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강아지 보다 못한
세상
부모가
강아지 보다 못한 세상 먹고
살기가 좋아지면서 우리나라에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개,
고양이에서부터 이구아나,
뱀, 악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개는
사람을 잘 따르고, 고양이는
귀여우니 그럴 수도 있으려니 싶다. 그러나
뱀은
징그러운 느낌을 준다. 악어는
공포를 느끼게 한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동물들을
기르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옛날에
미국에서
애완동물 기르는데 드는 비용이면, 아프리카
굶주리는 사람들을 모두
살리고 남는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있었다. 그 때는
우리나라도
잘 살지 못한 때였다. 애완동물이
중요한가, 아니면
사람이
중요한가? 인도주의
입장에서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미국사람들이 애완동물을 기르지 말고, 아프리카
사람들 살리자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면 했었다.
아시아에만도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는 인구가
9억이 된다고 한다. 그들은
목숨을
연명하며 살고 있고, 굶어
죽어가기도 한다. 아마
우리나라의
애완동물들을 기르며 쓰는 돈이면 아시아의
기아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젊은
시절 근무하던
직장의 식당에 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가 5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귀엽고
예뻤다. 식당
주인은 내가
고양이 새끼들을 귀여워하는 것을 보고 한 마리
가져다가 기르라고 했다. 그래서
예쁜
놈으로 골라 집에 가지고 갔다. 아내와
큰딸은 무서워 도망을 쳤다. 그러면서
저런 것을
왜 가지고 왔느냐고 야단을 쳤다. 그런데
막내딸은 그
새끼고양이를 쫓아가 안아주며 좋아했다. 그날 밤
아내와
큰딸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고양이 새끼를 식당에
다시 가져다주었었다. 막내는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서 내가
출근할 때에는 잠을 자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찾은 것이 새끼고양이였다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막내딸은
다시 고양이를
찾아오라고 울고 불고였다. 그러나
나는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막내딸이
장성하여 시집을 갔다. 7년
살다가 사위가
병석에 눕게 되었다. 막내딸은
남편이
심심할까 해서 강아지를
한 마리 사다가 사위에게 주었다. 사위는
이
강아지를 낮이나 밤이나 끼고 살았다. 혼자 집을
지키며 투병생활을
하다 보니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그래서
강아지는
사위의 친구요, 애인이요,
아들이기도 했다. 투병생활
끝에 강아지
주인은 저세상으로 갔다. 나는
막내가 강아지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할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딸은
추억이
깃든 남편과
함께 살던 집을 싫다고 이사해서도
그
강아지를 기르고 있었다.
강아지를
기르는 데에 사료 값이
얼마나 들고, 병원비,
미용비가 얼마나 드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루
맡기는 데 1만5천원을 주어야 한다. 사위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마다 맡겼으니, 수백만
원은 썼을 것이다. 지 애비는
만원 한
장 쓰기도 망설이며 절약하며 저희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살아왔다. 저도
혼자서 자식들을 기르려면 한
푼이라도 아껴 절약해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한편으로
저
강아지에게 쓸 돈을 나에게
용돈으로 주면 고마울 것
같기도 했다.
위의 두
가지 이유에서 나는
딸에게 강아지를
잘 길러줄 사람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막내는
가족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어려서도
동물을 좋아했으니 자립해서
살면서 좋아하는 것을 기르며 살아야지
생각하며 이해하려 했다.
막내가
새집으로
이사를 가고 얼마 후에
하자 보수를 위해서 사람이
온다고 했으니 집에
가보라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니 강아지가
마중을 나왔다. 짖지는
않았다. 더러
보아서 그랬을 것이다. 거실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널따란
하얀 종이에 강아지
배설물이 놓여 있다. 더러운
생각이 들어 그것을 치웠다.
며칠 후에
막내가 집에 왔다. 나는
“개똥과,
사람 똥 중에서 어떤 똥이
더 더러운가?” 질문을 했다. 딸은
대답이 없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를 때 자식의
똥을 더러운 줄 모르고 떡
주무르듯 하면서 기른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가 늙어 실수를 하면 더러워
가까이 가기를 싫어한다. 부모의
똥은 더러워하며, 개똥은
더러운 줄을 모른다. 개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개똥이
더럽게 느껴지지 않고, 부모에게는
사랑이 식어 부모의
똥은 더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강아지가
부모보다 더
사랑받는 세상이 된 듯싶다. by/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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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