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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논평 ** 화요논평 (2011년 3월 9일) <나는 가수다>: "내가 (다) 죽인다." (수정)
ahjabie 추천 1 조회 942 11.03.09 19:31 댓글 2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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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3.09 20:13

    첫댓글 좋은글 잘 봤습니다.

  • 작성자 11.03.11 13:45

    글인데 보셨다니요? (농담입니다. 제가 오늘 좀 우울해서요..--;;) 처음 뵙는(게 아닐 수도 있는)데, 잘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 11.03.10 14:46

    정말 오랜만에 글을 읽고 느끼는, 카타르시스.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11.03.11 13:46

    정말 오랜만에 글을 읽으셔서 그런 것일수도...(역시 농담입니다. 이유는 상동..--;;) 저도 감사합니다.

  • 11.03.10 23:03

    엠비시가 그나마 궁리해서 낸 프로그램인데 또 망할지 안망할지 두고 볼입니다만(망할 확률이 높지만..)...아자비님의 문체는 랩하면서하는 100미터 달리기군요..

  • 작성자 11.03.11 14:47

    저는 점은 못치구요..(상동..)...한글로- 뿐만이 아니라-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대해 진심으로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있던 중에 말 그대로- 수동태로- '쓰여진' 글입니다. 당연히 '문체'는 모르겠고, '랩'도 거리가 있지만, 노래/음악의 호흡으로 쓰여진 글이란건, 의도한 건 아니므로 '그러고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스타카토에서 광폭하게 몰아치는 루바토까지 잡았다 풀고 풀었다 잡는 생각과 감정의 호흡, 요동, 수축과 이완의 리듬을 구획하기 보다는 거기에 몸을 맡겨보려 했죠,라고 쓸 수 있으면 좋을텐데...거의 준비운동 없이 달린 거라 그런지, 제겐 거의 200미터로 느껴지더군요. --;; (지적하셔서 사실 헉, 좀 놀랐습니다)

  • 11.03.12 07:04

    정말 멈추지 않고 멀리까지 나아간 글이군요. 이 글과 비슷한 맥락에서 첫 방송에서 받은 인상은 거기에 출현했던 개그맨과 가수와 청중과 PD의 편집 방식 모두가 일종의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수동적이든 능동적 형태이든.그래서, '나는 가수다'라는 선언에 괄호쳐진 여러 부정판단들에 오히려 관심을 기울여여 하지 않나 생각했었죠. 이를테면, '아이돌이 아니라' '트로트 가수가 아니라' 등등.

  • 작성자 11.03.12 08:06

    감사합니다 (그래도 되는...거겠죠?) 그런데 suture님, 설명을 좀 더 덧붙여 주시면 더 또렷하게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답글 자체에 괄호가 적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저들 모두가, 의도와 무관하게, 기능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연합'을 구성한 것이라는 말씀은 분명히 어떤 주장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또 '나는 가수다'라는 선언에서 부정판단들을 읽으셨다는 얘기는, 아이돌과 트로트라는 범주 자체에 대한 suture님의 위계적 가치판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 작성자 11.03.12 08:22

    <나는 가수다>에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텍스트로서의 곡에서 분리될 수 없는 '가수'란 존재를 거기서 떼어내고, 대신 performance를 인지적 기호의 연쇄로, 요즘말로 '움짤'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물신화하려는 경향/유혹이 전면화되어 있으니까요. (정엽 노래 싸비인 'nothing better'를 숨죽여 기다리던 김신영과 벌떼들은 여기에 괴성을 지르고, 그 화면은 몇 번 반복됩니다) 여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걸려든' 이가 박정현이나,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죠. 정엽처럼 차분한 척 걸려드느냐, 백지영, 김범수처럼 실패하느냐, 윤도현처럼 밴드의 staging으로 시각화하느냐, 김건모처럼 (지나치게) 초연한 척 하느냐

  • 작성자 11.03.12 08:37

    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이를 통해 제가, 당일 공연에 대해 저의 '취향'이 아닌, 칸트가 3비판서에서 정의한 의미에서의 '판단'을 '암시'하고 있음은 물론입니다만, 이러한 판단 자체는 예를 들어 싱어송라이터와 virtuoso performer의 차이를 파고들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심수봉씨가 '트로트'라는 장르 안에 가져온 어떤 균열과 기여를 김범수의 (해석력 없이, 좋은 곡을 만나야만 빛나는) 보컬에 비교하는 건 그 말의 근본적인 의미에서 전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 11.03.12 20:52

    트위터 식 답글이 되었던 거 같네요. '140자 내로 쓰시오' 우선 전 '나는 가수다'에선 취미판단이 괄호쳐져 있고, 물론 기능적으로는 청중들의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다 할지라도, 그것도 무의미한 방식으로 말이지요, 그 괄호침이 또한 강요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가수다'를 그 무엇이 아닌 부정판단으로 봐야하는 이유도 '위계적 가치 판단'이라기 보다는 지난 주 프로그램에서 '가수가 무엇인가'라고 출연자에게 질문되었듯이 저 선언이 질문으로 바뀌게 되는 지점에 있는 거 같아요 여타 음악 프로그램과의 비교를 통해서 상대적으로 그리고 부정적으로만 가수를 정의내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표면적으로는 그게 장르적

  • 11.03.12 21:06

    인 형태일 수도 있고, 생산과 소비의 형식에 따른 형태일 수도 있고, 그래서 윤도현이 '홍대 인디 밴드' 후배를 몇 번이나 소환했던 것도 이 맥락에서 흥미롭게 읽힙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장르와 취향을 위계적으로 구별짓는 부정판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는 가수다'를 무한판단으로 만드는 저 질문에 답하는 데 이 프로그램의 무의식적 목적이 있지 않나 싶어요. 이 지점에서 '연합'과 관련한 정치적인 알레고리가 발견된다고 생각합니다. 순전히 형식적인 측면에서 말이지요. 처음에는 상대 가수가 블라인드 된 채로 그리고 앞으로 계속 누가 일곱 번째의 빈 자리를 채울 것인가가 블라인드 된 채로, 아무리 참여의 개인적인 동

  • 11.03.12 21:21

    기를 강조한다 해도, 이성의 간지를 통해서 하나의 공통된 목적에 기여하도록 모두에게 강요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공통의 목적이 무엇일까는 지금으로는 확실치 않습니다. 물론 여기서 진보 대연합에 대한 알레고리를 읽을 수도 있겠지요. 다만 분명한 건, 그 형식이, (음악적) 권위를 일시적으로 취향과 양적 임의성의 결합에 의해서 무력하게 만드는 그러한 비극의 무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이나 거기에 장단을 맞추고 열광하거나 비판하는 이들이나 모두들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이지요. 서로 좀 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하게 돕지 않으면, 마치 미드의 '로스트'의 주인공들처럼, 그 무대 자체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 작성자 11.03.16 15:34

    leereel님의 흥미로운 지적 덕분에, 나중에 발전시키려고 했던 생각들 몇을, 시간 날때마다 틈틈이 엮어보려 하고 있습니다만 먼저 끝내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자꾸 밀리네요. 아쉬운대로 내일 오전 중에는 꼭 올리도록 하죠. 안팎으로 세상이 말 그대로 하수상한데, 어디서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 11.03.13 16:41

    어휴 어렵게 읽었네요...하나의 프로그램을 갖고 이렇게도 열심히 분석을 해주신 노고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요

  • 작성자 11.03.16 14:48

    글이란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던지면 턱, 하니 받는 공처럼 쉬운 글은 쓰기 싫고-차리리 공놀이를 하죠-, 그렇다고 끈풀린 연마냥 위로만 치솟는 글도 싫고. (그럴게 실종된 수많은 연들이 타거나 찢어지지 않고 모두 '습득'되어 어딘가에 모여있다면, 외롭진 않겠죠?) 그런 욕심을 내려놓고 포기하기가 참, 아직도 쉽지 않네요. 제가 밟고 선 땅의 흙 알갱이를 300배로 확대해 보여주다가도, 한 숨에 훌, 쩍 뛰어'사방조그스크롤이가능한위성사진과같은조망'을 제공하곤 싶은데- 머리 속에선 그게 가끔, 아주 가끔 되거든요-그런데 거기서 자판까지가 때론, 카프카의 성처럼 멀고,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GPS는 벌써 고장...저도 감사합니다.

  • 11.03.28 08:04

    감히 댓글은 못달겠는데 아자비님의 요 댓글에서 가슴이 뭉클하였다는 말은 전하고 싶어서 자판을 두드립니다.

  • 작성자 11.04.01 13:56

    관객님의 답글을 읽고 제 '요 댓글'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어디서 '가슴이 뭉클하였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는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관객님께서 올려주신, 따님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글을 읽고나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감동의 비밀은 제 글이 아니라 관객님에게 있었다는 걸. 거기서 님은 이미, 어떤 의미에서 관객이 아니었다는 걸. 그러나 동시에,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도 아니었다는 걸. 그럴수만 있다면, 그 편지의 수신인이었던 소녀의 미래를 만나 확인해보고 싶다는 저의 호기심조차, 농익은 '관객'(님)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부산스런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돌아서면 식어버릴 플래쉬 세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말입니다.

  • 작성자 11.04.01 14:06

    그러므로 '감히' 바라는 것은, 비록 걷는 길은 다를 지 모르나, 때로 하품과 숙취와 분노와 얼룩과 땀에 뒤범벅되어 쓰여지는 글일지라도, 제가 쓰게 될 글중 몇몇은 언젠가, 님께서 그 소녀에게 건내주신 편지처럼, 도착해야할 이의 마음에 다달아, 그저 한 때의 '위로'가 아니라, 그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그/녀를 일으켜세우고 나아가 숨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라는 말은 거두시기를. -물론 그러시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더욱 '가감'없이 '과감'하게 다시기를 바래보는 것이지요...

  • 11.03.16 00:04

    오랜만에 접하는 아자비 님의 글이 많이 반갑지만, 지금은 이 가파른 호흡의 글을 읽을 만한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도 한번 챙겨보고 눈도 좀 쉬게 해서 찬찬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작성자 11.03.16 16:40

    모모님! 잘 지내셨어요? 이렇게 인사드리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제 다음이셨던 것도 몰랐어요. 예. 글은 편해지시는대로 읽으셔도 (물론 그냥 TV만 보셔도) 되구요. 이래저래 저도 마음이 일렁이는 중인데, 이 감정적 멀미가 잦아드는대로 모모님글도 읽어볼께요. (그래도 덕분에 지난 며칠 간, 시도때도 없이 미역줄기처럼 떠오른 멜로디를 건져서 세 곡의 주제부를 건반으로만 녹음을 해놨는데 그 중 하나, 특히 어제 새벽에 만든 서주 진행은 그리 나쁘지 않아요, 라고 쓰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NHK의 일본 쓰나미 비편집본을 처음으로 봤습니다...눈 앞에서 벌어지는 재앙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계'적'이지 않은 '기계'의 눈...

  • 작성자 11.03.16 16:48

    '언젠가 들려드릴 기회가 있겠죠 :)'라고 끝맺는 답글이었는데...이걸 보니 문득,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란 땅 속에 '타임캡슐'을 묻는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마저 언젠간 이렇게 파헤쳐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걸 모르지 않으나, 그 광경을 사진찍고 남겨두는, 그 바보같은 '치~즈!'에 늘러붙은 눈깜짝할 만큼 짧은 시간의 흔적으로서의, 미소. 자, 그러니까 우리 다시, 여기 보고, 눈감지 말고, 고개 좀 더 왼쪽으로, 그치그치그치 그래 자 간다, 치~즈...

  • 작성자 11.03.17 18:14

    비평고원 게시판에 이 글을 좀 더 밀고 나아간 글 둘('애타게, 사라지려는 매개를 찾아서'I, II)을 올렸습니다. 특히 leereel님께 감사드립니다.

  • 11.03.18 02:33

    드디어 '애타게' 매일 한 번씩 들르며 기다리던 글이 올라왔군요.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그 두 글은 아껴뒀다 집에 가서 읽어야겠습니다 (임의로 아이디를 바꾸면 안 될 거 같아서, 기존의 아이디 suture를 다시 사용합니다)

  • 11.03.21 11:24

    어제 김건모가 마지막 립스틱을 칠하고 피에로처럼 반은 웃으면서 쿨한듯하지만 결코 쿨하지는 않은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가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광대가 슬플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았던 것 같은데, 평가를 받기도 전에 김건모는 피에로의 슬픈 모든 것을 보여주고 무대를 내려가더군요. 그 가슴속 서늘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건반을 끼고 그렇게 노래를 연습했다고 했고, 자신의 목소리의 톤과 노래가사와 맞지 않는 모든 것을 넘어 노래하려 했던 가수가 있었고, 사람들은 판단을 했고, 그는 꼴찌를 차지했고, 가수들은 펑펑 울었고, 제작자들은 그를 구제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모를 행동으로 그

  • 11.03.21 11:26

    를 다시 무대에 세웠습니다. 그 모든 슬픔은 지나간 것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지나가서 사라지려는 것을 고통스럽게라도 호명하고 싶은 시간이라는 무서움이 있지 않았을까요. 시간 안에서 우리는 분열되어 있다던 들뢰즈의 말이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방송입니다. 편하게 듣고 즐겨야 하는데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나는 걸 보면 분열된 제 모든 자아들이 서로 반목하면 아우성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 작성자 11.04.01 14:17

    사자님의 파토스에 동의합니다. 거의. 왜냐하면 저는, 아마 지금쯤은 이해하시리라 믿지만 저는, 이 무대를 "편하게 듣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 분열의 아우성을 틀어막지 않기를, 그 아우성에 귀를 막지 않기를, 그럴 수 있기를, 그래서 그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상황조차 버텨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때에야 진정 무언가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므로. '득음'은 그들만의 목표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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