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시작하려던 한 소년과 축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소년들
지난 일요일 퍼플아레나에서 대전시티즌의 훈련이 있었습니다. 빠듯이 시간에 맞춰 도착해보니, 선수들 사이로 낯선 어린 얼굴하나가 보였습니다.
누굴까 누굴까 모든 이의 관심이 그 아이에게 쏠렸고, 중 2, 15세의 어린 소년이 테스트를 받으려 왔다 했습니다.
그의 부모님과 일가친척으로 보이는 분들이 벤치에 앉아 계셨습니다.
나이에 비해서는 작은 몸은 아니었지만, 성인 선수들 사이로 들어가버리자 아이의 몸집은 시야에서 금새 작아져버립니다.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프로 성인팀에 테스트를 받으러 올 정도라면 하는 기대에 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시선을 끌어모았습니다.
왠만한 성인 선수들이 새로이 합류해도 연습 중에 공 한번 만져 보기 여간 수월찮은 것이 프로기에, 아이가 공도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여기로 저기로 뛰어다니기만 하는 모습에도 간간히 응원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옵니다.
그런 중에 임영주 선수가 자신에게 데쉬하는 아이에게 몸을 살짝 비켜주며,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볼을 만져볼 수 있게 되었었습니다.
역시 임영주 선수가 착하다는 말에, 보복행위가 있는지 두고 봐야 한다는 우수개 소리를 내뱉으며, 게임 중 임영주 선수의 현명한 파울전략에
수다가 옮겨 갔습니다. 그 사이 미니 게임을 마친 선수들이 슈팅연습을 시작했고, 누가 어디에 가 서야 할지 굳이 이야기 해주지 않아도
선수들 면면히 항상 그래왔던 자신의 자리에 가서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번갈아가며 크로스를 올려주면, 중앙에서 둘씩 짝을 지어 데쉬하며
헤딩으로 때로는 발리슛으로 슈팅 연습들을 했습니다.
피치 밖에서는 재활훈련의 지루한 반복 달리기를 마친 이세인 선수가 얼음찜질로 무릎을 동여매며 슈팅하는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황병주 선수의 이름을 우렁차게 부르기 시작하더군요.
“병주야, 병주야!”
무엇 때문에 훈련하는 사람을 부르는가 했더니, 중2짜리 어린 테스트 생이 어디에 끼어야 할지 몰라 대전선수들 뒤편에서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겁니다.
선수들의 슈팅을 보느라 구경꾼들조차도 어느새 잊어버리고 있었던 아이를 가리키며 이세인 선수가 황병주 선수에게 부탁했습니다.
같이 데리고 가서 연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연습중인데 그런 부탁이 달갑지 않을 만도 해 황병주 선수가 어쩌나 하고, 이번엔 황병주 선수를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뒤편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아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와서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쥡니다.
황병주 선수가 워낙 키가 크다보니, 아이는 황병주 선수의 겨드랑이 밑으로 폭 들어가더군요.
그리고는 가운데 슈팅연습을 하는 줄에 합류해 아이의 두 어깨를 붙잡고 자신의 앞으로 세워줍니다.
역쉬 쉐인~ 정말 착하구나 하는 생각에 헤벌쭉이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아이에게는 슈팅연습을 할 수 있는 차례가 대여섯번은 왔던 것 같습니다.
그중 마지막에서 두 번째쯤에는 골도 성공하며, 적지 않은 그날의 구경꾼들에게 박수도 받았습니다.
전북의 이현승 선수를 떠올리며,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대의 이른 조우를 시켜줄 작고 빠르고 어린 유망주가 새로 들어오게 되는가 싶어
연습이 끝난 후에도 아이에게서들 눈을 떼지 못했었습니다. 연습을 마치고 사이드라인으로 나오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흡족했거나,
혹은 사람들의 시선이 쑥쓰러워서인지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웃으면서도 자꾸 머리며 얼굴을 쓸어내렸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중2치고는 성숙해 보였지만, 왁스로 신경을 쓰고 온 듯한 머리모양새는 그 나이의 아이다웠습니다.
감독님은 아이와 아이의 부모님인 듯 한 분들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그 아이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다 하더라도
진귀한 구경을 했다 싶었습니다. 중2, 15세의 어린 선수가 프로선수들과 함께 뛰고 테스트를 받았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명예이겠습니까.
훗날 그 아이가 프로 선수가 된다면, 그 첫발의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행운에 벌써부터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조금은 흐믓하기까지 했었더랍니다.
덫붙여 착하고 선한 대전시티즌 선수들의 성품에 더더욱 흐믓한 마음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먼저 연습장에 도착한 이이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아이가 연습에 참여하기 전에 스타킹을 준비해 오지 않아,
아이의 아버지께서 급히 차를 타고 나가 바로 공수해 오기까지 했었다고 합니다.
프로팀의 테스트라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작고 일상적인 부분에서 흔히들 범하지 않는 실수였지만, 아이가 많이도 긴장했는가 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연습이 끝나고 들은 좀 더 자세한 아이의 프로필은 의외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아이가 오늘 대전시티즌의 연습에 참여 했었던 것은
프로팀 선수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의 오랜 기간에 걸친 간곡한 부탁으로, ‘아들이 축구를 포기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으로
이뤄진 테스트였다고 합니다. 정규적인 시스템에서 축구를 배워본 적 없이(독학으로 한 축구실력으로 보기엔 놀라웠습니다만) 마냥 축구가 좋아서
축구를 하겠다는 아들의 소망을 이뤄주기엔 부모님이 걱정해야 할 부분들이 작지 않은 듯 했습니다. 여전히 축구는 돈이 많이 드는 분야이고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확률 또한 매우 작습니다.
몇 억 혹은 몇 십억대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는 것은 흔히 로또에 비교될 정도입니다. 아이는 철이 덜 들어 부모님의 고생을 덜 걱정해
축구 선수가 되겠다 하는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버지 되시는 분이 그처럼 오랫동안 고개 숙이며 부탁에 부탁을 할 정도였다면, 그에 버금가게 아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도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만 그 부탁이 아들이 축구를 포기 할 수 있도록, 아마도 니 실력을 니가 스스로 느껴봐라 라는 의미로 극단의 방법을 강구해 내신 것이었겠습니다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들 튀어나온 말이
“팀을 잘못 고르셨네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친절했던 형님들, 형님들, 형님들. 웃으며 나오던 아이의 얼굴. 아...... -_-;; 형님들이 나빴던 겁니다.
그래서야 어디 포기할 수 있겠었습니까? 골도 넣었보고, 인터셉트도 해봤구요, 드리블하며 치고 올라가다 패스도 해보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 달려 볼 수 있었던 그 아이, 포기했을까요? 결과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짐작해보는 것이 다들 더 포기하기 힘들어지지 않았을까, 만일 아버지에게 대전선수들과 함께 한번만 뛰어볼 수 있게 해준다면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니었다면, 아이가 훗날 프로 선수가 되건 혹은 취미로 축구를 하게 되건 그날의 추억은 결코 아이를
슬프게 하진 않았을 듯합니다.
연습 전에 대전 선수들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친절하고 살갑기 그지없던 그 태도에 처음에는 모르고
있었는가 보다 싶었는데, 곱씹어보면 볼수록,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에서 한두살 터울로 축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부모님의 반대 없이 평탄히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던 선수가 몇이나 있었을까요? 축구 선수가 되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고, 부모님의 경제적인 부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그 작은 몸댕이로 담고 감내해야하는 정신적인 상처와 부담들 역시 보통의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의 그것에는 비교할 바가 되질 못합니다. 훗날 자신들의 아들과 딸이, 본인 스스로 하고 싶다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시키고 싶지
않다는 선수들의 이야기는 돌이켜 보면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세인 선수도, 황병주 선수도, 최윤겸 감독님도 아이를 매몰차게 내치거나, 차갑게 대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본인들의 친절함이 아이에게 희망을, 결국엔 꺾여야 할 꿈에 물을 주게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럴 수 없었겠죠.
마음 아프게 축구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더더욱 그랬을 범직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대전을 타박할 수도 있겠죠. 프로답지 못하다.
어린 아이를 연습에 끼워주다니, 동네 구멍가게냐, 아무나 가서 연습하면 끼워주는 조기축구회냐.
혹여라도 그런 말이 나올까 미리 까발려 놓겠습니다. 크크크
아무나 와서 함께 연습 할 수 없는 곳입니다. 대전시티즌은. 소년의 아버지는 비록 아들이 축구를 관두게 해달라 부탁하셨었지만,
아들이 스타킹을 챙겨오지 않았다 했을 때는, 뛰어나가 스타킹을 사와 아들의 손에 쥐어주었고, 소년의 어머니가 아들이 싱가드를 챙기고
양말을 신는 것을 옆에서 챙겨줄 때 멀찍이 떨어져 바라만 보고 있었드래도, 소년이 연습을 마치고, 머리를 긁적이며, 함박웃음으로 들어올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 반겨주었었습니다. 그날의 연습을 위해, 아들을 위해 소년의 아버지가 쏟은 정성과 노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축구를 시작하려던 한 소년과 축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수많은 소년들.
동그란 공하나가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고 꿈꾸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싶습니다.
축구를 하고 싶은 그들의 열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지, 이게 다 지구가 동그란 탓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글: 퍼플크루 박영선 님
첫댓글 음...짠한 글이네요....
정말훈훈한글이네욤.
후.. 시스템의 기반이 잘 되어있어야 할텐데...그래야 저런 아이들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음...가슴이찡하네요...ㅠ
와아...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