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디그다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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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낚여서 헐레벌떡 들어온 여시들
며칠전 고고학에 대한 핫플이 3000플 가까이 도달하면서
여시들의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음을 알게되었지만
고고학에 대해 비전공자가 공부하기엔 조금 어려운면이 있지
그래서 고고학의 역사에 대한 흥미돋는 이야기를 가져왔어
이 분은 현재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 14세야
이분은 여시들이
이런거나
이런 귀요미 모자를 수집하는 특이한 취미를 가진
왕으로 알고있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근데 이 국왕에게는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바로 이 구스타프 아돌프 6세야.
이사람이 신라 고분을 파헤쳤던(?) 장본인인데
왜 어떻게 스웨덴에서 한국까지 와서 무덤을 파게된것일까?????
그 이야기를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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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1920년.
1910년대 무단통치로 조선을 다스리고자 한 일본은 조선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지
그래서 친일파들을 앞세워 겉으론 규제를 많이 풀어주고자 했으나
안으론 오히려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있었어
이사람은 조선 제 3대 총독 사이코 마코토 라는 사람인데
저딴 생각을 "식민사관"이라 불러.
저런식으로 조선인이 하찮고 보잘것없다며 우리들의 뿌리를 흔드려고 들어.
그래서
강우규 송학선 남자현(영화 암살의 전지현역)
이 독립운동가 분들이 암살하려고 들지만 모두 실패할 정도로
암튼 저 인간은 한마디로 개새끼야.
그러던중 경주에서 열차 관련시설을 위해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있었는데
땅을 파다보니까
아니 글쎄 유물이 나오는거야....?
사이코 마코토 저인간은 저렇게 구경도 갔다가 헐레벌떡 고고학자를 불러서 조사를 시키는데
바로 이인간임
고이즈미 아키오.
암튼 얘가 조사를 해보니까
"저번에 발굴했던 금관총처럼 왕릉이 확실해.. "
그래서 발굴작업에 박차를 가하던중 .....!
(재등장)
그당시 스웨덴의 황태자는 첫번째로 결혼한 황태자비와 사별하고 재혼을 했어
그가 일본에 여행차 오게되는데
1.신혼여행이였다
2. 재혼한 아내가 왕실생활에 무기력해져 기분전환차 왔다
등 여러책에서는 그 경위가 두가지로 나뉘더라구.
아무튼 구스타프 아돌프 6세 이 황태자는
무려 고고학덕후였어
(대대로 유니크한 취미가 있는듯;;;;)
실제로 고고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발굴경험도 있고 동양문화에 해박했다고해
그러니 준전문가정도로 볼수있겠지.
조선총독은 이 사실을 알게되고 거절할수 없는 솔깃한 제안을 하게되는데.....
"천년의 고도 신라의 경주라고 알고있어?
거기서 왕릉을 하나 찾았는데
아마 꽤 대단한게 나올지도 몰라
같이 파보지않을래...?"
이러한 제안을 한 이유는 스웨덴은 저멀리 북유럽의 일종의 중립국인데
이러한 발굴에 참여시킴으로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 하는 대외선전용으로 쓰기도 하고
스웨덴에게 정치에 간섭을 못하게하려는 수단이라고 보기도해.
콜.당.오를 외친 스웨덴 황태자 내외는 이렇게 함께
조선으로 뜻밖의 여정을 오게되고 부산항에 도착,
발굴작업에 돌입해
(엄청난 장신.....!)
왼쪽에 납작 엎드린 사람이 황태자이며 그 맞은편이 그 고이즈미 뭐시기 일본 고고학자.
참고로 황태자의 남동생과 그 여자친구가 동행하였다는데
저 뒤에 카메라같은것을 든 서양여자가 그 남동생의 여자친구라는 이야기도 있네.
황태자가 납작 엎드려서 섬세하게 붓으로 유물을 털고있네
앗근데 저기 금관앞에 황태자 바로앞에 뚜껑있는 도자기같은거 보여?
그게 바로 이거야 ㅎ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소유 "청동자루솥"
그당시 금관이 이렇게 묻혀있었고
금관 앞쪽의 일부분이 나온형태
대충 금관과 금귀걸이 등이 놓여진 것으로 보아 대충 시신이 어떻게 뉘였을지 상상이가?
그렇게 발굴을 열심히 열심히 해낸 결과는.....
(숨한번 쉬고)
1500년된 찬란한 신라의 금관.
높이 30.7cm, 지름 18.4cm, 드리개 길이 24.7cm
현 보물 339호
발굴해 들어 올리는 순간
이렇게 달린 곡옥들이 결따라 흔들리며 구경하던 모든사람들이 탄성을 지를 정도로
그 자태가 꿈만 같았다고 해
같이 출토된 금제과대와 금귀걸이.
생각보다 길어진 발굴작업으로 예정보다 오래 머무르게된 황태자는
그 날 저녁 경주 최부자댁의 99칸 저택에 머물며, 순한국식 진수성찬을 대접을 받게되는데
- 황태자님 무덤이름을 지어볼까 하는데요
서전(瑞典 스웨덴의 한문명)국 에서 오신 황태자님이 직접 발굴하셨으니
서전총이 어떻습니까?
(딸랑딸랑)
-......... ????? (정색)
아닙니다. 아름다운 동양의 찬란했던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 왕릉에
전혀 상관없는 서양나라의 이름을 붙여 모독할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왕관에 봉황문양이 있으니 봉황대라고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당황)(머쓱)
-음...봉황대라는 고분이 있어서 봉황총은 안됩니다
그럼 서전국의 '서'와 봉황의 '봉'을 따서 서봉총으로 하시지요
라고 해서 지금 경주의 서봉총이 존재하게돼.
멀리서 본 서봉총의 사진.
경주에 서봉총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돌연 저멀리 북유럽 나라의 황태자가 발굴했을지는 몰랐겠지?
오히려 위치도 어디있는지 모르는 나라의 황태자가 신라왕실에대한 존중과 예의를 보여주네
잠시나마 위안이 되지않아?
하지만 이 뒤에 더 환장하는 스토리가 존재해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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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재밌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