을 잃을 것이다. 교황 자신이 한때 환영받지 못한 ‘사도들의 사도’라는 호칭으로 그녀를 지칭한 바 있다. 조지타운 대학교의 신학과장인 체스터 길리스에 따르면 보수적인 가톨릭교도들은 아직도 남성 사도들이 등장하는 성경의 여러 장면에서 빠지므로 막달라 마리아는 원조 사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특히 서품식의 의미가 있었던 최후의 만찬에 자리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가 된다. 그러나 길리스 역시 그녀가 “교회에서 여성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하는 근거가 되어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렇게 가톨릭 교회의 재평가와 영지주의의 재발견이 결합되면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추측은 더욱 활발해졌다. (샤버그는 “성경에서 그만큼 생생하고 기묘하게 성경 후의 삶을 산 인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빌립복음은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의] 반려라 불린 이’라고 묘사하며, 예수가 자주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곤 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학자들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가짜 막달라 마리아들을 제외하면 정경에서 그다지 흔적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합은 내러티브 상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전개가 아닐까. 알파 남성이 짝을 맞이하고, 예수의 양과 막달라 마리아의 음, 혹은 일부 신이교도들이 주장하듯 신과 여신이 결합하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와 모르몬교 지도자인 브리검 영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부부였다고 믿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을 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는 생각은 프랑스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프랑스에는 이미 막달라 마리아가 성배(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썼으며, 후에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잔)를 들고 프랑스로 왔다는 전승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낳은 아이의 후손들이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다는 전설은 프랑스 왕들의 장려를 받았다. 이는 훗날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 에서, 또 일설에 메로빙거 왕가의 후손이라는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관련되어 부활하기도 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성배였다는 생각(예수의 혈통을 받은 그릇이라는 의미에서)은 브라운이 <다빈치 코드> 를 쓰면서 참고한 1986년 작 베스트셀러 <성혈, 성배>에서 등장했다. 최근에 브라운은 ‘막달라 마리아는 역사상 인물’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실로 많은 신화적 요소를 가진 인물이다. 발췌 출처 : 『TIME』, 2003년 8월 11일자, NY, U.S.A, |
첫댓글 이 아침 귀한 자료를 감사히 받아보고 있습니다. 히스토리 채널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유심히 시청하였습니다. 평소에 제가 알고 있던 자료들과 상반 된 부분이 있었기에 무척 상기된 심정으로 시청하였더랬지요.아무래도 여성의 입장이기에 더욱 막달라 마리아에게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으나 부활 직전의 예수를 최초로 목격한 그 여성에 대한 예수의 사랑이 매우 특별한 이미지로 다가왔기에 늘 그녀에 대한 자료들에 대해 목마른(?) 심정이었습니다만 무언가 제 영혼 깊숙한 곳에서 받아들여지는 그 무엇!이 있기에 기독교가 만들어 낸 하나님이 아닌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그거 참... 저는 바이블의 여러 종류들을 대조해 보면서, 점점 닝기루~ 버전으로 가는디... 청마님은 그런 걸 보면서, 야웨가 살아 있슴을 느낀다니...ㅋㅋㅋ... 같은 걸 보면서 생각은 영~ 다르다는.... 이걸 동상이몽이라고 하는가? 동상이몽이라고 하면 청마님과 같은 침대에?...ㅋㅋㅋ... 청마님 남편에게 맞아 주걸라꼬?
요 위의 대단히 오바틱한 사고는 동상이몽이 아니라, "졸때주금" 이 되시게씀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