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석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라 알려져있음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白石으로 활동하심 1912년 7월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에서 부친 백시박 (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씨의 장남으로 출생. 오산(五山)중학과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심. 향토적이고 서정적인시가 백석시인의 특징 일례로 백석시인의 시 [국수] ,[여우난곬족] 학교에서 영어교사로도 활동했는데 팬래터가 매일같이 쌓였다함 전형적인 세련된 모던보이 월북이후 안타깝게도 협동농장에서 노동당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됨 후에 95년 사망
2.임화
계급문학 카프의 대표시인 마르크스주의자 어릴적에 가정이 파산상태에 19세에 어머니마저 여의자 거리를 전전했다함 참고로 하얀피부와 수려한용모때문에 조선의 루돌프 발렌티노로불리면서 영화주연으로도 활동한 전적이있음 해방이후 박헌영을따라 월북.이후 남로당 계열이 숙청당하자 같이 사형당함 남과 북 모두에서 언급이 금지됨 숙청당한 계기가 이혼한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625때 찾지못하자 시를 지었는데 그게 투항사상을 설교했다 해서 빌미가 됨 참고로 임화시인의 재혼한 부인인 자하련여사는 만주에 전쟁피난가있다 임화시인이 숙청당하고 시체도 못찾았다는 소리듣고 실성한뒤 결국 사망.. 비운의시인
3.황순원
1915년 출생. 2000년 타계하심 대표작은 소나기와 카인의 후예, 학,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 (아드님은은 <풍장> 연작과 <즐거운 편지>, <삼남에 내리는 눈>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영문학자 황동규 그리고 손녀인 황시내 씨 도 최근 소설가로 등단. 3대째 문인 집안) 평안도 지주출신의 아들로 태어남,평양 숭덕학교 교사였던 부친은 31운동때 태극기배포하시다 잡힌적이있다함 1921년 만 6세 때 가족 전체가 평양으로 이사하고, 만 8세 때 숭덕소학교에 입학 유복한 환경에서 예체능 교육까지 따로 받으며 자라남 1931년에 문학지동광에서 [나의 꿈]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등단 이후 와세다대졸업하고 소설가로활동 1942년 이후에는 일본의 한글 말살정책으로 고향인 빙장리에 칩거해지내심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채 여러 단편을 작성. 월북했다 북한이 공산화되고 지주로몰리자 남한으로 월남 월남이후는 서울고교의 국어교사로 있으면서 소나기 학 독짓는 늙은이 등을 발표함 1953년에는 장편 작가로서 그를 인정받게 한 장편 소설 《카인의 후예》를 발표 후에 1985년 [말과 삶과 자유]를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가시다가 2000년에 타계하심
4.박인환
강원도 태생 광복이후 서점을 경영하거나 1947년 경향신문 기자로 미국 시찰하심 이후 모더니즘의 기수로 활동하다 31세나이에 페노발비탈을 과량 섭취하고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31세의 나이로 별세함. 사인은 자살.. 아마 전쟁직후 상실감이나 허무함이 원인이아닐까 추측
대표작은 <목마와숙녀>
5. 윤동주
중학시절 뒷줄 가운데 문익환 목사와
송몽규 (앞줄 가운데)와 윤동주
북간도 출생.윤동주시인 집안은 유복해서 그지역에서도 유지로 꼽혔다함 명동촌은 항일정신이 강한지역이어서 일본을 왈본으로 부르던곳 자연스럽게 윤동주시인도 항일분위기가 강하던 숭실중학교로 갔으나 폐쇄당하자 다시 만주로감 숭실중을 거쳐 진로를 결정할 무렵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 문과로 결정, 경성에서도 민족주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조선어를 가르치고 태극기가 곳곳에 붙어있는 연희전문학교 문과(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진학을 결정함. 이때 학과 문제로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함. '문과 졸업하면 신문기자 밖에 더 되냐는 반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의대나 법대를 원했기때문 이후 연희전문학교로 진학하는데 성공하고 대부분의 명시가 여기서써짐 이후 일본 릿쿄대학 영문과를다니다 43년 귀국도중 그의 저항시가 일제경찰에게 발각되면서 2년형을받고 수감됨. 그리고 안타깝게 해방 6개월전에 뇌일혈로 쓰러지시면서 타계. 매체에서 밝힌 결과 사망원인이 마루타실험..(후쿠오카의 바닷물을 주입..) 당시 일본군은 전시체제라 생리식염수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윤동주가 실험대상으로 지목되었던 것 2000년대 미국 국립도서관 기밀해제 문서 중에서 1948년 일본 전범재판 관련 문서에 당시 큐슈제국대학이 실제로 연구하고 있던 대체혈액 실험의 일환으로, 후쿠오카 형무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생리식염수 대체용액을 수혈하는 생체실험을 했다는 증언이 쓰여 있는 것이 확인됨.딱히 고문당한 일도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 생체실험이 윤동주시인의 사인으로 유력하다 볼 수 있겠음.... 윤동주의 일화 들 1)연희전문 다니던 때의 윤동주는, 같은 하숙집에서 하숙하던 후배 정병욱의 회고록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가 있는데 학교갈 때나 사석에서 만나면 매번 옷이나 신발이 새것처럼 깨끗하고 반듯했다고 함 2) 책을 볼 때는 책에 줄이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정독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함 3) 일제의 전시물자수탈에 의해 학교 밥이 사람이 먹기엔 거시기한 양과 맛을 자랑했음에도 배고파하는 후배들에게 밥을 나눠줬다고 함 4)시내에서 영화를 본 날이면 중국집에서 한잔하기도 했는데 술에 취해도 남의 뒷담화 한 일이 없었다함 5)밤에 공부나, 시를 쓰다가 산책을 즐겨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후배 정병욱을 불러서 같이 산책을 갔다고. 정병욱이 5살이나 어린 후배임에도 반말을 전혀 하지 않고 '정 형, 이라 부르면서 깍듯이 존댓말을 썼다고 함 6)‘오뚝하게 솟은 콧날, 부리부리한 눈망울, 한 일(一)자로 굳게 다문 입, 그는 한 마디로 미남(美男)이었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中) 7)연희전문시절 순이라는 여학생을 짝사랑 했으나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던 그는 끝내 일본으로 유학 가는 날까지도 고백을 못했다고 함 http://www.ddanzi.com/ddanziNews/3552286
첫댓글 백석..
임화 ㅎㄷㄷㄷ
잘 읽었어요. 이분들이 좋은 시대에 태어났었더라면...
백석 시인 첫사진은 공유가 살짝 보인다
문익환 목사 아들인 문성근씨가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는 중간중간에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도 얘기해서 예전에 신기했었음.
황순원 ㄷㄷㄷ 지금 태어났으면 영화배우 했을듯
백석 윤동주ㄷㄷ
백석은 키도 훤칠했음 185cm이셨다고 함
ㄷㄷㄷ
첫댓글 백석..
임화 ㅎㄷㄷㄷ
잘 읽었어요. 이분들이 좋은 시대에 태어났었더라면...
백석 시인 첫사진은 공유가 살짝 보인다
문익환 목사 아들인 문성근씨가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는 중간중간에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도 얘기해서 예전에 신기했었음.
황순원 ㄷㄷㄷ 지금 태어났으면 영화배우 했을듯
백석 윤동주ㄷㄷ
백석은 키도 훤칠했음 185cm이셨다고 함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