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팔메총리 같은, 친구같은 지도자가 되겠다”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부럽습니다. "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노무현의 롤모델은 스웨덴 사민당 팔메총리.
스웨덴총리 타게 에를란데르 (1946~1969 재임), 올로프 팔메(1969~1976,)와 노무현대통령(사진왼쪽부터).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노무현은 스웨덴을 왜 부러워했을까.
지상 최고의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아니다. 이것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복지국가를 만든 정치지도자들의 철학과 삶이 더 부러웠을 것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44년의 장기집권을 통해 지금의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페르 알빈 한손, 타게 에를란데르, 올로프 팔메 등 3명의 총리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어떻게 생활했을까.
“에를란데르는 옷차림이나 생활방식도 무척 검소했다.
그는 총리가 된 이후에도 스톡홀름 서쪽 외곽 지역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아파트
를 세내어 살았다. 당시에는 총리용 관저가 따로 없었다. 23년 총리를 마치고
나서는 임대주택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자 오랜 기간 나라를 위해 일한 원로 정치가를 위해 사민당 동료 정치인들이 갹출
해 사택을 지어 주었다. 에를란데르가 유독 검소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직전 총리였던 한손은 임기 중에도 늘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고,
심지어 전차에서 내리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팔메 역시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남들처럼 전철을 타고 다녔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놀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스톡홀름 시내를 걷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스웨덴 총리 팔메더라는 식의 무용담이 심심치 않게 돌아다녔다.”1)
에를란데르는 무려 23년간이나 최고권좌를 지켰다.
독재가 아니었다. 자유선거를 통한 집권 연장이었다.
에를란데르는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아내는 1985년 남편이 사망하자 ‘국가 재
산’이라며 남편의 볼펜들까지 반납했다.
어느 국민이 이런 지도자를 존경하지 않겠는가.
팔메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강남 좌파’ 출신이었다.
1969년 43세 때 최연소 총리가 된 팔메는 스웨덴 최고의 부촌에서 태어났다.
노동운동가 출신도 아니었다. 노조를 기반으로 한 사민당에서 비주류였던 셈이다.
에를란데르 총리의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하여 총리까지 올라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유독 팔메를 좋아했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의 친구’문재인의 말이다.
“노 대통령은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전 총리 얘기를 자주하며 부러워하곤 했다.
퇴근 후에 경호원 없이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기도 해서 화제가 되었던 분이다.
결국 부인과 함께 경호원 없이 극장에서 영화보고 나오다가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사
망하는 비극을 맞긴 했지만, 업무시간 외의 사생활을 보통사람처럼 자유롭게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런 나라를 꿈꿨다.”
2) 팔메는 1986년 2월28일 밤11시21분 지하철역 입구에서 괴한의 총탄에 쓰러졌다.
노무현은 2002년 4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소박한 꿈 하나를 공개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 롤모델이 바로 팔메였다.
"경호원 한두 명과 남대문시장에, 자갈치시장에, 동성로에, 금남로에, 은행동 거리
에 모습을 나타내는 대통령, 거기서 마주친 시민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대
통령, 그런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대통령 재임 때도 언론인터뷰나 강연, 혹은 토론 모임에서 팔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퇴임 후에도 팔메를 찾았다.
“스웨덴의 훌륭한 지도자가 1986년 아내와 함께 극장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저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계엄이 선포되고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지도자가 없고, 시민과 같은 높이에서 걸
어 다니는 지도자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스웨덴이란 나라가 부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도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3)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은 1968년 11월 스웨덴 지도자의 아름다운 모
습을 ‘산문시1’에 담았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의 칼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꿈같은 이야기를 시로 읊은 것이다. 노무현이 동경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산문시1’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소개한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
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중략)…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
가엔 황토 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석양 대통령’이 누구일까. 시기적으로 봤을 때 에를란데르 총리다.
그는 팔메의 정치적 사부다. 1968년 스웨덴 ‘석양 대통령’과 2008년 봉하마을
노무현의 이미지가 40년의 시차를 두고 겹친다.
사회민주주의의 나라, 스웨덴은 어떤 국가인가. 한국의 시각으로 보면 영락없는
‘빨갱이 나라’ ‘사회주의 나라’다. 내용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반동’도 없다. 재벌의 독과점이 인정되고 있다.
스웨덴 최대의 재벌인 발렌베리그룹이 그 나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의 삼성보
다 훨씬 크다. 지금은? 다른 나라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복지국가다.
'사람 사는 세상’의 실제 모델이다. ‘
비전2030’도 스웨덴 복지정책을 벤치마킹했다.
참여정부는 스웨덴과 운대가 안 맞았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스웨덴 총리를 초청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다.
요란 페르손 총리가 하필이면 탄핵 발의기간에 방한했다.
스웨덴의 복지국가를 국민들에게 알릴 여유가 없었다.
흥미 있는 것은 100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스웨덴 기자의 여행기다.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에 왔던 아손 그렙스트가 다시 태어나 한국에 오면 어떤 말을 할
까. 여행기의 일부를 소개한다.
“스웨덴에서 수도에 사는 시민들이 나라를 스톡홀름과 시골의 두 범주로 나누는 것처
럼, 서울의 토박이들도 코리아를 서울과 시골로 나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스웨덴의 시골사람들은 이에 항의하는 반면 코리아의 시골사람들은
이를 기꺼이 긍정한다는 점이다.
태양은 서울에만 뜨는 것이고 지방은 늘 그 그늘에 가려져 있다. 모든 코리아 사람들
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려면, 언젠가 서울은 꼭 한번 순례해야 할
하나의 성지다. 서울의 눈부신 영화보다 더 한 것은 아예 상상할 수도 없다.”4)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올로프 팔메 총리의 작은 묘(왼쪽 사진), 팔메 총리가 저격당한 장소를 알리는 표지판의 모습.[박원석 의원의 보좌관 박선민씨 제공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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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 울로프 팔메>, 하수정 저, 폴리테이아, 137쪽
2)<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저, 가교출판, 222쪽
3)<노무현 회고록>, 노무현 저, 학고재, 180쪽
4)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 아손 그렙스트 저, 김상열 역, 105~106쪽
*문재인님도 스웨덴을 부러워했고 스웨덴 대통령같은 대통령이 되길을 원했죠.
그래서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고 청와대에서 근무하지 않고 서울시청에서
근무하겠다고... 지하철과 버스로 출퇴근 하며 시민들을 만나겠다고 공약했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746638&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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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난 노무현대통령이 담배 안핀줄 알았어요 근에 그날 아침 경호원에게 담배를 원하더군요
윗 사진보니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