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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에서 경험자분들의 조언을 듣고자 아내의 계정을 이용해 이렇게 글 올립니다. 저는 미국에 사는 33세 유부남입니다. 약 3주 후, 4년 만의 한국 방문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에서 집안의 분란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 제 관점으로는 제가 어떤 큰 잘못을 했다고 보이지 않지만, 어머니와 누나의 격정적인 반응이 저로 하여금 방문을 취소하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스트레스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실만 (혹은 사실에 최대한 가까운 기억만) 말씀드리고 제가 (혹은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또 잘못했다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여러분들의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긴 글이지만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 33세, 아내와 9년간의 연애 후 2012년 결혼, 미국 거주 9년차, 학자
아내 – 33세, 미국 거주 7년차, 2014년 부인과 수술받음, 패션 디자이너였으나 상사로부터의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2017년 1월 사표 제출
누나 – 37세, 부산 거주, 가정주부
저희 부부는 비자 문제로 출국이 제한되어 있다가 2015년 말에 영주권이 해결된 이후 2016년 휴가에는 꼭 한국에 방문하자고 계획한 후, 아내의 직장문제로 휴가를 미루다 결국에 2017년 2월 3일에 출국하기로 2016년 11월에 예약했습니다. 그와는 별개로 영주권 승인 이후에는 어찌 될지 몰랐던 미래가 더 명확해졌기에 2세를 가지기 위해 임신을 꾸준히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달이 가도 임신테스트기에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고, 어쩌다가 양성반응이 나와도 2-4일 정도 후 없어지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12월쯤 되니 저희가 난임 부부가 아닐까 초조 하더군요. 보통 1년간 자연시도 했는데 임신이 안 되면 난임 부부라는 얘기를 들어서요. 저의 아내도 부인과 수술받은 병력이 있고, 저도 제 정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마음을 엄청 졸였습니다. 하지만 의연한 척 하며 정 안되면 요새 인공수정 기술이 엄청 좋으니 그것까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한국에서 필요하면 둘 다 진단을 받자고, 일단 지금은 걱정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때마침 12월 말에 한 임신테스트에 양성 반응이 나왔고, 저번처럼 속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10일 정도 하루에 두 번씩 임신테스트를 했습니다. 두 줄이 점점 진해지기에 저희 둘 다 99% 임신 확정이라고 생각 후 양가 부모님께 연락 드렸습니다. 저희 어머니께 연락을 드리니 목소리가 엄청 들뜨시면서 임신 소식이 안 들려서 주위에 수소문하니 경주에 임신 잘되게 하는 한의원이 있어서 (어머니 서울 영등포 거주) 너희 한국 오면 데려가려고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도 그동안 엄청 마음 졸이고 인공수정 알아보던 와중에 이렇게 타이밍 좋게 임신 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로서도 엄청 잘된 일이었습니다. 기다리던 임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내가 1월에 사표를 내기로 한 상황에 비자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 사표 내고 바로 한국 가서 장모님 댁에서 (포천) 지내면 보살핌을 더 잘 받겠다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방문을 1월 11일로 약 3주 앞당겼습니다.
제가 조사해보니 임신 초기에 신경 쓰거나, 스트레스받으면, 초산의 경우 유산될 확률이 높다고 하고, 아내가 수술받은 전력도 있고, 저 또한 힘들게 된 임신이니만큼 다음 기회가 언제 있을지 (혹은 평생 없을지) 모르니만큼 약간의 가능성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속한 직업군 자체가 워낙 스트레스가 커서 주변에 유산도 난임도 많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한국에서 운전도 하지 말고 집에서 몸조리하며 태교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어차피 원래는 2월 3일에 같이 가기로 예정했던 여행이니, 시댁 방문이나 친척들 방문은 제가 온 후 차 타고 다니면서 하면 된다고 제가 저희 어머니한테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처음 전화를 드려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초기에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안정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들게 된 임신이니만큼 몸이 최우선이니 도착 후 산부인과만 들르고 집에서 쉬면서 영등포는 딱히 들르지 말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제가 전화 드리는 겁니다. 설에도 저도 없는데 혼자 임신한 몸으로 시골 (저희 할머니 댁, 강화도) 가는 건 어색하고 무리라 생각해서 집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친척들은 한 곳에서 다 만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어차피 2월 3일에 제가 도착하면 차 타고 친척들 다 돌면서 만나기로 원래 계획했으니 바뀌는 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어머니께서 아주 지지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지도 않는 입장에서 ‘각자 다른 생각이 있으니까 자기가 맞는걸 하는 게 맞겠지.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엄마는 그래도 시댁에 들렀으면 좋겠다. 근데 강요하는 건 아니야. 네가 잘 생각해봐.’라고 하시기에 ‘그럼 얘기 좀 해보고 다시 전화 드릴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내의 운전실력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블랙박스 사고 영상, 보복운전 영상을 많이 본 사람으로서 아내가 운전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굳이 저희 어머니 댁을 방문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쉽게도 저희 장모님은 초보운전이시라 포천 밖으로 나가신 적이 없고 처형은 운전은 잘하시지만 (같은 집 거주) 어린 딸이 2명 있어서 그 둘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처형과 아내가 가기보다는 (처형은 굳이 저희 어머니를 만날 이유가 없으니까요) 모두 다 같이 가서 처형과 처조카들도 저희 어머니 집에 있든지 주위에서 시간을 때우든지 하는 게 맞겠다 싶었습니다. 아내와는 이렇게 결론을 내고 그날 아내는 출국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전화를 끊으며 아내와 얘기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린다 하였기에 집에 와서 아내가 비행하는 동안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화 분위기가 24시간 전이랑 사뭇 다르더라고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심증은 있습니다) 제가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장모님, 아내, 처형, 처조카까지 다 가야 할 상황이라고 하니 버럭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이런 건 시댁을 무시하는 거다. 이런 일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해야지 너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게 말이 되냐.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거랑 너 통해서 얘기하는 게 같아? 뭘 번잡하게 다 와. 그렇게 쉬고 싶으면 그냥 집에서 푹 쉬다가 돌아가라 해. 올 필요 없다’라는 얘기를 하시기에 당황했습니다. 제가 ‘저희의 특수한 상황을 엄마가 이해해 주셔야 해요. 항상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바랐던 임신이 돼서 아내만 귀국 날짜를 조정했는데 결국에 제가 2월 3일에 오면 원래 계획대로 하니까 바뀔 건 없습니다. 일말의 위험 가능성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제가 아내 운전 못 하게 하는 거고, 만약에 아내가 임신을 안 했으면 영등포에 들리죠.’라고 해도 안 들으시더라고요. ‘원래 방문하면 시댁부터 들리는 거야. 설날에는 할머니 댁도 들르고. 그게 예의야. 그렇게 힘든데 여행은 어떻게 가냐 (저희가 2/10-12에 아버지 어머니 누나 가족포함 가족여행 계획 중입니다). 안 와도 되니까 친정에서 푹 쉬다가 가라 해’ 라고 하시고 끊으셨습니다.
저도 아들이기 이전에 출가한 한 가족의 가장이자 총책임자로서 말씀드린 건데, 그런 대답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아내는 한국에 도착했고, 도착한 날 저희 어머니한테 전화 2번 드렸는데 안 받으셔서 카카오톡 남겼다고 했습니다. 그다음 날 아내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아침 일찍 어머니께 전화 드리니 저한테 한 것 처럼은 아닌듯 싶지만 올 필요 없으니 집에 있으라는 얘기를 듣고 동네산부인과에 임신 확진을 받았습니다. 초음파로 사진도 받고 심장 소리도 듣고 의사 선생님이 태아는 건강한 상태라고 하셨다고 저한테 얘기하더라고요. 심장 소리 들으면 뭔가 마음이 뭉클하다고 하면서. 그리고 아내가 초음파 사진을 저희 가족 쪽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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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시간으로 제 전화기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오전 11시 40분쯤 되겠네요. 근데 정확히 10시간 동안 아무도 축하한다 기대된다 등 얘기가 없었다가 누나가 이렇게 메시지 보냈습니다
@@(아내이름)##(제 이름)
제가 친 아이 초음파사진을 보거나 다른 사람과 공유한 경험이 이전에 없긴 하지만 보통 초음파 사진 보내면 이런 반응을 보입니까? 이걸 보고 화가 확 치밀어 오르면서 왜 저희 어머니가 입장이 하루 만에 뒤바뀌었는지, 뒤에서 누가 조종하고 있었는지 느낌이 왔습니다. 저는 저 메시지가 근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부모로서 준비 차근차근 잘하고 있다’라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현지시각으로 오후 2시쯤 (한국은 새벽 4시쯤) 누나한테서 카카오톡이 왔습니다. 한 시간 정도 얘기하다가 제가 왜 이런 궤변 질문을 답변해주고 있나 회의도 들고 저 자신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누나를 블락 시키고 대화방을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확한 기록을 갖고 있을걸 하고 나온 게 후회되긴 합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고 대화 내용 순서가 바뀔 수는 있지만 제 기억력을 살려서 대화를 재현해보겠습니다.
누: ##아, 나 너무 속상해서 잠을 못 자고 있다. 너희 이렇게 엄마 아빠한테 철없게 굴 거니?
저: 내가 엄마한테도 말했지만 어렵게 한 임신이고, 약간의 가능성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조심하고 싶다고 집이랑 강화에 들르지 말라고 한 거야. 누나는 임신이 잘돼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허니문 베이비 낳고 2년 후 또 한 명) 우리는 인공수정까지 알아보다가 어렵게 된 임신인데. 어떤 이유로 인해서 만약에 유산될 경우, 다시 임신하는데 한 달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 영영 안될지 모르는 일이고 우리도 나이 먹어가면서 점점 임신 가능성이 작아지니 지금 할 수 있을 만큼 조심할 거야.
누: 너희가 미국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댁에 들르는 게 예의야
저: 엄마도 처음에 임신했다고 보이스톡 할 때는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임신 안될까 봐 경주에 어떤 한의원 알아봤다고 할 정도셨는데, 내가 안 간다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계획이 있으니 3주만 기다려달라고 이렇게 정중하게 말했는데도 무턱대고 불같이 화를 내시니 뭐라고 더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누: 멀리서 왔으면 도착했으면 엄마한테 전화도 드리고 해야지
저: 전화 두 번 했는데 엄마가 안 받으셔서 메시지 남겼대. 다음 날 아침에 했고.
누: 그래? 내가 읽었을 때는 도착해서 저녁 먹을 거 다 먹고 집에서 씻고 잘 준비 다 하고 전화한 거 같던데. 이동하면서 차 안에서도 할 수 있잖아.
(개인적으로 진짜 수준 낮은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설명해 드리자면 1월 11일 오후 4시 반 도착 예정 비행기였는데 약 1시간 가까이 연착이 있었고 아내가 가족 채팅방에 짐 찾는 중이다, 차 타고 집에 가는 길이다, 집에 가서 전화 드리겠다 라고 카카오톡을 꾸준히 했습니다. ‘전화 안 받으셔서 내일 다시 전화 드릴게요’ 라고 보낸 시점이 오후 9:10분 경 이었습니다. 짐 찾고 포천 가다가 중간에 식당에서 저녁 사 먹은 것 고려하면 제 생각에는 크게 늦은 건 아니라고 봅니다)
저: 짐 찾고 뭐하면 시간 그 정도 되지. 오늘 오전에 전화 드렸대
누: 멀리서 왔으면 시댁부터 들러야지. 얼마나 멀다고 들리지도 않니?
(공항에서 포천 가다가 들르라는 얘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항에는 장모님과 처형과 두 처조카가 마중 나왔습니다.)
저: 누나는 우리가 항상 한국에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 미국에 있다가 한국 들어갈 때는 보통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가는 거야. 원래 2월 3일에 같이 들어가려고 했는데 @@가 어차피 사표도 냈고 임신했으니 몸조리하라고 내가 일찍 가게 한 거야. 만약에 임신을 안 했으면 갔겠지? 하지만 변수가 생겼잖아. 그래서 내가 2월 3일에 들어가면 원래 계획대로 차 타고 다 친척들 방문하려고 국제면허증도 발급받았고. 왜 그걸 이해를 못 하고 계속 예의가 없다고 하니 내가 무슨 말을 또 할까?
누: 임신은 둘째치고, 집안에 어른들도 있으면 예절을 지키고....
저: 임신이 첫번째지 어떻게 두번째야. 인사는 나중에도 갈 수 있지만, 애는 한번 잘못되면 끝이야. 나는 아직도 내가 지금 상황에서 맞는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해
누: 아빠 엄마 나는 @@한테 가족처럼 진심으로 대하는데 @@는 내외하려고만 하니..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뭘 얼마나 가족같이 대했는지. 제가 아는 바로는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아내에게 친근하게 해줘도 누나가 뭘 딱히 해줬다는 얘기는 못들어봤습니다)
저: 뭘 내외를 해. 내가 전화해서 소리 지른 것도 아니고 지금 상황이 특수하니 엄마가 그걸 이해해 주셔야 한다고 이야기했어. 내가 아까 말한 이유로 위험 가능성 최소화하고 싶어서 @@한테 운전하지 말라 그런거고. 장모님도 초보운전이라 운전 못하시고 처형은 처조카 봐야하니 힘드니까 그런건데.
누: @@는 자기 필요할 때는 얘기하다가 끝나면 입 싹 닫고. 건강보험증에 @@ 등록할 때도 이번 주 초에 엄청 추웠던 거 알지? 서류 안돼서 아빠가 몇 번씩 갔다 왔던 모양이야. 필요할때는 아버님~ 하다가 등록하니까 감사하다고 하고 끝?
저: 엄마한테 전화했으니까 괜찮겠다고 생각했나 보지.
(결혼하신 여자분들, 보통 시아버지한테 전화 자주 하나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내가 보낸 감사하다는 메시지로서 충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아버지가 서류 얘기할 때마다 몇 번씩 감사하다는 메시지 남겼거든요. 참고로 저는 장인어른께 따로 전화 건 적 없이 보통 가족 채팅방에서 카톡으로만 연락드립니다)
누: 우리는 진심으로 대하는데 @@는 거리감 두고 가족으로 생각 안 하는 것 같애. 미국에서 오면 자기 가족하고만 있고, 우리랑은 왕래를 싹 끊고.
저: 전에 @@ 혼자한국 왔을 때도 집에 다 들렀어. 물이 컵에 반이 있을 때 물이 반이나 들어있다고 볼 수도 있고 물이 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지. 뭘해도 내외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들 의미가 있겠어??
누: 그때도 그래. @@이 한국 와서 자기 집에만 있다가 몇 주 만에 영등포 갔지? @@는 엄마가 오라고 오라고 해야지 볼 수 있는 그런 귀한 존재니? 내가 그때 인터넷 카페에 사람들 반응 캡처해서 보여준 거 기억나?
(배경을 설명해 드리자면 아내가 2014년에 종로에 있는 미 대사관에서 O-1 비자 인터뷰 본 적 있습니다. 그때 서류 접수부터 해서 엄청 스트레스 많이 받고, 인터뷰도 뒤로 밀리고 해서, 결국에 비자 승인은 받았지만, 그때 받은 스트레스로 결국 부인과 수술받게 되어서 비자는 크게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혹시 O-1 하신 분은 그게 서류 냈으니 비자 내놓으시오 하는 과정이 아니라는 걸 잘 아시라고 봅니다. 아내는 어머니께 전화로 충분히 상황에 대해 설명해 드렸고 몇 주 후에 찾아뵌 것도 아니고 비자 인터뷰 전날에는 혼자 본가에서 자고 인터뷰 보러 갔습니다. 그 후에도 두 번 정도 찾아갔고 수술 후에도 찾아갔습니다. 참고로 아내가 수술했을 때 저희 집에서는 아무도 병문안 가지 않았습니다. 멀어서 오시지 말라 했다 해도 어떻게 안 오시냐고 장모님이 서운해하셨는데 아내가 저희 가족 입장을 좋게 말씀드려서 더는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저: 인터넷에 그게 어떤건지 모르는 사람들한테 겉핥기로 설명하고 답글 보지 말고 그런 게 있으면 나한테 직접 물어봐. 내가 정확하니까. 설명하자면 비자 신청 시에 미국 내에서 신분변경 하게끔 해야 했었는데 변호사가 실수로 대사관에 가게 체크를 한 거야. 근데 그때 당시에 그 비자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대사관 측에서 불합격률을 높인 상태였지. 그래서 나나 @@이나 돌아올 확률은 50% 정도밖에 안 되겠구나 하고 자포자기 상태였고. 마음이 불안하니 심란한 상태에서 영등포 가서 불안하게 앉아있다가 오기보다는 차라리 비자 인터뷰 끝나고 후련하게 가기로 한 거고. 그때도 영등포에 몇 번 추가로 갔어.
누: 아 그럼 아이고 올케님 드디어 영등포 오셨네요. 다들 박수~ 이래야 하니?
저: 굳이 박수를 칠 필요는 없지. 내가 이런 미미한 질문에 답변을 다 해줘야 하나 내 상황이 우습다.
누: 미국에서 너희 둘밖에 사니까 동화 속 주인공 같겠지만, 주위 사람들도 둘러보길.... 내가 전에 너희 결혼할 때도 말했지 ‘격의 없는 사이’랑 ‘예의 없는 사이’는 다르다고.
저: 누나는 물이 반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집에 있으면서 하는 건 없고 시간은 많으니까 시간을 어떻게 쓸 줄 몰라서 안달 났구나. Go get a job sis. I gotta go.
실제로는 훨씬 더 긴 대화였지만 모든 줄거리는 다 포함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최대한 신사답게 끝마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로써 제 휴가는 줄타기하고 있습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기승전-‘시댁 무시’, 기승전-‘예의 없다’로 계속 도돌이표 대화가 나오길래 설명을 더 잘해서 이해를 시켜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고 쓴다고 다 글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인터넷에서만 보던 완전체인가 보다 하고 그냥 블락하고 나왔습니다. 대화 보시면 알겠지만, 본인의 추측을 되는 대로 막 던지고 제가 어떤 설명을 하던 건에 또 다음 추측을 던집니다.
본인 말대로 예의를 엄청 중요시하고 시댁에 최선을 다하는 저희 누나는 결혼 초기에 본인 시어머니와 말썽 있다가 시어머니 아구창 날려서 집에 경찰 왔습니다. 그 후에 시어머니 측에서 몇 번 사과하면서 왕래를 원했지만, 시어머니 용돈도 딱 끊고 전화는 물론 단 한 번도 시댁을 방문하지 (거제도라고 들은 듯) 않았습니다. 조카들도 명절에 그냥 집에서 놀거나 영등포는 오지만, 친할머니 집에는 못 갑니다. 그리고 제 아내 수술했을 때도 예의가 발라서 병문안은커녕 안부 문자도 한번 안 보냈습니다. 왜 사람이 이리 속이 좁은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집에 계시는 가정주부 분들을 단체로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저희 누나는 집에서 잠만 자고 밖에도 잘 안 나가고 지역 인터넷카페만 하는 게 낙으로 보입니다. 저희 어머니 말로는 장도 인터넷으로 보고 일주일 가까이 집 밖을 안 나갈 때도 있다고 합니다. 따로 바쁘게 하는 일도 없는데 잠자고 게을러서 하루에 세 끼 못 챙겨 먹을 정도로 본인 관리가 안 됩니다. 저한테 살찌고 싶다고 하길래 (저는 운동 많이 하고 식단관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밥을 얼마나 먹냐고 물어보니 하루 두 끼 먹기 힘들다길래 일단 세끼 먹게 되면 다시 연락하라고 한 적 있을 정도입니다. 제 생각에는 누나가 원래 그리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집에만 있으면서 사람들과 내외도 안 하고, 식견도 좁아지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 하다가 과대망상 & 열등감 표출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인은 그걸 정의의 실현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는 그 얘기 듣고 마음이 동한 걸로 보이고...
반면 가족을 내외한다는 제 아내는 제가 중립적으로 봐도, 본인은 진짜 속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족 일에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2월의 가족여행도 제 아내의 아이디어입니다. 물론 저희가 보낸 후보 숙소 여기저기를 보고 누나는 ‘아 여기는 너무 먼데….’ 이런 식으로 계속 퇴짜더라고요. 그리고 둘째 조카 올해 학교 들어간다고 책가방도 미리 사놓고, 가족여행에 단체로 맞춰서 신고 가자고 가족들 운동화 샀습니다. 디카로 찍은 사진들도 좋은 추억인데 파일로만 있으면 안 보게 된다고, 아버지 어머니 누나 매형 조카들 사진 다 인화해서 이번에 보내주자고 1,000개 넘는 거 잘 나온 걸로 일일이 골라서 프린트 맡기고요. 어떻게 더 가족을 위해야 할까요? 누나의 말대로 1분 단위로 시간 맞춰가며 예의 차리며 전화하는 게 가족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면 저의 아내처럼 본인은 자주 연락은 안 하지만 저에게 아들이 자주 연락하라고 나중에 후회 말고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표현 잘하라고 푸쉬해서 결혼 전보다 제가 가족과 더 연락 잘하게 유도한 게 가족을 생각하는 걸까요. 참고로 저희는 결혼하면서 각자 양측 부모님께 기본 도리만 하고 각자 가족은 각자가 챙기자 약속한 상태입니다. 아내 역시 저에게 처형에게 따로 연락을 요구하거나 한 적 절대 없습니다. 장인 장모님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결혼하고 처가 쪽에서 부정적인 소리 들은 적 한 번도 없습니다.
이외에도 누나가 결혼 전 아내와 연애할 때도 본인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어머님에게 이별을 종용하게끔 한 일이라든지 결혼식 직후 이미 양가 부모님께서 합의를 마친 상황인 혼수 및 예물에 관해 저에게 울분을 토하며 화를 냈던 일 등이 있었지만 (당시 둘 다 유학생 신분이라 허례허식은 생략하고 결혼식만 하기로 합의를 한 후, 결혼반지 빼고는 주고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번 일만으로도 아주 길기 때문에 자세히 쓰진 않겠습니다.
제 결론은 누나의 가족을 위하는 마음, 예의, 시댁 무시 운운하는 것은 다 표면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고, 뭔가 하나 트집 잡을 거리를 기다린 끝에 이 사달을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러분의 고견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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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면 세상이 팍팍해서 이렇게변하나...하..이민갈까그냥 다짜증나네 이글읽으니까 피곤해 ㅠㅠ슬퍼
남편멋지다ㅠㅠㅠㅠㅠㅠㅠ 마인드 크,, 진짜 시댁이라고 빌빌기고 결혼했으니 넌 우리집안 사람이다~이런거 다 꺼져줬으면^^
와 이런남편 어디서 찾냐
와 남편 너무 멋있다.. 곧 건강하게 태어날 아이도 예쁘겠다
으...진짜 며느리 편한꼴 보기 싫어서 발악하는 걸로 보여
세상에 사실상 마인드 양남 아니야?? 간만에 정상남을 봐서 눈물이 다 나네
와 한남중에 저런 ㅅ ㅏ람도 있구나...레알 탈 한남...
근데 나도 가정주부를 모두 일반화하고 싶지 않지만 어릴 때 진짜 상처많이 받았음 내가 좀 학군 좋은 곳에서 살아서 친구 엄마중에 가정주부인 분들이 많았는데 초 중딩때도 울 엄마한테의 자격지심을 엄마를 후려치며 푼다는 느낌 많이 받았어 내가 학원 많이 다니는거 스트레스 받아서 엄마랑 이야기해서 스스로 문제집 풀고 피아노만 다니기로 얘기하고 학원 많이 안다녔는데 성적은 일등이었음(저스트 초딩때 ㅋㅋ) 근데 친구 집 어쩌다 놀러가면 뒤에서 맞벌이집 애들은 집에 놀러오면 냉장고부터 뒤지고 수준떨어져서 싫다고 하고 내가 몰래 고액 과외해서 그거 때무네 울아빠 수입도 적은데 엄마가 직장 나가는 거라고 ㅋㅋㅋㅋㅋㅋ
그거 말한애네 집 평수가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울 집보다 열평이상 적었는데 괜히 엄마가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아버지 월급후려치고 또 울 엄마는 애가 반 일등인데 학부모회의도 안나온다 등등 구설수에 늘 시달림 애한테 관심없어서 학원도 안보낸다 학교일에 관심없다 하도 그래서 엄마가 편지랑 햄버거세트랑 해서 일등겸반장턱으로 쐈더니 돈번다고 유세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울엄마 워킹맘인거 존나 극한직업었음 어떤 아줌마는 자기 연대 나왔다고 어머니는 대학 어디나왔냐고 괜히 물어보고 ㅉㅉ 그 아줌마들만 생각하면 어떻게든 물론 안하겠지먼 혹여나 결혼을 하게되도 전업은 절대 안하겠다 이런 마음...... 어린 마음에도
@간식도 좋아하는데 열등감 쩔고 시야가 되게 좁아보였음 모든걸 자기 기준에 맞추고 그 커뮤니티에 속하려면 똑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비난하고...... 내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주머니들도 다 대학 나오신 분들이고 한데 전업 하게되어서 더 그러셨던게 아닌가 싶기도 함 본글이랑 논점은 다르지만 썰풀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