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면 자세를 바꾸어 주어도 됩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덥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저리기도 하고 가렵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보려고 하지 말고 그것이 일어나는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그럴 때에는 마음에 못 견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못 견뎌 하는 마음을 볼 수 있는 만큼 보도록 하십시오.
가려움이나 아픈 것, 그런걸 보지 말고 못견뎌하는 마음을 보도록 하십시오.
그 마음을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면 자세를 바꾸어 주어도 됩니다.
그리고 못 견뎌하는 마음을 봐서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때는 가려움이나 아픈 느낌을 봐도 됩니다.
사람들이 아픈 것을 왜 못 견뎌하는가 하면
아픈 것은 나쁜 것이라고 고정관념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프면 못견뎌합니다.
아픈 것에 대하여 ‘이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라고 바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못견뎌하지 않고 볼 수가 있습니다.
아픈 것에 대해 거부하는 마음이 없을 때는 어떤 마음들이 일어나고
거부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어떤 마음이 일어나는지 관찰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어떻게 쓰면 몸의 느낌이 어떻게 되는가?'
이런 것을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아픈 것이 사라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플 땐 어떻게 되는가?'
'어떤 마음이 일어나고
그 마음을 보면 어떻게 되고 그럴 때 몸의 느낌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을 계속 관찰함으로서 그것의 이치를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그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어떻게 상상을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매운맛을 어떤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합니다.
그 매운 것에 대해서 내 마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다음 마음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떤 대상과 부딪쳤을 때(만났을 때)에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계속 관찰하다보면
내 마음이 ‘이럴 때는 이렇게 되고, 저럴 때는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이 그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어떻게 상상을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어떨 때는 그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요?
어떤 때는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때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단지 있는 그대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화가 있을 때 그 대상을 어떻게 보는가?'
'화가 없을 때 그 대상을 어떻게 보는가?'를 배울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관찰해야만 됩니다.
탐심이나 진심이 없을 때에 사실을 사실대로 바르게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소리가 들렸을 때에
그 소리는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면
거기에는 원하는 마음도 없고 못마땅한 마음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자연의 이치일 뿐입니다.
있는 그대로 일 뿐입니다.
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입니다.
만약 큰소리가 들리면 어떨까요?
대부분 사람들이 나쁜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화가 날것입니다.
그냥 큰소리를 단지 큰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까요?
큰소리는 단지 큰소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아주 고요한 것,
소리가 하나도 없는 상태는 좋은 것인가요? 나쁜 것인가요?
많은 사람들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좋은 것이라 생각할 것 같으면 고요한 상태에서는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시끄러운 상태에서는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생각을 할 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아프면 ‘아이고 아파!’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몸이 있으면 아프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을 하나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볼 줄 안다면
그 사람에 대하여 집착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화를 막내고 있을 때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어떻습니까?
자신도 화가 나나요?
그 사람이 화가 났으면 '저 사람이 화가 났구나!' 단지 그렇게 보십시오.
그 사람이 화가 났는데 내가 같이 화가 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생각을 바르게 할 줄 알 것 같으면 마음이 훨씬 더 편해집니다.
사람들이 딱 분별해서 ‘이것은 좋은 것이다, 저것은 나쁜 것이다’라고 정해놓으면
좋은 것, 나쁜 것에 대해서 마음이 자꾸 반응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동요하게 됩니다.
이 이치를 어느 곳에든 다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바가 없고, 좋아하는 것이 없게 되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이렇게 생각을 할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견해가 중요합니다.
일어나는 것은 모두 ‘단지 다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 줄 알고 그런 생각으로 계속 알아차리면 됩니다.
사띠하는 목적은
대상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나 특별한 체험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몸과 마음의 자연적 성품과
그들 간 관계의 자연적 이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 이런 것들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그 이해한 만큼 자연스럽게 좋은 마음들의 힘은 증장될 것입니다.
또 그 만큼 나쁜 마음들의 힘은 줄어들 것입니다.
대상을 억지로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마음이 뭘 알고 있지?' 이렇게 생각만 하면 됩니다.
'뭘 알고 있는가?' 하고 그것만 체크하면 됩니다.
'내가 지금 뭘 알고 있지?' 라고 물으면서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있으면 됩니다.
그것을 항상 하고 있으면 됩니다.
▪항상 사띠가 있을 때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좌선하는 것을 수행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앉아 있을 때에도 사띠가 있어야 되고,
경행을 할 때도 사띠가 있어야 되고,
먹을 때도 사띠가 있어야 됩니다. 그
렇게 항상 사띠가 있을 때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행할 때 '뭘 알고 있는가?' 하고 물으면서 알아차리면 됩니다.
다리만 집중해서 보지 마십시오.
그냥 걸어가는 것을 알도록 하고
그러면서 마음이 '뭘 알고 있는가?'를 알도록 하십시오.
무엇을 알아차려도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이 알아차리고 있는 것을 알면 됩니다.
마음이 발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손에도 갈 것입니다.
마음이 발에 가면 발에 가는 줄 알고(발의느낌을 알아차림),
머리에 가면 머리에 가는 줄 알고(머리의 느낌을 알아차림),
손에 가면 손에 가는 줄 알고(손의 느낌을 알아차림) 하면 됩니다.
어디든 상관없이 마음이 가는대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공양할 때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지금 '사띠가 있는가?' 그걸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뭘 하든지 간에 사띠가 있으면 됩니다.
자주 자주 '사띠가 있는가?' 하고 체크하도록 하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첫댓글 사띠로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_()_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