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서 활쏘기
때: 2001년 4월 20일~25일
곳: 말레이시아 코타 키나발루 휴양지
발제 및 강의 : 성순경(서울 황학정)
1. 말레이시아 활쏘기의 뜻.
지난 5월 8일, 서울 황학정의 성순경 접장한테서 메일이 날아왔다. 내용인 즉슨, 말레이시아의 한 휴양지 해변에서 활을 쏘았는데, 그곳에 왔던 각국의 사람들이 우리 활에 관심을 보였으며, 그 먼 과녁거리와 명중률에 놀라움을 표시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뒷통수가 뻐근해지면서 무언가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즉 온깍지궁사회가 겨우겨우 출범하여 걸음마를 떼는 이 순간에,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예를 들면 학술 사업으로 국궁논문집을 출간할 준비를 하고, 또 세미나를 열었으며, 답사까지 해서 우리 활의 올바른 모습을 지키는 작업, 활쏘는 사람들 중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그런 일들을 무수히 해온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국궁의 국제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또 아무도 이쪽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 포천에 답사를 갔을 때 밤을 새워 토론을 할 때 이건호 접장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즉 온깍지궁사회 홈페이지를 영문으로 번역해서 사이트를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워낙 큰 난제여서 그날 쉽게 결론을 짓지 못하고 끝을 냈다.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과정임을 우리는 잘 알았고, 그것을 머지 않아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은 누구나 공감을 했다.
그 전부터 어떻게 하면 국궁이 국제화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활의 우수성을 잘 알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던 차에 바로 성순경 접장한테서 그런 메일이 온 것이었다. 그러니 가슴이 두근거리며 정신이 번쩍 뜨일 수밖에...... '바로 이것이야!' 하는 것이 그 메일을 읽은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간 생각이었다. 그래서 곧 그런 활동이 바로 국궁의 국제화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홈에 소개하고 싶다는 뜻의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성순경 접장의 생각은 이랬다.
총무님.
제가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온깍지궁사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 되지않을까 큰 걱정이 됩니다. 아무 것도 아닌 단지 며칠동안의 개인적인 해프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린다면, 제가 그곳에서 일을 저질른 기간은 지난 4월 20일 부터 25일 까지이며, 특강(?)에 출석했던 학생들(?)은 남녀 합하여 약 20여명쯤 이었고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 이었습니다. 대부분 유럽에서 (특히 관심을 표명한 몇 사람들은 독일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온 사람들 그리고 미국 또는 그곳에서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대만, 타일랜드, 홍콩, 인도네시아 등)로부터 온 사람들 이었습니다. 현지 주민들에게도 상당한 관심꺼리가 되었었습니다.
아무튼 그 덕분에 말 (horse) 은 공짜로 타 볼 수 있었지요.
총무님!
그냥, 저 개인적인 여행담으로만 취급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성순경 올림
그러나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이 좋은 기회를 어찌 그냥 흘려보낼 것인가? 이것은 한 개인의 여행 중에 일어난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 대상이 우리 활을 전혀 모르던 외국인들이라는 점은 그냥 흘릴 수가 없는 중요한 사안인 것이다. 우리 활이 외국을 향해 이렇게 활을 잘 하는 활량의 주체로 소개된 적은 여태까지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몇 차례 설득 끝에 그의 여행기를 온깍지궁사회 홈페이지에 소개하기로 하였다. 그럼으로써 온깍지궁사회의 명예와 우리 활의 전통을 외국에 자랑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2.성순경 접장의 말레이시아 활쏘기
지난 4월 하순 경 동남 아시아 적도 부근에 위치한 <보르네오> 섬 북단 <말레이시아> 영토인 <사바>주 <코타 키나발루>라는 휴양지에서 며칠 동안 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그 휴양지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이곳저곳으로부터 얻어 보았더니, 사지 육신을 자연에 내맡긴 채 바보 천치가 되어 그냥 뒹굴어볼 수 있는 그러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활과 화살을 그냥 놓고 떠날 수는 없지 않은가! 개량궁을 궁대에 넣고 카본살 열 두 개를 전통에 챙겨 궁시가방으로 보따리를 만들고 있노라니 아내는 내가 정말 미쳤단다. 나도 아내의 진단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새로 지어 말끔히 단장한 인천 국제공항 청사를 빠져나와 약 다섯 시간 정도 남쪽을 향해 날아 그곳에 도착하여 보니 그 동안 내 머리속에 그려 담아놓았던 바 대로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바로 코 앞에 펼쳐졌다. 비행 도중 내 궁시 보따리를 맡아왔던 승무원의 요청으로 온깍지궁체(?)를 선보이고 입국 심사를 마쳤다. 숙소인 <넥서스 리조트>로 이동하는 차창 밖으로 활터(?)를 찾느라고 고심 중에 바빴으며 넓다란 녹지들이 지나쳐 사라질 때마다 머리 속에서는 이미 수십 개가 넘는 과녁들을 만들어 세우고 있었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가까운 활터(?)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짚다가 파도소리마저 숨죽인 바닷가에 <해변정(?)>을 창건하기로 하고, 약 이백 오십보 앞으로 나아가 여덟 자 여덟 치 여섯 자 여섯 치로 모래밭에 금을 그어 그 가운데 놓은 간이 의자를 받침 삼아 야자 나무 두 개를 잘라 가로로 꽂아 세워 과녁을 만들었다. 그리고 온궁회에 <해변정> 등록을 마쳤다.
아직도 이른 아침이라 섬뜩함마저 감도는 해변정 사선에 서서 우리 조영석 교장님과 이석희 행수님 그리고 선배 접장님들을 옆에 모시고 궁대에 한 순어치 화살을 꿰어
"활 배웁니다."
초시례를 갖추었다. 각기 자기 집 좁은 구멍을 찾아 짧은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던 바닷게들이 참관을 한다.
스무 순은 족히 내었다. 어렵디 어려운 온깍지 교본대로 말이다. 그 날 오후에도, 그 다음 날에도 그리고 다음 날에도 꼭 같이 우리 교본을 익혔다.
어느날 오후에는 바닷게들은 물론 각지에서 그곳을 찾아온 관광객들로 <해변정>이 붐볐다. 신기한 눈초리로 함께 하던 그 사람들이 무겁터로 나아가 고전을 자청한다. 대부분의 화살들이 그어놓은 과녁 안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것을 확인한 그 고전들이 감탄을 한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한국의 로빈훗>이 되어 점잖게 그리고 당당한 모습으로 <넥서스 리조트>를 활보하면서 우리 활 자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고전을 맡았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우리 활쏘기> 구경을 원하던 사람들을 모아놓고 우리 활과 화살의 재질과 성질은 물론 집궁의 기본 원칙들을 설명하는 특강(?) 시간을 마련하였다. 물론 개량궁과 카본살에 대한 것들도 각궁 죽시와 비교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특강을 마친 후 그들이 앞다투어 신사(?)를 자청하고 사대에 선다. 비정비팔 흉허복실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뱀처럼 꼬인 자세로 힘겹게 당긴 현에 야단을 맞고 보낸 화살들이 바닷물에 그리고 수풀 속으로 혹은 두어 발 앞으로 어지럽게 흩어진다.
<한국의 로빈 훗>이 한 순을 더 내 보인다. 숨죽인 감탄 속에서.
<시드니>의 우리 딸 아들들의 자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 딸 아들들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또 동이민족, 태조 왕건, 이태조, 충무공, 권율.......온깍지궁사회, 국궁신문, 사이버 궁도장 자랑꽃이 만발한다.
<한국의 로빈 훗>이 삼순째 시범을 보인다. 그 관광객들의 눈초리에 우리 활의 위대함이 새겨져 있음을 읽고 궁시를 정리하여 <우리 활 특강>을 마쳤다.
<코타 키나발루>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대여섯 시간 동안 왠일인지 마음이 그렇게도 무거웠다. 승무원들의 눈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맥주 그리고 꼬냑을 청하여 마시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분명 크디큰 책임감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 그들이 동이민족, 태조 왕건, 이태조, 충무공, 권율,.......온깍지궁사회, 국궁신문, 사이버 궁도장을 알겠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 국궁을 오대양 육대주에 훤히 내다보일 것인가? 우리가 지금 그것을 고민하고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은 동이민족, 태조 왕건, 이태조, 충무공, 권율......온깍지궁사회, 국궁신문, 사이버궁도장을알고 있는가?
내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들이 아닌가!
우리 온깍지궁사회의 막중한 과제가 아닌가?
황학정 사말 성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