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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알 마문이 판 도굴 갱으로 창건때는 석재로 가려져 있었다.
알 마문은 폭약을 이용해 진짜문 밑에 지금의 관광객 들이 지나드는 지금의문을 만들었다.
2.상부에는 합각머리 모양으로 돌이 배치되어 있고, 현재는 철제문으로 봉해져 있다.
이제 마문에게 남은 것은, 보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까지 친절하게 나있는 통로(Descendinf Passage)를 따라 내려가는 일 뿐이었다 .
그런데 그들은 예상밖에 올라가는 통로(Ascending Passage)입구 부분이 발견하게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올라가는 이 통로가 막혀있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를만들 때 통로를 따로 만들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통로를 다시 막아 놓았다.
아무튼 그 통로가 막혀 있었음으로,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최초라는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보물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난당하지 않고 그자리에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대회랑
또 그들에게는 이 통로가 지구상에 건설된 돌 건축물들중에 가장 크고 가장 무거운 건축물의 상부 3분의 2의 중량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면서도 길이 46m 경사각 26도의 굴절형 통로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약한 석회암 암반을 뚫어 대회랑으로 가는 통로를 만들었고 마침내 보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왕의 방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여왕의 방
없었다 아무것도. . . . 마문 역시 반드시 금은보화가 아니더라도, 옛 고대인들의 높은기술이나 지혜의 책을 기대하였지만 아무것도 찾을수가 없었다고한다.
여왕의 방은 남북길이가 5.68m에 동서 길이가 5.74미터. 천장은 우아한 맞배 구조이고 높이가 6.22m이며 정확하게 피라미드의 동서 축과 동일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왕의 방
이번엔 왕의 방이다. 그러나 왕의 방 역시 미라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영생이나 부할을 바라고 무덤을 만들었다면 적어도 미라정도는 있어야 정상이지 않는가?
그런데 부장품과 미라 모두 없어졌다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왜 피라미드 안에 부장품과 미라가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세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발견한 방은 외관뿐이고 왕의 묘를 설치한 방은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설. 혹은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도굴이나 이장이 이루어 졌다는 설, 마지막으로 대피라미드는 묘가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리라. 아니 알 수 없었으리라. 그 곳에 진정으로 숨겨져 있는 놀라운 보물들을...
방의 높이는 5.8m, 길이가 10.5m, 그리고 폭이 5.25m로서 2:1의 비율로 이루어진 직육면체 방이다. 바닥에는 열다섯 장의 두터운 화강암판이 깔려 있으며 벽은 100개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이는데, 돌하나의 무게가 70톤 혹은 그 이상으로 5단으로 쌓여져 있다고 한다. 천장은 각각 무게가 50톤 정도 나가는 아홉 장의 화강암판으로 구성되어있다고 한다.
이 넓은 방은 놀라운 수학적 계산이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높이5.8m는 바닥의 대각선 길이11.6m의 절반이라고 한다. 또한 정확히 2:1의 비율을 지닌 직사각형의 방으로1:1.618의 "황금분할"이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흔히 황금비는 기원전 4세기를 전후한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보다 훨씬 이전에 건축된 피라미드에서 나타난 것이다.
이 왕의 방은 대피라미드의단 정확히 50번째 단에 위치해 있으며 지상에서 45m 높이에 있다고 하는 점이다. 또한 이단을 수평으로 절단하면 대피라미드 전체 밑변 면적의 꼭 절반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발휘할 수 잇는 최대의 측량술과 수학 그리고 건축술을 왕의 방이라는 공간에 함축시켜 놓았던 것이다.
결국 마문 일행은 도굴을 목적으로 하였기에, 고대인이 남겼던 가장 위대한 유산이자 값진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보물은 거대한 암석들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가며 피라미드를 쌓고, 그 피라미드를 통해 고대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고대 이집트 인들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