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가을 / 김호삼
벽에 달라붙어 한쪽만 바라보는 사시의 나에게 붉은 입술을
찍어, 찍어 전송해오면 나는 입술을 벽에 걸어둔다
벽화 속 아무거나 한 다발 주워들면 그대로 사랑의 고백이다
-아저씨, 가을은 러브레터인가요?
창문 너머 마당까지 달려온 여자
치렁치렁 액세서리 발랑 벗어버리고 나에게 연애를 걸어온다
타 · 타 · 타 · 타 S라인 그녀의 몸에 나의 눈이 필름처럼 말린다
맡아 봐, 맡아 봐 재촉하는 그녀
-아저씨, 가을은 싱싱하나요?
밖에서 들어오는 그녀에게서 늘 술 냄새가 난다
왜 마셨느냐고 물으면 그녀의 입술보다 몸이 먼저 대답하고 가을은 붉은 생리혈인가
계절을 달려온 그녀에게서 피딱지 우수수 떨어진다
- 아저씨, 내가 느껴지나요?
그녀는 밤새 텔레비전에서, 꿈속에서 허망한 나의 입에 입술을 걸어둔다
나는 사각 벽화에서 사랑을 맺고 가을은 벽화 속에서 저물어간다
-아저씨, 행복하세요?
아침이 오면 그녀는 떠날 것이다
나의 가을은 온갖 수식어로 채워지고 술에 취해 열쇠 구멍을 찾지 못하고 밤새
춥다며, 춥다며 출입문을 흔드는 바람 같은 그녀 꿈만 꿀 것이다
-아저씨, 또 만날까요?
나의 가을은 벽화 속에서 푸르게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