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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선수 소개란에 올리려고 썼던건데 활동을 하지 않아서 정회원으로 강등되서 포토란에 올리게됬네요ㅠㅠ
네드베드 광팬으로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자세하게 쓰려고 했는데 그래도 뭔가 아쉬운거같네요ㅋ
그래도 열심히 썼으니까 보시고 네드베드에 대해서 모르셨던 분들이나 관심 없던 분들은 다시금 관심을 가져주시길ㅋ
*제가 아는대로 썼는데 '이건 잘못됐다'라고 생각하시는거 지적해주시고 댓글 많이 남겨주세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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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스포츠에는 처음 봤을 때 잘하는 팀이나 선수를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랫동안 축구를 사랑해온 이들은 아직까지도 로베르토 바죠와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고, 현재 호나우두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엄청났던 전성기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뉴 밀레니엄을 외치던 즈음 축구를 보기 시작한 이들은 각자 프란체스코 토티나 루이스 피구를 영웅으로 삼았으며 우리나라 선수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질 무렵 축구를 접했다면 외계에서나 왔을 법한 호나우지뉴의 마법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2002년 지네딘 지단의 환상적 발리슛으로 축구를 보기 시작한 이들은 2006년, 영웅의 마지막 위대한 모습에 다시한번 감동을 느꼈을 것이고, 2005년, 호기심에 눈을 비비며 챔스 결승을 시청한 이들은 틀림없이 스티븐 제라드의 팬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밀란팬들에게는 밉상이었다.) 또한 해외 축구 중계가 절정으로 치달은 최근에 축구를 보기 시작한 이들의 절반 이상은 호날두, 메시, 카카의 팬일 것이다.
90년대를 주름 잡았던 이들.
(로베르트 바죠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 호나우두)
그렇다면 감동의 물결이었던 2002년 월드컵 이후, 그 열풍을 타고 우리나라 축구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선수는 누구였을까?
당시에는 약간 생소했지만 딱 한번만 봐도 잊을 수 없는 선수가 있었으니, 황금빛 머리를 휘날리며 공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든 볼 수 있었던 선수. 체코의 심장이자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그 주인공은 바로 파벨 네드베드이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신개념 플레이메이커
2000년대 후반기인 지금, 흔히들 플레이메이커의 시대는 지났다라고 평가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야말로 플레이메이커의 전성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네딘 지단, 세바스티안 베론, 루이 코스타 같은 왕년의 스타들부터 아직까지도 건재한 프란체스코 토티, 폴 스콜스, 루이스 피구, 미하엘 발락, 로만 리켈메 그리고 서서히 등장해 현재는 최고의 위치에 서있는 카카, 호나우지뉴, 데코, 사비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플레이메이커들이 그라운드를 수 놓았다. 이 플레이메이커들의 공통된 주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센스와 창조성이다. 볼 소유권을 유지시키는 안정적 키핑과 팀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능력은 기본이며, 순간순간 번뜩이는 센스로 골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능력은 우리팀에는 보물이요, 상대팀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전체적인 팀컬러의 중심이 되고, 경기가 안풀릴 때 풀리게하며, 골이 필요할 때 골을 만들어내는 그들이야 말로 말 그대로 플레이메이커의 교과서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수들이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 그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팀의 플레이를 만들었던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네드베드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들.
(지네딘 지단 - 프란체스코 토티 - 카카)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에겐 지단의 우아하고 착착 달라붙는 볼키핑은 없다. 베론이나 루이코스타의 대지를 가르는 킬패스도 없다. 토티의 원터치 패스도 없고 스콜스와 사비의 거의 100%에 가까운 패스 성공률도 없으며, 루이스 피구의 간결한 드리블링에 이은 돌파도 없다. 호나우지뉴의 천재성은 더더욱 찾기 힘들며 그렇다고 발락의 신체조건을 갖춘것도 아니다.
그의 주무기는 다름아닌 건강한 두발에서 비롯한 엄청난 활동량과 폭발적인 중거리슛이다. 전성기 당시 '인플레이 상황에서 그가 걷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판보다도 카메라에 더 많이 비친다' 등의 말이 수식하듯, 표현하기 힘들정도의 엄청난 활동량은 다른 부족한 부분을 메꾸며 그에게 플레이메이커의 롤을 하사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여타 다른 플레이메이커들처럼 공을 왔다갔다하며 플레이메이킹하기보다는 공 대신 자기 자신이 더 많이 움직이며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방식이다. 공미 혹은 중앙지향적인 윙어의 자리에서 활동량과 넓은 활동폭을 기반으로 플레이메이킹을 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세계적 레벨의 선수들 중 수미나 윙백의 포지션에서는 활동량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을 자주 찾아볼 수 있지만 윙이나 공미 중에는 그러한 유형의 선수들이 희박한 것이 그 이유이다.
활동량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잠브로타 曰
"나는 내가 많이 뛰는 선수이고 또 남들이 그렇게 인정해주는걸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파벨에 비교하는건 실례다. 리노(가투소 애칭)나 다비즈, 내가 활동량이 많은 선수라고 평가받긴 하지만 파벨은 역대 최고이다. 아마 이제까지의 그 어떤 선수들을 통틀어서도 그만큼 많이 뛰고 지구력이 좋은 선수는 없을것이다"
그는 중거리슛을 쏠 때나 트래핑을 할 때 혀를 내미는 습관이 있다.
요즘들어 유벤투스의 팬들에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네드베드의 호쾌한 중거리슛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것이다. 축구선수들은 노쇠하면서 체력이 급감하고 발목의 힘이 약해진다고 한다. 72년생인 네드베드지만 아직도 팀내 활동량 1,2위를 다툴만큼 체력은 건재해보인다. -오히려 챔스가 없었던 지난 시즌과 비교하며 "팀의 경기수가 일주일에 두경기 꼴로 늘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나의 생활 리듬에 더 맞는다" 라고 건재함의 이유를 밝힐만큼 체력에 대한 걱정은 없다.- 하지만 그의 전매특허였던 강력하고 정확한 중거리슛에 대한 기대는 이제는 그리 크지 않다. 아직까지도 슛팅대비 유효슛팅 개수는 여타 펄펄한 젊은 선수들 못지 않지만 몇년전까지만해도 끝까지 힘이 유지되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공 끝이 땅쪽으로 휘는 장면들만을 보여주고 있다. 전성기시절, 현재의 제라드, 스콜스 등과는 다른 개념의 최고의 중거리슛터로서 오른발, 왼발을 가리지 않고 수비가 붙든 말든 어느 위치에서나 캐논슛을 뿜어대던 그였기에 팬들에게는 세월만이 야속할 뿐이다.
"나는 어느발에 우월이 없다고 느꼈을 때,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그는 유럽의 대표적인 양발잡이지만 단순히 '양발잡이'로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느껴진다.
* 그가 활동량을 기반으로 하는 플레이메이커이지만 다른 능력도 출중하다. 그 몇가지를 간략하게 언급해본다.
볼키핑 - 투박하고 유연하지는 못하지만 볼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 잘 뺏기지 않는다. "넘어질듯 넘어질듯하면서 넘어지지 않고, 뺏길듯 뺏길듯하면서 뺏기지 않는다" 라는 말이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듯 하다.
테크닉 - 그가 헛다리를 집는다든지하는 화려한 테크닉을 본적은 없다. 가끔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선보이지만 긱스처럼 콤보로 시전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지성턴'으로 이름지어진 그 턴 이후 갑작스런 중거리슛은 전성기시절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였다.
드리블&돌파 - '엔진형 미드필더'의 대명사답게 치고나갈때는 속이 시원하게 쭉쭉 잘 치고 나간다. 개인기로 제치기보다는 스피드와 몸싸움 등으로 상대를 극복한다.
패싱 - 베론이나 루이코스타 혹은 '그 날의' 구티까지, 그야말로 죽이는 패스(킬패스)는 아주 가끔 볼 수 있다. 하지만 뛰어들어가는 선수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지 않게끔 찔러주는 스루패스는 굉장히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롱패스와 크로스도 매우 정확하며 아웃사이드 킥도 굉장히 잘 구사했었다.
신체조건 - 176cm , 70kg. 네드베드의 몸을 보면 왜소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이든다. 다만 금빛의 꼬불꼬불한 단발머리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며 팬들은 쉴새없이 휘날리는 그의 머리에 열관한다.
프리킥 - 체코 국대에서 거의 전담키커였고 한창때에는 유벤투스에서 스페셜리스트 델피에로와 나눠찼을 정도이니 매우 수준급의 프리키커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멀리서부터 뛰어와 시원한 캐논슛을 구사하며 감아차기에도 능하다.
네드베드와 한국
전혀 무관할 것 같은 그와 우리나라는 두 번정도의 인연이 있는 사이이다. 그 첫 인연은 98년 월드컵을 대비한 평가전. 나도 그 때는 축구를 안 보던 때라 그 경기에 대한 정보는 잘 모르지만 당시 네드베드는 붙박이 주전이였으므로 한국에 왔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당시 체코는 1~1.5군의 선수들을 내보냈었다니 네드베드의 출전여부는 확실치 않다. -경기는 2:2로 비겼다.-
두 번째 인연은 그가 한창 주가를 올릴 시절, 월드컵을 개최하게 될 우리나라에 히딩크사단이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다. 동유럽의 강호이긴 했으나 당시엔 약간 생소할 수도 있었던 체코라는 국가에게 5:0으로 대패했던 일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다. 이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지만 히딩크 감독의 별명이 '오대영' 감독이였다는 것은 확실히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드베드가 없었다면 히딩크감독의 별명은 꼭 오대영은 아니였을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시다면 당시 체코가 터뜨렸던 다섯골 중 첫 번째 골의 주인공이 누군지 찾아보면 된다. -내가 생각해도 쫌 억지긴 하지만 - 아무튼 이렇게 희미한 정도의 그와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있긴 있었다. 만약 2002년 월드컵에 체코가 진출했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플레이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온갖 비난에 시달리던 히딩크 감독. 이 오대영 감독은 훗날 국민적 영웅이된다.
네드베드는 공공의 적
요즘들어 많은 축구팬분들이 유베와 체코의 레전드로서 네드베드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이제 전세계 미드필더 중에서도 가장 나이 많은 축에 속한 그를 레전드로서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세리에를 오랫동안 좋아해온 -유벤투스와 라치오 팬들을 제외한- 팬 중에는 그런 분위기가 반갑지 않은 팬들도 가끔 있을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네드베드는 모두가 좋아하는 델피에로나 말디니 정도는 아니다. 분명 그를 싫어하는 팬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네드베드에게 좋지만은 않으 시선을 보내는 것일까?
네드베드는 강팀에 강한 선수 가운데 한명이다. 라치오시절 지역라이벌인 로마팬들은 그를 꽤나 싫어했고, 어떤 시즌에는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경기에서 인테르에게 두골을 넣으며 스쿠데토를 품안에 가져오기 직전이던 그들의 꿈을 짓밟아버리기도 했다. 위너스컵 결승에서 결승골로 라치오에게 위너스컵 영구보존의 영광을 누리게 하기도 한 그는 소속클럽인 라치오와 유벤투스 그리고 국가대표로 뛰면서 강팀과의 대결에서도 언제나 120%의 기량을 나타내던 선수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타팀팬들이 그를 얄미워할 수 있겠다라고 유추해 볼 수도 있겠지만 델피에로 등을 볼 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오랫동안 같은 리그에서 뛰어온 마테라치 曰
"포워드를 수비하는 건 오히려 쉽다.
하지만 파벨은 언제 어디에 있을 지 모르는 선수이며 언제 어디에서라도 골을 만들어 내는 선수이다.
그를 수비하는 것은 오히려 포워드를 수비하는것보다도 힘들다."
그들이 네드베드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거칠고 영악한 플레이에 있다. 네드베드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선수라 자신의 거친플레이로 인해 카드를 많이 수집하는 선수 중 하나이다. 한 시즌에 한번 정도는 그가 퇴장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역시 한번꼴로는 경고누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 챔스에서의 네드베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같은 존재였고, 그의 퇴장이나 경고누적은 팀에게 항상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성격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욱하는 성격이어서 심판 보는 앞에서 상대선수의 머리채를 낚아채 넘어뜨린다거나, 경기장을 둘러싼 광고판을 신경질적으로 찬다거나, 볼경합 중 상대편의 발을 고의적으로 밟는다거나 하는 장면도 간간히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매우 영리하며 영악하다. 파울이 아님직한 상황에서 파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렇다고 그가 다이버라는건 아니다. 예를 들어 태클이 들어온 상황에서 피하고 충분히 더 치고 들어갈 수도 있으나 일부러 자연스럽게 발에 걸려 넘어진다던지, 유리한 위치이거나 카드를 받은 수비수가 마킹할 때에는 역시 충분히 공격진행이 가능한 상황임에도 일부러 파울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를 괴롭힌다. 공을 뺏길만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그의 임기응변은 팀의 공격권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며, 파울로 상대 공격흐름을 끊는 능력역시 탁월하다. 이러한 플레이 -우리팀 입장에서는 영리한 플레이지만 상대팀 입장에서는 얄미운 플레이- 는 상대팀을 응원하는 팬들을 짜증나게 하기 충분하다.
항상 수비수들에 둘러싸이던 네드베드. 위기의 순간, 그는 영리하게 반칙을 얻어낸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는 엄살의 제왕(?)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네드베드이지만 솔직히 내가 본 엄살이 가장 심한 선수 역시 네드베드이다. 마치 교통사고가 났을 때 뒷목을 잡고 나오는 것 처럼파울을 당했을 때 무조건적으로 다리를 잡고 약 10초 이상 누워있는 것이 습관처럼 베어있다. 가투소, 피를로, 토티 등이 그에게 엄살이 심하며 거칠다고 언급했을 정도이다. -물론 그라운드의 투사 가투소를 제외하고는 다 마찬가지의 선수들이다- 아무튼 그의 영악하며 거친플레이는 10년 이상 당해온 몇몇 세리에의 팬들에게는 좋지 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맨유의 위대한 레전드로 남아있는 로이킨은 프로로서 하면 안 될 쓰레기같은 플레이들을 많이했고, 콥들의 위대한 주장 제라드 역시 필드 안과 밖에서의 행동이 다른 위선자이듯, 최고의 선수들 중에는 깨끗하고 신사적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선수들은 반의 반도 안되는것이 사실이다.
독일 월드컵에서 토티를 비롯한 이탈리아 선수들은 그를 "거칠고 엄살이 심한 선수"라고 놀리며 심리전을 펼쳤지만
정작 경기가 끝나고 가장 먼저 네드베드를 위로한 것은 토티였다.
그의 욱하는 성질은 결국 화살이 되어 그의 가슴에 꽂혔다.
네드베드는 비운의 스타가 아니다?
한 때 비운의 스타하면 라이언 긱스, 안드레이 셉첸코 그리고 파벨 네드베드를 뽑던 시절이 있었다. 조국에 대한 신념을 지킨 라이언 긱스의 멋진 선택은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축구선수로서의 명예의 상당부분을 빼앗아갔고, 본의 아니게(?)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셉쳍코 역시 조국 최고의 영웅이 되었으나 국가대표 커리어는 미약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면 네드베드의 조국 체코 또한 그를 비운의 스타로 만든것일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인지도가 낮은 체코이기에 YES라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그 대답은 NO에 가깝다. 그와 체코는 긱스나 셉첸코는 꿈도 못 꿀 유로 준우승과 4강 진출을 이룩해냈다. 특히 유로 04때는 최강의 팀으로도 꼽히던 팀이였으며 독일 월드컵 직전에는 FIFA랭킹 2위까지 했던 팀이 바로 체코 공화국의 국가대표팀이다. 이 정도면 동시대 유럽의 지존이었던 프랑스와 외계인들이 득실거리는 브라질의 미드필더들을 제외하고 별로 꿀릴것도 없는 커리어이다. 다만 NO에 '가깝다'라고 대답한것은 체코가 유난히 월드컵무대와는 인연이 없었다는 것이다. 1991년 체코 슬로바키아에서 분리된 후 2006 독일 월드컵이 첫 월드컵 무대였을만큼 월드컵과는 지독히도 인연이 없던 체코였다. 그 동안 체코를 이끌어온 노장들 -네드베드, 포보르스키,콜러 등-은 서른줄을 훌쩍넘긴 30대 중반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월드컵을 허무하게 모냈으니 조국이 원망스러울법도 하다. 아무튼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가끔 체코는 강팀이고 막판에 월드컵 무대도 밟아봤으니 네드베드는 비운의 스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팬들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네드베드는 긱스나 셉첸코와는 다른 유형의, 말하자면 최고의 활약을 보이다가 경고 누적이나 부상으로 결국 중요 경기에 뛰지 못하는 -그 중요 경기들에서 꼭 소속팀들은 패했다- 그런 유형의 비운의 스타이다.
대표적으로 02-03 챔스 준결승에서의 경고누적과 유로 04 준결승에서의 부상을 들 수 있다. 02-03 시즌 발롱도르와 월드사커지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그가 받지 못한 피파 올해의 선수상의 공정성 문제가 야기되었을 만큼 최고의 활약을 펼치던 해였다. 이 시즌 챔스 준결승에서 레알의 갈락티코들을 압도하며 결승진출이 거의 확정되었을 무렵, 정말 쓸데 없는 파울로 경고를 받으며 결국 결승전은 관중석에서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했다. 유로 04에서 극강의 포스를 보여주며 우승을 향해 다가가던 차에 만난 그리스와의 준결승, 초반부터 거친 플레이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전반 중반에 팀닥터의 부축을 받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고, 결국 체코는 그의 부재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리스의 침대축구에 무릎꿇고 말았다. 그 부상만 아니였어도 유로 MVP와 2년 연속 발롱도르 수상도 노림직했던 당시이기에 아쉬움은 더 컸었다.
축구 선수로서 평생에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그렇게 허무하고 안타깝게 날려버린 네드베드. 과연 그 비운들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에 대한 평가는 한층 높아져 있지 않았을까?
네드베드를 그리워하던 이들의 눈빛.
(마르셀로 리피(前유벤투스 감독) - 카렐 브르크너(前 체코 감독))
라치오 시절 38골 125어시스트
네드베드의 스텟 중 가장 unbelievable한 기록이 바로 이것이다. 5년간 138경기 38골 125어시스트. 한 경기당 한 개 이상의 공격 포인트라는 이 파괴적인 기록을 두고 진짜냐 가짜냐 말들이 많다. 믿기 힘든 기록이지만 그를 소개하는 잡지에 저 기록 그대로가 실린것은 사실이다. -잡지 스캔본이 예전에 아이러브사커 게시판에 올라왔었으나 현재는 없어진 듯 하다.- 이러한 기록을 잡지사마다 다른 어시스트 규정 혹은 인쇄 실수 등으로 의심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라치오 시절 네드베드가 어떠했느냐를 제대로 안다면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을것이다.
당시 네드베드가 몸 담았던 라치오는 세계 최고의 스쿼드를 가진 팀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에 '세계 4대 미드필더' 중 하나로 알려진 베론을 비롯해 역대 수비수중에도 손꼽히는 네스타, 스탐 등이 있었고 크레스포, 네드베드, 시메오네, 미하일로비치, 푸세르, 시뇨리, 포보르스키, (멘디에타)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즐비해있던 라치오였다. 이들 중 대다수가 라치오 붕괴당시 빅클럽들로 이적했고 아직까지도 이적료 랭킹 상위권에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이들의 당시 위상은 대단했다. 네드베드는 당시 그러한 라치오에서 '그라운드의 미치광이(혹은 정신병자)'라고 불리울 정도로 그라운드를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모두가 알고있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은 유베시절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왼쪽 윙으로서 공수 양면에서 활약했고 마지막시즌에는 공미겸 셰도우 스트라이커를 볼 정도로 공격력과 득점력면에서도 인정을 받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세계 4대 미드필더' 중 하나인 베론 때문에 비교적 덜 알려진 감이 있지만, 이탈리아 언론에서 뽑은 라치오 역대 BEST 11에는 네스타와 함께 베론이 아닌 네드베드가 들어간다는 사실과 유벤투스가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지네딘 지단의 대체자로 나이가 30이나 된 네드베드를 지목했다는 사실은 그가 라치오에서도 역시 세계 최정상급 선수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풋풋했던(?) 그의 라치오 시절. 라치오에서의 마지막 시즌즈음부터 머리를 길렀다.
국가대표로서의 네드베드
얼마전 체코내에서 '근 10년간 체코 최고의 선수는?' 이라는 주제의 설문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표를 얻으며 콜러, 포보르스키, 로시츠키, 체흐등을 제치고 네드베드가 1위에 올랐었다. 체코가 1993년에 독립했고 네드베드는 1994년 국가대표 데뷔를 했으니 사실상 체코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1962년 조셉 마소푸스크라는 선수가 체코 슬로바키아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탔고 두 번째가 2003년 네드베드였다- 자국 명문인 스파르타 프라하에서의 활약으로 국대에 발탁된 네드베드가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한 계기는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 96이다. 이 대회를 통해 체코의 영웅으로 태어난 포보르스키를 중심으로 파벨 네드베드, 패트릭 베르게르 등이 팀을 이끈 체코는 독일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동유럽의 위상을 확실히 드높이며 정상급 위치에 서게 되었다. 대회가 끝나고 많은 명문팀들의 러브콜을 받은 네드베드는 대회 첫경기에서 자신이 골을 넣은 상대인 이탈리아의 라치오를 선택하며 처음으로 빅리그에 입성하게된다. -원래는 PSV로 이적했으나 직후 라치오가 그 4배에 달하는 이적료를 제시하고 데려갔다- 게다가 이 해에 처음으로 포보르스키를 제치고 체코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니 본격적인 네드베드의 전성시대는 시작된 것이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진출 실패와 유로 2000 조기 탈락이라는 쓴잔을 봤지만 체코팀의 중심을 서서히 자신에게로 가져온 네드베드는 결국 주장완장까지 꿰차며 체코를 자신의 팀으로 만들었다. 유로 2004를 준비하던 시점에서는 네드베드-포보르스키와 로시츠키가 공존하는 체코의 최전성기의 기둥으로서 팀을 이끌며 발롱도르 수상이라는 겹경사까지 맞이했다. 만약 부상만 아니였다면 유로 2000때 지단,피구,토티가 그러했듯이 유로 2004를 자신의 대회로 만들 수 있었던 네드베드는 대회준비와 맞물려 유벤투스가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자 소속팀에 전념하겠다며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고 수준 높은 축구를 하던 체코는 그 구심점을 잃자 또다시 월드컵 예선에서 탈락할 위기에 몰렸고, 그러한 조국과 자신의 마지막 커리어를 위해 복귀한 네드베드는 결국 휘청이던 팀을 FIFA랭킹 2위까지 올려놓으며 그야말로 '레벨이 다른' 선수임을 입증했다. -네드베드의 A매치 경기수는 92경기인데 아마 이때 공백이 없었다면 센츄리클럽에 가입했을 것이다.- 주전 공격진들의 부상과 출장 선수들의 퇴장등 악재가 겹치며 16강에서 탈락했지만 네드베드만은 그의 클래스를 유감없이 보이며 상대를 압도했고 조별예선 베스트11에 뽑히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체코 역사상 최고의 선수, 체코의 영웅이자 위대한 주장이었던 네드베드의 국가대표 생활은 그해 끝이 났고, 또다시 유로 2008에서 복귀 요청을 받았으나 당시 힘든상황이던 소속팀에 전념하겠다며 대표팀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워낙 굴곡도 심했고 아쉬움도 많은 대표팀이었지만 다이나믹했던 그의 체코팀을 볼 수 있었기에 팬들을 열광할 수 있었고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연히도 체코를 상징하는 동물은 네드베드가 뛰는 모습에서 연상되는 '사자'이다.
성실함과 꾸준함의 대명사
그의 유명한 말 "나는 내가 살던 곳에서 60마일 떨어진 곳의 축구 학교를 다녔다. 나는 경기가 끝나면 항상 연습장에 가서 연습했고, 연습장의 조명이 꺼질 때 나의 일과도 끝이났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끝없는 노력이 만들어낸 선수이다. 끝없는 연습으로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양발잡이의 대표적 선수가 되엇고, 집에서도 아내가 포기할만큼 운동과 체력관리에 매달린다. 휴가를 가거나 휴일에도 반드시 운동으로 몸관리를 하고 발롱도르 수상 다음날에도 아침부터 개인훈련을 했을만큼 지독한 연습광이다. 이러한 그의 성실한 자기관리는 타선수들이 보기에 모범이 되며, 선수생활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그의 몸상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팀동료 이아퀸타에게 유벤투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를 묻자
"네디를 개인적으로 몰랐어요.
나는 네디가 개인훈련 때 자신에게 잔인할 만큼 혹독하게 훈련을 하는 모습에서 아직도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선수가 있다는건 정말 유벤투스의 가장 첫번째 자랑일것입니다."
08~09시즌 챔스 예선전의 활동량 기록.
네드베드의 경기를 거의 다 챙겨보던 내가 생각하기에는 평소에 비해 그리 많이 뛰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으나 12.3km를 뛰었으니 아직까지도 평균 12.5km 정도는 뛰는듯하다. 37살인 네드베드지만 세대교체가 활발했던 유로 08에서도 이 기록보다 더 많이 뛴 선수가 3명뿐이니 전성기때에는 얼마나 untouchable한 활동량을 보여줬는지는 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수많은 별들이 그라운드를 수놓았던 08-09시즌 챔스 16강. 전경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뛴 선수는 다름아닌 37세의 노장 네드베드였다. 12.66km라는 기록에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지만 네드베드의 팬으로서 12.66km는 '겨우 12.66km'를 뛴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언제나 자기 몫을 해주는 꾸준함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체코, 라치오, 유벤투스에서 그는 한결같은 플레이를 보여줬고 노쇠화니 뭐니해서 다른 선수들은 은퇴를 준비한 34~5살 -세리에 B에 있던- 까지도 전성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독일 월드컵때가 34살이였고 그 다음시즌에는 11골을 몰아쳤다- 잔부상은 있었지만 크게 본다면 그도 강철몸인 선수 중 하나이며, 기복도 없어 그가 '못해서' 교체되는 날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근래에 축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은 아마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들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현재 37살인 네드베드는 최근 두 시즌동안 기복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전체적인 기량하락도 눈에 보이며 언론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후계자를 언급한다. 이렇듯 분명 그에게세 예전기량을 기대하긴 힘들지만, 세계 최고의 '빅'클럽 중에서 37살의 나이에 '부동의 주전'을 꿰차고 있는 선수가 네드베드 이외에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꾸준함을 깎에내리기엔 너무나도 부족해 보일 뿐이다.
07-08시즌 3골 6도움, 08-09시즌 21R까지 3골 4도움을 기록중인 네드베드.
스텟은 눈에 띄게 줄었으나 그의 골들은 하나같이 승점을 가져다주는 골들이였다.
기복없는 꾸준함의 대가들. 다음시즌에도 이들을 볼 수 있을까?
(밀라노의 양대산맥 하비에르 사네티 - 파올로 말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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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드옹 ..벌써 이렇게됬나.. ... 1년 더 뛴다는게 신기할 정도로...ㄷㄷ
헐. 38골 125어시스트?..
개념글 감사요~♡
잘봤습니다.
잘보고가영
제라드에 관한 부분은 굳이 언급 안하셔도 될듯한데;;
ㄳ ㄳ
정말 개념글 네드베드 광팬으로써 잘보고 감니다
ㅠㅠ 이제 2차전은 네드베드의 챔스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이 '아~주 쪼금'은 높아졌네요.. 저번꺼 재탕이긴 하지만 열심히 쓴거라서 다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