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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하게 자기 일 잘했던 선수로 남고 싶다. 너무 튀는 것보단 그냥 '이을용이다' 라고 하면 성실하고 책임감 강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강원에서의 생활? 기억에 남는 게 정말 많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5연패, 6연패 그 이상은 그 어디에서도 못 해봤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도 겪어봤다. 역경도 많았지만 강원FC라는 고향팀, 그 이름만으로도 참 편안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도민들의 사랑을 분에 넘치게 받았고 이제는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려고 한다.
지난 2주 동안 강원, 그리고 강릉은 참으로 분주했습니다.
당신의 은퇴식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지요.
우리들의 영웅, 강원의 아들, 영원한 캡틴.
시가지 곳곳에 은퇴 경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얼마 전, 택시 아저씨가 현수막을 보며 그러더군요.
강원의 성적이 떨어지면서 관심도, 정도 떨어진 게 사실인데
이을용, 당신의 은퇴식만은 꼭 가겠다고요.
평소와 비슷하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웜업.
다만 곳곳에 보이는 은퇴 기념 걸개와 구단에서 준비한 인터뷰 영상이
여느 경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요.
인터뷰 영상에는 노홍철, 박철민, 이동욱, 김선아 등 연예인들과 정몽준, 김정남 등 축구계 어르신들,
그리고 황선홍, 홍명보, 이운재, 김병지, 유상철, 박지성, 박주영, 기성용 등 함께 뛰었던 선후배 동료 선수들의
진심 어린, 애틋한 마지막 인사가 담겨있었고요.
경기 시작인 오후 3시가 다가왔고 이젠 선수로서의 마지막 입장.
각계의 인사들이 당신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 함께 자리했습니다.
은퇴를 기념한 감사패 증정과 기념 촬영이 있었고요.
모교 황지 중앙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선수들을 향해 외쳤던 "자, 가자 !"
이을용이라는 선수의 가치는
K리그 통산 290경기 13골 12도움이라는 기록보다
팀을 이끄는 존재, 그 자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그 외침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경기 시작 전부터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선수들은 참 열심히 뛰었다고 해요.
큰 형님 은퇴 경기인 오늘만큼은 기필코 이기려고 했다고 해요.
또, 세레머니도 준비한 만큼 꼭 골을 넣어야 했었다고 해요.
그 속에서 당신도 묵묵히 마지막 경기를 뛰었지요.
김상호 감독님이 언젠가 그러시더라고요.
을용 선수 창단 팀에 와서 정말 고생 많이 하고 있다고. 참 고맙다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직접 몸으로 뛰면서 보여줬다고.
한 선수의 헌신이 그동안의, 앞으로의 강원 구단 발전에 엄청난 도움을 줄 거라고.
최진철 코치님의 말씀도 떠오르네요.
근성? 정말 을용이만큼은 인정해요.
정말 팀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뛰는 모습, 악 쓰는 그 모습은
동료 선수들, 후배 선수들이 꼭 본받아야 할 모습이에요.
후반 9분,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골이 터졌습니다.
준비했던 세레머니를 볼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요.
김진용 선수를 필두로 을용타를 패러디한 세레머니가 펼쳐졌고
선수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당신에게 다가갔지요.
ⓒ GWFC
이후 공방전을 펼쳤던 두 팀의 경기에서 더 이상의 골은 나오지 않았고요.
종료 휘슬이 울린 후, 저기 벤치 뒤로 환호하는 남종현 대표이사님 보이시나요.
사실 최순호 前 감독님, 김원동 前 대표이사님 고별전은 결과가 좋지 못해 많이 아쉬웠는데
오늘은 득점 성공에 승리까지 거둬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여느 경기와 달리
오늘은 경기 후에 다시 선수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은퇴식.
영상에는 그동안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지요.
영상을 본 후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넬 때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목이 메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던 모습.
당신의 노고에 서포터즈 나르샤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감사패와 팬들이 손수 한 자 한 자 남긴 짧은 편지였지요.
그리고 운동장을 돌며
3년 동안 홈 경기장을 찾아와 열띤 응원을 보내줬던 팬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또, 서포터즈 나르샤 앞에서
경기 전에 내걸었던 댄스 타임 약속도 지켰습니다.
강원도 사람으로 강원에서 뛴 선수로, 그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로,
지지하는 팀을 떠나 당신은 모든 축구팬들에게 참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당신을 우린 잊지 않을 것이고요.
경기 후 마지막 인터뷰.
앞으로의 계획은.
- 내년 1월 초쯤 귀네슈 감독님이 계시는 터키 트라브존스포르로 떠나 지도자 연수를 받는다. 그곳에서 1년 안에 지도자 자격증 1급까지 취득할 생각이다. 명문 클럽들의 경기를 많이 보러 다니고 또 귀네슈 감독님 밑에서 많이 배울 생각이다. 목표로 잡은 건 1년이고 그 후의 일정은 1년 뒤에 다시 생각하겠다.
지도자로서의 롤 모델은.
- 이 질문이 바로 내가 터키로 가는 이유다. 롤 모델은 귀네슈 감독이다. 니폼니시 감독, 히딩크 감독을 거치면서 명장들은 저마다의 스타일과 철학이 있다는 걸 배웠다. 이 중 귀네슈 감독의 장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귀네슈 감독님과의 통화 중에 1년이 너무 짧지 않냐는 얘기도 들었고 본인이 있을 동안 얼마든지 있어도 된다고 하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90분 동안 뛰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
- 골 안 먹고 잘 버텨서 이겼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은퇴식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90분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후배들이 모여서 "형님 수고했습니다" 라고 했을 때야 실감이 났다. 참 뭉클했다. 내가 참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오늘은 마음이 많이 뭉클했다.
세레모니가 특별했다.
- 후배들이 2002년 월드컵 유니폼을 준비해서 특별한 추억을 남겨주려고 했던 것 같다. 정말 고맙고 영원히 잊지 못할 마지막 은퇴 경기를 했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더 뛰는 것은 어떠했나. 제의도 받았다고 들었다.
- 글쎄, 아직 K리그에도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님들이 경기를 뛰고 있다.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소화하니 지구력 같은 건 크게 뜰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순간 스피드나 점프력 같은 능력이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떨어지더라. 또 올해 몸이 괜찮다고 해서 내년에도 괜찮을 거란 보장이 없다. 처음에 왔을 때도 3년을 뛰며 팀이 어느 정도 안정된 궤도에 올랐을 때 떠나야 겠다라는 마음으로 왔고 조금 아쉽지만 지금이 딱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 월드컵 계기 이후로 팬들에 사랑을 많이 받았다. 고향팀에 와서 선수로 활약을 하고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가족들에게도 한 마디.
- 집 사람이 농담으로 앞으로 백수이니 하루에 세 끼는 못주고 두 끼만 준다고 하더라. 많이 수고했다고 그러더라. 운동하면서 부상도 많았고 그러면서 집 사람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젠 훌훌 털어버리고 애들하고 많이 놀아주라는 얘기를 하더라. 항상 미안하다.
아들이 아버지가 은퇴하니 좋다고 하던데.
- 난 아이들에게 늘 스쳐 가는 존재였다. 주말에 경기를 하고 일요일에 집에 들러 하룻밤 자고 또 월요일 아침에 강릉으로 올 때 첫째가 떨어지기 싫어서 막 운다. 난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잠만 자고 또 떠나는 그런 존재였다. 이제는 은퇴를 했으니 정말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 한다. 많은 사랑을 줘야 할 것 같다.
언젠가는 당신과도 헤어져야 하고 강원이라는 팀도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날이 이렇게 다가오고 나니 마음속 가득한 이 허전함과 아쉬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굿바이 캡틴, 굿바이 이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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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포에버 ㅠㅠ
강원 제1호레전드~~~
강원제1호레전드
좋은 자료 잘 봤습니다~ ^^ ㅎㅎ
멋진 지도자로 돌아오세요!
흑~아침부터 또 훌쩍~
정말 멋진 선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