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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글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합니다.
월드컵 총결산이라도 하고 싶었는데(아주 초반에만 등장) 저의 미칠 듯한 귀차니즘과 작업 중 옆줄새기로 엄청나게 늦어버렸습니다.
왜 이렇게 뒷북치나 싶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셨으면 합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동안의 과거가 좀더 넓고 개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래뵈도 노느라 2주동안 걸쳐 완성한 글입니다.
분량이 꽤 많아서 읽기 귀찮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국축구를 사랑한다면 한번쯤 읽고 좋은 답변 달아주시면 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개인 칼럼이지만 열정을 담아 쓴 글입니다. 좋게 봐주시면 저는 더 바랄 것도 없습니다. 그것만으로 저는 세상 살아갈 맛이 나니까요.
이제 본격적인 글에 시작할 겁니다. 필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좀더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쓰는 필체인데 건방져보여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현회 기자님 형님 따라서 굳은 말투니 이해바랍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치우폐인] 전세계가 뜨거웠던 2010 남아공 월드컵 결산!
드디어 4년을 기다린 31일간의 대장정, 남아공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이번 월드컵은 그 어느 때보다 말많은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부부젤라, 대회 초반 극심한 골가뭄, 전통 강호의 부진, 그놈의 미칠듯한 오심, 뒷심을 발휘한 자블라니 덕에 후반부로 갈수록 풍성해진 골과 함께 연출된 명승부들, 그리고 스페인 우승.
월드컵을 보면 지난 4년과 앞으로의 4년을 볼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바로 세계축구의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4년 전 우승팀 이탈리아는 카테나치오의 진수를 선보이며 '수비축구'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대세는 유로2008부터 스페인이 보여준 '패스축구'였다. 현대 축구의 모범 답안인 '압박축구'를 '패스축구'가 무너뜨린 것이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에서 '뷰티풀 풋볼'의 진수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스페인의 골 기록은 기대 이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승 앞엔 그 어떠한 비판도 의미가 없다.)
아, 남의 나라 얘기 하려니 재미없다. 태어나서 월드컵 경기 생중계를 이렇게 많이 본 것도 처음이라 하고 싶은 말은 많아 시작했지만 흥이 안 난다. 월드컵이 끝나면 거창하게 '월드컵 결산' 칼럼이라도 쓸 생각이었는데 시작부터 왠지 부질없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관심이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우선 필자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졌다. 바로 '한국축구'다. 이번 칼럼은 세계축구고 나발이고 이번 월드컵의 한국축구를 뒤돌아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한국축구 in 2010 월드컵' 되시겠다.
[치우폐인] 월드컵 결산...은 개뿔, 한국축구 in 2010 월드컵
1. 2002년 이후 대표팀 감독에 첫 국내 감독 선임, 허정무 호 출범. 아시아의 최강자로 서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 히딩크 감독의 그늘로 계속해서 외국인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앉혀온 대한민국이 2000년대 최초로 국내감독인 허정무를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했다. 다소 의외의 결정이었다. 허정무가 선수 시절 대한민국의 레전드이긴 하지만 선수발굴능력과는 별개로 지도력에선 의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팀 선임 이전 전남의 FA컵 우승이 있었긴 하지만 리그에선 인상깊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 했고 무승부가 유독 많았다. 수준높은 감독을 원했던 축구팬들의 원망을 산 결정이었다. 이에 허정무 감독이 부임식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 축구인생의 전부를 건 마지막 도전."
(19년만에 사우디 원정에서 승리. 중동 원정 징크스 격파는 분명 한국축구의 새로운 발전이다.)
부임 초기 최악의 경기력을 두고 말이 많았지만 결과는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허정무호 데뷔전이자 A매치 역대 최소 관중을 기록한 2008년 1월 칠레와의 경기에서 패한 이후 2009년 6월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확정까지 25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비록 상대가 전부 아시아팀이긴 했지만 그동안 아시아팀에게도 번번히 발목을 잡히며 상당히 고전했던 역대 대표팀 결과를 생각하면 상당한 결과였다. 특히 한국의 고질적인 부담이었던 중동 징크스를 깨뜨리며 아시아의 최강자임을 증명했다. 그동안 유럽권의 외국인 감독들은 아시아 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아시아 약체와 중동에게 종종 발목을 잡혀왔다. 그러나 이번엔 국내 감독이었기에 아시아 축구에 밝았고 적절하게 상대하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아시아 최초)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업적을 이루었다.
사실 감독과 선수들도 밝혔듯이 이번 예선에선 상당한 운이 작용했다. 실제로 북한전과 이란전을 비롯 몇번 질 뻔한 경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극적인 골과 같은 행운이 많이 따랐다. 이를 실감하기 위해 이청용의 말을 빌려보자. "말로만 힘들다 힘들다 들었는데 직접 가서 경기를 해보니까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진짜 (원정)갔을 때는 비기기만 해도 아, 잘 한거구나 라고 생각 될 정도로 그정도로 모든 게 다 낯설고, 어색하고, 관중도 엄청난 팬들이 와서 굉장히 경기장 분위기를 달궈 원정팀이라면 쉽게 이기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 같아요."
"저도 대표팀이 되기 전까지는 (한국이) 월드컵에 무조건 나가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예선전을 직접 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쉽지 않은 거고 7회 연속이라는 거 자체가 진짜 엄청난 일이고 또 앞으로 더 쉽지 않을텐데... 모르겠어요. 다음 월드컵에선 지성이 형이 월드컵 본선까진 진출 시켜 놓고 명예롭게 은퇴하겠다고 약속하며 조심스럽게 얘기하던데요."
(맨유 선수일 때보다 대한민국의 캡틴일 때가 빛난 박지성. 그의 발굴과 주장 선임은 허정무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과만 보면 그동안 한국의 역대 아시아 예선 중 가장 깔끔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여기서 월드컵 본선 진출은 더 많은 찬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월드컵 출전이란 게 얼마나 값진 일인지 한국의 축구팬들은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출전에 가렸을 뿐이지 그 길은 험난하다는 걸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국이 아시아권이라서 상대적으로 쉽게 진출했다는 말도 많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한국이 아시아권이 아닌 타대륙이 속했다면 한국 선수들의 체격도 달랐을 것이고 그 대륙에 속한 성격의 축구를 구사했을 것이다. 이건 뭔 개소리냐는 소리도 들리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한국은 아시아권이라서 쉽게 월드컵에 진출했다는 게 아니라 한국은 아시아에 주어진 출전권을 당당히 따냈다고 봐줬으면 한다. 우리의 축구를 우리가 과소평가할 필요가 전혀 없다. 실제로 한국은 86년부터 4년마다 월드컵을 즐기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즐비하다. 아무리 세계인의 축제라지만 자국이 출전하지 못 한다면 그렇게 흥이 나진 않는다. 한국축구에게 항상 고마운 게 4년마다 월드컵에 출전해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감동시켜 주기 때문이다. 승부의 세계엔 항상 이변이 속출하기에 안심할 순 없지만 부디 앞으로도 한국의 월드컵 출전이 계속되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2. 역대 최강의 멤버. 허정무 호의 '유쾌한 도전'
이번 월드컵 출정을 앞두고 허정무 호는 '유쾌한 도전'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이 속에는 어떤 뜻이 담겨있을까?
허정무가 밝힌 '유쾌한 도전'은 즐기는 마음으로 신명나게, 결과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후회없이 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선 축구강국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우리보다한수 위라는 선입견을 떨치자는 얘기다. 허정무 감독은 "과거 월드컵 때마다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 분위기나 상대팀에 압도돼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도 이상으로 주눅이 들다보니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나 또한 선수와 트레이너, 코치, 해설자로 월드컵을 경험했지만 나도 모르게 주눅들곤 했다. 이제는 우리가 어깨를 활짝펴고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저만 모자이크 처리해서 죄송합니다. 박문성 형님;;)
그렇다. 그동안 한국축구는 월드컵에서 홈에서 열린 2002년을 제외하고 항상 시작부터 주눅 들어왔다. 이젠 이를 떨쳐내고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이다. 2010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G세대' 선수들이 보여준 '자신감'을 말이다. 이들은 세계를 상대해도 절대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진화로 평가받는 이 세대들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한국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허정무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그동안 국내 감독들이 보여준 모습과 그리고 자신의 이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어느 감독보다 개방적인 감독으로 변한 것이다. 부임 초기부터 파격적인 선수 선발과 꾸준한 선수 실험과 전술 수정, 과감한 휴식,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항상 선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그때마다 변화를 추구했다. 또한 히딩크 감독과 마찬가지로 선수들과 함께 16강 진출 목표를 분명하게 반복하며 강조했고 선수들을 하나로 뭉쳤다. 허정무 감독은 부임 기간 내내 강조한 말이 있다. "원정 16강 징크스, 반드시 깨고 싶어요. 반드시 깰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6강에 진출해서 국내 감독은 안된다는 그런 편견들도 함께 깨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허정무 감독은 독이 든 성배, 대표팀 사령탑을 주저없이 집어들었다. 박지성, 이영표 배출과 같은 '재능발굴'이라는 그의 장기는 이미 유명했지만 주위에서 그의 지도자 능력에 대해선 많은 의심과 편견을 받아야 했는데 그는 '현재 진행형' 감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정무 호를 거쳐간 선수만 해도 100명에 이른다. 그 중 거르고 거른 선수,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 이들을 평가하자면 감히 한국 역대 최강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2년 때는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홈의 이점도 있지만 조직력의 이점이 상당히 작용했다고 말하고 싶다.) 박지성을 중심으로 '양박 쌍용' 편대는 유럽에서 위력을 펼치고 있으며 선수층 전체적으로 적절한 신구 조화는 마치 2002년을 보는 듯 했다. 실제로 선수들은 이번 대표팀이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좋다고 밝혔다. 또한 2002 황금세대들의 마지막 대회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위엄.jpg)
2010 월드컵을 앞두고 남아공 현지 원정과 동아시아 대회 얘기는 넘어가겠다. 결과는 충격적이었겠지만 이는 '과정'에 불과했다. 허정무 호의 시선은 눈앞의 결과를 바라본 게 아니라 오직 남아공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땅, 남아공에 입성했다.
허정무를 너무 긍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의 내용은 주위의 루머에 휘둘리지 않고 그나마 객관적인 증거나 사실을 따져 작성했음을 자부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허정무는 역대 그 어느 감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결과다. 물론 경기력은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지만 리그도 아니고 결과가 대부분이고 변수가 즐비한 국가대항전에서 이같은 결과를 얻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현재 허정무를 둘러싸고 잘못된 편견이 많은데 이를 분명히 부정하고 싶다. 그 중 틀린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월드컵이 끝난 현재 봤을 때 대부분이 유언비어에 가까웠다. 한국은 인간적으로 대표팀 감독에 대한 존중이 너무 없다. 이겨도 ㅈㄹ 져도 ㅈㄹ인데 지금같은 상황에선 장담하는데 그 어떤 감독이 와도 비난을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게 설령 무링요라도 말이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이란 자리의 무게감은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경지다. 도전 그 자체로도 박수받을 만한 용기있는 행동이다.
3. 이것이 진정 한국축구인가? 월드컵 원정에서 가장 완벽한 승리를 거둔 그리스 전
2010년 6월 12일 포트엘리자베스의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 마침내 한국축구의 날이 왔다. 21세기 최고의 이변의 팀 간의 대결, 2002 월드컵 4위 대한민국과 유로 2004 챔피언 그리스와의 맞대결. 서로에게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였다. 상대가 그리스이기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보다 첫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경기 시작과 함께 위협적인 공격을 선보인 반면 한국은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시동이 채 걸리기 전에 선제골을 성공시킨 건 놀랍게도 한국이였다. 전반 7분, 코너 부근 프리킥 찬스에서 기성용이 올려준 공을 이정수가 가볍게 밀어넣으며 한국이 선제골을 터트렸다. 한국의 월드컵 출전사 가장 빠른 시간의 골이였기에 오히려 지켜보던 축구팬들이 믿기지가 않아 당황스러운 골이였다. 기쁘긴 했지만 너무 뜬끔했다. 따지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큼 당황했다.
이후 주도권은 한국에게로 넘어갔다. 사실상 승부를 가른 중요한 골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후 박지성의 스루패스를 받은 박주영이 1대1 찬스를 만들기도 했으나 아쉽게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그렇게 전반은 한국이 기세를 잡은 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반 7분, 박지성이 상대 실책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추가골을 성공시켰다. 순간 돌파력과 몸싸움, 그리고 마무리가 더욱 빛난 골이었다. 무엇보다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한국은 그리스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냈다. 그리스는 더욱 공격적인 전술로 나섰고 수차례 프리킥, 코너킥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의 수비에 모두 무위로 그쳤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이영표와 조용형, 김정우의 수비는 철벽과도 같았다. 그러다 종종 한국은 역습을 시도하며 추가골 기회를 노렸지만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잔디남 만세)
결과는 2-0 한국의 완승. 이는 한국의 월드컵 출전사 원정에서 가장 완벽한 승리였다. 실제로 한국은 경기 양적에서나 질적에서나 모두 앞섰다. 한국은 전혀 두려움없이 경기를 했으며, 엄청난 활동량 수치가 증명하듯 압박축구를 간만에 제대로 선보였고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한국은 이번 대회 첫 승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실로 새로운 느낌이였다. 2002 월드컵과는 또다른 흥분감이었다. 월드컵 원정에서 이렇게 완승을 거둔 게 처음이라 더욱 축구강국에 다가선 느낌을 받았다. 이 경기는 한국축구의 새로운 발전으로 기억될 것이다.
4. 너무나 쉽게 무너지며 참담한 패배를 당한 아르헨티나 전, 그리고 끓기 시작한 냄비들.
6월 17일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한국축구 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경기인 아르헨티나 전. 비록 상대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이긴 하지만 한국은 첫 경기에서 완승을 거두었기에 많은 기대를 하기 충분했고, 이기긴 힘들어도 충분히 비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스 전과 달리 4-5-1 전술에 박주영이 원톱에 서고, 스타팅 멤버로 오른쪽 풀백에 차두리 대신 오범석이 나왔다. 이는 아르헨티나 대비에 적합한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경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리 달라붙어도 메시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이 더욱 당황할 수록 무섭도록 냉정한 메시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리스 전의 한국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거칠게 나온 아르헨티나 앞에 긴장해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박주영의 불운한 자책골로 아르헨티나에게 선제골로 내주되면서 상황은 힘들어져 갔다. 설상가상 아르헨티나는 이번에도 프리킥에서 두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한국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막기 위해 거친 파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칙으로 막으려다 세트플레이는 막지 못했다.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보여준 선수비 후역습을 내세웠던 한국에겐 최악의 출발이었다.
절망적이였던 전반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전반 종료 직전 이청용의 뜬끔포. 이 골 덕분에 한국인들은 하프타임 내내 열광했고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설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분위기 반전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골이였다. 그 분위기는 후반 시작과 함께 계속 이어졌다. 한국이 제 플레이를 되찾아가며 주도권을 잡게 된 것. 그리고 한국에게 절호의 기회가 왔다.
(염기훈이 밉고 아쉬운 건 알겠지만 이건 축구의 한 장면일 뿐이다. 미칠 듯한 인격적 모독을 당할 장면이 아니란 말이다.)
후반 13분, 이청용이 오른쪽으로 쇄도하는 염기훈에게 패스를 했고 염기훈은 이를 왼발로 슛을 했다. 공은 아쉽게도 옆그물을 흔들었다.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기에 두고 두고 아쉬운 기회는 맞다. 확실히 이 기회를 놓치며 한국은 이후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슛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염기훈을 잡아먹기 위해 안달난 것. 뭐 저 상황에서 오른발로 안 찼다느니 인사이드로 안 찼다느니 별 말이 나오면서 염기훈 비리까지 속출하는데 이는 패자의 화풀이에 불과하다. 확실히 아쉬운 건 백번 인정하겠지만 염기훈에 대한 시선이 도가 지나치다. 이는 축구에서 너무나 일반적인 장면이고 항상 골을 넣을 수 있는 보장이 없는 장면이다. 한마디로 슛의 주인공이 박지성이나 이청용이였으면 덜 했을텐데 그동안 벼르고 있던 염기훈이였기에 그동안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그냥 안타깝다고 말하고 싶다.
(누가 그에게 루저라고 했나? 상상 그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 메시)
이후 한국은 역습에 무너지며 두골을 더 허용했다. 수비 전체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린 염기훈의 슛에 아쉬워하기 보다는 아르헨티나가 정성룡에게 막혀 날린 기회에 더 감사해야 한다. 실제로 유효슈팅 수(아르헨티나 11-2 한국)에서 엄청난 차이가 났다. 확실히 4-1이라는 스코어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정성룡, 이청용이 없었다면 '어게인 1998' 재현 될 수도 있었다. 한국은 패배할 만한 경기를 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사실 경기 전 전술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르헨티나는 분명 한수 위의 상대였기에 한국은 더욱 수비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었다. 이는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실험해 효과를 본 전술이였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수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골을 쉽게 허용하며 경기가 어려워졌다. 선수비 후역습을 내세웠지만 골을 먼저 허용하며 수비만 할 수 없었고 공격을 시도하다보니 더 위험한 장면이 종종 연출되었다. 그리고 허정무의 교체 용병술을 두고 말이 많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기성용 대신 김남일이 들어가 역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수비지향적이라고 의아해했는데 오히려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집을 생각없다. 문제는 교체 카드 활용이다. 한국은 경기 끝날 때까지 교체 카드 3장 중 한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경기가 잘 안 풀리고 지고 있었기에 문제였다. 특히 4골을 내주고 이동국을 투입한 건 다음 경기 대비를 위해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상 패전 처리에 가까웠다.(나는 이동국의 열렬한 팬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또한 경기 분위기를 반전시킬 선수를 투입하지 않았다는 것도 안타까웠다.
(당시 본인의 참고글 ▶참담했던 아르헨티나 전, 냄비들은 적당히 해라. 그리고 아직 안 끝났다.)
경기 후 네티즌들은 분노를 금치 못 했다. 패배의 원인을 일부 선수들에게 전부 돌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여론 때문에 이 말하면 엄청 욕 먹었겠지만 이때는 한 선수의 잘못이 아닌 모든 선수가 못했다고 말하고 싶다. 선수들의 노력을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우리의 시선이 잘못됐다는 건 분명히 말하고 싶다. 그동안 아무 말 없다가 한번 못했다고 사람 잡아먹으려고 안달인 냄비 근성... 정말이지 질린다.
오범석 선수에 대해 언급해보겠다. 개티즌들은 오범석이 축구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국가대표가 됐다는 말을 퍼트렸다. 오범석의 아버지가 축구인인 건 사실이지만 오범석은 축구에서만큼은 아버지의 도움없이 성장하며 자수성가한 선수다. 그동안 아무 말 안 하다가 이제와서 선수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절대 넘어갈 수 없어서 하는 말이다. 그동안 차두리 대신 대표팀의 부동의 수비수였다. 한국은 차두리 로봇설에 신났지만 그도 한 선수일 뿐이다. 차두리가 아르헨티나 전에 나왔다해도 달라질 거란 보장은 없다. 누가 뭐래도 객관적으로 아르헨티나 전 대비엔 차두리 보다 오범석이라는 사실엔 경기 전만해도 토달 사람이 없었다. 인간적으로 부탁한다. 져서 속상했겠지만 더 속상한 건 그라운드의 선수들이다. 경기가 아직 남았으니 격려와 응원해줘도 부족한데 까기 바쁘니 현실이 미치도록 안타까웠다. 충분히 패배가 납득이 갈만한 경기였는데도 인정하기 보다는 깔 줄 밖에 모르는 인간들이 넘쳐나는 현실이 말이다. 이 상태라면 한국이 떨어졌으면 좋겠다든지 오범석은 원래부터 답이 없었다든지 정말이지 별의 별 인간들이 속출했다. 이래도 16강가면 언제 그랬냐 듯 좋아할 인간들을 위해 뛰는 선수들이 더 불쌍할 지경이였다. 경기보다는 당시 분위기가 정말이지 끔찍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였다.
5. 16강을 향한 마지막 관문, 나이지리아 전. 그리고 박주영
마침내 결전의 시간이 왔다. 사실 조추첨 확정 때부터 이 경기가 16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평가받았다. 아르헨티나 전은 버리는 카드에 가까웠고 이 경기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했다. 2승을 거두며 사실상 16강을 예약한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B조는 혼선의 상황이였다. 한국과 그리스가 각각 1승 1패, 나이지리아는 2패. 그러나 나이지리아도 한국에게 승리를 거둘 경우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어느 한 쪽도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원정 첫 16강 진출을 위해 허정무 호는 2년 6개월을 달려왔고 마침내 마지막 관문의 순간이 온 것이다. 나이지리아의 라예르백 감독의 경우는 2010년 1월 선임되었다. 허정무 호는 깊이가 크게 달랐으니 아무래도 한국의 의지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은 그리스 전에서 완승을 거둔 포메이션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그리고 한국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똥줄타는 경기를 연출한다. 밤늦게 이 경기를 본 한국팬들은 수명이 1년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는 한국이 원치 않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뒤늦게 나이지리아의 잠재력이 발휘된 것인지 위협적인 장면을 종종 연출하더니 결국 전반 12분에 중원에서 공을 빼앗기고 공격을 허용하며 우체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는 우체를 놓친 차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원을 장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또한 선제골 이후 나이지리아는 골대를 맞추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골 넣기 전에 미리 인사하는 동방예의지국슛)
다행히 한국은 이후 정신을 차렸는지 주도권을 가져왔고 이 분위기에 당황한 나이지리아의 수차례 파울을 범했다. 한국은 좋은 위치에서 종종 프리킥 기회를 잡았고 결국 전반 40분에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상황은 그리스 전의 선제골을 Ctrl C, Ctrl V 한 듯이 거의 흡사하다. 페널티박스 측면에서의 프리킥을 마찬가지로 기성용이 올려 이정수가 처리했다. 헤딩하다 발로 들어가며(헤발슛) 다소 운이 따른 골이었지만 그만큼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냈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전반을 1-1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지리아는 후반 시작과 함께 다소 변화를 주었고 이 틈을 놓치지 않은 한국은 좋은 찬스를 잡게 되었다. 후반 4분 박주영의 역전골이 터졌다. 한국의 스트라이커 박주영이 드디어 골을 성공시키며 마침내 2-1 역전. 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골이였다. 박주영의 이야기는 잠시 후 다시 꺼내겠다.
(전국의 남성들 정신도 혼미하게 만든 페널티녀.gif)
한국의 역전골이 터지자 나이지리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나이지리아는 노장 카누를 빼고 마틴스를 투입하는 등 거센 추격에 나섰고 한국은 이에 수비를 탄탄하기 위해 염기훈을 빼고 김남일을 투입했으나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용병술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선수 개인의 실수가 컸다. 김남일은 페널티박스에서 공을 빼냈으나 질질 끌다가 처리하지 못했고 오히려 다시 빼앗기며 당황한 나머지 어이없는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이를 야쿠부가 성공시키며 2-2 동점이 되었고 경기는 끝까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은 나이지리아의 거센 공격을 틈타 박지성이 분투하며 가끔씩 역습 기회를 잡기도 했으나 큰 위협을 주진 못 했고, 나이지리아의 동점골이 터진 후엔 사실상 끌려다니기 시작했다. 수비가 뚫리며 1대1 찬스를 2,3차례 내주며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한국의 문전에서 야쿠부의 환상적인 수비(?)는 승리의 여신이 아예 한국 편을 들어주는 듯 했다. 이는 오프사이드 상황이었지만 주심은 골킥을 선언했다. 만약 이것이 골로 연결되었다면 주심은 오프사이드를 선언하지 않고 골로 선언했을 것이니 정말이지 아찔한 상황이었다. 경기 후 나이지리아의 한 기자는 이 상황을 두고 "나의 할머니가 찼어도 넣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내심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야쿠부는 야나기쿠부이자 국민 흑형에 등극했고, 외국의 한 방송국은 '할머니가 차도 넣었을 노골 상황'을 방영하기도 했다.)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대결을 제대로 보여준 양팀)
그리고 같은 시간에 치뤄진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의 경기에서 후반 35분이 되어서야 아르헨티나의 골이 터지면서 비길 경우 한국의 16강 진출이 확실시되었다. (이청용에게 공을 뺏기며 골을 허용한 데미첼리스는 이 골로 한국팬들에게 세계 4대 수비수에 등극했다.) 나이지리아는 계속해서 한국 진영으로 넘어왔고 경기 종료 직전까지 위협적인 슛을 날리며 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아니 한국인의 수명을 갉아먹었다. 미안하다. 이땐 너무 똥줄타게 봐서 도저히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아무튼 한국은 수비하느라 정신없었는 것으로 기억한다.(개인적으로 한국의 '숨은' MVP는 조용형이라고 생각한다.) 축구를 보면서 수많은 극적인 경기를 봐왔지만 이 경기는 그런 차원의 수준이 아니다. 정말 만약에라도 나이지리아의 역전골이 터져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면 한국은 대표팀에 대한 폭동이 터질 것이고 국가 전체가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야쿠부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90분이 900분처럼 느껴지던 경기의 종료 휘슬이 울렸다. 한국의 월드컵 출전사 첫 원정 16강 진출이었다. 분위기를 깨서 미안하지만 이는 잠시 후 다시 언급하겠다. 걱정 마라. 다시 분위기 이어주겠다.
여기서 아까 미뤄뒀던 박주영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2005년 혜성같이 등장하며 한국을 열광하게 했던 박주영. 그러나 사실 박주영을 바라보는데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동안 축구계에서 많은 유망주들이 그랬듯 반짝하고 사라지거나 주위의 지나친 기대로 무너지는 선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굳이 먼 과거까지 돌아보지 않아도 고종수, 이천수 등등 당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특급 스타들도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 특히 '박주영 신드롬' 덕에 K리그 열기까지 부활한 적도 있었다. 데뷔 시즌에서 K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활약하며 '한국축구의 미래'로 떠올랐다. 하지만 거칠 것 없는 박주영도 역시 슬럼프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06 월드컵에서의 부진과 2년차 징크스에 부상까지 겹치며 박주영은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간간히 골을 넣긴 했지만 이전과 같은 위력은 볼 수 없었고 역시 주위에서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박주영은 그동안의 유망주들과 달랐다. 부진하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심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박주영은 성장통과 같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어 제 플레이를 펼쳐보이지 못 했을 뿐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후 박주영은 '진화'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데뷔 시즌과 같은 화려한 골은 없지만 팀 전체에 기여하는 실속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이후 유럽의 AS 모나코로 진출하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랬다. 2005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축구천재가 또다시 대한민국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2006 월드컵에선 대표팀의 막내였던 그는 2010 월드컵에서 대표팀의 간판 골잡이에 출전하게 되었다. 그동안 유망주들의 하락세를 수없이 지켜본 탓에 제대로 커준 박주영의 성장은 너무 감사했다.
잘 알겠지만 박주영은 그리스 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고, 아르헨티나 전에서 자책골을 넣으며 경기 초반 팀을 힘들게 만들었다.(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안타깝고 이런 말하긴 정말 미안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이로 인해 스트라이커로써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심적 부담이 컸을텐데 박주영은 다음 경기인 나이지리아 전에서 활기찬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날 박주영은 팔꿈치 부상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원톱으로 엄청난 덩치의 흑형들 사이에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좋은 기회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역전골. 이전 경기의 아픔을 훌훌 털어냈기에 더욱 감격적이인 골이었다. 기도 세레머니를 마친 후 일어서며 포효하는 박주영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역전골의 의미를 넘어 한국의 16강 진출에 결정적인 골이었고 자책골의 아픔을 말끔하게 씻어내며 일어선 박주영의 승리가 빛났다. 축구천재의 귀환에 나도 울고 박주영도 울고 한국도 울었다.
박주영은 현재 한국 최고의 공격수임에 틀림없다. 그의 굳은 신앙심 덕분인지 박주영은 이전 선수들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부상이 잦긴 하지만 그마저도 정신력으로 버티며 뛰고 있다. 앞으로 그가 선수 생활 할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안심할 순 없지만 박주영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화할 것으로 믿는다. 기복이 좀 있긴 하지만 필요할 때 넣어줄 줄 아는 선수, 안정환에 이은 한국의 판타지스타, 그의 이름은 박주영.
6. 사상 첫 원정 16강이 가지는 의미
(드디어 아시아의 호랑이가 2010년에 16강 진출 창살을 뜯어냈다.)
마침내 2-2 종료의 휘슬이 울리는 순간, 한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홈에서 열린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제외하고 한국축구는 이 순간을 위해 54 월드컵에서부터 무려 56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세계축구의 벽 앞에 번번히 좌절했던 16강 진출의 벽. 그 높은 벽을 마침내 한국축구가 2010년 월드컵에서 당당하게 넘어선 것이다.
경기 후 이영표가 밝힌대로 어떠한 비판도 무시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이지리아 전에서 막판 플레이를 비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은 언제부터 축구강국이고 16강 유력 진출국이었나? 어느 팀이든지 16강에 진출하는데 있어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나이지리아가 놓친 기회는 그들에게 돌려도 된다. 굳이 우리 책임으로 돌리지 말자. 잘했다는 게 아니라 16강 진출 업적에 기뻐해도 부족한데 찬물을 끼얹지 말자는 소리다. 개소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운 덕분에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는 사람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전에 우리 선수들을 칭찬해주기가 그렇게 힘든가?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 16강 진출국의 자부심을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16강 진출은 정말 대단한 업적이다. 쉽게 말해 전세계에서 16국 안에 든 것이이다. (적어도 공식적인 국가 중 축구협회가 없는 국가는 없다. FIFA에 가입된 협회만 해도 최소 200국이다.) 비록 망할 일본 역시 16강에 진출하는 바람에 그 의미가 조금 약해졌지만 말이다. 당시 이러한 제목의 기사가 떴다. 16강 진출, 세계축구의 '중심'에 서다. 동감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세계축구의 정상에 섰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그 기사 밑에 베플(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리플.)들 대부분이 이 의미를 이해 못 해서 하는 말이다. 운이 좋아 16강에 진출했는데 중심에 섰다고 하면 오글거린다나 뭐라나? 두 눈뜨고 똑바로 봐라. 월드컵 32개국 중 16국, 당당히 세계축구의 중심에 선 거 맞다. 그렇게 콧대높은 축구강호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이루지 못한 자리다. 다음에 16강 진출에 실패해봐야 실감할라나? 끔찍하니 이 소리는 그냥 집어처우고 그냥 무조건 기뻐하자. 오버해서 미안하다. 16강 진출해도 당연하다 듯이 별 감정없이 비판하는 거만한 팬들이 많은 현실이 참 안타까워서 그랬다.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자랑스러웠던 태극기)
(전국민을 하나로 뭉친 월드컵의 힘. 그 어떤 축구강국 부럽지 않은 이곳은 한국이다.)
그렇다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을까? 한 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직접적 경제효과는 1조3천억 원에 이르고 간접적 경제효과까지 합치면 4조3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사실 상상이 안 가는 금액이라 이런데 관심없다. 무엇보다 월드컵 16강 진출로 가장 크게 효과 본 건 바로 경제적 측면보다 정신적 측면이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국민들의 자긍심과 자부심, 그리고 드높아진 국가 이미지, 전국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는데 있다. 이는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다. 4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 속에서 우리는 생활의 활력과 희열을 느끼고 이유없이 행복했다. 전세계가 그렇겠지만 한국과 같은 국가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는 국수주의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한국 특유의 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축구팬으로써 4년에 한번 축구에 미치는 게 서운하긴 하지만 한번이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하다. 또한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없는 한국의 응원 문화는 우리의 자랑스런 자랑거리다. 이젠 이 문화가 여러 국가로 퍼져 세계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처음엔 순수했던 응원들이 상업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열정은 절대 죽지 않았다.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의 12번째 선수, 붉은 악마다.
7. 태극전사들의 마지막 투혼, 우루과이 전
마침내 16강이라는 무대, 한국축구에게 참 낯설었다. 이미 8년 전에 한번 경험했긴 했지만 그땐 안방이였기에 거칠 것 없었다. (필자는 당시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가 커피 이름인 줄 알았다.) 막상 목표였던 16강 진출을 달성하니 한 경기를 더 치른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웠다.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A조에서 무실점으로 1위로 올라온 우루과이.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 한국보다 강한 상대이긴 했지만 16강 진출국 중 그나마 해볼 만한 상대였기 때문에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상대였다. 월드컵 초대 챔피언 우루과이가 강호이긴 하지만 40년만에 8강 진출을 노리는 상황이기 때문에 불과 8년전에 4강이라는 무대를 경험한 한국으로서도 해볼만한 자신감을 가지기 충분했다. 조별 리그에서 수비 불안이라는 큰 문제를 드러낸 한국은 경기 시작 전 약간의 변화를 가지고 나왔다. 박주영이 원톱으로 내세워 중원에 5명을 두는 4-5-1을 내세웠지만 그동안 선발로 나선 염기훈을 제외하고 김재성이 등장했다. (이는 확실히 상대에게 허를 찌른 작전이다. 축구팬들이 간만에 허정무의 용병술에 만족한 몇 안 되는 전략 중 하나이기도 했다.)
(네이버 웹툰의 작가 '조석'님의 월드컵 카툰 中)
경기 초반 한국이 박지성을 주축으로 먼저 공격에 나섰고 4분만에 프리킥 찬스에서 박주영이 골대를 맞췄는데 이것이 이날 경기 비운의 시작이었다. 이에 우루과이가 정신차렸는지 공격에 나섰다. 한국은 시작부터 포를란을 집중견제하고 나섰다. 그러다 수아레즈에게 완전히 공간을 내주었고 정성룡 골키퍼의 뼈아픈 실책까지 겹치며 너무 쉽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나마 시간이 많이 남은 점은 다행이었다. 이후 한국이 반격에 나섰지만 우루과이의 수비는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한국도 짜임새있는 공격을 했지만 우루과이의 철벽수비 앞에 번번히 막혔고 위험한 역습 기회를 내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정수의 동일 선상 오프사이드와 한국의 페널티지역에서 기성용의 핸드볼을 무시한 주심에게 감사한다. 적어도 전반까지는 말이다. 승부를 가를 수도 있는 장면인데 한국으로선 행운이었다. 전반 종료 즈음되서야 서서히 한국의 공격이 발동 걸렸고 주심의 판정이 심상찮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루과이의 수비가 빛난 전반전이었다.
(이청용의 엠블렘 키스 세레머니. 소속팀이 아닌 국가대표 엠블렘에 키스하는 장면이 신선하고 자랑스러웠다.)
후반 시작과 함께 한국은 공격의 시동을 걸었고 이동국이 투입된 이후엔 4단 변속까지 올려 파상공세에 나섰다. 주도권은 한국으로 넘어왔고, 후반 23분에 이청용이 기다렸던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계속되는 공격이 적절한 시간대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포스트 박지성' 이청용의 존재가 정말 고맙게 느껴졌다. (EPL에서 거의 매경기 선발로 출전하는 모습 볼 수 있지,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이전엔 자랑거리가 못 됐지만 필자의 이는 이청용의 이와 같다. 요즘은 이청용 덕분에 더욱 살맛 난다. 헛소리 미안하다.)
(인맥축구,자동문의 오명을 벗어나 포스트 홍명보로 거듭난 조용형의 엉덩이 투혼)
이후 우루과이는 교체투입을 통해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자기 진영에만 있던 우루과이가 공격에 나서자 한국은 당황했다. 확실히 우루과이의 선수 개개인 능력은 한국을 압도했고 이에 수비가 쉽게 뚫리며 2차례 결정적 찬스를 내주기도 했다.(정성룡 선방, 수아레즈 헤딩) 그렇다고 한국 역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나섰지만, 이청용의 단독 찬스에서 날린 슛과 박지성의 헤딩슛이 골키퍼 정면에 막혔고 기성용의 페널티 지역에서 명백하게 파울당하는 장면이 무시되는 등 경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갔다.
(한국의 골 장면이 아니라서 굳이 올릴 필요는 없었지만 이 대회 최고의 골 중 하나임에 손색없기에 씁쓸하면서도 올려본다.)
그러다 후반 35분에 수아레즈의 믿지 못할 골이 터졌다. 워낙 기가 막히게 들어간지라 막을 도리가 없는 슛이었다. (수아레즈의 '내 인생 그 슛' 한 장면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골이다.) 한국은 다시 동점골이 필요했다. 남은 시간은 불과 10분이었기에 촉박했고, 설상가상 그렇게 관대하던 주심이 한국에게 갑자기 인색했다. 기성용의 피반칙을 무시한 건 전반에 핸드볼을 무시해줬으니 이해한다치더라도 한국의 공격 때 이해하기 힘든 판정으로 흐름을 끊기도 했다. 특히 공중볼 다툼에서 파울을 당한 이동국에게 오히려 파울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파상공세에 나섰다. 그리고 후반 42분, 한국의 결정적인 찬스가 왔다. 박지성의 스루패스를 이동국이 오프사이드를 절묘하게 피해가며 기가 막힌 트래핑 후 1대1 찬스를 맞게 된다. 한국이 동점골을 넣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이자 그의 12년 월드컵 한을 풀 수 있게 된 순간...
(본인의 참고글 ▶라이언킹 이동국, 그가 상상했던 월드컵과 끝나지 않는 그의 도전 )
공은 골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신은 그를 마지막까지 외면했다. 그가 상상했던 월드컵은 없었다. 필자는 이동국의 열렬한 팬으로써 이동국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이야 너무 많지만, 한마디로 눈물나게 안타까웠다. 인간적으로 부탁하는데 제발 이동국 욕하지 말자. 부진이라고 할만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박주영, 이청용, 박지성도 한골을 넣기 위해 수차례 기회가 있어야 했는데 이동국에겐 단 한번에 불과했다. 골을 넣어야 하는 스트라이커이기 전에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다. 아쉬운 건 알겠지만 가장 안타까운 건 이동국 본인이다. 그 누구도 이동국의 심정을 이루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축구여, 울지 말고 당당히 고개를 들자.)
잘 싸웠다. 정말 잘 싸웠다.
아쉬운 패배가 믿기진 않지만 잠시 후 우리는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안정환, 이운재, 김남일. 세 노장의 퇴장은 아름다웠다.)
한국은 우루과이보다 좋은 경기를 했지만 운이 없었을 뿐이다.
(우루과이는 먼저 골을 넣은 후 수비로 전환하는 이길 수 있는 축구를 구사하긴 했다. 좋은 상대였다.)
어쩌면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한국축구다운 경기였다.
(이번에도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아쉽긴 했지만 후회없는 한판이었고 태극전사들의 투혼을 느낄 수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결과는 졌지만 이 경기의 진정한 승자는 포기를 모르는 한국축구였다.
그렇게 우리는 기분좋게 4년 후를 기약할 수 있었다.
한국은 아쉽게 16강에 그쳤지만 일단 16강 목표를 이루었고 더 나아갈 가능성을 발견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었다. 이렇게 남아공에서 한국 호랑이의 포효는 강렬하고도 긴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2년 6개월이라는 허정무 호의 긴 여정도 그렇게 끝이 났다.
8. 한국축구의 새로운 진화
① 한국판 슈퍼스타의 활약, '캡틴 팍' 박지성.
한국축구가 이렇게 기분좋았던 날도 참 오랜만이다. 원정에서 첫 16강 진출과 함께 가지는 큰 의미는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축구의 전성기는 단연 4강 신화의 2002년이다. 2002년 히딩크호의 전력을 무시하는 게 아니지만 그때의 팀과 비교해봐도 손색없다고 생각되는 게 선수 개개인의 클래스에 있다. 당시에도 홍명보, 안정환처럼 우수한 선수들이 있었지만 슈퍼스타와 같은 특출난 선수는 없었고 하나의 팀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때와 이번 대표팀의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경기의 흐름을 바꾸고 이끌어갈 수 있는 한 선수, 말로만 듣던 '슈퍼스타'의 활약이다. 그렇다. '캡틴 팍' 박지성이다. 여기서 슈퍼스타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개인을 말한다. 이를테면, 98 월드컵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지단과 2002월드컵에서 엄청난 골폭풍으로 브라질을 우승시킨 장본인, 호나우도와 같은 선수들 말이다. 물론 이들도 팀동료의 도움을 받아 가능했긴 하지만 본인 스스로 승리를 부르는 선수들, 그 중에서도 특출난 한 선수를 말하는 것이다. 박지성의 경우 2002 월드컵의 막내가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의 주장으로 나섰다. 세계 최고의 명문팀 중 하나인 맨유에서 뛰고 있는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소속팀에선 활력소로 충분한 역할을 한다지만 대표팀에서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대표팀의 경기가 박지성의 유무에 따라 차이난다는 건 일종의 진리와 같은 불가피한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고 실제로 그랬다. 이 진리는 이번 대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팀 전체가 무기력했던 아르헨티나 전을 제외하고 그는 경기의 분위기를 한국 쪽으로 넘어오게 만든 선수, '슈퍼스타'였다. 첫 경기 그리스 전에서부터 그는 진가를 발휘했고 쐐기골까지 성공시키기도 했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 전에선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땐 언제나 그가 등장해 해결했다. 상대의 흐름을 끊으며 공격으로 전환했고 수차례 파울을 유도하는 등 경기의 흐름을 서서히 한국 쪽으로 바꿔놓았다. 그때마다 간접적으로 골로 연결되었고 중원에서도 그의 활약은 빛났다. 우루과이 전에서도 공격의 시작은 박지성의 발끝에 있었다. 우루과이가 박지성을 집중견제했지만 파울을 내주거나 빈 공간을 내주는 등 한국의 기회로 이어졌다. 실제로 박지성은 그리스 전과 나이지리아 전에 MVP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그가 부진했던 아르헨티나 전은 팀 전체가 무너졌다는 점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박지성의 책임으로 돌릴 생각은 전혀없다. 박지성이 부진했다기 보다는 박지성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팀이 받쳐주질 못했고 아르헨티나가 강했다.) 이처럼 박지성은 매경기 언제나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경기의 흐름을 쥐고 있는 한국의 필승전략과도 같은 선수였다.
박지성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알테니 넘어가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허정무 호에서 그는 한단계 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대표팀 감독에 허정무가 부임하기 이전부터 맨유 소속으로 대표팀 내 최고의 선수였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캡틴'이 되고난 후부터다. 그동안 한국의 리더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젊은 나이에도 워낙 리더쉽이 뛰어나 94 월드컵부터 주장이었던 홍명보(당시 25세)를 제외하고, 보통 주장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나이와 거친 카리스마같은 강한 인상이 요구되는 게 적어도 한국에서는 일반적이였다. (이는 스포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적용된다.) 다들 잘 알겠지만 이는 박지성과는 다른 얘긴데,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주장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허정무 호 초기에만 해도 주장은 강력한 카리스마의 대명사 김남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전과 달리 기량이 떨어졌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경기에서 큰 실수로 팀을 패배 위기까지 몰아넣었던 적이 있었다. 이후 허정무는 침체된 대표팀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팀내 최고의 선수 박지성을 주장에 선임하게 된 것이다. 이후 대표팀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선수들이 하나로 단합했고 상승세를 타게 된 것. 이는 기대 이상의 효과였는데 여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존의 리더와는 다른 스타일의 새로운 리더, '박지성 효과'였다. 우선 소속팀이 맨유라는 점으로 팀동료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는데다 그는 본인이 먼저 나서 가장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에 선수들이 그를 열렬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여기에 일방적으로 주장의 권위를 내세워 요구하는 거친 카리스마가 아닌 선수들과 소통을 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는 게 가장 뚜렷한 점이다. 이는 한국축구에서 새로운 유형의 리더이기에 또 하나의 발전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여기에 리더의 책임감을 느낀 덕분인지 박지성의 기량이 더 향상된 점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박지성은 허정무가 2000 올림픽 대표 감독 시절에 처음으로 선발한 선수인데 당시 유망주가 이후 대표팀에서 감독과 주장으로 만나 원활한 소통을 오가며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말하고 싶다. 박지성은 분명 히딩크가 키워낸 선수이긴 하지만 그전에 허정무가 올림픽 대표로 선발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축구선수로 지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가지 허정무가 맘에 들지 않는 분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박지성의 발전에 그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필자와 박지성을 칭찬한 외국인 친구와 찍은 사진. 버스에서 함께 3시간동안 영어로 얘기하면서 서울까지 갔다.
아르헨티나 전 하는 날에 만나 그가 한국의 건승을 기원했는데 1-4로 깨졌다는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박지성은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 월드컵 무대로 생각하며 뛰었다고 밝혔다. 앞일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2014 월드컵에서 그가 뛰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은 한국의 아시안컵 우승과 다음 월드컵 본선 진출이 그의 목표라고 했지만, 그의 나이 이제 29세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에게 남모를 고통과 같은 이유가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제 한국판 슈퍼스타로 진화했는데 그 모습을 얼마 볼 수 없다는 건 팬들에게 슬픈 일이다. 그래도 걱정마라. 시간이 흐르면서 박지성의 마음도 반드시 흔들리게 돼있다. 듀어든 형님의 말에 따르면 4년 후에도 월드컵에 활약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는 박지성은 2006 월드컵에서 은퇴를 번복한 지단처럼 다시 돌아와서 맹활약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월드컵 기간 중 필자는 서울로 올라가며 버스에서 한 외국인과 얘기를 나눈 적 있다. 버스 내 TV에서 잠깐 박지성이 나오길래 필자는 "He is Korean hero."라고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Yes. He is fantastic." 이제는 친구가 된 그 외국인 친구의 말에 필자는 말로만 듣던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이후 그는 그리스 전에서 박지성의 세레머니를 따라했는데 한국 사람도 아니고 외국인 친구가 따라하니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Thank you. Michael!)
② 말로만 듣던 제대로 된 세대교체, 이번 월드컵에서 이루다.
(한국의 전설로 남은 2002년 영혼의 3백. 이후 한국은 참 허전했다.)
"한국축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 올 것이다." -거스 히딩크(2002년 7월 한국을 떠나며)-
세대교체, 세대교체, 그리고 세대교체. 이 얼마나 오랫동안 들어왔던 말인가? 2002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는 과도기를 거쳐야 했는데 바로 세대교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세대교체란 나이가 어린 선수들 넣어줬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선수들의 실력도 받쳐줘야 진정한 세대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이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세대교체에 실패했던 이유는 외국인 감독하에 운영되며 선수들의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전에도 될성부른 유망주들이 있었지만 대표팀에선 빛을 보지 못하고 무너진 선수들이 많은데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외국인 감독이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외국인 감독이라면 오히려 더 객관적이라고 생각해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팬들도 있을텐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실 그동안 극일부 선수들을 제외하고 유망주들을 발굴해낸 건 한국의 지도자들이다. 우리 선수들은 우리 지도자들이 가장 잘 알아보는 법이다. 한국축구의 환경에서 가장 성공할 수 있을 법한 선수들을 찾는데는 외국인 지도자가 아니라 한국의 지도자다. 있어보이는 외국인 지도자의 눈이라고 정답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 나라에서 적용되는 방법이지 한국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 가운데 성공한 사례는 단 한 명, 히딩크 외엔 없다. 심지어 히딩크도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가능했다. 이번 대표팀 사령탑의 허정무는 국내에서 조광래 감독과 함께 유망주 재능 발굴에 알아주는 감독이다. 실제로 올림픽 대표 시절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등을 처음 발탁했고, K리그에서 꾸준히 선수들을 눈여겨봐왔다.
(허정무호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양동현과 유병수. 반면 최종엔트리에 끝까지 살아남은 김형일)
허정무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대실험을 가동했다. 당시 대표팀 부진과 올림픽 열기로 축구장 물 채우기 드립까지 겹쳐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 않지만 K리그 선수들 위주로 좀 활약한다거나 가능성 있어 보이는 싶은 선수들 다수가 한꺼번에 소집된 적이 있다. 그 중에 유병수, 김형일, 양동현, 김근환, 이강진, 서상민도 속해있었다는 점에서 실감할 수 있다. 월드컵 직전까지 팬들의 많은 지지를 받은 유병수의 경우 적은 시간이긴 하지만 A매치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다.(그러다 1년이 채 지나기 전 교체카드를 많이 사용한 친선경기라서 공식적으론 인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많은 팬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다. 이후 허정무는 유병수에게 쓴소리를 했고, 유병수는 이에 자극받았는지(?) 그후 더욱 성장하며 인천의 간판스타로 부상했다. 그당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탓인지 월드컵 전까지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때 소집된 선수 중 김형일만이 최종엔트리까지 살아남았다. 인맥축구니 뭐니 하는 뒷말이 많았지만 오히려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 허정무다.
본론으로 들어가 이번 대회 세대교체의 효과를 살펴보자. 우선 가장 주목받는 건 단연 '쌍용'이다. 22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K리그 당시 소속팀 서울에서부터 짝을 이뤄온 콤비 아니 '절친'이다. 사실 2008년 당시만 해도 이제 막 20세인 이들의 선발은 파격적이었다. 물론 청소년대표팀을 거치고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지만 이들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닐까 걱정했는데, 정작 이들은 이에 비웃기라도 하듯 신인답지 않은 활약으로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대표팀에만 오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이였기에 이들이 이토록 잘해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깜짝 활약에 그치지 않고 항상 꾸준하게 활약하며 어느새 대표팀의 주전멤버로 자리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앞서 G세대를 언급했듯이 오히려 자신감과 패기 넘치는 젊은 선수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경험 부족의 단점을 넘치는 자신감과 패기로 보완한 것이다. 이후 그들은 유럽으로 진출했는데 원래부터 가능성있던 선수인 건 맞지만 대표팀 경험을 통해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한국축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한 '쌍용'. 이들이 있기에 한국축구는 박지성의 존재를 뒤이어 빠르게 채우고 앞으로 10년 정도는 큰 걱정없을 듯하다. 하나도 아니고 두명이나 한꺼번에 등장하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박주영의 경우 이전부터 붙박이 주전 선수였는데 그를 이번 세대교체에 포함시킨 이유는 그가 노장의 자리를 밀어내고 당당히 매경기 주전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이동국, 안정환과 같은 노장들의 존재에도 그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이동국의 부상과 안정환의 기량 미달(아쉽지만 그는 보여준 게 없었다)로 스트라이커의 영광과 부담은 모두 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나이지리아 전에서 천금같은 골로 제 역할을 해냈다. 물론 놓친 찬스도 많았지만 그만한 공격수가 없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월드컵 직전에 가장 주목할 점은 No.1 골키퍼의 교체였는데 바로 정성룡의 활약이다. 그동안 대표팀 No.1에 위치했던 이운재였지만 리그에서 지나친 부진으로 주위에서 큰 우려를 샀고 정성룡에게 기회가 이어졌다. 사실 정성룡은 이전에 이운재의 공백을 잘 메우지 못했는데 이번에 좀더 성장해서 돌아온 그는 그때와 달리 믿음직스러웠다. 결국 No.1은 정성룡에게 주어졌고 그 역할을 잘 해냈다. 눈에 보이는 선방도 많았지만, 축구인들이 그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것은 바로 월드컵에서 No.1의 부담감을 극복해냈다는 점에 있다. 비록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북한 다음으로 실점이 많았고 우루과이 전 실책이 있긴 했지만 그것들도 그의 활약을 깎아내릴 수 없었다. 월드컵 사나이 이운재의 조용한 퇴장이 아쉽긴 하지만 정성룡의 등장에 한국의 골문이 듬직하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동원, 석현준, 백승호, 김우홍. 분명 이들이 그 어떤 유망주들보다 기대된다는 점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설레발은 금물이다. 유망주 드립보면 이건 뭐... 월드컵 우승할 기세다.)
가만보면 한국은 인재가 참 많은 나라다. 선수 개개인으로 봤을 땐 이미 아시아 최강임에 틀림없고 더 놀라운 점은 앞으로 더 뛰어난 선수들이 반드시 등장하게 된다는 전망이다. 2002 월드컵을 전후로 한국은 꾸준히 우수한 축구환경 조성과 유망주 육성에 힘쓰고 있으며 현재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쌍용의 등장만 봐도 이 대목을 증명할 수 있다. 이외에도 19세에 K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지동원, 네덜란드 명문팀 아약스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석현준,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우홍과 백승호 등등 엄청난 잠재력의 선수들이 축구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설레발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분명 또래에 비해 우월한 선수들이긴 하지만 사람 앞날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고 지나친 기대로 보이지 않는 거품이 존재하는 법이다. 이들을 벌써부터 낮추려는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좀더 오래 지켜보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유망주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다.(개인적으로 브라질에서 활약한 임규혁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펠레의 저주를 받은 탓인지 현실은 한 대학의 평범한 선수로 전락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주위의 기대를 극복하지 못하며 생긴 악순환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축구 선진국이 아니다. 선수들을 존중하지도 못하는데 유망주들에겐 더 서투르다. 필자도 이들의 미래가 기대는 되지만 현재로선 그저 유망주 중 하나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봐선 이들 중 한명이라도 박지성 정도만(?) 커줘도 본전 그 이상이다. 그나마 다행이고 고마운 점은 이렇게라도 기대하게 해주는 유망주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대표 경쟁률만 봐면 한국은 아시아의 브라질이다. (중국에선 메시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밭일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들은 축구 안 한다.)
③ 드디어 국내 감독의 시대가 오다.
(히딩크 이후 한국대표팀의 외국인 감독들. 결과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 했다.)
2001년 이후 첫 국내 감독 선임. 그리고 국내 감독 최초 월드컵 16강 진출. 차기 감독에 국내 감독 조광래 선임. 히딩크에 힘입은 외국인 감독의 시대가 지나고 드디어 국내 감독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동안 한국축구는 히딩크라는 성공 사례로 지나치게 외국인 감독에게 의지해왔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이들은 감독으로써 한국축구를 위해 노력했다는 건 당연하겠지만 만족스러웠나? 한명씩 따져봐도 그렇지 않다. 코엘류의 경우 축구협회의 농간으로 가장 불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선수들에 대한 카리스마가 너무 부족했고 2002년 4강 신화의 영광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만 쇼크, 몰디브 쇼크라는 굴욕은 도저히 참고 보기 힘들었다. 본프레레의 경우 이동국 갱생과 독일전 승리는 인정하겠지만 여러가지로 우스운 괴짜 감독에 가까웠다. 적어도 아드보카트는 짧은 시간동안 좋은 분위기와 내용을 보여주긴 했지만 강팀을 상대로 결과가 흐지부지했다는 점은 피해갈 수 없다. 두차례 월드컵 기간동안 대표팀의 코치로 지냈던 베어백은 막상 대표팀 감독이 되자 지나치게 딱딱한 축구를 보여주었다. 물론 아시안컵 3위에 오르긴 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믿기 힘들 수준이다. 그래서 알아서 자진사퇴하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히딩크를 제외하고 성공했던 외국인 감독은 없다.
(힘들게 국내 감독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부디 편견을 깨고 좋은 시선으로 지켜보자.)
사실 허정무가 선임될 수 있었던 과정을 살펴보면 그 당시에도 외국인 감독이 대세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국을 원하는 감독이 없었고 일을 서투르게 진행하던 축구협회는 당시 성적이 무난했던 허정무를 선임했으니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다행히 허정무도 이에 대해 남다른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국내 감독은 뭔가 부족하다는 편견,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고 밀고 싶습니다." 그렇다. 사실 마땅한 국내 감독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보여도 그건 옳지 못한 생각이다. 국내 감독에게 기회를 줘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말 그대로 국내 감독이기 때문이다. 우수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면 대표팀 성적은 좋아질지 몰라도 국내 축구 발전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한국축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우리 지도자들의 발전도 필수적이다. 좋은 지도자가 좋은 선수를 배출하는 법이다. 적어도 국내 감독의 경우는 몇몇 우수한 해외파 선수들을 제외하면 K리그 우선이다. 앞서 말했듯 외국인 감독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 이유가 시야가 더 좁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K리그 상위권 선수 위주로 뽑거나 주위의 추천 선수 위주로 뽑는 것이다. 반면 국내 감독의 경우 오랜 시간 국내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훨씬 더 많은 선수들을 알고 있다. 또한 의사소통 면에선 단연 국내 감독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분명 능력면에서는 외국인 감독이 낫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막 월드컵이 끝난 현재 장기적인 안목에선 오히려 국내 감독이 적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국내 감독들이 월드컵에서 실패하긴 했지만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이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축구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전세계가 다 그렇겠지만 유독 한국은 대표팀 감독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인정사정없이 무시하거나 음모론을 제기하는 등 별 모습을 다 보여주는데 화나는 건 알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많다. 지금같은 분위기에선 장담하는데 무링요가 와도 한번 못 하면 기다리지 못 하고 비난을 가할텐데 하물며 국내감독에겐 오죽하겠는가? 한국은 그런 곳이다. 부디 감독이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지켜보자. 그렇게 욕먹던 허정무도 결국 보답하지 않았는가. 이번에 선임된 조광래 감독은 한국의 아르센 벵거라고 불릴 정도로 유망주 육성에 알아주는 감독이다. 이번에 기존의 선수들과 다른 새로운 선수들을 많이 실험할 듯 하니 제발 한번 못했다고 인맥이나 음모론 같은 같잖은 루머로 상처주지 말자. 한국축구를 위해서라면 쓴 소리보단 따뜻한 소리도 필요한 법이다. 어쩔 땐 저런 것도 국민이라고 기쁨 줄려고 뛰는 선수들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나라를 위해 힘들게 뛰는데 프로라고 못하면 까도 된다는 얕은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들도 인간이니 적어도 기본적인 존중은 해주자는 얘기다.
④ 드디어 K리그가 살아나고 있다.
(니들이 말한 위기의 K리그에 고작 6만명 왔다. 이 언론놈들아)
이번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2010 K리그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5월 5일 K리그 서울과 성남의 경기에서 6만747명이 들어서며 K리그 역대 최다관중을 넘어 프로스포츠 최고 기록으로 6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물론 어린이날 특혜를 본 덕분도 있지만 깜짝 효과가 아니라 이번 K리그의 몇 구장을 제외하고 연일 만원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월드컵에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축구 대표팀이었지만 정작 K리그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었다. 물론 98 월드컵 이후 월드컵이 속한 해마다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반짝' 열기에 불과했다. 그랬던 K리그가 이제는 정말로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계속 이어져온 K리그를 살리려는 축구인들의 노력과 성숙해지고 있는 팬들에 힙입어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기형적인 시스템을 가진 국가였다. 자국리그에 대한 관심은 없으면서 대표팀에만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모순적인 현상인데 이는 분명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자국리그가 살아야 대표팀이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는 법이다. 이는 더이상 설명할 수 없는 진리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자국리그에 등돌리고 유럽축구에만 열광하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축구팬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웠다. 물론 팬들에겐 그들 자신이 원하는 팀을 응원하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서로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부분에 대해 말을 시작하면 끝도 없는 법이니 넘어가자. 안목있는 축구팬들이라면 아직도 K리그는 재미없다는 청동기 시대 얘기를 들먹이지 않을 것이다.
(이 두 사진은 같은 날 경기의 장면다. 중요한 건 위의 사진은 언론이 보도한 장면이며 아래 사진은 팬들이 찍은 사진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최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언론이 만들어낸 K리그 위기이다. 그동안 이런 소식을 참 많이 접했을 것이다. 'K리그 위기', '썰렁한 관중열기'. 물론 그랬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현재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언론들의 조작이다. 그들은 유독 관중이 적은 쪽을 화면으로 내보내온 것이 축구팬들에게 적발된 것이다. 분명 만명 관중이 들어왔음에도 축구는 위기고 야구는 흥행이란다. 도대체 자국 리그에 무슨 개수작인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무개념 기자들은 축구팬의 논리적인 반박에 까불지 말라고 답변해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게 언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겠지만 언론의 조작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는 건 분명하다. K리그를 더 아껴도 부족할 판에 그들의 행동은 도저히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단지 중계로 제 값을 못 챙겨 화풀이하는 건지 삐뚤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분명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제대로 보도해줘야 한다.
(서로는 아니라고 우기지만 아무리 봐도 K리그 최고의 라이벌, 수원과 서울의 팬이 함께 맨유 방한 당시)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우리가 K리그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리그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물론 답답하게 억지로 보라고까지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 관심도 없으면서 무조건 무시하는 답답한 행동은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우리라고 유럽축구가 수준높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 우리 팀, 우리 선수, 우리가 주는 상황의 감동 등등. 그것만으로 우리는 사소한 것에 열광한다. 경기의 질에 현혹되어 늦은 시간까지 멀고도 먼 곳의 남의 축구만 쳐다보는 것도 힘들고 지친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가까운 곳에 우리의 축구는 계속고 있다. 비록 월드컵은 끝났지만 우리의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4년을 기다리지 않아도, 1년 365일 내내 우리의 가까운 곳엔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 있다. 축구 그 이상의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그 곳으로 가보자. 현회 형님이 말했다. '유럽 축구가 만질 수 없는 잘 빠진 야동 여배우라면 K-리그는 손잡고 입 맞출 수 있는 사랑스러운 내 여자 친구다. 비교할 걸 비교하라.' 그렇다. 부족하긴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그것마저 사랑스러운, 그게 K리그의 매력이다.
9. 그 어느 때보다도 말 많았던 우리 감독, 인간 허정무를 보내며...
(그의 마지막 경기 우루과이 전에서 느꼈던 '인간' 허정무)
2008년 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허정무의 길고도 길었던 2년 6개월동 대표팀 감독 세월이 끝났다. 사실 한국 대표팀 역대 감독들의 임기 기간을 살펴보면 대부분 2년을 못 넘기는 지라 허정무는 제법 길었다고 볼 수 있겠다. 자, 정리해보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허정무 호의 여정을 차례대로 설명해야 할까, 허정무의 인생에 대해 알아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는지만 쉽게 떠오르질 않는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허정무의 히딩크 발언이 논란을 일으켰다. "히딩크가 한국축구를 말아먹었다." 예상대로 파장은 엄청났다. 그는 16강 진출을 통해 얻은 까(임)방(지)권을 모두 날렸다. 후에 밝혀졌지만 이는 한 월간지의 허위보도로 드러났다. 물론 허정무가 오해할 발언을 하기도 했고 보도가 잘못됐음을 밝혔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그에게 등돌렸다. '이번에도' 언론과 팬으로부터 그는 외면을 받는 큰 상처를 입었다. '이번에도'라... 그렇다. 허정무는 역대 그 어느 감독보다 주위로부터 시달렸던 감독이다. 그렇다면 허정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다루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이보다 그에게 더 걸맞는 주제도 없을 듯 하다.
(허정무, 그를 보면서 항상 동네 옆집 아저씨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범해보이면서도 과감했다.)
이러한 그에 대한 비관적 시선은 시작부터 존재했다. 그는 2001년 이후 첫 대표팀 국내 감독이었고 그의 능력은 많은 의심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 외국인 감독만을 원하고 국내 감독들은 뭔가 부족하다는 선입견과 그를 둘러싼 여러가지 편견들. 대표팀 감독이라는 영광 뒤에 이러한 것들은 그가 짊어지고 가야할 과제이기도 했다. 이에 그는 책임감을 느끼며 "내 인생 전부를 건 마지막 도전"이라는 당찬 포부를 던졌다. 실로 역대 감독들 중 가장 다부진 발언이었다.
(막장의 안드로메다 시절.jpg)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이미지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과야 그렇다 쳐도 실망을 안겨준 경기력과 오해를 부른 언론 플레이, 그가 꾸준히 기용하는 선수들의 부진 등등 이러한 것들이 섞이며 갖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부족한 점이 많기에 비판은 확실히 받을 만했고 그 역시 계속해서 수정해나갔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이미 삐뚤어진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잘 나가다가도 된통 깨질 때가 있으면 공격 대상은 항상 허정무였다. 그중 가장 하이라이트가 올해 초 전지 훈련과 2010 동아시아 대회이다. 2010년 초에 국내 선수들을 위주로 남아공 견학을 다녀왔는데 이때 첫 경기에서 잠비아에게 4-2로 크게 혼쭐난 적이 있다. 문제는 잠비아라는 나라는 '듣보잡'에 가까웠고 워낙 답답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한달 후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 대회에서는 절정이었다. 첫 경기 홍콩 전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좋게 출발하는 듯 했으나 다음 경기 중국 전에서 0-3 완패를 당하고 만 것. 그동안 한국축구는 중국과의 대결에서 (공식 기록으로) 32년동안 무패 기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경기에선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참으로 굴욕적인 날이었다. 워낙 허무하게 진 탓에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체험을 안겨준 경기였다. 이날 경기 이후 대표팀 수비는 월드컵 직전까지 '자동문'의 오명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축구가 이렇게 쉽게 중국에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려준 허정무는 평생까임권을 확보했다.
(한국이 반드시 잡아야 했던 경기들 or 박지성 위엄.jpg)
그래도 허정무를 높게 평가해줘야 할 점은 위의 사진에서 보는대로 놓쳐서는 안 될 경기를 반드시 잡아줬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이 힘을 못 썼던 중동 원정에서 사우디 전에 19년 만에 승리를 거두었고 패색이 짙던 이란 전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한일 전이다. 잘 아시겠지만 인정하기 싫지만 최고의 라이벌 전인 한일 전은 감독의 수명이 걸린 경기이다. 특히 2010년 2월 동아시아 대회에서 한일 전 역사상 유례없는 '경질 더비'가 치뤄졌는데 양팀 감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었다. 중국 전에서 정신을 놓았던 한국이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경기력보단 정신력으로 3-1 승리를 이끈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월드컵을 앞두고 최상의 전력으로 치뤄지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모았던 5월 한일 전에선 2-0 통쾌한 완승을 거두었다. 허정무 호는 역대 한일 전 3전 2승 1무를 자랑하는데 비록 친선경기이긴 하지만 이러한 한일 전 무패는 허정무의 수명 연장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경기이기도 하다. 경질 더비 땐 이겨도 ㅈㄹ인 상황이었는데 졌으면 반응은 불 보듯 뻔 했다. 무엇보다 축구인들이 허정무를 월드컵에서 칭찬한 대목은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쉽게 예를 들어 2006 월드컵 때를 생각해보자. 당시 한국은 토고에게 승리를 거두고 프랑스를 상대로 힘겹게 무승부를 거두며 16강 진출을 낙관했으나 스위스에게 패하며 1승 1무 1패를 거두고도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제 이번 월드컵으로 살펴보자. 같은 성적이었나 이번엔 16강에 진출하였다. 이것은 운도 작용했지만 상대를 적절하게 대처했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첫 경기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했던 토고 전과 그리스 전에 승리한 점은 같다. 이후 2006년 당시엔 프랑스를 힘들게 잡고도 정작 스위스에게 패한 것이 실패 요인이었는데 바로 여기서 차이가 났다. 이번엔 아르헨티나 전은 거의 버리다시피 했고 나이지리아 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이 16강 진출로 적중했다. 예상대로 아르헨티나가 3승으로 아르헨티나 전의 패배가 그나마 한국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아르헨티나 전을 버린 건 아니지만 괜히 무리하게 힘뺐다가 나이지리아 전에 무너지는 것보다 훨씬 좋은 전략이었다. (이후 한국은 토너먼트에서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쉬워보이는 대진을 받게 된다. 비록 우루과이에게 패하며 의미없게 됐지만 1위 아르헨티나가 더 힘들게 된 순간으로 잠시 허정무 명장설이 떠돌았다.) 실제로 월드컵 조추첨 이후 축구인들은 16강의 분수령을 나이지리아 전으로 뽑았다. 아르헨티나 전을 버리더라도 나이지리아는 반드시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 상황이 적중했다. 비록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하진 못 했지만 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무승부로 끝나며 한국이 16강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듯 허정무 감독은 적어도 반드시 잡아줘야 할 경기만큼은 잡아줬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상황을 두고 요즘 흥하는 말로 해보자. 효율 돋네.
(16강 진출 후 아이처럼 환호하는 허정무)
마침내 국내 감독 최초 월드컵 16강 진출. 국내 감독은 안 된다는 편견에 승리했다. 아직도 선수빨이라는 개념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주길 바란다. 역대 최강의 멤버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 내에서의 소리다. 한국은 무엇보다 '조직력'으로 승부했다. 선수 개개인으로 상대했을 때 한국이 이길 수 있는 팀은 기껏해야 그리스에 불과했다. 박지성, 이청용, 이영표 등과 같이 세계에서 통하는 선수가 제법 많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들도 분명 '한국팀'일 때 더욱 빛나는 선수들이다. 선수가 좋았다고 허정무의 노력을 깎아내리는데 제 아무리 우수한 선수들이라도 감독없이 팀을 이끌 수는 없는 법이다. 이는 이번 대회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유감없이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선수들만 봤을 때 이들이 우리보다 꿀릴 면은 전혀 없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허정무는 대표팀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 선수들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단합했고 조화로웠다. 이는 히딩크를 제외하고 그동안 외국인 감독들에게 부족했고 실패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확실히 허정무가 화술에 미숙하긴 하지만 루머에서 비롯된 팬들의 잘못된 편견이 더 크다.
우루과이 전 후 자신보다 선수들을 먼저 챙기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제부터 허정무의 심리전과 언론플레이에 대해 언급해볼텐데 현재 떠돌고 있는 루머와는 많이 다를테니 부디 오해없이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다 읽고 따져도 안 늦다. 우선 월드컵에서 그리스 전 후 허정무는 승리의 공을 겸손하게 선수들에게 돌렸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 해줬고 저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이게 쉬운 듯 하면서도 자신을 낮춰야 하기 때문에 고생한 본인 입장에선 어려운 말일 수 있는데 달라진 허정무는 지도자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선수탓 한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심리전엔 정답이 없다. 허정무는 실수를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하는 경향이 있지만 뒤에선 선수들과 소통하고 토닥거리며 격려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무조건 감싼다고 좋은 지도자라는 건 아니다. 아쉬운 점 있는데 말도 못 하나? 오히려 이를 적절히 말해줄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몇번 지적했다고 선수탓 한다고 단정짓는 시선이 오히려 더 생각이 짧다. 허정무의 화술과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잘 맞지 않아 오해가 많은데 그의 답답해보이는 심리전과 언론플레이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엔 정석이 있지만 정답은 없다. 올해 초 전지훈련부터 계속 이동국을 비판한 것은 히딩크의 '안정환 길들이기'처럼 그를 자극해서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허정무에겐 그만의 심리전이 있는 법이다. 심리전의 대가 히딩크도 부진할 당시 워낙 당돌한 발언을 해서 많은 의심을 샀고 언론플레이의 대가 무링요도 성적이 부진할 때면 입만 살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만큼 발언자를 둘러싼 상황이 그 발언에 영향을 끼치는 법인데 허정무에 대한 편견과 루머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허정무는 어떤 말을 해도 꼬투리 잡히고 있다. 사람 이미지가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상황인데 참 안타깝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의 현재는 달라졌지만 과거가 밝지 않았고 전부 그의 발언에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었으니 이러한 상황이 초래되었으니 말이다. 이정도 상황에 이르렀으면 그냥 마음비우고 욕 많이 먹었으니 장수할 거라는 기분으로 살아야 할 듯하다. 왜 이렇게 허정무를 감싸느냐는 시선도 있을테다. 하지만 대표팀 감독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욕을 먹어야 하는 그의 처지가 안타까웠을 뿐이다. 깔 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감싸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필자는 허정무 감독을 대놓고 격려해주고 싶었다. 한국 대표팀 사령탑이 괜히 독이 든 성배가 아니다. 부디 조광래 감독이 괜한 미움을 안 샀으면 하는 바람이다.
히딩크와 허정무의 공통점은 그들 자신의 길, '마이 웨이'를 걷는다는 점이다. 주위의 개입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나아간다. 같은 신념으로 행동 해도 히딩크가 하면 명장이고, 허정무가 하면 똥고집이라 하니 그야말로 선입견이라는 게 정말로 무섭고 그만큼 이미지라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 역시 히딩크를 더 존경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허정무가 더 정이 간다. 2년 6개월이라는 세월동안 독이 든 성배를 끝까지 들이켜 원정 첫 16강이라는 목표를 당당히 이뤄냈고, 무엇보다 그의 도전 정신과 발전적인 모습은 성적보다 더욱 쏠쏠한 볼거리였다. 물론, 허정무에게 부족한 점도 많지만(없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그는 책임을 가고 최선을 다했다. 부디 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버리고 따뜻한 박수를 쳐줬으면 좋겠다. 히딩크처럼 허정무도 까방권을 받을 자격이 있다.
장장 2년 6개월이라는 길고도 짧게 느껴졌던 세월동안 오랜만에 진화하는 한국축구를 목격했고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남아공에서 당당히 포효한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축구를 볼 수 있어 6월 한달이 덧없이 행복했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쑥스럽지만 이만 줄여볼까 합니다.
한국축구.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사진 출저 - SBS 월드컵 특집 방송, 각종 언론 매체(최대한 로고 표시)
다음 카페 'I LOVE SOCCER'의 '박지성이영표시절' 님(움짤) 등
읽어주셨으면 좋은 답변 달아주시면 합니다.
그것만으로 저는 살아가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치우폐인 -
월드컵 ㅂㅂ, 우수 블로거 선정
치우폐인의 축구 이야기
http://blog.daum.net/chiwoopyein
첫댓글 재밌었음
오랜만에 정도했네요 ㅋㅋ 좋았어요
ㄷ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