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화평 전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이 15일 "(80년 광주의)
계엄군은 착검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복
진 <전남일보> 사진부 기자가 80년 5월 19일 촬영한 사진
에는 M16 자동소총에 대검을 꽂은 채 시민들을 쫓고 있는
공수부대원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붉은 색 원) 5.18
기념재단이 펴낸 <오월, 우리는 보았다 - 계속되는 오일팔
(1979.2.25-2004.5.18)>에서 발췌. ⓒ2005 신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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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밤 11시 40분, 문공장관 이규현은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계엄 확대가 발표되고 두 시간이 지난 후, 전남대와 조선대 캠퍼스에 특전사가 투입되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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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병사들은 마음껏 모든 가능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첫날부터 대검을 사용하였고, 지나친 폭력에 항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무지막지하게 구타하고, 여성들에게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였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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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아버지는 "저럴 수가 있느냐, 나는 일제 때에도 무서운 순사들도 많이 보고, 6.25 때 공산당도 겪었지만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저러는가. 죄가 있다고 해도 저럴 수는 없다. 저놈들은 국군이 아니라 사람의 탈을 쓴 악귀들이야." 하면서 통곡했다. 어느 중년의 사내는 "나는 월남전에는 참전해서 베트콩도 죽여봤지만 저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저런 식으로 죽일바엔 그냥 총으로 쏴 죽이지. 저 놈들은 죽여버려야 해" 하면서 오열을 터뜨렸다. 온 거리는 피의 강, 울음의 바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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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5월 19일에 저질러진 공수부대의 만행은 어찌나 잔인했던지 진압하러 나온 경찰조차 시민들에게 울먹이면서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공수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고 애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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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의 노인들이 공수대원의 폭력을 만류하자 그들은 노인들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쳤다. 노인들도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도망치며 바라본 시위 군중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일시에 돌아섰다. 그리고는 "좋다, 다 죽여라!" 하면서 공수부대에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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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 부근 전투에서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중이던 택시기사에게 공수대원이 부상자를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기사는 안타깝게 "당신이 보다시피 지금 곧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으로 운반해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호소하자 그 공수대원은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3명의 운전기사가 살해당했는데, 이는 다음날인 20일, 또 하나의 기폭제였던 차량시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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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에서 신역까지 도보로 이동하면서 아스팔트와 건물을 향해 사격을 실시한다. 트럭 위에서는 M60이 엄호사격을 하면서 한 발 한 발 신역을 향해 다가간다. 사병들을 향해 고함치기 시작했다. 후퇴는 없다. 후퇴하면 모두 쏴죽인다."
-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10일간의 항쟁> (사회평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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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오전 10시경 금남로에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시민들은 일단 정오까지 공수부대를 시외곽으로 철수시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약속한 정오가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후 1시 정각, 건물 외부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가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건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알리는 신호였다. 광주시민들을 몰살시키려는 것이었을까.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를 정면으로 맞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광주매일 정사 5.18 특별 취재반 <10일간의 항쟁> (사회평론,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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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22일 비공식적인 정전이 성사되고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시민 수습위원회와 신군부 사이에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계엄당국은 김대중을 광주폭동의 배후라고 발표했으며, 일부 특전사 지휘관들은 무력을 동원해 광주 '폭도들'을 '소탕'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황정일 역. <알려지지 않은 역사> (중앙 M&B, 1999),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인물과 사상, 2003)
첫댓글 전두환 더 살까봐 욕도 못 하겠다
아 진짜...소름돋아
전두환도 그렇고 계엄군들도 그렇고... 어떻게 사람이 그럴수가 있어... 저 글만 보면 계엄군들은 그냥 사람이 아니었던것같애 그냥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같애... 전두환의 명령? 그 명령때문에 무고한 시민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고 폭행을 행사하고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총구를 갔다댄건가..... 그냥 저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
시발 그러니까 전두환을 왜 풀어줬냐고ㅠㅠㅠㅠㅜ
전대갈이 살아 있는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보여줌ㅋㅋㅋㅋ......
밑에서 4번째 진짜 개빡친다
씨발 읽다가 욕이절로 튀어나왔네
하.....미친세상이따로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