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사띠의 확립'이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삼빠쟈나 사띠하는 자 되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숲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 기거하거나, 외진 장소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 세우고 입가에 사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사띠하며 숨을 들이쉬고 사띠하며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하면서 수행한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공(陶工)이나 도공의 도제(徒弟)가 길게 돌리면서 '길게 돌린다.'고 잘 알고 짧게 돌리면서 짧게 돌린다.'고 잘 아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잘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잘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잘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잘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수행한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수행하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하면서 수행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사띠를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사띠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 '걷고 있다.'고 잘 알고, 서 있으면서 '서 있다.'고 잘 알며,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잘 알고,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잘 안다.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잘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사띠를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사띠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 후략(後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