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민주당 최초 '완벽한 반성문' 제출
'가뭄에 단비(?)' 같은 반성문
"고백합니다. 그것은 현직 대통령과의 갈등이 두렵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차기 대선에 대한 욕망 때문에 저는 몸을 사렸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작용을 대비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 전망과 비전을 갖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관료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지했습니다"
"<담대한 진보>의 길을 뚜벅뚜벅 걷겠습니다. 담대한 진보의 핵심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저의 정치 역정을 차근차근 되새김질한 결과 찾아낸 결론이자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저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최초로 민주당에서 가장 '완벽한 반성문'이 나왔다. 사실상 민주당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반성문이다.
|
|
민주당 상임고문이기도 한 정 의원은 이날 반성문에서 자신의 반성과 성찰이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참패함으로써 그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비통함과 자괴감으로 매주 참사 현장을 찾아 유가족들과 함께 했지만,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돌이켜보건대 국민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커 온 정치인이었지만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지 못 했고, 진심으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 했다"며 "지금 나의 정치는 그날 이후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민주정부를 지키지 못 했다. 10년 동안 국민이 키워주신 개혁과 진보의 힘을 빼앗긴 장본인"이라고 참회한 뒤, "이제부터는 진정성 있는 대안을 내놓고 실천함으로써 국민 앞에 반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소인배 논란'를 불러일으켰던 2009년 4월 전주 국회의원 재보선 출마 강행에 대해서도 "탈당과 무소속 출마로 많은 당원 동지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서 "당과 당원 앞에 엎드려 사죄드린다"며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다.
정동영과 민주정부의 실책, '전방위적' 반성·사과
그러나 정 의원의 이날 반성문에서 압권은 단연 과거 민주정부에 참여해서 국정운영을 담당했던 일원으로서의 실책과 과오에 대해 사과한 대목이었다. 그는 특히 노무현 정부의 한 주체로서 자신의 실책과 철학·용기의 부재에 대해 거침없이 반성문을 써내려 갔다.
그는 "당시 나는 충분히 국정의 기본방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그토록 갈망하던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지 못 했다"며 "결국 신념과 철학의 부족이었다. 국가를 경영할 만큼의 충분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정치적 용기, 그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에도, 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 못 했다. 모든 것을 걸고 대통령 앞에서 방향 전환을 주장하지도 못 했다"며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가 좌초당할 때 반기를 들지 못 했던 점,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을 비판하지 못 했던 점, 한미FTA 초고속 강행에도 심각한 검토와 고민 없이 비켜서 있었던 점 등을 예로 들었다.
부동산 정책·한나라당과 대연정·한미FTA 논란 '침묵' 반성
그는 "정권의 성패에 대해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걸고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못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것은 현직 대통령과의 갈등이 두렵고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차기 대선에 대한 욕망 때문에 몸을 사렸다"고 실토함으로써 반성의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는 "그 때문에 문제의식은 무뎌지고 치열함을 잃어 버렸다"며 "그 결과 국민의 지지와 관심이 소리없이 사그러들기 시작했음에도 당시에는 이마저도 깨닫지 못 했다"고 처절한 반성을 토해냈다.
한편 이날 반성문에서 정 의원은 김대중 정부 탄생 과정에서 외환위기 당시 IMF와 대통령 후보들 간에 있었던 비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정 의원은 당 대변인 자격으로 김대중 후보를 모시고 청와대에 갔었다.
그는 "1997년 12월 대선을 불과 몇 일 앞두고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이인제, 김대중 후보 등 대통령 후보들 간 긴급회동이 열렸는데, 대통령 후보들 앞에 IMF가 요구한 '각서'가 탁자 위에 놓여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각서는 당선되면 노동유연화, 정리해고를 지체없이 이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며 "우리는 그 서명을 피할 수 없었다. 당선과 동시에 IMF가 강제한 금융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 정리해고의 깃발을 들라는 강요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선서가 있던 날 김대중 대통령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 같다'며 눈물을 삼켰고, 그 눈물은 아마도 바로 그 강요된 각서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당시만 해도 나는 그 각서 한 장이 초래할 우리 사회의 재앙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바로 그 종이가 양극화 문서가 될 줄 미처 몰랐다"며 자책했다.
"IMF가 대통령 후보들에게 요구한 '각서'는 재앙, 양극화 문서"
그는 "그 결과 자유화,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유연화의 10년을 거치면서 비정규직은 850만명으로 늘어났고, 600만명의 자영업자와 400만명의 농민들이 몰락의 위기에 내몰렸으며, 400만 실업자가 집집마다 넘쳐나게 되었다"며 "나는 민주정부 10년의 모든 공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다. 97년 이후 양극화로 치달아 버린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 중의 하나"라고 참회의 심경을 쏟아냈다.
그는 특히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 했고, 그 부작용을 대비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 전망과 비전을 갖고 있지도 못 했다"며 "관료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도 내놓지 못 했다. 한마디로 무지했다"고 말해 향후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취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2007년 대선이 끝나고 불과 9개월 만에 터져 나온 미국의 금융위기를 바라보면서 신자유주의가 서서히 침몰하는 거대한 타이타닉호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국민이 준 '단독과반'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동과 삶의 현장에서 제기되는 고통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 했다"며 "참으로 부끄럽고 뼈아픈 실책이었다. 나는 그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 하다"고 말해 노동 문제에 대한 민주개혁세력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나는 2007년 대선에서 최악의 참패로 정권을 넘겨준 장본인"이라며 "그 날의 패배로 민주정부 10년의 기대와 성과는 새로 집권한 보수정권에 의해 부정되기 시작했다"고 더욱 몸을 낮췄다.
"저는 많이 부족한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그는 2007년 대선 패배에 대해 "대선 후보로서 준비가 부족했다.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했고 치밀하게 준비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 했다. 상대 후보의 흠집에 의존해 반대급부를 얻어 보려는 쉬운 길을 택했다"며 "패배의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고,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용서를 구했다.
정 의원은 또 그동안 반성과 성찰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때로는 모진 비판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그는 지난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길을 내다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진보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해 최근 자신이 주창하고 있는 '담대한 진보'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담대한 진보'의 길을 뚜벅뚜벅 걷겠다"며 이는 지금까지 자신의 정치 역정을 차근차근 되새김질한 결과 찾아낸 결론이자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담대한 진보의 핵심은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이라고 못 박은 그는 "누구나 복지를 이야기하지만 누구나 역동적 복지국가를 실현하지는 못 한다"며 "시혜적이고 잔여적인 복지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적극적인 진짜 복지'가 우리가 부여잡고 가야할 길이라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의 화두는 경제였지만, 지금 우리 국민은 아무리 경제지표가 좋아져도 나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하루 실감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담대한 진보와 연합정치로 '진보적 민주당' 만들고 싶다
그는 "<담대한 진보>에서 말하는 '담대한'이란 단순히 진보를 꾸미는 형용사가 아니다"며 "역사적 소심증을 벗어던지고 몽골기병처럼 빠르게 기동해서 당을 재무장하자는 것이며, 당의 강령에 '역동적 복지국가'를 적시함으로써 당의 색깔을 명백히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원과 함께 민주당을 '진보적 민주당'으로 변화시켜 이 꿈을 실현하고 싶다"고 말해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오늘의 '격차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 정책대안을 제시하여 민주·진보세력이 연합해서 새로운 정권을 창출해야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다"며 가치와 정책에 기반한 연합정치를 주장했다.
그는 "당과 당원들과 함께 '진보적 민주당'의 길을 가겠다. 다시 태어나고 다시 헌신하겠다"며 "나의 이런 마음을 진심으로 받아주고 헤아려주길 바란다"고 당부해 자신의 반성문이 전당대회를 앞둔 일회성 멘트가 아니라 진심을 담았음을 호소했다.
그는 이번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앞으로는 담대한 진보(역동적 복지국가)와 연합정치 등에 대한 자신의 구상과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동영 이어 '후속 반성문' 기대
이날 정 의원의 반성문은 내용으로 보나 수위로 보나 그동안 개혁 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진보진영이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요구해왔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대중 정치인이 자신의 입으로 쉽게 꺼내기 어려운 치부까지 가감없이 드러내놓고,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스스로를 평가하고 자책하는 모습은 과거에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 의원의 이번 반성문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소속 정치인들을 통틀어 내용 있고 통렬한 반성문으로서는 '최초'라고 평가해도 무방해 보인다. 물론 정 의원의 반성문이 다분히 전당대회를 겨냥한 측면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시기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소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 민주정부의 크고 작은 실책에 대한 책임이 비단 정동영 의원 혼자만의 책임이 아닐 뿐더러, 반성과 성찰 또한 오로지 그의 몫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 의원을 시작으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들이 야권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데 동참하고 진보진영과 폭넓은 연대의 발판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과거 실책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게 다수 개혁·진보 유권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의 당권 주자들이 너도 나도 진보와 복지를 말하면서 '진보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대부분 말의 성찬에 그치고 있다. 진보의 내용과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을 가다듬고 그걸 가지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가는 것이 볼썽사나운 당권 싸움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전제조건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일 것이다. 진보 경쟁에 이어 '반성 경쟁'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사입력: 2010/08/08 [18:49] 최종편집: ⓒ 대자보
서거하기 얼마전 한 인터넷 언론사 기사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재임중에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한데 대해서 가슴아파했다는 소회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김전대통령은 당선되자 마자 IMF라는 엄혹한 상황과 맞딱뜨렸습니다. 약소국의 대통령으로써, 더구나 수구보수세력의 힘을 빌려서나마 겨우 집권한 그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정치인으로서 김전대통령의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높이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의 노력은 아니겠으나 그가 평생에 걸쳐 노력해온 절차적 민주화마저 형해화되고 있습니다. 그가 앞장서 놓은 남북교류협력은 중단된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그가 남북교류협력의 뭔칙으로 세우고 실천해온 정경분리 원칙은 향후 통일을 위한 초석이 되리라고 봅니다.
민주당 내 386 세대들도 외면하고 있는 노동현장을 정동영의원은 찾아 다녔습니다. 제가 잠시 전주버스노조 파업관련 활동을 할 때에 파업 지도부를 만나기 위해 고공농성장을 쇠파이프를 타고 오르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대중전대통령이 하지 못한 한국의 내용적 민주화, 경제 민주화의 대임을 정동영의원이 스스로 꿰차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김대중전대통령을 잇는 큰 정치인으로 성장했으면 합니다.
"지난 309일, 정동영 그의 쇼가 고마웠다"
[기자의 눈] '한진중공업 쇼' 벌였던 정동영이 보여준 것
기사입력 2011-11-11 오후 4:36:24
"쇼여도 좋아. 쇼라도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공전하던 지난 여름. 한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희망버스에 정치인이 오르는 것을 놓고 야권 내부에서도 논쟁이 벌어지던 그 무렵이었다. 지난 1월 시작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한진중공업의 최장기 해고자의 크레인 고공 농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발을 움직이니 정치인들이 덩달아 춤을 춘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시각이었다.
야권 성향이긴 하나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에 더 냉소적이었던 지인은 희망버스 때마다 빠지지 않고 맨 앞 자리에 서 있던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고맙다"고 했다. 그는 덧붙였다.
"쇼도 어떤 쇼인가가 중요한 거 아냐? 엉뚱한 곳에 가서 쇼하는 정치인은 많이 봤어도 생명줄 잘린 노동자 앞에서 쇼하는 정치인은 못 봤다. 정동영보고 '저거 또 대선 나오려고 쇼하네'하는 그들은 한진 해고자들 목소리나 한 번 들어 봤다냐? 여의도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복지복지 말만 하는 건 누가 못 해."
한진중공업 사태가 마무리 되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던 10일, 김진숙을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하는 정동영 의원을 보며 그 지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정동영 "내가 이 여자는 반드시 살려야겠다"
지난했던 309일, 여러 고비마다 사람들은 비극을 우려했다. 바로 가까이 쌍용자동차의 예가 그 우려를 뒷받침해 줬다. 오랜 정리해고 철회 파업과 전쟁터 같았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의 검은 불길, 표면적으로는 마무리 된 듯 보였지만 계속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 한진중공업 노사가 합의를 이룬 9일에도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사망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땅으로 내려온 10일에는 쌍용차 노동자의 부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정리해고 사태 이후 세상을 떠난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은 열아홉 명이 됐다.
한진중공업에서도 2003년 정리해고 문제로 두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서 목을 멨어도 회사는 꿈쩍하지 않았다.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도크에 몸을 던지고서야 그 지난했던 싸움은 끝이 났다.
그런 한진중공업이 노조와 합의를 했다. 누구의 생명도 잃지 않고 만들어낸 합의여서 더 값졌다. 여러 사람의 피눈물 어린 노력의 결과였다. 정치권에도 숨은 공신이 있다. 정동영 의원이 바로 그다. 올해 초 환경노동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긴 그는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에 주력했다.
▲ ⓒ연합뉴스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을 처음 듣던 날 "내가 이 여자는 반드시 살려야겠다"고 다짐했다던 그는 단순히 희망버스에 올라타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해외에 머물며 영도조선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나 몰라라 하던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을 국회로 결국 불러들였다.
'청문회 한 번 했으니 이제 국회가 할 일은 다 했다'던 기존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끈질겼다. 한진 사측이 전혀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조남호 회장을 다시 국회로 불러들였고 지난 10월 마침내 국회 권고안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것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 됐다.
정 의원의 '좌클릭'의 시작점으로 정 의원 측은 한 가지 장면을 꼽는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떠났던 그가 돌아와 온갖 따가운 시선을 받던 그 즈음, 용산 참사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미사에 참석한 정 의원을 향해 한 신부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년 반 전에 여기 있는 정 의원이 조금만 잘 했으면 이 사람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정 의원의 고개는 떨궈졌다. 그리고 그때 정동영은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정치란 힘없는 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조남호 회장에게 김주익과 곽재규의 장례식 동영상을 보여주며 "증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고 아이들의 아빠로 살아있을 사람들"이라고 호통치는 그의 말이 꼭 조 회장이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로도 읽혔던 이유였다.
김진숙 "정리해고만 막을 수 있다면 악마와도 손 잡겠다"
그런 그를 모두가 곱게 본 것은 아니었다. 누구는 또 권력에 눈이 멀어 쇼를 한다고 했고 누구는 진심이 아니라 했다. 같은 당에서도 그의 이런 '좌클릭' 행보를 놓고 "민주노동당 정동영 의원이요"라고 대놓고 비꼬는 동료들이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이런 시선들에 대해 "정리해고만 막을 수 있다면 민주당이 아니라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고 일갈했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눈 앞에서 보여주는 행동이란 얘기이기도 했다.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의 절망적인 외로움을, 그들은 이미 이른바 '민주개혁정부' 10년 동안 절실히 느껴 왔다. 한때 동지이고 내 편이던 사람들은 정치권에 가면서 '중도'를 찾았고, '합리'를 내세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를 추모하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창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현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됐을 때 운동권의 3분의 1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자신을 찾아온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보호해주다 의원직을 잃었던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고 노조법을 날치기 했고, 영원한 재야의 어른이었던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 뒤 정리해고 법제화를 받아들였으며, 김진숙의 변호사이자 동지였던 노무현은 자신의 정부에서 목숨을 잃은 두 명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를 놓고 "죽음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은 다수당이었지만 노동자의 편을 드는 건 촌스러운 '구식'이라 여겼고, 민주노동당은 힘이 없었다. 그렇게 노동자는 사회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유령'이 되어 갔다.
모두가 좌클릭을 얘기하는 지금이지만, 그 시절의 외면에 대해 솔직하게 사죄하는 정치인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들은 정동영의 변신을 '꼼수'라 비난한다. 그러나 그렇게 비판하는 이들 중 누구도, 평생을 몸 바치고 마음 바친 회사에서 나를 쓰레기 취급 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 고3 아들보고 공부 열심히 해 수능 잘 보라 얘기할 수 없는 해고자 아버지의 먹먹함, 간신히 어렵게 안정된 직장을 구했다고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3년도 안 돼 짤렸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젊은 아들의 한숨에 귀 기울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정동영 의원님 선거 나가시면 내가 마이크 잡게 해 주세요"
▲ 3차 희망버스에 참석한 정동영 의원. ⓒ연합뉴스
여기까지 오는 길을 오롯이 정동영 한 사람이 만들어왔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309일 만에 땅을 밟은 김진숙이 제일 먼저 끌어안았던, "조남호 회장님, 나는 당신 앞에 아흔아홉번, 아니 구백구십번, 구천구백번이라도 무릎을 꿇을 수 있으니 제발 그 사람 다치지 않게 내려올 수 있도록 대화해 주세요"라며 울며 호소했던 배우 김여진이 있었다. 5차까지 진행된 희망버스에 탑승했던 수많은 이름 모를 시민들도 있었다. 오래 전부터 노동자의 벗이었던 진보정당 정치인들도 물론 있었다. 무엇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버텨 낸,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김진숙이 있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동영 의원님 선거 나오시면 제가 '정동영 그런 사람 아니'라고 설명 좀 하게 저한테 마이크 주세요"라고 하고, 가족대책위원회에 속한 부인들이 "나는 자원봉사자 할 거야"라고 말이라도 스스로 나섰던 데는 이유가 있다.
물론 그의 역할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정치란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조용히 혼자 끙끙 앓는 사람들까지 보듬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용산참사가, 한진중공업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어 내어야 한다. 정리해고 법제도도 고쳐야 하고, 자본의 무분별한 해외 이전으로 엉뚱한 노동자가 피해보는 일도 단속해야 한다. 설사 정말 어쩔 수 없어 해고되더라도 그것이 곧 '죽음'은 아닐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도 대폭 보충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야 비로소, 그의 '쇼'가 일부가 아닌 모두에게 진심으로 여겨질 것이며 오늘 그의 '쇼'도 비로소 온전히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지난 309일, 그의 '쇼'가 고마웠다. 그가 오래도록 힘 가진 '의원님'으로 남아, 키 작은 사람들을 위한 쇼를 벌여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정치다.
프레시안 /여정민 기자
정동영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전북에서 출마할 때만 해도 욕을 했습니다.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그가 열린우리당시절 당 대표로서 한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회로 돌아온 그가 달라 보였습니다. 선거 때 대담한 복지를 앞세웠고, 과거 민주노동당 당론이었던 부유세 징수를 과감하게 주장했습니다. 당 지도부의 반발에 당원 총투표로 맞서는 모습은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인들에게 정동영이 한미FTA 관련해서 민주당 당론을 뒤집은 것은 그 어떤 정치인의 업적보다도 가치있는 일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한미FTA가 IMF 백개의 위력이 있다고 할 때에, 그것이 대를 이어서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미FTA 재재협상과 증세론을 이끌고, 노동과 동떨어져 있던 정치권을 노동친화적 흐름으로 바꾸고 있는 점은 정동영의 또 다른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정동영의원님께서 망루에오르고계십니다
망루에서 단식농성중인 동지들하고 악수를 하고계십니다,,
The Town I Love So Well / Phil Coulter
@하이디백 남의 귀한 글에 허접글이라니요? 하이디백님은 어떤 귀한 글을 쓰셨나요? 이런 허접한 댓글을 달기보다는 귀하디 귀한 님의 글을 올리는 것이 줗지 않겠습니까? 이 게시판의 문빠들 글은 오빠부대 수준을 넘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자유주의가 뭔지, 한미FTA가 민중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면서 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민중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바람의손 순진한 '빠'심이라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바보영구 그래도 하이디백님은 의리는 있어요.순수하고 의리있는 사나이~~~~~
@바보영구 하이디백님이 뉘신지는 모르지만 제 글에 좀 심한 댓글들이 많아서 그러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순수하고 의리있는 분이라면 이해해 주실 것으로 봅니다. 바보영구님, 저는 이만 자려고 합니다 영구님도 편안한 꿈나라 여행하시기 바랍니다.
@바람의손 네!님도 편안한밤 되시길...
동영아.. 부탁인데 이번 생에 미련접고 다시 태어나라
바람의손님 글 잘 보았습니다
넵, 용기 있는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사실을 거론한 ㅡ 정치인은 오직 그 행동과 결실에 따라 평가받는 것입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