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4대강 사업 하나만 보드라도 왜 제가 이 명박정권을
그렇게 비판 할 수 밖에 없었던 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엄청 날 것이 너무나 명백한데도
나 몰라라 눈감고 모른 체하고 있는 소위 지성인들과 종교인들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공분을 외면하고서야 어떻게 지성인이라 할 수 있으며 종교인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
사회적 공분을 살 범죄행위를 한 대통령을 , 국가 권력을 사유화 하여
저지른 범죄행위를 보고도 눈감고 있는 것이 과연 종교인들이 할 짓입니까 ?
국정원장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수사를 맡은 경찰청장은 한 밤중에 수사 결과를
허위로 발표하는 역적질을 했습니다 ,
과거에는 " 왕이 곧 국가다 " 하여 임금에 반기를 들면 역적이라 했지만 지금은 주권재민의
민주국가입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 1조에 나와있듯이 우리 국민이 바로 임금이요 나라의
주인입니다 , 국민들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워 위임된 권력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기망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역적질을 한 것입니다.
얼마 전 박 근혜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방미 중에 대변인 노릇은 잘 하지 않고
엉뚱하게 대변을 싸서 세계인들의 냉소꺼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만 해도 수 십조가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들이 반대한 상식 밖의 인사를 한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습니다 .
이와 같이 고위공직자의 처신은 국민과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인사가 만사라는 말과 같이 대통령의 인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흔히들 스님이 권력자들의 비리와 부패 , 잘 못된 정책을 비판하면 정치적 발언을
한다고들 나무라지만 부처님께서도 정말로 잘못된 행위자들에게는 좋은 법문도 ,
좋은 말도 필요없이 응징해야 한다고 본생담에도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때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
그 당시 목련존자가 어느 토굴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인데 하루는
양치기가 양들을 몰고 와서 방목하다가 때가 되어 다시 양들을 몰아 돌아 가고 있을 때
그 중 한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한 것을 노려본 표범이 있었는데 ,
나중에야 눈치를 챈 그 양이 갑자기 뿔을 앞세우고 표범에게 달려들 듯이
사납게 달려왔습니다 ,이 것을 지켜본 그 표범은 뜻밖의 행동에 멈칫 멈칫
하는 사이에 방향을 잽싸게 틀어 양떼들의 무리로 다시 합류하는 것을 본
목련존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리니 위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합니다,
오늘 우리나라 에서 모든 현상들의 궁극적 책임은 바로 우리들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 해결책도 우리 들 자신의 각성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들의 탐욕스런 행위가 우리 스스로를 죽인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원전비리 ,4 대강 공사로 인하여 닥쳐올 큰 재앙도 우리들이 더 늦기 전에
자성하고 바로잡도록 노력할 때 해결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단 지 불 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큰 절에 가서 복을 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들이 스스로 각성하고 복을 짓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 진제 종정스님은 달마 스님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고 하셨지만
왜 오늘 날 조계종단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알 수 가 없습니다 ,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는 많은 분들이 수행을 하시고 있고 도통한 큰 스님이
많다고들 하지만 세상은 더욱 혼탁하고 중생들의 삶은
오히려 더욱 어려워 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
우리 중생들이 스스로 각성하여 사회변화에 적극 나설때만이 우리 나라를 살리고
지구 생명체를 살 릴 수 가 있습니다.
우리 단지불회 회원 여러 분들은 쉼 없는 수행을 통하여 각성하고
깨어있는 불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며칠 전에 노무현 재단이 개최하고 있는 봉하 토요강좌에 강사로 초청되어 갔다 왔습니다.
그 강연에서 만약 부천님이 죄를 많이 지은 자가 시주를 하고 빈다고해서
죄를 사해 주시거나 아니면 기독교 신자가 십일조 헌금을 바치고 빈다고
그가 지은 많은 죄를 사해 주신다면 이것은 뇌물수수죄가 아니겠는가 말했습니다 ,
대학 입시기도 역시 마찬가지로 볼 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제가 봉은사 주지로 있을때 입시기도를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완강히 반대하여 허용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른 관점에서 보면 순기능도 있었습니다.
대개 부모님들의 나이가 40 대 내지 50 대가 되면 자녀들이 대학 시험을 보게 되는 데
이 분들이 자녀들을 대학까지 진학 시켜 놓고 보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 정신적으로
허탈감에 빠지게 되어 방황하게 되는 것을 살펴보고는 입시기도를 통하여
불교에 귀의 하도록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와같이 스님이나 목사님들은 종교적 역기능을 순기능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주신 말씀중에서도 화택에서 철모르고 지내고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서는 방편을 써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주겠다고
흔들어 보이고 빨리 나오도록 하여야 구 할 수 있다고 설 하셨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버리는 종교입니다.
비운다는 것은 깨달음에 대한 욕심조차도 버려야 됩니다.
제가 얼마전에 불교매체와 인터뷰를 한적이 있습니다 ,
부도덕한 사람이 총무원장 선거에 나오면 내가 출마해서라도 막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본사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고 조직도 돈도 없습니다 .
법륜스님은 조계종단 승적도 없지만 더 열심히 수행하고 전법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 볼때 너무나 소중한 조계종단 승적을 포기 하드라도 조계종단에 대한 외과적 수술에
나서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같은 조계종단 비리와 부패 , 그리고 외부 평가로 볼때는
조계종단이 존재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회의가 듭니다 ,
며칠 전 종단에서는 스님들에 대한 청규 안이 발표되었습니다 .
이것은 형무소 수감자들의 수칙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이것이 바로 1700 여년의 한국불교 전통을 자랑하는 오 늘 날 조계종단의 참혹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 생명 같은 조계종단 중노릇을 포기 하드라도 수술에 나서겠다는 각오입니다.
오늘 날은 힐링의 시대 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힐링은 일시적 위안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임시 처방에 불과 하다는
생각입니다 ,
남에게 위로 받아 해결 할 생각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됩니다.
나의 문제는 내가 치유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암에 걸려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
이때 자기 손가락 하나에 가시가 박혀 아플때 그 자식이 느끼는 아픔은 어느 쪽이 더 아프게
느끼게 될 까요 , 자기 손가락 하나의 고통이 더 심할 것입니다.
결국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지 않고서는 누구라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자각 하고 깨달아 스스로 해결해야 참된 힐링이 됩니다.
남의 위로로는 힐링의 한계가 있습니다.
"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1975 년 스위스 에서 태어날때 탯줄이 목에 감기는 바람에 뇌성마비로 출생하여
평생을 장애로 살면서도 엄청난 고통을 극복하고 자기 계발에 힘써 철학적 사유로
그러한 고통을 넘어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 주는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채워 넣음이 아니라 비워 내는 삶을 통하여 치유가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 갈때
더욱 행복해 질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가 대상포진을 심하게 아파하면서 문득 이정도 아픔에 힘들어 하면서
막상 죽음이 닥쳐올 때는 혼비백산 하지않겠나 자문하면서 내가 이래서야
어떻게 도를 닦았다 말할 것이며 , 중 노릇 수 십 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내가 아직 세상을 논할 때가 아니구나 , 생각도 했지만 병이 거의 완쾌가 되고 보니
또 잊어버리고 세상 걱정에 원전안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가난과 육신, 정신적 고통까지도 수행하기에 따라서는 우리를 더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 중학교 입학 비리에 연루되어
온통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저렇게 아이를 온실 속에서 키운다면 세상 풍파를 혼자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
아이들은 어릴때 부터 강하게 키워야 됩니다
가난과 슬픔 , 고통을 모르고 자라서는 세상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닥쳐오는 세상풍파를 이겨나갈 수 있겠습니까 ?
아이들의 과보호는 결국 그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치유가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지혜입니다.
단지불회 법회에서 매번 이야기 했지만 집착을 끊고 ,탐욕을 비우고
아집을 내려놓아야 된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몸에서 ,마음에서 힘을 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육받고 경험하고 보고 들은 것을 모두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내려 놓아야 하는 가 ?
"이 뭐 꼬" 화두를 들고 그 생각이 끊이지 않고 몰입하여야 합니다.
간화선을 해야 하는 이유가 한 국 불교 1700년 역사에서 지금이 가장 필요한 시기가
되고 있습니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십시오 그러나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모를 뿐입니다 ,
그러므로 모르면서도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저도 한때 깨달았다고 다음과 같이 오도송까지 읊었습니다 .
풍마운비천무흔 (風磨雲飛天無痕)
창랑교석유여골 (蒼浪噛石猶如骨)
하문조사 서래의 (何問祖師西來意
작야 설산 애조명 (昨夜雪山哀鳥鳴)
바람이 불고 구름이 날아와도 허공에 흔적이 남지 않고
천년 물에 씻긴 바위의 모습이 오히려 더욱 뚜렷하구나
누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묻는 가
간밤 눈 덮인 산에 산새 울음소리가 그윽하구나
그 당시 봉암사에는 훗날 종정까지 지내신 서암 스님이 조실 스님으로 계셨습니다 ,
서암 스님이 그 날 저녁 법문을 하셨습니다.
" 생각이 일어나고 꺼지는 것이 바로 생사다 ,생각이 일어나고 꺼지는 것이
끊어지면 그것이 바로 성품을 보는 것이다 "
화두가 순일하고 의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간단없이 애를 써 나가다 보면
궁극에 이른다는 내용의 법문 이었습니다.
그때 조실 스님은 봉암사에 108 평짜리 법당을 새로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에 법문이 끝나자마자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 스님 ,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지금 법당을 새로 짓고 있는데 108 평짜리 법당에는
대체 몆 근짜리 부처가 들어 갑니까 ?"
" 억 "
조실 스님이 큰 소리로 할을 했습니다 , 멋진 대답이었지만 거기에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 스님 , 어떻게 그런 대답을 하십니까 , 첫 철을 지낸 사미도 그런 대답은 안 합니다"
" 그러면 명진 수좌는 뭐라고 이르겠는가 "
제가 다시 " 억 " 하고 똑 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그만 하고 물러났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창피합니다.
그러나 다시 물었습니다,
" 한번 더 여쭙겠습니다 , 옥석대 마애불은 올 겨울 추위에 깊은 중병에 걸렸습니다.
무슨 약을 써야 그 병이 낫겠습니까 ?"
" 나는 무슨 약을 써야 좋을지 모르겠네 "
" 그럼 그 약 처방을 제가 내리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실 스님에게 다시 한 말씀 드렸습니다,
법거량을 하드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비심이 있어야 했는데
생각할 수록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가 1989 년 11 월 14일 이었습니다.
이미 깨달았으니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 생각하고 걸망을 쌌습니다 .
함께 공부하던 수경 스님이 봉암사 홍문정까지 같이 내려오면서 물었습니다.
" 깨달은 지금 기분이 어때 "
물이 차고 더운 것은 마셔 봐야 알 수 있고 언어도단이라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겠어요,
달은 그 냥 환하게 만상을 비추는데 환하고 어둡고는 그 사물의 경계 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점검해 보니 제 공부의 경계가 바뀌기는 했으나 궁극에
닿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습니다,
제가 봉은사 주지로 있으면서 하루 1000 배씩 절하며 천일기도를 했지만
가장 공부를 많이 하게된 것이 일요법회 때문 이었고 지금도 신도님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타일시 성불도란 말이 있듯이 법문을 준비하면서 저역시 많은 책을 읽었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어 오늘의 저를 있게 해 준 것입니다,
이게다 단지불회 회원 여러분들의 공덕이고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향한 물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마음 밖에서 찾지 말고 나를 향해 묻고 또 물어 내면에 있는
본래의 진여를 찾아야 합니다.
10 분간 물으면 10 분동안 부처가 되고 1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물으면 1시간 동안 부처가 됩니다.
"이 뭐 꼬 " 하는 물음에 내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불자는 간절한 물음 속에서 자신이 이때까지 알고 있던 지식도
고정관념도 ,경험까지도 내려놓고 그러한 틀에서 깨어나야 참다운 불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단지불회 회원님들은 불우한 이웃들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따뜻한 관심을
베푸는 도반으로서 함께 가고자 합니다 ,
무더운 날씨에도 더욱 건강하시길 축원하면서 이만 마칩니다.
첫댓글 잘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되새기고 갑니다
눈으로 익한 절 말을 잊어 버리지 못하면 명진 스니님처럼 됩니다.
저 객기를 그치려면 그 세월이 얼마나 길 런질 모릅니다.
스스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서암 스님의 생각이 끊어진 것을 귀히 여기나 그것만 가지고도 안됩니다.
그 뒤에 눈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것부터 배워야 힙니다.
그러면 법은 저절로 눈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법리에 속은 것은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