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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 여성시대 Au revoir
참고 : 조선왕조실록
(브금은 쓰잘데기 없이 웅장함ㅋㅋㅋㅋㅋ)
이미 조선 왕비의 대례복은 예전에 한번 쓴 적이 있었는데
조금 더 보완해서 쓸까함.
우선 대례복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대레복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가의 중대 행사가 있을때
국왕, 왕비, 종친들, 문무관원들이 입던 옷이야.
조선시대의 왕비의 대례복은 크게 세가지로 변화를 거쳐. 조선초에는 대삼, 조선중반에는 치적의, 조선후반 대한제국에는 심청색 적의로 나눠짐. 여기서 대삼은 사극에 잘 나오지 않아서 모르는 여시들이 많을 것이고 치적의, 이것이 흔히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며 심청색 적의는 대한제국때 황후가 입는 적의야. 이 적의의 등장은 고려 31대 공민왕 (신돈의 그 왕 맞지효) 19년 (1370), 명 태조 (명태조하니까 요새 칭티비에서 주원장하더라ㅋ)의 황후인 효자황후가 고려 왕비에게 칠휘이봉관(七翬二鳳冠)과 적의를 보내온게 최초의 기록임. (참고로 이때 받은 적의는 송나라 명부복으로 여인의 예복에 해당함) 자, 대충 기본적인 것은 알았으니 이제 사진을 보면서 더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합세. 1. 대삼(大衫)과 칠적관(七翟冠)
대삼은 초기에서 부터 인조때까지 입었던 왕비의 대례복으로
이 대삼은 명나라에서 사여관복으로 받은 의상이야.
조선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태종 3년 (1403)
태종실록에 그 내용이 나타나는데,
그 기록은 이렇게
아...!하...! 그렇구나
............는 개뿔이
하나도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_-;
(읽다가 눈 돌아가는 줄 알았네-_-; 쓰잘데기 없이 올리네...)
이 대삼의 특징은 치적의와는 달리 아무 문양이 없고 색은 대홍색임.
금색 실로 적계문(翟鷄文)을 수놓은 짙은 청색의 하피를
목에 둘러 앞가슴에 걸었음.
(적계문-꿩과 닭 문양으로 왕비는 꿩, 세자빈은 닭)
대왕세종에서 복식 재현한 모습.
(그나저나 캡처 해놓은게 색감이 왜저래?)
사극에서는 잘 안나오는데 대왕세종 말고도
왕과 비에서 단종비 정순왕후(김민정 役)가 입은 것도 있음.
그리고 머리에는 칠적관(七翟冠)을 쓰는데
이 칠적관은 태종 3년 대삼과 함께 들어 온것이 조선 최초의 기록이야.
(명황후는 구적관을 쓰고 칠적관은 명의 군왕의 왕비들이 쓰는 대례모)
주취칠적관(珠翠七翟冠)
비취색 진주, 일곱마리의 꿩 장식으로 된 적관.
대왕세종에서 재현한 칠적관.
제작비 알면 입이 떡하고 벌어짐ㅋ
가장 최근에는 이 칠적관과 대삼이 종편드라마 인수대비에서
재활용되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칠적관에 관해서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광해군 실록을 보면
요약 : "칠적관 내놓으라고!"
"꺼져!"
"여기 돈있으니까 칠적관 주셈. (굽신굽신)"
"옛다~! 가져가라!"
이게바로 칠적관의 위ㅋ엄ㅋ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대삼과 칠적관은 현존하는 유물이 하나도 없음.
현재 재현되고 있는 것은 대명회전에 근거하여 재현하고 있음.
(대명회전에 대해서는 링크 걸어 놨으니 궁금하면 클릭하면 됨)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머리에 쓰는게 아니라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 같다-_-;; (저러고 목 안뿌러지는게 신기)
2. 치적의(雉翟衣)와 대수(大首)머리
자, 이제 우리 눈에 가장 잘익은 왕비의 대례복=치적의 공식이 성립되는,
사극에서 주구장창 이것만 나오는 치적의가 등장하셨다.
이때까지 명나라에서 왕비의 대례복을 사여받아서 쓰고 있었는데
명나라도 망했지, 청나라는 따로 자기들만의 관복제도를 만들었지
조선은 크게 양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쳐서
명 복식제도에서 벗어나 진짜 조선 복식 형성기로 접어 들어.
그리하여 국왕의 대례복도 조금씩 변하게 되는데
구장복은 명나라의 것과 얼추 비슷하게 만들고
왕비는 대명회전에 의거하여 새로 조선식 적의를 만들어 냈어.
그게 바로 치적의.
양란이 끝난 후 급하게 만들어 낸게 아니라 차츰차츰 변화해 가면서
영조때 제정하였는데 이는 국조속오례의보에 있음.
가운데는 왕의 조복인 강사포.
고화질 사진은 없다. 알아서 찾길...
하도 사극에서 많이 나와서 그냥 보기만해도 뭔지는 알겠지?
색은 대삼과 같이 대홍색이고 원적문(꿩 두쌍)을 51개를 수놓고
적운문(꿩과 구름) 무늬가 들어간 하피를 어깨에 두르고 오조룡보(왕비의 경우)를 달았음.
+) 원적문이라함은 치적의 소매에 보면 동그랗게 달려있는거 보이지?
이게 치적의 밑단까지 51개 달려 있어.
이게 바로 원적문이야.
중단, 폐슬, 말(버선), 석(신발)은 모두 홍색으로 하고
전형적인 중국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남.
사진에서 왼쪽은 대비의 적의인데 왕비의 것과 같으나
색만 짙은 자적색으로 약간의 차이점이 있음.
마찬가지로 왕세자빈의 적의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원적문은 36개이며, 아청색 적의임.
(아정색은 청색이면서 검은색 띄는, 짙은 남색이라 생각하면 쉬워.
나도 직접 본적이 없어서 무슨 색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 구글 뒤져서 찾아낸 왕세자비의 아청색 적의
출 처 : http://shining_days.blog.me/120102216166
여기 들어가보면 더 많은 사진이 있으니까
한번 들어가봐. 도움이 될꺼야.
이때 머리에 쓰는 것이 대수머리인데,
칠적관이 명에서 받아서 쓰던거라 조선에서는 기술자도 없어서
복원할 방법이 없고 또한 재료도 중국에서 구해야 되는 악조건인지라
새로 제도화 하여서 만들어 낸 것이 이 대수머리임.
그 기록은
이게 무슨 뜻이냐하면 칠적관은 만들어 낼 장인들이 본국에는 없고
물품 또한 중국에서 사와야하기 때문에 본국에서 제조하기 힘든데
어떻하겠냐고 물어보는 신하의 말에
인조는 계해년 1623부터 대수머리를 사용하겠노라 명하는 것임.
밑에는 대수머리의 구성인데
슈ㅣ밤... 내가 이걸 알아내고 적는다고 진땀뺏다.
(내 얼굴 아님ㅋ)
㉠ 백옥립 봉잠 (봉황모양의 옥비녀)
㉡ 금봉잠 (봉황모양의 금비녀)
㉢ 소립봉잠 (작은 봉황모양의 비녀)
㉣ 가란잠 (난초모양의 비녀)
㉤ 용잠 (용모양의 비녀)
㉥ 떨잠
㉦ 전입계 앞꽂이
㉧ 마리삭 금댕기 (사진속에는 없음)
㉨ 진주계 (사진속에는 잘 안보이는구만)
저 사진에서는 마리삭 금댕기는 확실하게 없고
소립봉잠은 안보이고
진주계도 가려져서 잘안보여서 다른거 들고 와봄.
마리삭 금댕기 화살표가 떨잠으로 가있는데
저게 아니고 ㅋㅋㅋ 떨잠이 달린 머리띠야.
진주계는 가체 전면 이마에 꽂아 놓은 비녀고
소립봉잠은 안보이긴 하다만 용비녀 뒤에 보이는 비녀같음.
(비녀 끝부분만보이네)
3. 심청색 적의(翟衣)
조선말,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함으로써
왕은 황제로 왕비는 황후로 격상되어
그에 맞게 의복제도 개혁함.
이때 명황후가 쓰던 적의제도를 그대로 따와서
우리나라 황후에서 적용시켰는데 이게 심청색 적의임.
황후의 적의를 유일하게 입어 본 순정효황후의 적의를 재현한 모습.
(명성황후는 대한제국되기 전에 이미 죽었고,
대한제국이 되고 난 후에 왕후에서 황후로 격상되었던 것임.
참고로 순종의 첫번째 비인 순명효황후도 있는데 순종이 황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음.)
꿩 148~154쌍을 12등분하여 수놓았으며
양어깨, 가슴, 등에 오조룡보를 달았음.
꿩문양과 이씨왕조의 상징인 이화문양(윤화).
깃과 도련, 수구에 홍색선을 두르고 운룡문(雲龍紋)을 수놓았음.
+) 적의의 구성
(참으로 정신없이 해놨다-_-;;)
12등 적의로 황후의 적의인데
(황태자비의 적의는 따로 밑에 적어놨음)
적의 : 심청색 바탕의 저사(紵紗) ·사(紗) 및 나(羅)를 수용(隨用)하였는데,
여기에 12등분하여 적문(翟文) 148쌍을, 사이사이에는 윤화(輪花:梨花)를 넣었으며
홍색 깃과 도련 및 수구의 홍색 선에는 운룡문(雲龍文)을 직금하였다.
중단 : (적의 속에 착용하는 옷)옥색의 사(紗)나 선라(線羅)로 하였으며,
홍색 깃에는 불문(黻文) 13개를 직성하였고, 도련과 수구에는 홍색 선을 둘렀다.
폐슬 : 무릎을 가리기 위한 천으로 적의와 같은 색.
적문을 황후는 3등분, 황태자비는 2등분으로 나뉘어 소륜화(小倫花) 배치하였다.
홍색으로 연(緣)을 하였는데 황후는 운룡문(雲龍文)을,
황태자비는 운봉문(雲鳳文)을 수놓았음.
12등 적의 폐슬은 이렇게 생겼는데
나중에 밑에 나오는 9등 적의 폐슬과 비교해봐.
하피 : 적의를 입을 때 목에 걸어 늘이는 장식물로
검은색 공단에 분홍색 안(緣)을 넣었다.
금실로 운하(雲霞) 28개, 적문(翟紋) 26개를 수놓았고, 둘레에 두 줄의 금선을 둘렀다.
대한제국 황후,황태자비,의친왕비의 적의는 봉문(鳳紋)을 수놓았다.
대대 : 겉은 대홍단이며, 안은 흰 색 비단이고,
둘레에 옥색 비단으로 가선(加線)을 둘렀다.
끈은 남색 실로 꼬아 만들었으며 끝 부분에 같은 색의 술을 달았고
대한제국 황후의 것은 안팎이 청.홍으로 되어 있다.
후수 : 훈색을 바탕으로 하여 황 ·적 ·백 ·표 ·녹의 5채(采)로 직성한 것이었고,
여기에 옥환(玉環) 2개를 간시(間施)하였으며, 또한 대수와 같은 색의 소수 3개가 딸려 있었다.
혁대 : 청색 기정(綺鞓)으로 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옥장식 10개와 금장식 4개가 있었고, 운룡문을 그려 묘금(描金)하였다.
규 : 길이가 주척(周尺)으로 7촌이었는데, 위는 뾰족하고 곡문(穀文)을 새겨 넣었으며,
아래는 황색 기(綺)로 맺었고 따로 황대(黃袋)로 쌌다.
말(버선)과 석(신) : 말은 청색 나(羅)로 지었으며, 석은 청색 기(綺)로 만들었음.
(치적의는 적색)
밑에는 황태자비 (영친왕비)의 9등 적의.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인 영친왕비의 적의와 하피, 폐슬.
황태자비 적의는 140~160쌍의 꿩이 9등분하여 나눠어져 있고
(그래서 황후는 12등 적의, 황태자비는 9등 적의라고 함)
깃과 도련, 수구에 홍색 선을 두르고 운봉문(雲鳳紋)을 수놓았음.
(슈ㅣ밤... 꿩봉황꿩봉황꿩봉황꿩봉황꿔ㅓ꿔꿔우어꿔웍 헷갈려 죽겠다-_-;;)
그리고 12등 9등 적의 할때 그 뜻이 무슨 뜻이냐면,
표시 해놓은거 세뤄봐.
꿩이랑 이화문양이 9등분으로 나눠져 있지?
게다가 깃과 도련에 봉황이 수놓아져 있으니
이건 황태자비 9등 적의야.
(이렇게 해서 황후의 적의과 황태자비의 적의를 구분함)
결과적으로 총 종합을 해보면
조선 초 대삼과 칠적관->조선 중 치적의와 대수머리
->조선 말(대한제국) 심청색 적의와 대수머리
이렇게되고
왕비는 치적의 - 원적문 51개
대비는 자적색 적의 - 원적문 51개
왕세자비는 아청색 적의 - 원적문 36개
대한제국때는
황후는 12등 적의 - 깃, 도련, 수구에 용문양
황태자비는 9등 적의 - 깃, 도련, 수구에 봉황문양
이렇게만 알아두면 구분을 쉽게 할 수가 있음.
(어렵지 않지? ㅋㅋㅋㅋㅋ)
이제 빠질 수 없는 잘못된 예.
일단, 내가 기억나는 것만 올려 보겠음.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만 올려 보겠음.
더 많은 제보 바람. 언제든 수정하겠음.
왕과 나 정현왕후 윤씨
(...말고도 구혜선 폐비 윤씨도 입었음)
성종의 비이고 중종의 생모인데
대한제국때 입는 적의를 입고 나왔음.
(그것도 황태자비가 입는ㅋㅋㅋㅋ)
여인천하 문정왕후도 잘못된거임.
그러니까 시대상으로 보면
위 둘은 대삼과 칠적관은 입어야 마땅한데..
(치적의는 그렇다고 쳐도 저 심청색 적의는 뭐냐-_-)
그리고 이건 드라마에서 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뭐라 할 말이 없는데...
궁에서 채경이가 심청색 적의를 입고 나오는데
(내가 봤을때는 드라마에서 이 적의를 본게 왕과 나 이후로 두번째 인것 같다)
대한제국이라서 심청색 적의가 맞아!
맞는데! 뭐가 틀렸냐면
깃과 도련(안보임)에 수놓아져 있는게 용이야.
얘 황후가 아니라 황태자비라고 봉황이어야 정상이라고.
내가 꿩의 수를 일일히 세룰 수는 없으니
일단은 깃과 도련에 새겨진 무늬로 봐서는 저건 황후의 적의다-_-;;
드라마 고증오류 참조 : 해를 품은 달에서 대례복 고증 오류
참조 : 조선시대 왕비의 대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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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왕.....
여기...콧구멍방 아니지?
??? 왜?? 예전에 콧구멍이냐 아니냐 말이 많아서 부털가서 물어 본적 있었는데 쩌리방이라고 하던데?? ㅋㅋ
으잉!?!?! 여기 쩌리 맞군 이게 쩌리용이라고? 그렇구나... 정보성이 강해서...
와 신기하다 이런 거 좋아
우와 이언니 멋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언니 글 너무 좋아!!다 흥미쩔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니 글 너무 잘 보고 있어 ㅋㅋ 또 올려죠잉~!
화려하고 예쁘네 ㅋㅋㅋㅋㅋㅋ 나도 왕비되서 저런거 입어보고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