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남겨질 일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녹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오래된 도시의 교각 밑을 걸으며, 버려진 채 주저앉은 폐차 옆을 지나며 저것들도 누군가의 후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호기심에 제비집을 허물고 아버지에게 쫓겨나 처마 밑에 쪼그려 앉아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감당할 수 없이 두렵고 외로웠으며, 바닥에 내팽개쳐진 빨간 제비새끼들의 절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그런 밤이었다. 그날 나는 신부(神父)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때 처음 '뼈아픈' 이라는 단어를 이해했고, 그날 밤의 악몽은 철든 시절까지 날 괴롭혔다. 절대로 묻혀지거나 잊혀지지 않는 일이 존재한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나는 또 살면서 앙금을 남겼다. 후회한다. 모두 덮어버리고 싶다. 내가 짓고 내가 허물었던 것들을.
무념무상으로 살지 못했던 날들에 대해 나는 후회한다.
* 시작詩作, 2009년 가을호, [오늘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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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허물었던, 아니 내가 녹슬게 했지만 결코 녹슬지 않고 매장된 숱한 과거의 길 위에서 후회했었다.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뼈아픈 성'을 쌓았던 것을 후회한다.
결코, 기록으로 남아서는 안되는 주홍글씨의 기록 앞에서, 숱한 스침의 인연들에 대해서...
아주 작은 검은 점들 앞에서 그저 젊었노라 후회하고야 만다.
모든 것이 내 탓임을...
(가끔 찾아드는 후회 앞에서, 초록여신)
첫댓글 허연은...점점 더 시를 잘 쓰는 것 같아요... 거미가 되어가는 듯...
내가 걸어온 길, 누군가를 아프게도 했고 누군가로 인해 내가 아프기도 했던... 설령 후회와 뼈저린 자책만 남는 것이라 해도 그 시간을 따스하게 보듬으며 다시 앞으로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생이라는 걸 요즘 배웁니다. 상처입은 꽃잎에 향기가 더 진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로 위안 삼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