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이 가진 심리적 병을 들어 보라 하면
1번이 ‘조급증’이고, 2번이 ‘화병’입니다.
이 중에서 화병은 비교적 많이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어디다 대고 화풀이할 곳도 없고,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식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마음속에 눌러놓고 사는 것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고래고래 소리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노래방이
전국에 지천으로 생겨나고,
자기감정 표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형성되어
화병은 많이 사라진 편입니다만,
정신 의학자들에 의하면 조급증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을 보면 제일 먼저 하는 한국말이 ‘빨리빨리’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쓰는 말에는 빨리빨리라는 말이 자주 사용됩니다.
집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
“빨리 숙제해라. 빨리 밥 먹어. 빨리 자. 빨리 학교 가. 빨리 일어나......”
좀 나이 먹으면 “빨리 결혼해. 빨리 돈 벌어. 빨리 애 낳아라.” 등등
빨리 죽으라는 말만 안하지 무엇을 하든 빨리 하라는 독촉성 언어를
평생토록 듣고 사는 것이 한국인의 삶입니다.
이렇게 세뇌되다시피 빨리란 말을 듣다 보니 앞차가 느리게 가면
“저거 왜 빨리 안 가고 지랄이야.”하는 말이 아주 쉽게 나옵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나보다 늦게 가면 등신, 빨리 가면 미친놈’.
또 식당에서 주문한 식사가 바로 나오면 좋은 식당이고,
천천히 나오면 뭔 식당이 이 모양이야 하고 소리를 꽥꽥 지르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만 특이하게 잘되는 사업이
속성 학원, 퀵서비스, 총알 택시, 초고속 자장면 배달 등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렇게 무엇이든지 빨리 하는 것이 좋은가?
그렇지가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조급증이 불러오는 좋지 않은 결과 중 하나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조급증은 불안감과 경계심이 동반되는 증상입니다.
그래서 신경이 아주 예민해지고, 작은 자극에도 심하게 공격적이 됩니다.
즉, 혈중 아드레날린이 과잉 분비되어 소위 핏대를 올리게 되는 것인데,
문제는 이렇게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면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없고,
그렇게 늘 긴장하고 살다 보니 쉽게 지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좋지 않은 결과는 신경질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가시털을 곧추세운 고슴도치 같다는 말을 듣습니다.
호전적이란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자기가 부딪치고도 인상을 쓰고 가고,
술 먹다가 옆자리가 시끄럽다고 시비 걸어서 싸움박질하기 일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감정 싸움 벌이다가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생깁니다.
이런 일들을 두고 어떤 이들은 한국인의 윤리 의식 수준 운운합니다만,
사실 원인은 ‘조급증’입니다.
마음이 조급하면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심리적으로 공격적인 모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해를 잘하게 됩니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꼭 불쾌하고, 부정적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함부로 웃지도, 농담도 못합니다.
왜 비웃느냐, 왜 조롱하느냐하고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급증 때문에 신경질 부리는 본인이 당하는 피해들이 적지 않습니다.
태국에서 한국 사람 차와 태국 사람 차가 접촉 사고가 났는데,
태국인이 담배를 권하고 대화하자고 하는데
한국인이 우리나라에서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상대방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좋지 않은 결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나 안전성
혹은 미래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공사를 해도 부실 공사를 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연연하고,
먹고 튀는 단기 투자에만 급급해집니다.
그래서 생긴 것이 소위 바가지요금입니다.
내가 널 언제 또 볼 거냐 하는 심정으로 바가지를 씌우는데,
문제는 바가지 쓴 사람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서
결국에는 신뢰를 잃고, 가진 것도 다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조급증을 가지고 신경질 부리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하느님께서 천상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싶어지셨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낡기도 하고 보기 싫증나기도 하셔서,
다 부시고 신축 건물을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입찰을 붙이셨는데,
유럽인, 일본인, 한국인 세 사람이 나서서 공사 기간과 견적가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유럽인은 백년, 일본 사람은 오십 년인데, 가격은 유럽인에 비해 두 배.
그런데 한국 사람은 일 년이라고 올린 데다가 가격도 절반의 절반 가격.
어떻게 된 일이냐? 물으시니
유럽인, “낮잠 자는 시간은 꼭 있어야 하고,
출퇴근 시간 꼭 지켜야 해서 백년 걸립니다.”
일본인, “저희는 낮잠은 안 자서 오십 년은 걸리는데,
제품은 꼭 일제를 써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두 배입니다.”
한국인, “저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자재는 부숴 버린 성전 건물 자재를 고쳐서 대충 세멘으로 때우기 때문에
공사기간 일 년, 가격도 절반 이하입니다.”
천당 재정이 워낙 힘들었는지라 하느님께서 한국인을 낙찰,
일 년 만에 지어놓은 걸 보니 그럴 듯하여
한국인들을 사랑하셔서 늘 데리고 다니셨는데,
일 년쯤 지나자 천당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전 지붕에서 비가 새는 건 기본이고,
여기저기 대충 땜빵해 놓은 것들이 일 년쯤 지나자 슬슬 허물이 벗겨져서
천당 성전이 흉물스럽게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원래 싼 게 비지떡이라고 하면서 한국인을 옹호하셨는데,
다시 일 년이 지나자 베드로 사도를 불러서
“한국인들은 따로 살게 하고 내 근처에 못 오게 하라.”
“왜 그러십니까?”
“저놈들과 같이 밥 먹으려면 죽을 지경이다.
오 분 만에 처먹고는 날보고 왜 그렇게 아작아작 드시냐고 핀잔을 주지 않나.
술 한 잔 하자면서 수폭주, 원폭주, 웬 놈의 폭탄주가 그리 많고,
마시면 원샷, 남기면 또 빈정거리니 자존심도 상하는 데다
쟤네들하고 놀다간 내 명에 못 죽겠다.”
그래서 하느님 숙소 앞에는 한국인 출입 금지 표지판이 세워졌다는 야그입니다.
그럼 우리 한국인들은 왜 이리 조급증이 심한 것인가?
그 이유를 인사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원래 우리나라는 농경 민족,
그것도 계절풍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농경 민족입니다.
그래서 늘 농민들은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가슴 졸이며 살았고,
보릿고개니 흉년이니 해서 밥 굶기가 다반사여서
밥은 먹었는지가 안부 인사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굶는 것에 대한 초조한 마음이 조급증으로 증세가 악화된 것입니다.
또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도 불안함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나라를 하도 이놈 저놈이 집어먹고, 전쟁이란 전쟁은 다 겪다 보니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느냐는 의미로 안녕하십니까라고 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갈라져서 대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마음 안 기저에 불안감이 깔려 있어서
안녕하시냐는 인사말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다 보니,
놀란 토끼처럼 작은 일에도 놀라고, 예민하고, 힘겹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조급증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느리게 살면 되는가?
안 됩니다. 복장이 터져 죽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웃을 일을 많이 만들고,
유머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영성가가 말하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이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유머라고 생각해서
자기는 책상에 늘 성경과 유머집을 같이 둔다고 하였습니다.
시골 언덕길을 대형 트럭이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는데,
길이 좁아서 운전자들이 신경질로 뚜껑이 열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트럭 가까이 간 사람들은 다 픽 웃거나 허허거리더랍니다.
트럭 뒤에 “느려 터져서 죄송합니다.”라는 글귀가 붙은 것을 보고
신경질이 가라앉은 것입니다.
식당에 가면 흔히 보는 한문 글귀 ‘家和萬事成’,
‘가정이 행복해야 만사가 잘 풀린다.’
이 말은 비단 가정뿐만이 아니라 직장, 교회 어디에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는 곳에 웃음이 없고, 신경질만 가득 찬 곳은
마치 찬바람 얼어붙은 사막 같은 곳이라서
먹을 것이나 건질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어서
결국에는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거나 얼어 죽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늘 유머와 웃음이 넘치는 곳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지친 사람을 다시 살린다고 합니다.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봉사를 아무리 많이 해도
웃음과 유머, 여유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짜증내고 신경질부리며 봉사할 바엔
차라리 집에서 개콘이나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낄낄대는 편이
본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좋습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잘 웃으며 살아왔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