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시기 전에 :
물론 때로는 박지성의 국대차출을 반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기도 합니다만,
이건 '왜 월드컵을 제외한 모든 A매치에는 항상 박지성 차출 불가론이 나오느냐' 는
일반적인 경향을 놓고 쓴 글이기 때문에,
자기는 절대 무턱대고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이 글을 읽고 화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남 얘기니까요.

한국 월드컵 4강 → 우리는 세계 수준의 강팀인가봐! 이제 탈아시아!
→ 그러니까 그까짓 아시아에서 우승하든 말든
대강 이런 식으로들 생각하죠. 여기에 시점을 2002년 이후까지 늘려보면...
박지성 맨유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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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언론, 팬들이 박지성의 활약을 보도하고, 번역사이트에서 박지성을 칭찬하는 덧글을 퍼오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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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에 관심없었던 유럽인들의 반응에 애국심(으로 착각하고 있는 허영심)철철 넘치는 팬들이 흥분함 (위대하신 유럽느님들께서 감히 미천한 이 한국축구를 칭찬해주시다니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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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나머지 박지성의 위상을 한국축구의 위상으로 착각하고, 나아가 축구팬인 자신들의 위상과 동일시하기 시작함 (섣부른 망상... 스테보가 한국에서 30골을 넣은들 마케도니아 축구 수준이 올라갔다고 생각할 사람이 거의 없듯이 유럽인들이 타국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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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아시안컵? 고귀하신 유럽축구팬느님들께서 쳐다봐주시지도 않는 미천한 대회 따위에 박지성을 함부로 쓸 수 없지! 그까짓 지방대회는 유럽진출도 못한 2류 아시아용 선수들이나 나가렴!
속마음은 이런데도 입으로는 아시안컵은 중요하지만 박지성의 입장이 박지성의 몸상태가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국대차출을 거부할 핑계를 댑니다. 정작 박지성은 국대에서 뛰고 싶어하는데도 박지성의 마음을 무시한 채, 박지성을 이용해 자기 허영심을 채우는 데만 급급하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미 맨유에서 5년을 뛰며 터줏대감이 된 박지성이 기꺼이 아시안컵에 나가겠다는데도, 박지성이 아시안컵으로 리그에서 결장하면 팀내 입지가 떨어질까봐 안절부절합니다. 팀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닌 이상 부상이나 슬럼프, 국대 차출 등으로 팀에서의 입지가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 선수는 거의 없는데도, 박지성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탐욕덩어리들은 박지성이 1년 365일 자신들의 허영심만을 만족시켜주기를 바라며, 박지성의 의사를 무시하고, 관심과 응원을 가장해 박지성의 등에 매서운 채찍을 휘갈기고 있죠.
그들이 좋아하는 건 '맨유의 박지성' 일 뿐, '그냥 축구선수 박지성' 이 아니기 때문에, 박지성을 맨유에 가둬두고만 싶어합니다. 설기현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잘 나갈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여론을 비교해보면 유럽파 선수들의 팬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허영과 탐욕으로만 선수를 지지하고 있을 뿐, 언제든지 가면을 바꿔쓰고 안티가 될 준비가 되어있는 거죠. 화내지 마세요. 유럽파 선수의 팬덤 전부를 까는 건 아니니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나머지 소수의 진정한 팬이라고 생각하시면 그만입니다.
어쨌든 이미 맨유>아시안컵이라는 그릇된 전제가 머릿속에 콱 박혀있지만 사실은 자기들 스스로도 그런 사고방식이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지, 월드컵 본선이나 최종예선을 제외한 모든 A매치에 박지성의 차출을 반대하는 이유를 대놓고 말하기보단 갖은 핑계를 다 대죠. 그런데 그 핑계들을 쭉 늘어놓으면 어떻게 보이냐면요,
박지성이 잘 안나갈 때 → 가뜩이나 팀내 입지도 좋지 않은데 국대차출로 감독의 눈 밖에 날 것이다
박지성이 잘 나갈 때 → 한창 잘나가고 입지를 굳히고 있는데 국대차출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면 어쩌나박지성의 몸상태가 안좋을 때 국대차출→혹사다!
박지성의 몸상태가 안좋을 때 맨유 선발출장 풀타임→위아더월드!시즌 중 차출 → 시즌 중 장거리 이동으로 컨디션이 무너지면 어쩌나, 결장으로 입지 흔들
오프시즌 차출 → 오프시즌에 경기 뛰어서 컨디션이 무너지거나, 팀훈련을 소화하지 못해 입지가 흔들
이도저도 안 되면 마지막 카드.
'때로는 박지성 없는 경기도 경험해봐야 할 것 아니냐!'
실제로는 이미 충분히 경험해보고 있습니다만...
이런 식이라면 1년 365일 언제든지 박지성의 차출을 거부할 (정작 박지성은 마음에도 없는)명분들이 완성되는 거죠. 물론 월드컵과 월드컵 최종예선은 예외입니다. 월드컵이야 황송하게도 유럽느님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대회고, 최종예선은 그 월드컵에 가기 위한 쉽지 않은 관문이니까.
그나마 무개념 취급 받긴 싫어서 입으로야 '물론 아시안컵은 큰 대회지만...'이라고 대충 때운 다음 온갖 핑계를 대지만, 만약 그들이 포르투갈인이고, 유로컵이 시즌중에 열리고, 나니가 유로대회 차출로 맨유를 비우게 되어도 똑같은 소릴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는 게 아니라 사실은 어떻게 나올지 아주 잘 알겠지만요.
박지성 입지 흔들, 그놈의 팀내 입지, 입지... 박지성 축구인생의 목표가 맨유에서 팀내 위치 다지기인가요? 박지성은 맨유에서 팀내 입지를 굳히기 위해 태어났나요? 박지성이 나중에 은퇴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 때, '맨유에서 팀내 입지를 굳힌 선수'로 남는 게 좋을까요, '아시안컵 우승의 주인공' 으로 남는 게 좋을까요? 한국축구 입장에서도 봅시다. '맨유에서 성공한 선수를 보유한 국가' 가 좋을까요, '대륙컵 챔피언'이 좋을까요? 박지성 개인에게 있어 뭐가 더 큰 목표고, 한국축구에 있어 뭐가 더 큰 목표일까요?
박지성은 결코 맨유에서 뛰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안주할 남자가 아니죠. 그는 항상 새로운 목표를 갖고 정진하며 새로운 꿈을 찾아나서는 도전적인 선수입니다. 이번에는 아시안컵 우승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박지성이 꿈을 꾸는 것도, 도전을 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들이 원하는 길로만 달려가길 원하죠.
만화가로 예를 들어볼까요? 박지성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개그만화가(맨유선수)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실주의 만화(아시안컵)가 그리고 싶어졌어요. 사실주의 만화를 그리겠다(아시아 우승컵을 갖고 싶다)고 선언하고 자료를 찾아나섰습니다. 그러나 팬들은 '안돼! 그런 만화 그려봤자 세계의 팬들은 알아주지도 않아! 유머감각이 떨어져버리면(부상이나 컨디션 떨어져서 맨유 입지 흔들리면) 어쩌려고! 넌 우릴 '박지성이 태어난 나라의 사람들'이라는 우월감에 젖게 하기 위해 개그만화(맨유)만 그려야 해!' 라며 박지성을 떠밀어 돌려보냅니다. 이게 정상으로 보이진 않죠? 미쳤죠?

자기 자신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 축구 자체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박지성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의 패션으로써, 허영심을 충족시키고 남들 앞에 으스대기 위한 패션 아이템으로써 축구팬이란 옷을 걸치고 있을 뿐이죠.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K리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비웃음을 당했다는 경험담을 수도 없이 들어봤습니다. 그냥 서로의 취향으로써 존중하면 될 것을 가지고 비웃고 손가락질한다는 건 K리그가 '촌스런 패션' 이라고 생각하는 심리죠. 어떤 리그를 보고 어떤 팀과 선수를 응원해야 우월하고 간지가 날 지를 신경쓰다보니까, 대개는 세계 최고의 수준높은 리그와 거기서 뛰는 선수를 선택하게 되는 거고, 진짜 내 팀을 응원하는 재미를 완전히 알지는 못하죠. (물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유럽축구팬들이 사실은 그런 재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적이고 일반적인 경향을 말한 것 뿐입니다)
물론 패션으로써 축구를 즐긴다고 해도 그게 수준낮은 짓이라고 비난할 마음은 없습니다. 어차피 아무리 열성적인 축구팬이든, 경기장에 매번 가는 서포터즈든간에 그건 그냥 공놀이 취미활동일 뿐이니까요. 선수들에겐 인생이지만 우리에겐 그저 오락행위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축구팬이든 얼빠축구팬이든 골수서포터즈든 수준은 다 똑같은 사람들이죠.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어떤 축구팬인지에 대해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얼빠축구팬이라고 해도 자기가 얼빠(비하하는 의미가 아님)라는 점을 자각하고만 있다면 오히려 보통의 축구팬들보다 훨씬 개념있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바라는 게 진정 무엇인지 자각도 하지 못하고, 자기 욕망을 솔직히 인정하지 못하고 '박지성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그때그때 다른 논리를 끼워다 맞추면서 박지성을 맨유만을 위한 선수로 만들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딘가에선 이런 우스꽝스러운 논리도 봤습니다.
'박지성은 슈퍼스타이기 때문에
아시아의 상대 선수들이 박지성을 집중적으로 마크하고 태클해서 부상을 입힐지도 모른다.
조광래 감독은 아시안컵 우승에만 목을 매지 말고 박지성 개인을 배려한 선수 기용을 하라'
이건 완전히 박지성에 눈이 멀었다고밖에 볼 수 없죠.
한국 축구대표팀의 전술과 선수기용이 박지성 개인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좌우되어야 한다니.
이 정도면 종교죠. 맹목적인 종교.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박지성이 뛰고 싶다는 대회에 왜 뛰지 말라면서 땡깡을 피우는지 모르겠어요. 박지성 안티인가요? 박지성의 몸을 걱정하는 것은 헛되이 체력과 컨디션을 낭비하지 말고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해주길 바라서겠죠? 근데 아시안컵보다 중요한 경기는 월드컵밖에 없겠죠. 백번 양보해 굳이 더 들자면 리그 우승이 걸린 경기나 챔피언스리그 결승 정도나 돼야죠. (K리그 구단들이 플레이오프,챔결이 남아있는데도 아시안게임 차출에 거부감을 보이지 않은 건 유망주들의 병역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이죠)
위대한 맨유의 위대하신 리오 퍼디난드님이 황송하옵게도 한국인인 박지성과 친하게 지내주시는 것도 모자라 한국 초코파이 맛있다고 먹어주니까 한국축구팬들까지 영광스럽고 황송해서 껌뻑껌뻑 넘어가는 건 뭐라 안 하겠는데, 그게 정말 아시안컵 우승보다 영광스러운가요?
첫댓글 분명 박지성이 이번 대회 꼭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을탠데... 흠 이해안가요 자기가 머길래 선수 차출하지 말라 그러는지
박지성이 뛰고 싶다는데.. 무슨 박지성 생각하는듯이 말하기는... 근데 얼빠 축구팬은 머에요?
얼굴빠..겠죠? ㅋㅋ
얼빠진 팬?
소위 선진국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민감한것같음;
그런 사람들은 애국자라기보단 오히려 평소에 우리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항상 열등감과 부끄러움에 휩싸여있는 부류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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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추접한 습성임~ 우리 스스로에 대해 모르고 자신감이 없으니 그런 추한 생각을 갖게 되는듯.....
그게 좀 마음이 불편한 통계가 있더라구요....식민지생활(?)을 겪은 국가들이 남의 시선을 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많다네요...핀란드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어디 블로그에서 그래프와 통계자료와 전문가 의견을 써놓은걸 오래전에 본적이 있는데...스크랩이라도 해둘걸 아쉽네요...ㅠㅠ 요즘에 찾고 있긴했는데...하도 박지성 차출로 말이 많아서-_-
참 와닿는 얘기네요.. 일제가 심어준 열등감인지..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박지성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죠..
오오오 글 진짜 잘썼다 오오 오~ 잘읽었습니다!
내가 어이없는게, 유럽파 없이 국내파로 경기뛰면 이래서 유럽서 뛰는 박지성이 필요해 이러면서 막상 부르려고 하면 뭐 박지성까지 부를 필요 있나 이러고 앉았음. 한 두번 보는게 아님. 싫으면 본인이 거절하겠지. 본인이 오겠다는데
후련한 글이네요. 많이 공감합니다.
잘썻네요ㅋㅋ공감합니다.
진짜 공감 개공감 아오 내가 하고싶던 말이 이거임
정석이네요 이게.
스크랩글 보고 원글에 리플답니다. 시원하네요 ㅎㅎㅎ 첫문단 읽자마자 이거 영표형슛님 문체인데? 생각했다는 ㅎㅎ
역사에 남을 명문입니다.
그래도 아시안컵같은 허접 동네대회에 大맨유의 지성느님이 왜 나가야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소 귀에 경읽기일듯...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