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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이트에서 복사한글인데,,
이글을 쓰신분은 본명이 없어 누구신지 모르지만 재야사학자인 걸로 추정됩니다.
내용중에 간지의 기원이 나오길레 역학동에 올려봅니다.
내용의 요지는...
환웅시대 시작이 지금부터 약 1만년전이고 그때 상원갑자년에 간지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기록보다는 약 6000년이 앞서는것으로 간지의 시원으로 보면 最古로 생각됩니다.
더구나..하단 사요취선(史要聚選) 내용중에 "덮어두고 묻어둔 간지를 다시 발굴해서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이것은 오래전부터 음양오행학 과 간지 즉 60갑자가 전 고대문명의 잔재일것이라는 ..심정을 일부 뒷받침하는
증거 문구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추정한 근거는 음양학 과 역학(��)의 상관관계가 중국사서에는 명확한 근거 기원없고
단지 춘추전국시대 동중자?라는 분이 음양술을 사용했다는 정도인데...(3000년전?)
이부분의 소견은 다음 기회에 올리겠습니다. ...
환국의 기원년대는 BC.8937년
환단고기를 연구한 학자들은 환국의 기원년대를 bc7197년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연구해 본 바로는 환국의 기원년대는 bc7197년 보다 1740년 이나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 bc8937년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학자들은 환단고기에 기록 된 데로 연구를 하였기 때문에 환국의 기원년대를 bc7197년으로 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단고기의 기록만으로 환산해보아도 2년의 오차가 생긴다.
그래서 환국의 기원년대를 bc7197년으로 하는 학자들이 80~90% 이고, 가뭄에 콩나듯 bc7199년으로 기록하는 학자들도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각종 단군관계 사서의 기록에 따라 기원전2333년 무진년(戊辰年)을 기준으로하여 역산을 하여보면 아래와 같다.
'단군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인임검(神人壬儉)께서 개천1565년(B.C 2333년) 상월(10월) 초 사흘(3日)에 단목의 옛 터로와서 무리들과 함께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했으므로 개천1565년은 '환웅 배달국'의 말년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2333 +1565를 해야하고 환국의 역년이 3301년이라고하였으니 합산하여 2333+1565+3301으로 계산을 해야한다. 그러면 환국의 기원년대는 'bc7199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환단고기를 연구한 학자들은 모두가 한목소리로 'bc7197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2년의 오차를 감수하고 '기원전7197년' 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의 실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bc7197년'이 간지(干支)로 갑자년(甲子年)이기 때문에 환국의 개천년대를 갑자년에 억지로 꿰어 맞춘 것이라고 보여진다.
왜? 갑자년에 맞추려 한 것일까?
간지역법으로 보면 간지는 크게 상원갑자 중원갑자 하원갑자 세개를 60년을 한마디로 반복하여 세고 있는데 그중에서 상원갑자는 간지의 맨 앞부분에서 시작하는 고로 개천(開天)이라면 반드시 상원갑자와 함께 시행되는 것으로 맞추어야 할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bc7197년' 은 하원갑자 이다. 오류는 여기에서 발생한 것이다.
환인천제께서 개천(開天)을 한 때는 상원갑자원년 상달 초사흘(10월 3일) 인 것을 알아야한다.
만세력에 의하면 상원갑자원년은 BC.8937년 이다.
한民族 최초의 개천대제(開天大祭)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에는 "개천 1565년(B.C 2333년) 상월(10월) 초 사흘에 오가의 우두머리로 신인 왕검이 있었는데, 무리 800을 이끌고 단목의 옛 터로 와서 무리들과 더불어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환웅시대가 시작된지 1565년 만에 환웅시대가 끝남을 알리는 동시에 단군임검이 조선(朝鮮)을 개국한 것을 말한다. 이 때가 B.C 2333년으로 1년중 달(月)이 가장크고 청명한날을 골라 한民族의 시조이신 삼신조상님께 개천대제(開天大祭)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지금도 우리는 10월3일을 개천절로 지내고있다. 그러나 음력 10월 3일이 아닌 양력 10월 3일로 지내고있으니 이는 빨리 고쳐져야 된다.
이때는 이미 간지력법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기록으로 신단실기(神檀實記) 단군세기(檀君世紀)에 상원갑자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 桓因·桓雄·桓儉, 是爲三神. 上元甲子十月三日, 桓儉, 以神化人, 持天符三印, 降于太白山 檀木下, 乃設神敎而敎民. 時, 人民被化, 歸者如市, 有神市氏之稱, 乃 三千團部. 開天一百二十五年戊辰十月三日, 國人推戴神人爲壬儉, 是檀君.
환인 . 환웅 . 환검을 '삼신'이라 한다. 상원갑자년 10월 3일에 환검이 神의 몸에서 사람으로 변화하여, 하늘의 부절인 세 가지 인장을 가지고 태백산의 단목 아래로 내려오니, 이에 신의 가르침을 베풀어 백성들을 교화하였다. 이 때 인민들이 교화를 입게 되자 귀순하는 자가 마치 저자거리와 같았기에 '신시씨'라는 일컬음이 있게 되었으며, 이에 3천의 단부가 채워지게 되었다. 개천 125년 무진 10월 3일에 나라 사람들이 신인을 추대하여 임검으로 삼으니, 이가 곧 단군이다. "
여기서는 환웅시대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개천 125년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개천 125년 무진 10월 3일이 BC2333년으로 단군이 朝鮮을 개국한 날이며 쉽게 말해서 단군임검(壇君壬儉)이 神의 몸에서 인간으로 되어 125년이 되는 해에 조선을 개국했다는 말이다.
하늘에서 神들이 내려오는 시기가 상원갑자년이라고 강조하고있다. 이는 역사가(歷史家)가 개천(開天)의 기원을 간지력법(干支歷法)의 기원에 맞추려는 노력이 엿 보인다.
실제로 계산해보니 무진(戊辰) 10월 3일은 하원갑자 5년 이었으며 상원갑자가 열린지 125년 후 였다. 기록자가 정확하게 간지년대를 사용하고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간지력법이 중요한가하면 간지력법의 탄생이 바로 한民族歷史의 시원이기 때문이다.
개천(開天)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열린 것인데 그 동안 닫혀 있던 것이 열린 것이라는 말이다.
이 기록이 고대사서에 있다.
<유학수지>
이백(200)여년전 조선시대에 쓰여진 세계최초의 국정교과서 였던 '유학수지' 본문 24쪽에 기록된 글이다.
盤古首出御世天地初分 天皇澹泊無爲干支始建 而俗自化制
干支以定歲 而民始如天地所向矣 獨斷干幹也, 其名有十亦曰十母是也.
支枝也其名有十二亦曰十二子
반고씨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나 천지를 열고 나라를 세워 다스렸다. 그 후 천황은 담박하고 욕심이 없으므로 간지(干支:天地)를 처음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간지로서 年月日時를 정하여, 백성들이 처음으로 하늘과 땅의 움직임을 알게 했다.
간(干)은 하늘을 뜻하며 줄기와 같다. 그리고 그 이름은 열(十)이 있는데 십모(十母)라고 한다. 지(支)는 땅 즉 가지를 뜻한다. 열둘(十二)이 있는데, 십이자(十二子)라고 한다.
<사요취선>
사요취선(史要聚選) 권일(卷一) 제왕편(帝王編)
天皇氏盖取, 天開於子之義, 一姓兄弟十二人, 亦曰成鳩氏, 是曰天靈,
澹泊無爲始制干支, 蓋十母十二子之名以定歲之所在,
천황씨는 묻혀져 있던 것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이 말은 간지(干支)와 오행(五行)을 다시 하늘 아래 개방하여 쓰기로 했다.성씨(姓氏)는 한 일(一)자 성이었으며, 형제는 12명이었다. 천황씨를 성구씨(成鳩氏)라고도 했으며 천령(天靈)이라고도 했다. 천령은 마음이 담백하고 깨끗했으며 탐욕이 없었다.
그러기에 묻어두고 덮어둔 간지(干支)를 다시 발굴하여 학문화하는데 전념했다.
그것은 10모(十母: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 癸)와 12자(十二子: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의 이름이며, 이것으로 연월일시(年月日時)의 때를 정한 것이다.
이상과 비슷한 기록이 역대신선통감에는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다.
율곤 이중재 선생님의 해설에 의하면
반고씨(盤古氏)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신인(最初의 神人)으로 삼성기의 기록에 의하면 천제환인씨(天帝桓因氏)이다. 역대신선통감에 반고씨(盤古氏)인 최초의 신인(最初의 神人) 아래로 천황씨가 있었는데 천황씨의 아들 지갱(地鏗)이 하늘의 해와 별들의 운행을 연구하여 천간지지력법을 완성하여 천황씨에게 바쳐서 천황씨는 이를 발표하고 천지만물의 운행에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천황씨는 묻혀져 있던 것을 다시 열기 시작했다." 라는 말은 그 동안 감추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며 일종의 암흑시대 였던 것으로 부터 벗어났으며 인류가 처음으로 천문(天文)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법체계를 이룩하였다는 말이다.
현재 율곤학회에서 이개춘(李開春)선생님이 이 분야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
실로 역사가 생기기 이전에 우리의 조상님들은 천문(天文) 연구에 엄청난 시간을 쏱아 부었을 것이다. 그것은 상고시대에 환인천제께서 천산(天山)에서 득도(得道)하실 때에는 높은 산에서 살았기 때문이며 높은 산은 오늘날 천문대에 비교 될 수 있다. 그리고 공해가 없는 밤하늘의 별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마치 우주망원경으로 보는 듯이 밝게 빛나고 너무 또렸하게 보였을 것이며 또한 상고시대 사람들의 시력이 굉장히 밝았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현재 몽골인들만 하여도 평생동안 먼 경치만 보고 살기 때문에 그들의 평균 시력은 5 ~6 정도 된다고한다. 밝은 시력으로 보는 밤 하늘은 오늘날 보다 더 천문관측에 유리한 조건이었을 것이다.그 외에도 상고시대에 사람들이 밤하늘에 별을 보고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로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뚜렸한 사계절의 변화를 보는 인간적인 호기심도 한 몫 했을 것으로 보인다.
상원갑자원년(BC.8937) 상달 초사흘(10월 3일)이 원조 개천절(開天節)인 이유가 여기에있다. 그러므로 환단고기에 기록된 개천(開天)에 관한 사실들은 몇가지가 누락 된 것을 그대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빚어지는 오류인 것이다.
이제는 우리 한民族의 시원을 상원갑자원년(BC.8937) 상달 초사흘(10월 3일) 桓紀10948년으로 바로잡아서 민족정기를 바로 세웠으면 하는 바램이다.(여기까지 스크랩한 내용)
지금까지...명리학계에 황제씨가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정설화 하고 있는 시점에서
시사하는 점이 많을걸로 생각됩니다.
단지 다소 민족 우월적인 자료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런뜻은 전혀 없습니다.
음양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글자 나부랭이들이 운명을 예측해낼수 있는지 의아함을 체험하신분들은
간지학이 단순한 인위적인 부호일수 없다는 생각들 갖고 계실것이라 생각됩니다.
10간 12지지의 근원을 알수는 없지만 분명한것은 단순한 인공적인 창작품은 아니라는것입니다.
그 비밀들이 가까운 시일내...과학적인 측면에서 반드시 밝혀질것이라는것이 제 생각입니다.
천체 운행과 우주의 질서에 근원을 둔 고차원의 학문임이...
첫댓글 이사님이 올리신 글을 잘 읽어보았습니다.
위의 기록과 황제원년 또는 61년의 근거 등을 의거하여 몇 가지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1984년을 하원갑자라 주장하는 근거가 황제61년 상원갑자설입니다.
만일 황제시대에 간지가 시작되었다면 당연히 황제원년이 상원갑자가 되어야 옳을 것입니다.
곧 중국도 황제원년을 상원갑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황제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1984년이 하원갑자이면 지갱씨 갑자창제년 기원전 8937년이 상원갑자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황제61년을 상원갑자의 근거로 삼는 것보다 지갱씨 기원전 8937년을 상원갑자의 근거로 삼는 것이 더 타당합니
네..답글 감사드립니다.
황제가 환웅시대에 이분야 전문가로부터 전수받았다는 기록도 본것 같습니다.
단군옛터로 추정되는 6000여년전 홍산문명 유적과 7000여년전으로 추정되는 사해지역에 사해유적이 이미 발굴된 상태인데, 지도를 보면 모두 중국의 동북지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KBS 역사스페셜[참조]
미루어 짐작건데 ..이지역에서 다량의 유적들이 출토되었는데 년대도 7000년 이상인것으로 보아 환단고기에 기록된 내용들은 사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