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해 8월 제가 이글이글 야구장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오늘은 그 날의 감정과 똑같은 기분이 들기에, 기록만 수정해 다시 올립니다.
그러니까 이건
지금으로 부터 무려 9년 전
류현진과 양훈, 김혁민이 아직 이글스 유니폼을 입지 않은 시즌
구대성이 미국에서 뛰고 있었고
문동환이 두산에서 이적해 왔지만 아직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하던 시절 얘깁니다.
그해 초여름 어느 날.
정확히 말하면 6월 13일 저녁.
현대-두산에 이어 페넌트레이스 3위를 달리던 이글스는 LG트윈스를 맞아 기분 좋은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날 선발등판한 젊은 투수가 8이닝 동안 2점으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은 덕이었죠
이 친구는 신인이었는데요
선발승을 챙긴 이 영건은 시즌 6승으로 다승 순위 4위로 올라섭니다.
당시 이글스는 정민철이 부진에 빠져 2군에 내려가 있었고
팀 평균자책이 4.86으로 8개팀 중 7위였는데
이 젊은 투수의 분전 덕분에 중상위권 싸움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불과 보름 전(그러니까 2004년 5월 29일)에는 그 투수가 완투승을 거뒀어요.
그 완투승은 굉장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2004시즌 신인투수 첫 완투승이자, 당시 한화이글스 소속 투수의 첫 완투였으니까요.
그 시절, 이글스의 별명은 '괴수군단' 이었습니다.
신인급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의미로, 다른 구단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23살 김태균의 별명은 '괴수두목' / 24살 이범호의 별명은 '괴수 부두목'이었죠
2004년 5월은 최진행의 월간 8홈런으로 기억되는 시즌인데
사실 당시 이글스 신인 중에서 제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저 투수였습니다.
2004년 시즌 26경기 등판. 140이닝을 던지며 8승
비록 신인왕의 영광은 우승팀 현대의 오재영에게 빼앗겼고
2004년 신인 중 제일 잘 던진 사람은 권오준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아직 류현진의 존재를 모르던 대부분의 한화팬은
저 투수가 미래의 에이스감이라며 엄지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이 던진 탓일까요.
시즌 막판 오른쪽 팔꿈치에 이상이 발견됐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불안했지만, 작은 시련이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왠걸, 이듬해 2005년에 그는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1년 내내 재활에만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2006년에 컴백했지만,
부상 여파인지, 강력한 구위와 칼날같던 제구는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2년 동안 겨우 21이닝을 던졌고, 단 한번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팬들은 기다렸습니다.
첫 해 여름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에
훌훌 털고 돌아와 팀을 구해줄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여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구의 신은 그 희망을 앗아갔습니다.
그 선수에게 더 큰 시련이 닥친겁니다.
2008년 초, 그는 버거씨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폐쇄성 혈전 혈관염>
이름도 생소한 이 병은, 손끝에 피가 통하지 않아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가혹하게도, 병이 찾아온 곳은 오른손 검지였습니다.
손끝 감각이 무뎌지고 마비가 찾아와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투수는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치료를 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그를 안타까워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돌아올거라는 걸 믿지 못해서였습니다.
공을 채는 검지손가락 감각이 없는데 어떻게 섬세한 변화구를 던지겠냐고
손 끝에 피가 안 도는데 어떻게 강속구를 뿌리겠냐고 혀를 찼습니다.
그래서 다들,
그가 다시는 마운드에 서지 못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투수는 야구판을 떠나지 않겠다면서
자신이 졸업한 고등학교에 가서 후배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때부터 또 2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까 수술 후 재활 1년 + 부진했던 2년 + 희귀병 진단 후 유니폼을 벗고 또 2년
전부 5년이 지난 세월입니다.
이 투수가 전 소속팀을 찾아가 입단테스트를 받는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팬들은 그를 기억해냅니다.
"아, 2004년의 젊은 에이스?"
"아직 포기 안했나보네? 그래, 이왕 도전한다면 기회를 줘보자"
"에이스가 되진 못하지만, 후회없이 던져보기라도 해야지"
기대치를 높게 잡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구단은, 젊은 투수의 꿈을 존중해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모처럼 마운드에 오른 이 투수는
17.2이닝을 시험삼아 던져봅니다.
승도 없고, 패도 없고, 뭐 유별난 기록은 없는 '그저 그런' 성적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아프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습니다.
이듬해. 그러니까 2011년
기적이 일어납니다.
팀이 2:4로 지고 있는 6회에 마운드에 올라갔는데
1.1이닝 동안 3안타 1볼넷을 허용했지만 삼진 3개를 잡으며 비교적 잘 막았고
동료 야수들이 이 경기를 7:4로 뒤집어 줬습니다.
모처럼의 호투, 그리고 타자들의 분발로 이글스는 5연패를 끊고
이 투수는 2,459일만에 승리투수가 됩니다.
2459일, 햇수로 7년
얼마나 많은 밤을 그가 눈물과 오기로 보냈을 지 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이 선수가 아무리 못 던져도 응원해줄 용의가 있습니다.
아무리 젊은 투수지만
희귀병을 이기고 5년의 공백을 넘어 다시 마운드에 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잘 던지고' 심지어 '승리투수'가 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아닌 말로, 프로에 입단해 단 1승도 거둬보지 못하고
심지어 한번도 1군 마운드에 서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선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혹독한 시련을 딛고 다시 승리투수가 됐잖아요.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박수를 쳐줘도 아깝지 않지요.
그런데 말이죠.
이 투수가 말입니다.
오늘, 위기에 처한 바티스타를 대신해 마운드에 섰습니다.
몸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올라왔을텐데
3.1이닝 동안 삼진을 무려 4개나 잡으며 호투했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경기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마운드에 서 있었습니다.
이 투수는 올 시즌 1.35의 평균자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숫자로만 봐도, 이 선수가 얼마나 소금 같은 역할을 해주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의 투구를 보는 건 저런 숫자 놀음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던지고 싶다는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답니다.
꾸준히 치료하고 열심히 몸을 만들면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믿었답니다.
다시 마운드에 서서 힘있는 공을 뿌리겠다고 매일밤 다짐했답니다.
"야구를 그만둔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지루한 투병과 재활을 거치면서도 대전구장 마운드에 서는 순간만을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 선수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 씩씩하게 공을 뿌린다는 것은
승리나 패배 같은 단순명료한 수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너무나도 거룩하고 숭고한 일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괴롭고 어려웠을지
그 고통을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이겨왔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요.
오늘 중계화면에 찍힌 144Km라는 숫자가
당당하게 타자를 노려보는 씩씩한 그 눈빛이
기어이 내 마음을 울립니다.
2,459일만의 승리투수가 되고 나서, 이 선수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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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당신을 응원합니다.
내가 응원하는 팀 유니폼을 입고 뛰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이 뜨거운 그라운드의 Most Valuable Player입니다
허락하시면, 출처랑 원작자 밝히고 좀 퍼가겠습니다.
2004년 제가 첫직관때 청주야구장에서 선발이었던 송창식 선수 그경기는 부상을 당하고 1년이란 재활기간 그리고 부진 안타까운
병마와의 싸움 하지만 그걸 이긴 송창식 선수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