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속
- 엄마 나 배고파
카페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던 정희가 눈을 뜨고 나와 막따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정희가 뽀송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예뻤다.
마치 내가 낳은 딸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나는 지난 17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내가 너무 외롭고 쓸쓸할 때도 나는 오직 일에만 매달렸다.
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나는 막따리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과 탄식을 재울 수 있었다.
같이 섬에 살 때는 막따리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막상 막따리를 두고 야밤에 도주하듯 섬을 떠나와 객지를 전전하면서 나는 한시도 막따리를 잊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막따리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갔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내 안의 모든 어둠은 막따리의 고운 미소가 다 채웠고 눈을 뜨면 막따리의 생각에 모든 나의 의식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나는 다른 여자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사랑이란 것이 가까이 있으면 더 깊어지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만 더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너무 막따리가 보고 싶고 그리우면 나는 두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한겨울이라도 냉수를 뒤집어쓰면서 막따리에 대한 나의 열정을 지우려고 발악하다 시피 했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세월이 어느 듯 17년이다.
오직 막따리 생각하나로 내 인생을 일구어 왔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왜 사랑이란 것이 꼭 지나간 다음에야 가슴 터지도록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의 영혼이 모두 소진되고 나의 육신이 모두 메말라 낙엽처럼 떨어지고 나의 형체가 밀봉되는 순간까지 막따리에 대한 사랑하나로 버틸 참이었다.
언젠가 KBS에서 이별한 사람 찾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생방송되던 한 달 동안 몇 번이고 한국본사에 연락해서 막따리를 찾고 싶은 때도 있었다.
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지금쯤은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가정을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진실할 수 없다 했지 않았는가?
나는 막따리의 환상 그리움 그리고 내 다 타오를 수 없는 열정으로 내 인생의 최후를 맞는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오직 하루의 시작도 막따리였고 하루의 마감도 막따리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으로 그렇게 많은 세월 보냈다.
그런 막따리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지난 세월 너무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너무 목이 막히고 너무 가슴이 찢어져 버틸 수가 없었다.
왜 우리에게 지난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이렇게 허송하게 만들고 이제 와서 막따리에게 상처만 남은 세월 주었는지 신에게 원망하는 마음으로 막따리의 옆에서 금방 잠깬 정희를 조용히 쳐다보며 나는 웃었다.
정희에게 보내는 이 미소는 막따리에게 다 못한 사랑의 미소였다.
- 정희야 미안하구나 정희 깨워 배고프지 않게 해야 하는데 아저씨 때문이야 미안해 정희야
- 아니에요 아저씨 그렇지만 난 잠자면서도 아저씨 생각했어요
- 오 그랬구나 아저씬 엄마만 생각했는데
- 아저씨가 우리 엄마 좋아하니까 전 좋아요 우리 엄마 슬프거든요
- 정희야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정희에게 더 하려던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에서 용암같이 뭉클하고 뜨거운 느낌의 감정이 북받쳐 나의 말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침을 삼키며 정희의 곁으로 가서 정희를 꼭 끌어안았다.
섬에서 마지막 밤.
아버지가 새벽부터 하루 종일 힘들게 잡아온 물고기를 바다에 빠트린 그날 밤 막따리가 내게 까치발로 걸어와 평상의 나를 끌어안았던 그 느낌 그대로 그 향기 그대로 정희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정희를 한 단계 더 가깝게 내 품에 끌어안았다.
정희의 뛰는 심장 소리가 막따리의 심장소리처럼 들렸다.
- 정희야 아저씬 정희를 엄마보다 더 사랑한단다
- 정말이에요? 아저씨?
- 응 그럼
- 허지만 아저씨 전 어쩌면 봄에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엄마를 더 사랑해 주세요 우리 엄마 불쌍하지 않게요
나는 그 순간.
정희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울었다.
소리 없이 오열했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으로 나의 눈물을 받아마셨다.
그리고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같은 슬픔으로 막따리에게 심장으로 소리쳤다.
막따리 왜 정희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거야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정희를 낳았어? 이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정희를 이 세상에 오게 했어?
참을 수 없는 격정에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신은 왜 이렇게 가혹하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이 세상 단 하나의 여자에게 어찌 이다지도 냉혹하단 말인가?
과연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신은 이렇게 냉혹한 존재였단 말인가?
하나님의 섭리가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나는 내가 나가는 교회의 십자가를 떠 올렸다.
무엇 때문에 내가 교회에 나가서 막따리의 행복을 빌며 지난 17년을 보냈는지?
그 해답이 이런 꼴로 내게 내려진단 말인가?
터지는 가슴속 격정의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는데 정희가 나의 목을 끌어안은 체 속삭이듯 말했다.
- 아저씨 나 배고파요
나는 얼른 냉정을 찾았다.
정희의 그 말이 나를 진정시켰다.
우리는 저녁을 그 카페에서 먹고 내 회사가 운영하는 호텔로 갔다.
제일 좋은 방에서 하루 밤이라도 편하게 정희를 잠재우고 싶었다.
제일 화려한 방에서 하루 밤이라도 막따리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것이 막따리에 대한 내 사랑의 보답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막따리와 정희가 30층 아래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시내 전경을 보며 뽀송하게 웃었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도시엔 어둠이 너무 짙게 깔려있었지만 그 어둠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가슴살 풀어헤친 여인의 살결처럼 수줍은 듯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수많은 차들이 헤트라이트를 켜고 분주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정희를 안고 그 창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정희에게 말했다.
- 정희야 아저씬 이제 정희하고 엄마 어떤 일 있어도 지킬거니까 다시는 죽을지 모른다는 소리하지 않기로 약속해 줄 수 있어요?
- 네
- 정희야 아저씨가 정희 치료 어떻게 해서든 할 거야 그리고 우리 정희 다 낳으면 아저씨랑 엄마랑 두바이 가자 정희 두바이가 어딘지 모르지?
- 알아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사막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운 도시잖아요
- 그래 맞아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운 곳이지 아저씨도 그 곳에서 일했단다 아저씨가 지은 호텔 이 보다 더 높은 곳에서 엄마랑 우리 정희랑 살고 싶은 만큼 살다 오자 알았지?
- 약속?
- 그래 약속하자 우리 정희 위해 약속하자 막따리 막따리도 약속하지?
그리고 내가 옆으로 돌아보았을 때 막따리는 아주 엷고 가는 습기를 두 뺨에 흘리고 있었다.
막따리의 그 습기는 도시에서 올라 온 불빛이 반사되어 빨갛게 얼룩지고 있었다.
그리고 막따리는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다음카페 아마추어'불자라'
"종교란 살아가는 가치관과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보석"
첫댓글 아...오빠분 나오셨네요..에고 어린 정희가,,,엄마 걱정을 다하는것이,,,너무 맘이 아파집니다,,TT
인어뷰님 아직 안잤어요?
어서 자야 피부 좋아지지요....내일은 또 아름다운 날로 만드세요.
재미난글잘보고갑니다 항상불루보트님의 아마추어불자라를 아껴주시고 힘써주심에 많은 감사드립니다
그리고저도 배호노래를 무척좋아합니다
요즈음은 노래가사하나 올바르게 생각나는것없지만그래도 추억속으로 달려간다면 항상배호노래를 많이 생각합니다
지금도 육성 좋으신데요
배호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협회근무할 때 앞 옥상탑에 살았는데 아침마다 같이 순두부 먹으며 웃었던 기억납니다
그때 백일섭도 같이 알았죠.
이젠 파란낙엽처럼 옛날이네요
사천왕대령이요!
주말이라고 식구들의 성화에 잠시 대학로에를 갔다가 아이쿠! 왠젊은이들이 그리많은지 나이든 우리는 기가죽어서 길거리를 못다니겠더이다
우리 가족들은 사람틈바구니에서 어디로갔는지찾기도힘들고 공연히 피곤하기만 하군요
그래도 불루보트님의 글을 빨리 봐야하겠기에 들어왔다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사천왕 님 행차십니다 다 자리 일어서 주세요.
사천왕님 대학로에서 힘드셨던 행차 여기선 편하게 하십시오
아름답고 행복한 밤되시구요
바램이도 불루보트님의 재미난글 보고 감명받고갑니다
다음에또 들르겠습니다
우리아마추어불자라에 좋은 분들이 많아서 참좋은 카페같아요!
법문도 재미나고 유머도 좋아요!
천박하지않고 품귀가 느껴지는 유머가 많아서 자주옵니다
그리고 특히 불루보트님의글 몇번씩읽고갑니다
고맙습니다 바램이님
칭찬해 주시니 더 좋은 글로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밤도 아름다운 꿈꾸시구요
멋장이문열고 왔다갑니다
요즈음 가족의 성화로 귀농?아이쿠 아무런 대책도없이 그냥 마음뿐입니다.
저는 먼지도싫고 드거운 햇볕도싫고 어쩌다 시골에 다니러가면 그늘만 찾아다니는 서울촌사람입니다
하두 서울생활이시끄러운지 가족과지인들의 입바람으로 ......가보았다가 그늘속에앉아서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만보았답니다
한심하지요?;;;;;;;;;;;;
귀농도 아무나 하는건 아닙니다
전 바닷가 살려고 노력했는데.....지금은 그냥 꿈 속의 그림이되었네요
허지만 도시형 사람은 도시의 그늘에서 사는 것 그것이 옳다고 전 생각합니다
오늘도 행복찾기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