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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적화통일 3대 요소 / 땅굴, 좌파정치인, 미군철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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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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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의 공산화 과정 |
남굴사(민간 단체인 "남한의 땅굴을 찾는 사람들" 윤여길 박사가 북괴의 남한 땅굴 굴착에 대한 탐사정보에 대해 기자와 인터뷰(audio)하는 내용
출처: 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4-05/a-2004-05-31-5-1.cfm
세계와 미래를 향한 군사/안보 커뮤니케이션 - DEFENCE KOREA (http://www.defence.co.kr)
김정일과 북괴군의 땅굴을 이용한 남한 접수 시나리오
남한땅굴을 찾는 사람들에 기고된 내용을 어느 분께서 핵심만 정리한 것을 펜스지기가 인용한 것입니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한 이래 그의 남한적화의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군이 아니라 통일후 4천만 남한사람들에 대한 통치문제이다. 김정일 체제를 남한에 강요하려면 수백만명을 처형해야 하는데 미국등 국제사회의 눈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이 얘기의 출처는 조총련 고위간부이다. 탈북자 정보에 의하면 "김정일은 남한을 석권할 경우 2천만명을 숙청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2백만명은 처형대상, 8백만명은 재교육대상, 나머지 1천만명은 보트피플로 내몰아 익사하든 도망가든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때의 현상과 똑같다. 김정일은 능히 그 일을 해낼 사람이다.
김정일은 연방제통일 시기로 가장 적절한 때를 현 정권이 끝나기 전으로 생각하고, 남한정권이 비교적 협조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과거 공산주의자들이 항상 그랫듯이, 핵문제 타결 이후 대미관계개선이나 남북정상회담 성사 등을 통해 평화분위기를 최대한 조장한 뒤, 남북정상회담 예정일을 전후해서 공격이 이루어 질 것이며, 늦어도 2007년 대선 직전이 될 것이다.
공격루트는 남한 전역의 전략목표와 연결된 장거리 땅굴이다. 주공축선의 땅굴은 20여개이고 1개 축선당 20개 출구를 가정해도 총 400개 출구이다. 여기서 나오는 병력은 1시간 이내에 20만명이고 이들이 출구에서 나와 지상작전에 돌입할 때 내란발발로 위장하기 위해 전원 한국군 복장을 착용할 것이다. 이는 북한이 수년전 홍콩 루트를 통해 한국군 복장 30만벌을 확보해 두었다는 첩보와 연관된다. 이들은 전격작전으로 한국군을 무력화시키고 미군병력을 인질로 잡아둔 뒤 한국의 전 통신망/언론사/방송사를 최단시간내 우선적으로 장악함으로써 불과 2-3시간 이내에 무혈 적화작전을 종료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저항세력 소탕과 공권력 장악을 위해 추가 병력과 무기를 대형화물선으로 속속 남한해안에 상륙시킬 것이다.
김정일은 군사작전이 완료되는 즉시 남한대통령으로 하여금 통일선언문을 낭독케 하고, "한반도는 남북합의로 연방제 통일이 되었다"고 선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한반도 국내문제에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만약 미군이 개입할 경우 미군포로는 전원사살되고 미항공모함은 핵미사일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은 문자 그대로 풍전등화이다. 김정일은 이미 한반도 통일 준비를 완료해 둔 상태이고, 이같은 통일전략은 중국당국의 묵인까지 받아둔 상태일 것이다. 무혈 적화통일 수단인 땅굴은 간첩들에 의해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다. 설혹 민간인들에 의해 발견된다 해도 남한정부가 막아줄 것이다."
이 방안이 김정일이 현재 보유한 자원으로 채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인지 전술적 차원에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정치적 허풍을 조총련 간부가 그대로 믿었나 봅니다. 한창 주한미군 철수 분위기가 무르익는 이 때에 공연히 주한미군이 있는 상황에서 남침을 하여 상황을 불리하게 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숙청에 관해서는 만약 실제로 남한을 점령한다면, 북한식 체제를 강요하기 위해서 위에 설명한 정도는 해야 자유의 기억이 뼈속까지 스며있는 남한인들을 겨우 통제할 수 있겠지요. 일단 전현직 군,경,기관,일부공무원,디코가족등 국가수호층을 처리한 다음에 곧바로 제일 선동 잘하고 말이 많은 단순(간첩이 아닌) 운동권들을 숙청할 듯 합니다. 최종적으로 한 번 조국을 배신한 넘은 또 배신한다는 명분으로 이용가치가 떨어진 간첩들도 숙청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밥그릇에 숟가락 디미는 넘을 줄일 수 있고, 잠재적으로 적국에 가담할 지도 모르는 대중에게 교훈을 줄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시나리오에 소요되는 물리적 자원은 20여개의 땅굴, 30만명 이상의 병력, 30만벌의 국군복장, 핵폭탄입니다.
일단 성공가능성을 떠나 북괴군이 이 시나리오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원은 보유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시기상으로 대선 이전이라고 했는데, 역시 가장 큰 변수인 주한미군을 제외하면 대선 이전이 기습에 좋은 시기이기는 합니다. 기습을 위해서는 최대한 평화무드를 조성해야 하고 대선 이전에 유권자들에게 뭔가 대북관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려는 현정부의 강한 욕구와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대선을 앞두고 뭔가 통일에 관한 덩어리 큰 것을 발표할테고, 각종 언론과 선동수단을 집중적으로 활용 국민들을 통일 분위기에 한껏 고취시키도록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김정일에게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들이지요.
그리고, D-Day 수일 전에 내부적으로 한국군에 침투시킨 아끼고 아껴온 비장의 히든카드 요원들을 사용하여 이 발표에 반대하는 위장반란사건을 일으킬 것입니다. 여 러가지 준비된 치밀한 기법을 활용하여 이 사건을 팩트로 언론이 수구세력과 한국군의 수뇌부가 연계하여 통일에 반대한다는 보도를 연일 계속 내보내고 친북 정치인들까지 이에 가세한다면 단기적으로 혼란이 발생하고 지휘계통에 이완이 일어나게 됩니다. 각종 시민단체들이 선동하고 나서서 이른바 이 반통일세력을 규탄하는 촛불시위가 광화문 거리를 메우는 등 혼란이 점점 커질 것입니다. 이를 빌미로 대통령이 휴전선 20km 이남의 모든 부대의 이동과 교전을 장관이나 총리의 별도 명령없이는 금지한다는 명령이라도 공개적으로 내리게 되면 더욱 좋지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땅굴을 통해 한국군 복장을 한 인민군들이 침투되어 재빨리 국가 핵심시설들로 움직이면, 군 지휘부가 상황을 감지하더라도 일부 고정간첩들의 방해 및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이를 반란으로 의심하고 확인하려는 하급 지휘관과 병력들의 복지부동으로 교전이 회피되고 대응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 될 것입니다.
시간상으로 12시간에서 24시간 이내에 종료될 이 최초 기습을 통해 한국 정부와 군의 지휘통제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다면 북괴군에게 상황은 낙관적이 됩니다. 덩치 큰 육군은 아무런 명령도 받지 못해 그냥 가만히 있게 되고, 한국군이 우위에 있는 해군력과 공군력도 기본적으로 적과 아군이 명확하게 분리된 정규전에서만 의미가 있는 전력이기 때문에 전선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뒤섞여버리는 배합전을 사용한다면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고, 그러다가 지상기지가 공격당하여 전력발휘 이전에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반란군과 진압군간의 내전이라고 상황을 착각하고 있게 됩니다.
이 시점까지는 비교적 예측가능하게 의도대로 작전이 진행될 수 있는데, 최초기습 이후로는 여러가지 돌발상황들이 중첩되어 다양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의외로 기습이 효과적으로 수행되어 핵심시설을 장악하여 위의 글대로 인질이 된 대통령이 우린 우리끼리 통일했고 미국은 간섭하지 마라는 발표를 할 수도 있고, 핵심시설 장악이 마무리되지 않아 혼란스런 교전상황으로 접어들 수도 있습니다.
일단 가능한 북괴군의 후속부대가 계속 들어올 것이고, 국군의 조직적인 저항이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화학무기 사용을 통해 조기에 무력화시키려 할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DMZ를 관통하는 도로를 관할하는 지휘계통상의 지휘관에게 어려운 선택이 찾아올 지도 모릅니다. 나라는 시끄럽고 상황은 파악되지 않는데, 상부에서는 북에서 이동하는 인원과 차량을 그대로 통과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오고, 예하대에서 들어오는 보고에는 북괴군의 엄청난 수의 기갑부대, 포병부대, 공병부대 같은 넘들이 통로를 따라 다가오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위에 보고해도 당신이 판단할 것이 아니니 그냥 통과시키라고 한다거나, 위에 물어봐야 한다며 시간을 끌거나, 아예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면, 군인으로서 원칙에 따라 상부에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상부의 명령에 따르다가 국가에 되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위급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지...
첫번째 질문. 귀하가 이 계통상의 지휘관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 죽어가는 거지떼 같은 북괴군이 무슨 힘이 있어서 한국을 넘보겠냐는 관점이 의외로 널리 확산되어 있습니다. 기습이 아닌 상태에서 외선에서만 공격해온다면 공자와 방자의 전력비가 3:1은 되어야 승산이 있고, 그렇게 본다면 북한은 한국을 무력 점령할 능력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이 우리가 방어하기 제일 좋은 방식으로 공격해주는 것은 아니지요. 북한이 전쟁지속력과 가처분자산등은 떨어지지만 위의 시나리오처럼 '현재의 전력비' x '기습' x '내선작전' x '대량살상무기'의 승수를 이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남한에 대해 일종의 마비전을 전개한다면 현재의 북괴군 전력으로 충분히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초기에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듯 의도하지 않은 방향에서 예상하지 못한 수단으로 빠르게 종심기동하여 신경을 끊고 혼란과 공황상태에 빠지도록 한다면 적은 병력으로도 다수를 제압할 수 있으니까요.
위의 시나리오를 실행할 때, 북괴군이 우려할만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게시자 : 펜스지기 (admin, defenc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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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안보의 치명적 맹점 : 남침땅굴
김 철 희 (남굴사 회장, 예비역 )
필자가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파숫꾼의 심정으로 이 나라 안보의 심각성을 긴급히 경보하기 위함이다. 이 나라에 깊숙이 침투한 무수한 남침땅굴의 진상을 알고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도저히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약 3년에 걸쳐 남굴사(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의 모임:약칭)에서, 다우징공법과 최첨단 탐사장비로 탐사한 바에 의하면은, 남침땅굴은 휴전선에서 24개가 남쪽으로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왔음을 알았다. 뿐만 아니라,
바다 밑으로도 개성지역에서 시작하여 강화도 - 영종도(인천국제공항) - 대부도 - 당진- 서산 - 군산 앞바다 - 무안 앞바다 - 목포 앞바다까지 바다밑과 육지밑으로 침투해 왔으며, 이 바다 침투에서 육지를 향해 30개 이상의 남침땅굴이 내륙으로 깊숙이 침투해 온 것이다.
이 남침땅굴 1개 라인은, 육지로 침투한 것과 해상으로 침투한 것을 불문하고 모두 4-5차선(갱차)으로 되어 있음이 탐지되었다. 일례를 들면 스텔스 전폭기가 배치된 군산 비행장은 바다로부터 3개 라인이 침투하였고 1개 라인은 4차선으로 되어 있다.
참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곤란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와 같이 엄청난 규모의 남침땅굴을 파왔단 말인가. 6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 스위스 등으로부터 자동굴착기(TBM) 등 굴착장비 360여 대를 구입하여 사용하고 있다고는 하나, 어떻게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남침땅굴을 파왔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김정일의 남침땅굴에 대한 무서운 집념과 그 기도하는 바를 알만하다.
바로 김정일은 남침땅굴을 통한 기습공격에 의하여 대남적화통일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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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북한 남침 땅굴 경기도 화성군에서 발견, 충격뉴스! 북한의 제5 및 제6 남침땅굴 정체를 밝힌다.
이선호 : 한국시사문제연구소장
1. 문제의 제기
이른바 역사적인 6.15선언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이란 2대 잇슈로 말미암아 뉴밀레니움의 첫해를 비몽사몽간에 허송세월하고서 이제 2001년의 봄기운이 완연한 이때, 김정일 원수의 서울방문을 확수 고대하는 듯이 관제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우 매한 다수 국민은 국가보안법을 없앰으로서 자주적 평화통일과 민족대단결을 앞당길 수 있다는 친북용공세력이 주도하는 대중매체의 감언이설과 고압적인 선전공세에 마취되어 조국의 장미 빛 미래가 도래하는 것으로 오도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혹세무민과 언권유착의 극치현상이 아닌 가 한다.
한마디로 6.15선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이룩하여 성장 발전시켜 온 자유민주체제의 산업정보사회를 북한에게 넘겨주는 대 북한 항복문서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한반도평화정착과 자유수호의지가 단한마디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채 북한의 대남전략이 100% 반영된 김정일의 시나리오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이 괴 선언문이 발표된 지 8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 북한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적 연방제 통일이란 꾐에 빠져 IMF의 수렁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국가경제위기에 처하여 마구잡이 퍼다 주기 식 대북지원과 금융 및 기업정책의 잘못으로 나라살림살이가 부도직전에 몰리고 도탄에 빠진 절대다수 국민이 생활고로 신음하고 있음은 물론 150만 실업자가 거리를 방황하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서 김정일 모셔 와서 한반도 평화선언 한다는 황당무계한 짓을 획책하고 있는 현실이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의 정부”와 “준비된 대통령”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한심한 정권말기적 작태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그들의 노동당 규약과 헌법에 못 박아 놓은 그대로 무력남침에 의한 적화통일이다. 단지 지금은 공산주의자들의 인민전쟁이나 혁명전략에 따라 소강국면인 간조기에 즈음하여 위장평화 공세에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지 그들의 속셈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실체가 최근에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지화리에 우연히 발견된 제6땅굴이다. 지하 땅굴 발견 장소는 서울 중앙청에서 직선 도상거리로 약 51km 지점인데, 굴설 시발점을 김포반도 북단 애기봉 맞은 편이라고 전제한다면 해저 턴넬로서 약 62km 정도가 될 것으로 보는 바, 일본 대마도와 우리 거제도간의 직선거리 정도 가 된다. 베트남 전쟁시 베트콩이 굴착한 총 300km의 지하갱도와 비교한다면 세계최신의 스웨덴 제 자동굴착기를 360여대나 보유한 북한이 1970년대 초반부터 근 30년간 계획적으로 전국토의 요새화란 차원에서 장기공사를 해왔다면 황해도 남단에서 아산만까지의 해저 턴넬공사 쯤이야 식은 죽 먹기로 해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6.15선언 직전에 제5땅굴이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변 남방한계선 후방에서 발견되어 SBS에서 2회에 걸쳐 취재보도중 당국의 제재로 중단된 사태를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 이 땅굴의 실체는 군 당국의 의도적 수수방관과 방해 속에서도 애국적인 시민단체가 성금으로 공사비를 마련하여 굴착 및 부분절개를 함으로서 땅굴의 실체를 수중에서 확인 촬영하고 지하암반에서 진행 중인 굴착공사 기계음과 고압전류 유도음 그리고 평안도 사투리의 육성음까지 시추공깊이 설치한 특수녹음기에 의해 명료하게 녹음된 과학적 증거자료를 제시했음에도 당국이 이를 부정하고 적반하장으로 문제제기기관과 민간인을 고발하고는 현장접근을 막고 있는 것이 현재 당국이 취한 국가안보를 위한 최선의 대응조치라니 한심하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설상가상으로 6.15선언 직후에 화성 땅굴이 또 불거져 나오자 당국은 코너에 몰리게 된 것이다. 전 직 사단장을 비롯한 군인출신 과학자 대공수사관 출신자 그리고 굴착공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사재를 드려 시추공사까지 하여 땅굴을 입증하는 상세한 정보자료를 국정원에 제시하자 국정원은 자기 소관업무가 아니니 국방부로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국방부에 이를 신고하니 역시 육본으로 하여금 조작된 허위정보라고 일축케 했다. 이 들은 현장답사나 시추공사조차도 해보지 않고서 탁상에서 연천 땅굴의 재판 논리로 과도 합리화하여 국방자원 낭비요인임을 전제하면서 고압적인 자세로 제보자들을 힐난하자, 제보자들은 공분을 느끼면서 국정원장을 상대로 직무유기로 서울지검에 고소하고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탐지과 담당관을 같은 혐의로 고소함으로서 현재 검찰의 원고 측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일부 언론에 이 사실을 제보했으나 겁먹은 매스콤은 꿀 먹은 벙어리 노름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만하다. 그러면 이와 같은 문제제기를 뒷받침하는 좀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사실을 이하에서 제시한다. 참고로 필자는 지난 2월 14일 화성 땅굴발견현장을 민간 땅굴탐사자들과 함께 답사한 후 상황판단을 위한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고 전문가들과의 면담을 거쳐 지난 40년간의 국가안보유관 직무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군사평론가의 입장에서 이하의 소견을 기술하였음을 밝힌다.
2. 북한의 땅굴 굴착과 전쟁 준비 독려실상
북한은 1970년 대 초반의 주변정세와 대내 및 대남면에서 난관에 봉착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대외적으로는 국제적인 평화공세에 대한 지지를 표방하고 대남면에서는 적십자회담 등 대화를 수락 추진시켜 진심으로 평화를 갈망하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대내적으로는 “당이 평화통일을 강조할 때 군은 전쟁준비를 강화해야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강조하고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이는 현재 북한이 개량주의적 냄새를 풍기면서 경제적 실리추구를 위해 위장평화공세로 대남 및 대미 유연자세를 보이라 고 한 김정일의 최근 지시와 같은 맥락이다.
1070년대 초반에 취한 북한의 2중 플레이가 일면 남북대화 일면 전쟁준비 특히 땅굴 굴설이었다. 이른바 7.4공동성명을 전후한 위장 평화무드속에 제1 및 제2땅굴 공사가 추진되었던 것이다. 남북대화가 개시된 1971년에 김일성은 이미 남침용 땅굴 굴설을 명령하였고,1975년 10월 당 창건 39주년이전에 땅굴작업을 완료하여 전쟁준비를 끝내라고 독려했음이 후일 밝혀졌던 것이다.
현재 까지 공식적으로 확인 절개된 관광명소가 되고 있는 땅굴 현황은 다음 표와 같이 4개로서 모두가 전 휴전선에 연하여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남방까지 뚫고 나온 것이다. 이들 당굴은 전방 지휘관 들이 사소한 징후(indication)에 의해 의문을 품은 나머지 과학적인 탐사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어 진로를 가로질러 역 시추 공사를 함으로서 두더지 같이 파 덜어 오는 북한의 침투를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상당한 땅굴 탐사의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음이 사실이고, 주한미군의 정보보고에도 20여개의 지하 턴넬이 휴전선 일대에 굴착되고 있다는 첩보를 수차 발표한 바 있다. 그 러함 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땅굴 발견에 직접 참여한 사단장과 대공수사관 그리고 탐사기술자 등 유능한 전문가들이 사명감을 갖고 시추 발견한 신뢰성과 정확성이 매우 높은 연천과 화성의 땅굴징후보고를 왜 당국이 애써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두 땅굴이 6.15선언 전후에 불거져 나왔다는 엄연한 사실과, 북한이 2중 적 시나리오에 의해 남북대화에 임하고 있다는 미국과 일본의 객관적 평가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김정일을 과신한 나머지 그를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하에 당국의 주객과 본말이 뒤집힌 대북정책으로 말미암은 역기능적 부작용이라고 하겠다.
지1땅굴 제2땅굴 제3땅굴 제4땅굴
위치 고랑포북방 8km 철원북방 13km 판문점남방 4km 양구북방 26km
발견일자 1974.11.15 1975.03.19 1978.10.17 1990.03.03
발견된 내부규모 높이 1.2m 폭 90cm 높이 1.2m 폭 90cm 높이 1.2m 폭 90cm 높이 1.2m 폭 90cm
발견된 굴 길이 45m 160m 73m 145m
침투거리 1000m 11oom 435m 2052m
기습방향 고량포,의정부 철원,포천,서울 문산,서울 원통,영동,서화
목적지 거리 65km 101km 44km
3.제5땅굴의 정체 : 연천 구미리 땅굴, 왜 쉬 쉬 했나?
국민의 정부가 덜어선 이후 가장 큰 변화는 국가안보에 구멍이 나도 태연하게 햇볕정책에 일편단심으로 매달려 오리새끼 같은 사고 페턴에서 해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안보위협사태가 전혀 언론에 보도조차 안 되고 있음으로서 국가안보의식이 실종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다. 이는 마치 김정일의 remote control에 의하여 국가정책이 행하여지고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6.15선언이란 충격파는 6.25전쟁 50주년 을 기념키 위한 계획된 한마양국의 행사계획까지도 무력화시킴으로서 한국전쟁참전 연합국원로들의 시가행진행사를 일거에 취소시키고는 자유에서 통일로 직행한다고 선회할 정도로 우리를 당혹케 만들었다, 평화정착 따위는 더 이상 언급하면 김정일의 비위만 건들이니 언동을 삼가라는 당국의 메시지에 군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이 뿐인가? 가장 소름이 끼치는 사태는 국방부가 제5땅굴이 발견되었음에도 이를 서둘러 확인도 않고 부인 발표했던 기막힌 반역행위였다. 발견현장을 절개하여 진위를 투명하게 공개하기는 커녕 ,사실 보도한 언론사(SBS)를 관계당국이 제소했던 것이다. 적반하장도 유만 부득이다.
옛날 같으면 국내외언론이 특종 감으로 연일 대서특필할 hot news인데도 이를 덮어두는 저의가 무엇인가? 국가 안보위협은 단 1%라도 단서가 있으면 선행예방조치를 취해야 함은 만고불변의 원칙이고 공유가치이다. 당국은 국가안보보다 더 중차대한 당면과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은 김정일과의 잘못된 약속임을 알면서도 이를 충실히 이행하려는 것이다. 사기당한 것이 확실한 6.15선언은 당연하 파기해야 할 것 임에도 이를 금과옥조로 믿고 지키고자 이 나라 안보를 외면 희생하는 무리수를 쓴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면 이하에서 월간 '신문고가' 2000년 8월호에서 다룬 연천 땅굴의 진상을 간추려 소개한다.
" 보수시민단체에 의해 제5땅굴로 명명된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땅굴의 정체와 실상은 이렇다. 지난 해 3월 2일 SBS TV저녁뉴스시간에 처음 보도되어 세간에 알려지고,3월 5일동방송의 뉴스추적시간에 다시 집중 보도됨으로서 문제가 되었다. 다른 방송이나 신문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이 방송만 독점보도하자 가장 민감한 국방부는 이를 전면 부정하며 정정보도 압력을 넣었고, 방송사가 이를 거부하자 국방부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그러나 중재가 결열 되자 곧 남부지원에 제소하였다.
그러나 구미리 땅굴은 지난 1996년부터 현지주민에 의해 징후가 포착되어 각계각층 전문가의 확인을 거쳐 SBS가 이를 보도하게 된 것이다. 보도가 나가자 국방부는 충분한 현장조사나 연구 분석도 없이 지난 3월 4일 단 하루 만에 자연공동으로 결론을 내린 발표를 하였다. 이에 각계 전문가들과 현장 거주 주민들은 지하공동을 절개하여 땅굴의 진위를 가려줄 것을 군 당국에 건의하였으나 군은 이를 묵살했다.
그래서 보수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땅굴진상규명 국민연대 추진위'를 결성하고 SBS와 국방부를 배제한 채 민간기금에 의해 시추작업을 벌여 지난해 6월10일 수중상태인 지하땅굴의 모습을 60여회의 잠수 끝에 인공동굴(기리 7m,높이 2.2m,넓이 2.5m의 남북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을 촬영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지하 현장에서 북한 작업원이 사용한 갈대와 실 그리고 호일뭉치를 수거하고, 지하갱차 굴러가는 소리와 평안도 사투리의 대화육성까지 녹음함으로서 지하땅굴임이 확실하게 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 묵살한 체 접근을 통제하면서 그대로 방치해놓고 있는 것이다. .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174번지의 이승환씨 집 앞마당이 바로 시추탐사지점으로서 ,그의 진술에 의하면 1996년 6월경 집 옆 논에서 강력한 공기와 물이 땅에서 분출한 바 있고, 그다음 해 9월에는 점심식사중 자기 방이 진동하고 사진액자가 떨어지면서 변소 벽이 갈라졌다고 한다.11월에는 밤낮으로 굉음과 돌 굴러가는 소리, 착암기소리가 지하로부터 계속하여 들리고 밤이면 개까지 짖어 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근 2년 간 계속되는 동안 드디어 1999년 3월에 시추가 개시되고 2000년 1월에 시추공을 통해 내시경으로 동굴내부 촬영과 청음기에 의한 기계소음과 및 전기유도음까지 청취 확인함으로서 SBS가 드디어 3월에 공식 보도를 했던 것이다
국방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를 보도한 언론을 명예훼손 이라고 제소까지 하고 있으니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국방부 당국의 다음과 같은 유치한 수준이하의 조사 발표 내용이다.
* 군사전략적 관점에서 땅굴 굴착이 부적합한 위치이다.
* 출구가 임진강 북쪽이라 뚫고 나와도 강을 건너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 출구가 강북의 저지대라서 은밀 행동이 불가능하다.
* 땅굴굴착에 성공하더라도 전략적 가치가 별로 없다.
구미리 땅굴을 두고 국방부가 SBS와 싸울 것이 아니라 국민의 편에 서서 국가주권수호란 차원에서 현장을 완전히 절개 공개하여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민간단체들이 3개 월이상 굴착 조사한데 따른 비용일체를 보상해 주어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리고 관계보도를 완전봉쇄하고 있는 당국의 처사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알 권리를 막는 비민주적 인권침해란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군사분계선에서 무려 12km나 뚫고 내려온 북측의 이 행위는 영토침입이며 분명히 휴전협정위반으로서 6.15 공동선언의 원인무효를 제기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우리가 북한에게 이렇게 농락당하면서도 소 떼와 비료 그리고 쌀과 생필품도 부족하여 현금 10억 달러까지 금강산 입산료로 바치면서 저 자세로 비위를 맞추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일본에게 독도의 주권 절반을 건네주고서도 정신 못 차리고 이제는 적국이 두더지처럼 휴전선을 땅 밑으로 뚫고 내려와 농민들의 앞마당까지 이르렀는데도 이를 확인할 생각조차 않고 있으니 될 말인가? 김정일이 지금 위장 평화공세를 펴면서 전쟁준비를 마감하는 지하땅굴을 파 덜어오고 있는데도 우리는 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덮어두고서 그의 요구대로 그가 서울 방문시에 300만 시민을 동원하여 보답하는 성대한 환영 행사를 치를 준비에 골몰하고 있다니, 정말 나라꼴이 이레도 되는 것인가?
만약 미국의 택사스주 국경선에 맥시코가 땅굴을 파고 침입하려고 했다면, 미국이 쉬쉬하면서 덮어 두고 있겠는가? 한국 언론은 북한 가서 대접받고 통일의 나팔수 되겠다고 다짐한 죄로 땅굴보도를 못하고 있다면 이미 김정일의 장악 하에 덜어간 죽은 언론이나 다름없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돈 몇 억원이 없어서 이 의심스러운 땅굴징후를 그대로 덮어두고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며, 언론의 꿀 먹은 벙어리 행세 역시 지탄받아 마땅하다. 6.15선언 이후 특히 한국 언론이 정부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기능을 포기하고 맹목적으로 권력에 추종 협조 영합한다면, 권언복합체의 역기능에 함몰되어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될 것이다. 언론은 사회목탁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상업주의와 이기주의의 화신이 되고 말 것이다.
4. 제6땅굴과 기타 수도권 일대
20여개소의 땅굴 징후 실상
화성군 송산면 지화리에서 발견된 제6땅굴은 1999년 10월 14일 민간 시추업자가 화성군으로부터 주민 상수도용 지하수 개발하청을 받아 밭 가운데 구경 8인치의 시추기로 관정을 파 덜어 가던 중에 지하 30-40m 지점의 암반에서 3m 높이의 지하공간을 발견하자, 수상히 여긴 나머지 콤프레샤를 수시간 동안 가동시켜 압축공기를 계속 주입시켜 보았으나 무한대로 유입 흡수되는 지라 폐광이나 거대한 동굴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민간 땅굴탐사자들에게 제보하게 됨으로 알려진 것이다.
10년 이상 땅굴 탐사에 종사해온 민간 전문탐사자들은 현장에 임하여 다우징(dawsing)탐사를 실시한 결과 땅굴과 같은 공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하고 1999년 11월 1일 이 지하공간을 따라 약 100m 서측의 야산 하록에 지하 70m까지 뚫고 내려간 다음 특수녹음기를 갱내에 설치하여 청음하던 중 11월 4일부터 11월 7일까지의 기간 중 수차에 걸쳐 기계진동소음과 고압전기 유도음이 시추공 근거리에서 포착 녹음된 것이다.
동 민간 탐사자들(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서 제2땅굴을 발견한 정명환 사단장과 국방부장관 과학보좌관을 지낸 윤여길 박사, 대공수사관출신의 예비역 육군 준위 정지용 외 6명의 땅굴전문가들)은 이를 좀더 과학적으로 확인하고자 그 후 동 발견지점을 감시 관찰하면서 다우징 탐사를 계속하여 땅굴의 징후를 확증하는 한편 동지점에서 1.5km 동측의 논과 도로가 마주치는 곳이 다우징 탐사결과 지하 공간 두 군데가 맞닿는 지점임을 알아내고 여기에 2000년 2월 12일부터 18일까지 지하 40m까지 시추공 4개를 뚫고서 청음기를 설치해 놓은 결과 2월 14일 야간에 기계소리 및 충격 마찰음과 함께 “대감께서 총리되십니다”란 사람목소리가 청취되어 긴장케 했던 것이다.
이 쯤 되면 제1,2,3,4땅굴을 발견 탐사할 할 당시의 징후에 비하면 거의 100% 신뢰성과 정확성이 보장되고 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상세한 발견경위와 시추현장 사진 그리고 녹음테이프를 첨부한 완벽한 “서해안 장거리 남침 땅굴 징후 발견 신고서”를 2000년 8월 23일 국가정보원에 우체국 내용증명으로 보낸 것이다 이 시기가 6.15선언 직후로서 김정일에게 마취되었는지 당국은 이 같은 중차대한 정보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강원도 포수나 다름없이 무소식이었다는 것이다. 동년9월 2일 민간 탐사자들은 독촉장을 보냈다. 그래도 무소식이라 너무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들은 9월 19일 부득기 국가정보원장 임동원을 이적행위로 서울지검에 고소하자, 다급해진 국정윈은 9월 18일자로 문서를 소급 작성하여 국방부에 이첩했다는 회신을 보내고는 “난 몰라”하는 태도를 취하였던 이었다
국방부가 국정원으로부터 이를 통보받고 연천 땅굴 식으로 탁상공론으로 판단처리 할 것이 .예상되는 바, 이들 민간탐사자들은 서둘러 서울지검 담당검사(임권수 부장 검사)에게 신중한 조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12월 9일 발송하였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한심한 국방부는 현장조사결과 땅굴이 아니란 결론을 얻었으니 계속관심을 가져달라는 형식적인 회신을 12월 29일 보내왔다 그 회신 요지는 북한으로부터 너무 장거리이고, 해저공사시의 해수누수 가능성, 녹음한 기계음과 육성음의 조작 가능성 등을 전제할 때, 땅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가안보의 대들보라는 군이 이 모양 이 꼴로 사명감이나 공익사상이 결여되어 있다면 국가운명이 가히 풍전등화라 할만하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민간 탐사자들은 2001년 1월 15일 명명백백한 땅굴 징후를 무조건 부정한 땅굴관련 직에 종사하는 국방부와 육군본부의 담당관을 직무유기 및 특수 이적죄로 국방부 검찰부로 정식 고발을 했다. 현제 피소된 자는 국방부 정보 본부 소속 대침투정보과 대령 1명과 군무원 1명 그리고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탐지과 소속 대령 1명과 군무원 1명 모두 4명이다.
그러니 이게 왼 일인가? 2001년 1월 16일 자로 서울지방검찰청은 국정원장 피소건에 대하여 국방부에서 현장을 탐사한 결과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한 사실을 인정 할만한 자료가 없으므로 법리오해 및 사실오인으로 인한 것인바 공소부제기 이유를 아래와 같이 고지한다는 내용으로 사건종결처리 회신을 보내온 것이다.
이제는 검찰마져 압력을 받아 사건에서 손을 뗄려는 것이다. 이에 고소자들은 다시 1월 22일 서울 지방검찰청에 불기소결정에 대한 불복항고장을 제출해 놓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이 항고장에는 화성 땅굴의 징후 추가 자료와 국방부관련자 허위 판단에 따른 고소장 그리고 청와대 남침땅굴 침투 가능성에 대한 탄원서 까지 첨부되어 있다.
국정원장과 국방부 및 육본의 땅굴 담당자에 대한 사직 당국의 법적처리가 주목되는 가운데 고소인은 일단 조서를 받은 바 있으나 피고소인은 지금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고소자들은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파탄지경에 생존권 마져 위협받으면서 고소를 취하하라는 당국의 직접 간접 협박과 회유를 받고 있으나 목숨을 걸고 국가안보를 위해 법정투쟁을 할 각오를 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거대한 국가정보원과 군의 기무사, 정보사 그리고 통신정보부대와 국방부 및 합참 정보본부는 물론 각군 작전정보참모부 등에서 전략정보와 전투정보를 위해 해마다 쓰는 돈이 수조원인데 단돈 몇 억원이 아까워서 인지, 아니면 고위층의 지령인지는 모르지만, 과학적인 확인절차도 없이 탁상공론으로 독안에 던 쥐나 다름없는 결정적인 땅굴 정보를 부정 묵살하는 것은 반국가적 이적행위임에 틀림없다. 2개 여단 규모의 육군공병대를 투입하여 당장 불필요한 경의선 개설을 위한 기반공사 및 지뢰제거작업을 하고 몇 십억원을 드려 지뢰제거기를 긴급공수까지 해왔으나 사용불가품이라서 방치해 놓고 있으면서, 비예산사업으로 또는 몇 억원의 대민발주 공사로 간단히 땅굴을 절개하여 의혹을 투명하게 공개 할수 있음 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이를 회피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땅굴은 연천과 화성에서만 발견 된 것이 아니고 수도권 전지역에 걸쳐 현재까지 20여 개소가 민간인의 신고로 시추 확인된 바 있다. 이들 대부분은 시추공에서 기계음과 인간의 육성을 청취 녹음한 증거까지 확보 하고 있으며 민간 탐사자들은 지하음을 녹음한 테이프 200여개를 증거로 확보하고 있다. 그 동안 당국에 무수히 신고했으나 “ 또 땅굴이냐?,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 고 하면서 외면한다. 이들은 지금 보상금을 노린 사기꾼이나 정신병환자로 취급받거나 오히려 무고죄로 고소당할 위기에 몰리기도 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그러면 수도권의 대표적인 땅굴 징후 사례와 당국의 무성의한 대응을 이하에서 소개한다.
역시 이와 관련한 가장 큰 관심 꺼리는 청와대 인근에 땅굴 징후가 포착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1년 1월 3일 민간탐사자들이 청와대 비서실장(한광옥) 앞으로 “청와대에 남침땅굴이 침투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란 제하에 그 가능성을 입증하는 자료와 설명서를 보낸바 있으나 현재까지 무반응이란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1993년에 어떤 젊은이가 김포반도와 행주산성 및 세검정을 경유한 남침 땅굴이 청와대에 침투했다는 도면을 제시하면서 청와대에 이르는 땅굴 지상루트를 조석으로 순찰하는 불순분자까지 있다는 제보를 모 국회의원에게 하였던바 그가 관할 3군사령관에게 이 사실을 통보함으로서 3군사령부의 모 대령이 진상을 규명코자 ,그 제보자를 수차 만난 다음 어느 날 그제보자가 자신의 부친 묘소에서 의문의 시체로 발견된 미스테리 같은 사건이 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청와대에서 불과 1km지점인 서대문 교도소 뒷산에 하록 민가에서 지하 굴착음을 청취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간 민간탐사반이 사실임을 확인 한바 있는데, 육군 탐지요원은 아직도 북한이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하여 굴착한다는 한심한 소리만 하고는 가버리더란 것이다. 현재 북한이 360대 가량 보유한 자동굴착기(TBM: tunnel boring machine)은 고압전기로 작동되고 매연이 없으며 암석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 버럭으로 나오므로 이를 해상에 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김포반도 북단 해수가 한때 이유 없이 뻘탕물로 뒤덮힌 것을 해병초소에서 관측하기도 한 것이다,
②김포반도의 애기봉 입구에 거주하는 민간인이 방밑에서 땅굴굴착소리 및 진동음을 1988년부터 빈번히 청취한 것은 해안초소 해병대 초병들도 같은 기계음을 근무 중에 수차 청취하고 보고했으나 묵살되었다고 한다. 이 위치에서 한강을 따라 후방으로 내료와 한강 하류인 김포군 하성면 후평리의 지하 시추공 110m 깊이에서 녹음한 음성을 일본 음향분석가인 스즈끼 마스미 박사가 분석한 결과 “이거 만지면, 일만 일천, 감전되지, 예 예”란 두 사람의 대화가 북한 억양임이 판별되었는데 일만일천 볼트는 북한에만 쓰는 송전방식이란 것이다. 뿐 만아니라 1989년 9월 11일 후평리 지하 시추공에서 채취한 양생중인 세멘트를 분석한 결과 북한제 임이 확인되었고, 이 곳을 당장 시추절개토록 육군 참모총장(이종구)에게 요청했으나 묵살되자 1990년 6월 11일 노태우대통령에게 진정서로 호소했으나 결국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수차에 걸쳐 한강 하류인 김포군 고촌면 향산리 지하 100m에서 갱차 통과음과 자동굴착기 소리가 녹음되었으며, 행 주산성 인근 민가에서는 한밤중에 방안에서 땅속의 큰 진동음을 수 차례 들었고 시추공 옆 농수로에서 갑자기 물이 치솟기도 하였던 점을 미뤄보아 김포반도 건너에서 한강 하저 밑을 통해 행주산성을 거쳐 서대문 쪽으로 땅굴이 뚫린 것이 확실시되나 이 모든 사실을 신고 받고도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과학적인 사실확인을 하지도 않고서 무조건 수용치 않으려 하는 것이다. 심지어 민간 시추작업을 방해 중단시키고 땅굴존재를 부정하고서 지금도 덮어두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월간 조선에 1992년 5,6,7,8,12월호에 연제된바 있다.
그 다음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관심지역이 주한 미군 기지인데, 의정부와 동두천 미군기지 주변까지 1994년에 이미 땅굴 징후가 발견되었으니 지금쯤은 미군기지 내 외진 곳의 지표면 직하에다 출구를 안에서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의정부 가능2동 미군기지 바로 앞에 사는 이국진씨는 1994년 9월부터 방 구둘 밑에서 요란한 착암기 굴착소리가 나서 3번이나 국방부 당국에 신고를 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민간탐사자에게 제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우물물이 갑자기 말라버린 사실도 민간 탐사들과 함께 확인 하고는 지하음 청취를 위해 잠복근무를 하여 밤새 현장에서 청취녹음하였다. 1994년 12월에 뒤늦게 육본 탐지과에서 나와서는 민간인들이 보상금을 타려고 하는 수작이라고 일언지하에 확인작업을 거부하고 돌아가 버린 후에도 몇 주간 동안 이 집 밑에서 지하음은 더욱 선명하게 계속 들리었다.
그후 1995년 1월 27일 이국진씨 집 우물에 청음기를 설치해 놓았는데 궤도차 소리가 나더니 이상한 음성이 들려, 청진기를 갖다 데어 들어보니 “밥 먹으러 가”하는 육성이 청음되었다. 민간 탐지팀은 땅굴 출구를 만더는 과정의 근거리 음성이란 판단을 하였다. 2월 4일부터 민간탐사자들이 이 집에서 30m 이격된 곳에 28개의 시추공을 뚫었는데 드디어 2월 8일 한 시추공에서 시추기 파이프가 지하에서 부딛치는 강한 금속성 충격음이 들리었다. 지하 땅굴에서 지상으로 박아놓은 쇠 말뚝을 시추공이 건드린 것이다.
이쯤 되면 시각을 다투는 위급상황이라 당시 이 작업에 참여한 제2땅굴 발견 사단장인 정명환 예비역 장군이 안기부에 절개작업을 정식으로 긴급 요청했는데 그 때가 1995년 2월 19일이었다. 이에 앞서 1월 4일 충현교회 모 장로를 통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과 국방부의 땅굴징후 오판 실태”란 제목으로 된 장문의 진정서를 전달하였다. 이 내용을 알게 된 김영삼 대통령은 자기가 직접 감독하여 현장을 서둘러 절개 확인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사실을 그 후 연락받아 민간 탐사자들은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국방부를 제쳐놓고 안기부에 대통령이 특명을 하달하여 절개하도록 함으로서 공사가 안기부 감독하에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인지 현장에 나온 안기부 요원이 현장에서 시추만 하지 절개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을 오도해가고 있음은 물론이고 민간 탐사팀의 별도 시추를 방해하면서 지연전술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민간 시추자들을 서울로 강제 연행하여 땅굴탐사작업에서 손을 데도록 3일간 연금 협박하여 각서를 쓰도록 하고는 ,당시까지 입수된 모든 자료를 무시하라고 강권하였다. 이어서 서둘러 작업을 종결하면서 ,민간업자들이 보상금을 타기위한 노름이라고 허위로 작성된 보고서를 만덜어 대통령에게 안기부장(권영해)이 보고함으로서 의정부 땅굴은 절개확인 직전에 미궁에 빠지게 된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권영해의 농간에 넘어가 1995년 3월 15일 땅굴확인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 것이다. 이 때가 6년 전 일이니 지금쯤 만약 그 땅굴이 사실이라면 미군부대는 물론 서울까지 연결되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에 격분한 민간 탐사자들은 일단 냉각기를 둔 후에 1997년 11월 14일 권영해 안기부장(당시)과 불법연행한 수사관 6명을 공갈협박, 직권남용, 명예훼손, 직무유기, 이적행위 등으로 서울지검에 고소했으나, 오영성 담당 검사는 1999년 8월 11일 공소부제기 이유 고지를 고소인에게 보내고는 사건을 불기소처분하고 말았다. 물론 그동안 직접간접으로 협박과 공갈도 수없이 받은 것은 불문가지이다.
의정부 땅굴이 이렇게 일단락 될 무렵인 1995년 후반기에 동두천 미군부대 정문 앞인 동안동과 광암동 일대에 겨주하는 민간인들로부터 자하 굴착음 청취 신고를 받고 현장 답사를 하여 사실을 확인한 동안동 파출소장은 파출소 밑바닥에서도 같은 지하음이 들린다는 근무자의 보고를 재확인한 다음 의정부 경찰서에 보고했더니 민간 탐사자들에게는 골치 아프니 얘기하지 말라는 핀잔만 듣고 더 이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후일 이 사실을 안 민간탐사자들이 다우징탐사법으로 이 일대를 확인 한 결과 땅굴 진로가 미군부대임을 확인하였으나, 시추비용 마련이 불가능함은 물론 당국의 방해로 굴착을 해보지 못한 체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는 굴착음이 들리지 않고 있는데 이는 공사가 완료되었거나 굴착진로가 바뀌었음을 뜻한다.
5. 결론 및 대책
6.15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전략적 본질적 변화는 전혀 없으며 미래의 변화 가능성이 없는 것도 지난 8개월에 걸친 김정일의 입이나 다름없는 조선중앙통신이 내보내는 메시지를 보면 대남 혁명전략의 불변성을 실감 확인 할 수 있다. 북한의 최근 대남 군사전략은 한마디로 수도서울을 선제기습공격하고 정규 및 비정규전을 배합한 제2전선을 형성하여 2000만 수도권 인구를 핵공갈에 의해 인질로 잡은 다음에 남북한의 인구와 자원 그리고 영토의 넓이가 역전된 가운데 전시 작전권을 쥔 미국과 휴전협상을 벌린다는 것이다. 6.25때처럼 힘들게 부산까지 밀고 내려갈 필요가 없이 단기결전으로 부분승리를 쟁취한 다음에 국력의 결정적 격차를 벌린 유리한 상황에서 무력을 배경으로 베트남식의 민족주의를 간판으로 한 공산화 흡수통일을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비법은 대량파괴무기인 핵과 화생무기 그리고 미사일을 위협 수단으로 한 재래형 전력의 전격전식 공격과 병행한 당굴을 통한 10만 명의 특수부대요원에 의한 제2전선형성으로 서울과 인천을 비롯한 20여개 시군을 독안에 던 쥐처럼 압박 포위하려는 것임에 틀림없다. 북한의 행동개시 시기는 6.15선언에의한 환상에 남한국민이 마취되고 주적개념이 말살됨과 동시에 주한미군이 철수 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된 다음의 결정적 승리여건 조성후가 될 것이다.
현재 땅굴 징후가 확실시되는 수도권 일대의 발견된 땅굴을 지상에서 추적 도시해보면 두개의 큰 줄거리를 알 수 있다.,북한이 굴착작업의 기도비닉을 위해 황해도 남단 탄광지역에서 시발하여 하나는 김포반도를 뚫고서 서해해저의 최단거리를 관통하여 아산만으로 굴착하여 완공한 다음 오산과 수원 그리고 평택의 군사기지로 지선을 굴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다른 하나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군사분계선의 하저를 지나 한강하류를 따라 행주산성 쪽으로 뻗어 서울로 진입한 것으로 보이며 김포비행장을 비롯한 국가전략표적에 이의 지선이 굴착연결 되고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탈북자중 땅굴작업 종사자의 증언에 의하면 자동굴착기는 직경 2m 짜리 굴착기의 경우 하루에 60m, 5m짜리는 30m를 굴착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이나 아산만 까지의 굴착은 맘만 먹으면 장기간 작업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한 헌법에 명시된 4대군사노선중에 전국토 요새화가 바로 땅굴작업의 절대명령이다.
임 진왜란직전에 일본의 침략가능성을 보고한 황윤길의 바른말을 묵살하고서 김성일의 그짓보고를 선조가 수용함으로서 전쟁대비태세를 취하지 않고 당파싸움으로 허송세월하다가 결국 일본의 침공을 받아 안보무인지경이 되어 국토가 쑥대밭이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6.25전쟁도 마찬가지로 북한의 평화공세에 말려 덜어 남침준비 첩보를 묵살하고서 전혀 무방비상태에서 방심하고 있다 기습남침을 당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이 땅굴에 대한 첩보를 받고 필요한 대응조치를 만족스럽게 못 취했다. 그 이유는 국가원수이고 국군통수권자이며 국가안보회의 의장이면서도 인의 방해 장막에 가려 현장을 절개확인 못하도록 조직적으로 가로막은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이는 다음 3가지 요인으로 분석된다.
① 국가지도자가 환상적 통일논리에 탐닉되어 적장을 만나려는 단기업적 지향적 과욕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에게 자극을 안주면서 특종뉴스를 창출하려 했기 때문이다.
② 현재 까지 발견된 20개 이상의 절개 확인해야 할 땅굴의 소재지가 모두 육군 제3군사령부 관할구역내에 있으며 서울로 진로와 방향이 수렴되고 있는데,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휴전선 인근의 제1,2,3,4 땅굴처럼 절개될 경우 그동안 현실안주에 승승장구한 수많은 역대 땅굴유관기관장과 관계관이 모두 문책을 면치 못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국방부 안기부(국정원),보안사(기무사), 그리고 국방부와 합참의 요직에 보직되어 왔던바, 대통령의 특명이나 국방장관의 지시마져 이들의 강력한 기득권보호를 위한 저항 때문에 겉돌면서 땅굴확인은 미궁에 빠지고 만 것이 아닌가 한다.
③ 북한의 침투간첩이나 친북세력이 땅굴작업을 보장코자 군이나 보안담당기관원을 매수하여 압력을 가하거나 일부세력이 이미 요직에 위장 침투 포석하고서 땅굴 탐지를 방해하고 있을 가능성이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한 실례로 화성 땅굴 발견 장소에 이르는 길목 요지의 폐가가 최근에 깨끗하게 수리되더니 정채 불명의 무연고자인 노부부가 인천에서 전입 은거하고 있는데 특히 높은 안테나를 옥외에 설치하고 두문불출이란 것을 현지주민들로부터 현장답사 시 필자가 득문 확인한 바 있는데, 관할 경찰파출소에 거동수상자로 신고했으나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고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국가생존과 국익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는 안보위협의 배제이다, 서울과 아산만에 이르는 땅굴이 현실로 확인된다면 국기를 흔드는 빅 이벤트가 될 것이며 세계 톱뉴스가 될 것이 자명하다. 특히 그동안 우리를 속여 온 북한을 일거에 코너로 몰아고 굴복시킬 수 있으며,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선회 정상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김정일의 방한 때문에 이를 덮어 둘 것이 아니라 암암리에 또는 공공연히 절개확인 작업을 하루 빨리하고 국가위기관리와 우발사태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 발견된 전체 20여개의 땅굴을 동시에 지체없이 국가최우선사업으로 파 해쳐야 한다.
우리의 조선조 역사를 되돌아 볼 때, 동시대인으로 지금 만고역적으로 평가받는 비급한 졸장부가 있는가하면, 위대한 영웅적인 애국자로 숭상 받는 대장부가 있다. 동시대인으로 원균은 역적이요 이순신은 성웅이며, 또한 이완용은 매국노요 안중근은 애국열사이다.
만약 이 땅굴의 정체를 끝까지 은폐하고 과도합리화 조작하여 김정일의 대남침공을 뒷받침해주는 우를 범한다면, 그들은 자손만대에 고하여 조국에 대역죄를 짓는 만고역적이 될 것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대역죄를 범한 자에게는 다섯 가지 엄한 형벌을 내려 인권을 말살한 능지처참을 단행하였더니 불의와 부정이 살아졌다고 한다. 즉 당사자의 목을 치고, 재산을 몰수하며, 족보에서 그 이름을 제하고, 자식을 노비로 삼으며, 조상의 무덤을 파 해쳤던 것이다.
국 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본회의에서 여야를 초월하여 이에 대한 대 정부 질의를 통해 땅굴의 진상을 밝히도록 하고 동시에 국정감사를 통해 현장검정을 한 다음에 지체 없이 의심스러운 모던 위치를 절개 확인 공개하여 국민을 안심시켜주어야 한다. 동시에 언론에서는 이의 진상을 정확히 취재하여 진솔하게 보도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아울러 그 동안 근 20여 년간 당굴탐사에 매달려 가산을 탕진하고 모진 고생을 한 민간 탐사들을 위로 격려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국가의 도리이고 책무 일 것이다. 국방부는 지금도 연천땅굴과 같은 맥락에서 화성땅굴의 존재가능성을 탁상공론으로 부인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들이여 지금 북의 쇠가 끓는 가마솥이 남으로 향해 기울어져 있음을 깨닫자 ! <끝>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손으로 일을 하며 한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내가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
-- 느혜미아 제5장 17절-18절 및 23절 –
http://nk.chosun.com/board/read.php3?table=bbs_notice&no=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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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구미리 남침땅굴 즉각 절개하고 남침땅굴 은폐한 국방부관계자들을 즉각 파면하라!』
경기 연천군 백학면 구미리 174번지에서 발견된 땅굴이 시민단체의 주도로 조사한 결과 인공(남침) 땅굴임을 밝혔으나 국방부관계자들의 은폐와 조작으로 묵살되 왔으나 시민연대의 소송으로 법원은 즉각 절개하라고 판결했다.
1. 지난 2000년 3월 2일 민간 탐사팀과 SBS가 내시경 촬영으로 인공땅굴임을 확인, 보도했으나 이를 국방부는 전면 부인하고 자연공동으로 결론을 내려 절개요청을 회피, 남침땅굴이 아님을 허위 해명함으로써 온 국민들의 땅굴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전면 묵살하고, 은폐 기도하여 국가안보에 대한 허점을 만천하에 드러낸 데에 대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이에 대한 처사를 강력히 규탄하며 국방부는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여 즉각 연천 구미리 땅굴을 절개할 것을 촉구한다.
2. 김대중 정권과 현정부는 땅굴에 대한 언론 보도를 못하도록 통제 해왔고, 땅굴 진상규명 작업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방해 공작을 전개했을 뿐아니라 사람이 직접 들어가 확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대한 확인 절개 진상규명을 회피해왔다. 국방부의 이러한 태도는 국가안보를 포기한 행위로서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것임을 경고하며 국방부 땅굴은폐 관련자들을 즉각 파면하라.
3.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확인된 통일정책인 낮은 단계의 국가연방제 통일 방안은 자유민주 통일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일방적인 햇볕정책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고있다. 북한의 대남 무력적화통일 포기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이제 국내적으로 국가안보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어떻게 수호해 나갈 것인가를 심각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등 수많은 합의를 했으나 북한은 이에 대한 실천이 전무했으며 핵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지탄대상이 되고 있으며 마약, 달러위폐제조 등의 문제로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4. 현정부와 여야정치권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더욱 철저한 대비와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촉구하며 제 5땅굴로 확인된 연천 구미리 땅굴을 조속히 파헤쳐 진상을 온 국민앞에 공개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지금도 북한 김정일이 남침땅굴을 뚫고 있음을 경계하고 이를 찾는데 총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 제 5땅굴 은폐한 국방부관련자 즉각 파면, 구속하라!
- 언론자유 탄압하는 현정권 각성하라!
- 연천 구미리 제5땅굴 절개하여 김정일 남침야욕 분쇄하자!
- 비료, 쌀, 각종 지원 받으면서 남침땅굴 파는 김정일을 타도하자!
- 북한 김정일은 남침용땅굴 전면공개와 폐쇄를 촉구한다!
연천 구미리 제5땅굴 진상규명 시민연대
북핵저지시민연대 대표 박찬성
"北최대무기는 核이 아니라 특수부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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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前 북한노동당 비서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11/200611290558.html
[사설] 이 나라에 간첩 안 박힌 곳도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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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rd3.chosun.com/brd/view.html?tb=BEMIL063&pn=5&num=745
매니아 칼럼에 고성달님이 올린 북한특수부대 작전능력분석... 의 한글판입니다.
대부분이 한자라서 읽기가 좀 그래서 한글화 시켰습니다.
일본 DRC(Defense Research Center)
(재)DRC연구전문위원 등본 창사(후지모토 마사시)
서문
북한군 특수부대의 실태에는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본 보고서에 있어서는, 각종의 자료로부터 일반적인 군사상식을 근거로 판단해서, 그 상태의 일단을 정리하겠다. 먼저, 특수부대의 지위, 편제·장비·능력 등을 판단해서 제시한 다음에, 예상되는 특수부대운용의 개요를 추측하고, 부대운용계획의 형식으로 제시하겠다.
1.특수부대의 지위
게릴라 침투작전, 산악전 등의 작전행동은, 북한군의 기본원칙, 기본전략 내지 선제·기습남침계획에 있어서, 기본적인 작전행동의 하나로 자리매김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이들 작전을 실행하는 인민군 특수부대는, 세계의 통념상으로 일컫는 정도가 아니라, 정규부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전기본부대의 지위에 있다.
인민군 특수부대는, 편제와 지휘통제계통에 있어서도, 육·해·공의 정규부대와 병행하여 중요한 지위에 놓여 있을 뿐만이 아니라, 특수부대 중에서도 가장 정강한 일부는 국가최고지도자·김정일의 직접 지휘 하에 실질적으로 놓여있다.
(1)인민군의 기본원칙
북한군의 기본원칙은, 현재에 있어서도「정규·비정규전 배합」이다. 이것은, 북한군의 뿌리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비정규전 부대에 있기 때문이다.
(2)북한군의 기본전략
북한의 기본전략은,「입체전략」이라고 불리는 전략이다. 입체전략이란, 정규전과 빨치산전(게릴라), 대부대와 소부대, 현대무기와 재래식무기를 각각 조합시켜, 한반도의 지형을 교묘하게 리용하겠다고 하는 「입체전」이라 불리는 혼합전략이다. 이 기본전략은, 구소련군의 정규전략(속공기동전과 포위섬멸전), 모택동의 비정규전전략(대규모 게릴라에 의하여 적을 각개 격파)을 조합시켜, 여기에 한국전쟁의 교훈을 가미한 전략이다.
(3) 북한군의 선제·기습 남진계획에 있어서의 특수부대의 임무
「남진은, 선제·기습을 취하여, 단독으로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선제·기습을 달성하기 위하여, 특수부대에는, ① 남진 땅굴을 이용하여 DMZ전선의 남측에 제2전선을 형성, ② 공정·공중기동작전, 상륙작전, 게릴라침투작전을 감행하여 한국 전역을 동시에 전장화, ③ 먼저 특수부대가 게릴라 침투를 개시하고, 한국군 또는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한국 전역에서 내란을 발생시켜, 북한에 지원을 구함에 의하여 남진을 합법화한다, 고 하는 3가지의 임무가 부여되어 있다고 한다.
(4) 북한군의 편제
북한군의 편제를 그림-1에, 특수부대와 관련된 조직을 그림-2에 표시함. 그림 표1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이른바 특수부대는 특수군단과 특수대대의 2종류의 부대로부터 구성되어 있다.
북한군 특수부대관련 조직에 나타나있는 바와 같이, 총참모본부가 직할하는 특수군단은 경보병교도지도국의 지도를 받는다. 한편으로, 8개의 정찰국특수대대는 형태상으로는 총참모본부 정찰국의 지휘 하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정일의 직접지휘를 받음은 물론 노동당의 대외정보조사부(35실)의 지도를 받게 되어 있어서, 한국을 위시하여, 기타의 외국에 대한 각종의 지하공작을 실행하는 부대이다.
노동당의 해외정보조사부(35호실)는, 한국 기타 국가에 있어서 공작원을 장기간 잠복시켜, 정치, 경제, 군사, 사회에 관한 정보수집과 테러 활동, 치랍 등의 모략·파괴활동을 행하게 하고 있다. 1987년의 뱅갈만상에서의 대한항공기의 공중폭파사건은 해외정보조사부의 소관이었다.
총참모본부정찰국은 인민무력성 안에 있는 모략·파괴조직이다. 김정일총서기의 직접 지휘 하에 놓여있다. 정찰국은, 무장 게릴라를 양성하여, 한국으로 파견하여, 한국정부 요인암살, 주요시설의 파괴, 치랍 등의 활동을 행함과 동시에, 한국에 관한 군사정보의 수집을 행하고 있다. 1983년의 미얀마의 한국각료폭살사건, 1996년의 한국의 동해안에서 좌초된 스파이 잠수함의 파견은, 정찰국의 소관이었다.
2.특수부대의 편제·병력·장비 및 능력
(1) 특수부대의 편제·병력
a. 총참모본부 직할의 특수군단
「특수군단」의 실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각종 자료로부터 이하와 같이 판단된다.
특수군단은, 세계 통념상의 게릴라부대일 뿐만 아니라, 공정, 공중기동, 수륙양용의 각종작전, 후방지역경계를 포함, 정규전을 임무로 하고 있는 정규전 부대에도 있다. 륙·해·공군과 어깨를 나란히 중요한 지위에 있으며, ① 저격여단(6개), ② 수륙양용 저격여단(2개), ③ 공군 저격여단(2개), ④ 경보병공수여단(3개), ⑤ 정찰대대(17개), ⑥ 경보병여단(9개), ⑦ 공수대대(1개)으로 된다.
총 병력은, 약 10만 명(밀리터리-밸런스2000-2001판에 의하면 88,000명)이다.(운영자 주: 현재는 14만 에 달한다고 함-김한식 목사)
북한의 특수군단은 경보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경」보병은 가벼운 보병을 의미하지 않는다. 각종 지형의 답파, 주야·전천후의 능력을 보유한 「고기동」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림-1에 있어서, 총참모본부 아래에「경보병」교도지도국이, 전차교도지도국, 포병교도지도국과 나란히 설치되어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 북한군에 있어서는, 「경보병」이 보병 중의 종류구분아 아니고 전차, 포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병종으로 구분되어 있다.
1969년 1월, 특수부대로서 제8군단이 창설되었다. 이 제8군단은, 1970년대에 확대되어, 10만 명 규모의 제8특수군단으로 되었다. 후에 일반부대 가운데에 제8군단이 창설됨으로서, 제8특수군단은「특수군단」으로 개칭되었다.
(a) 저격여단×6개
지하땅굴을 사용하여 DMZ의 한미군의 방어선의 배후로 진출하여 제2전선을 구성하여, 한미군의 전력을 분산시켜, 돌파남진하는 주력의 선제·기습작전의 성공에 기여한다.
(b)수륙양용저격여단×2개
선봉이 되어 한국으로 잠입하여, 미사일기지 등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원자력발전소 등을 포함한 산업·공공시설을 재빨리 점거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수륙양용부대이다.
퍼레이드에서, 라이프 재킷을 착용하고, 병력수송차에 탑승하고 있는 자들은 수륙양용강습부대로 생각된다.
(c)공군저격여단×2개
공군륙전대라고나 해야할 부대다. 북한공군의 작전능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미련합군이 사용하고 있는 비행장, 레이더, 관제시설, 지대공미사일기지 등을 습격하는 임무가 있다. 이 부대가 생긴 배경에는, 한국전쟁에서 순식간에 제공권을 탈취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퍼레이드에서, 비행모를 착용하고, 위장복(미채복)에 푸른 세일러복의 옷깃으로, 트럭에 탑승한 부대라 생각된다.
(d)경보병공정여단×3개
낙하산 강하·헤리본 부대이다. 북한군에는, 공정작전의 임무는 특수부대에서 주어진다.
경비행기 An-2를 사용하여 저공비행을 하는 일이 많다. 대원에게는 상시, 자동소총과 실탄 300발, 탄창 4개, 수류탄 4개가 지급되어 있다고 한다. 분대 8명, 소대 25명, 중대 80명, 대대 500명의 편성으로, 1개 여단은 7개 대대로 계 3,500명이다.
(e)정찰대대×17개
사전의 잠입을 포함, 한국내의 깊숙한 잠입을 포함하여, 한미군의 정보를 수집한다.
퍼레이드에서, 전원이 위장복과 위장전투모를 착용하고, 총검을 착검한 AK-74을 지참한 정찰군관학교의 학생으로 보이는 부대라 생각된다. 2번째로 등장하고 있어, 지위가 높음을 나타내고 있다.
(f)경보병여단×9개
북한 제1선 부대의 배후를 공격해 오는 한미낙하산부대라든가 상륙부대에 대처하는 후방 경계·대처부대다. 평시에는 평안북도나 함경남도 등에 주둔하여, 초인적인 도보기동훈련에 종사하고 있다. 30kg의 군장비를 어깨에 메고, 160Km를 휴면없이 2·3일에, 도보기동을 한다고 한다. 경보병여단에는 12명 편성과 40명 편성의 부대가 있다. 130명으로 중대, 500명으로 대대가 된다.
(g)공수대대×1개
항공기를 보유하고, 공수를 담당하는 비행대로 판단된다.
b.정찰국특수대대(8개)
한국의 8도에, 각각 1개 대대를 잠입시키려고 8개 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대대는 300명으로 되어 있고, 총 병력은 약 2,400명이다.
1990년에, 「각 여단에 녀군병사만의 특수정찰소대(35명) 1개를 편성했다」고 하는 정보가 있다. 녀성만의 정찰소대가 특성을 발휘하여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하면, 이 녀성특수정찰소대는, 각 여단에는 없고, 정찰국의 8개 특수대대에 각각 1개 편성되어서, 한국의 각도에 있어서 잠복지하활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판단함이 타당하다.
1967년초, 민족보위부(현인민무력부) 정찰국의 지휘하에, 제124부대가 창설되었다. 현재의 정찰국 8개 특수대대의 전신이다. 제124부대는, 1968년 1월의 한국의 청와대 습격사건, 동년 11월에 100여명의 게릴라가 한국 동해안에 상륙한 사건, 1983년 미얀마에서 전두환 대통령 폭살을 노린 랭군폭파사건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같은 테러·게릴라 활동은 실패하고, 대남공작은 군에서 노동당으로 이관되어, 테러·게릴라의 침투공작보다도, 비밀공작원의 장기잠복활동에 의한 혁명지원 지하조직의 육성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2)잠입용의 장비
a.공중잠입용 주요 장비
o소형수송기 AN-2 300기
1기는 10명을 수송가능. 구식소형복엽수송기이지만, 저속·저고도 비행에 적합하여, 단거리착륙성능이 우수하다. 레이더 탐지를 회피하여 저공비행에 의하여 특수부대를 투입시키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o각종 수송기, 헬리콥터, 레이더에 나타나지 않는 목제그라인더, 기구 등
b.해상잠입용 주요장비
o소형잠수정 약 60척
소형잠수정 상어급 21척 각 정은 19명을 수송가능.
소형잠수정 유-고급 45척 각 정은 13명을 수송가능.
연안형의 공작원잠입용 특별 반잠수정 13(∼21)척 각 정은 8명을 수송가능.
o오버크라프트 양륙정 약130척
완전무장 병력 50명을 수송가능. 시속 50노트.
o연안 순시정, 고속반잠수정, 고무제 강습정, 각종 민용선
c.남침용 지하땅굴
남침용의 비밀지하땅굴을 파고 있다. 이를 사용해서 한미군 제1선의 후방에 진출할수 있다. 지금까지 4개가 발견되어, 폐쇄되었다. 미발견의 땅굴을 포함해서 합계로 약 20개를 은밀하게 파온 것으로 되어 있다.
o제1땅굴(1974년에 서울까지 65km의 지점에서 발견)
높이1.2m, 폭0.9m. 병사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1시간에 4,000명이 나갈 수 있다.
o제2땅굴(1975년에 서울까지 100km의 지점에서 발견)
높이 2m, 폭2m. 완전 무장병 2명이 병진가능하다. 소형의 차량, 포가 통과 가능하다. 1시간에 30,000명이 나갈 수 있다.
o제3땅굴(1976년에 서울까지 44km의 지점에서 발견), 제2땅굴과 같은 규모
o제4땅굴(1990년에 서울에서 약160km의 동부전선에서 발견), 상동
d.잠입 병력의 화력장비
한국 내로 깊숙이 잠입하는 병사들의 화력장비는 휴행(휴행) 가능한 장비에 한정되어, 파괴력은 한정되어 있다. 82mm 박격포, 82mm 대전차 로케트 RPG-7, 휴대대공 미사일 SA-16, 소총AK-47, 구체코슬로바키아제 권총 사이즈의 단기관총VZ-61, 권총, 수류탄, 고성능폭탄 등이 휴행(휴행)가능하다. NBC병기의 휴행을 기도할 가능성이 있다.
1996년9월,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 1척이 한국연안에서 좌초하여, 13명의 무장공작원이 상륙하여 사살되었다. 공작원이 남긴 유류품은, 대전차로케트 RPG-7, 소총AK-47, 벨기제 권총 브로닝·하이파워, 권총과 소총의 탄약, 일제 트랜시버, 일제 단파라디오, 암호난수표, 일본제 야간 망원경, 일제 비디오카메라·쌍안경 등 정찰용 기재, 잠수복과 잠수용 장비, 한국군전투복, 민간인위장의류·군화, 식량, 공구, 일용품 등이었다.
2001년 12월, 엄미대도 외해에서 해상보안청 순시선이 격침된 북한 공작선에서는, 대전차 로케트RPG-7, 휴대대공 미사일 SA-16(2개), 사각 수류탄이 회수되었다. 사각수류탄은, 담배갑 정도의 크기로서, 파인코옥과 같은 수많은 강구(강구)가 가득 차 있어서, 통상의 수류탄보다 살상력이 큰 북한의 독특한 수류탄이다.
e.잠입 병사들의 기동장비
잠입 병사들은 기동용 장비를 갖지 않는다. 도보 또는 현지 획득 차량 등에 의하여 기동한다.
(3)후방지원능력(전투계속능력)
공중 낙하 또는 해상잠입 후에는, 후방지원을 받을 수 없어, 지참한 탄약 식량만의 고립전투로 된다. 전투계속능력은 극히 한정되어, 우군지상부대와의 조기 연계가 없게되면, 2.3일 간의 전투 이상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다.
(4)사기·숙련도
북한은 한국의 블랙 벨레-, 미국의 그린 벨레-, 영국의 SAS, 독일의 GSG-9 등에 비견할 수 있는 강력한 특수부대를 육성해 왔다고 한다. 철저한 정신교육에 의하여,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무서워하지 않는 전사라고 한다. 한국군으로 위장하기 위한 훈련도 받고 있다. 산악지대에 한국의 도시모형 등을 설치하고 실전적인 게릴라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3.예상할 수 있는 특수부대의 운용
이상과 같이 추측한 특수부대의 실태를 종합하여 표-1에 제시한다.
이와 같은 것들로부터, 특수부대는 대체로 표-2와 같은 구상에 의하여 운용되는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