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자리에서도 위안부는 있어야 한다
- 소설 박정희의 최후
김재규는 앉은 자세로 오른쪽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먼저 왼쪽에 앉아 있던 차지철 경호실장을 향해 1발을 쏘더니 뒤 곧바로 마주 앉아 있는 나를 쏘았다. 소란의 와중에서 동석한 여자가 괜찮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또다시 김재규가 쏜 총성이 울리고 내 머리가 훤히 뚫리는 것 같았다. 아니 진짜 뚫리고 있었다. 생전 느끼지 못했던 시원함과 개운함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라. 손에 바람이 닿으면 시원한데 그것은 손이 받은 느낌을 신경이 뇌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가 뚫려 뇌수(腦髓)가 직접 바람을 맞고 있으니 그 느낌은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 것인가. 뇌수가 머리에 난 구멍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면서 그 서늘함은 극에 달하고, 그 뚫린 구멍을 통해 나의 영혼도 몸에서 빠져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경제발전을 일으킨 대통령으로 많은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나의 재임시절에 이른바 좌파시대의 씨를 뿌린 것이었다. 미국 원조와 노동자들의 땀으로 이룩해 놓은 경제성장을 오직 나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는 추종자들이 아직도 한국에는 많이 있다. 그들은 나를 매우 숭배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 안보와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오히려 그들 입장에서는 희대의 역적이 되어야 마땅하다. 한반도 내에서는 오직 대한민국만이 국가이며 북괴는 반란도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법통을 깨뜨린 급진주의자가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나를 역사에 기록되게 하기 위해 7.4 남북 공동성명이라는 것을 통하여 북과 회합하는 한편, 민족, 자주, 평화적 통일 운운하여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의 물꼬를 트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전까지는 공산주의와는 타협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과감하게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협정을 맺었던 것이었다. 이것만은 고백하건대, 나를 떠받들면서 우익을 자처하는 것은 모순인 것이다. 경제발전은 미국에 의한 당연한 결과였다. 그전에 김일성이 천리마운동 등으로 경제발전을 먼저 이루자 질투가 난 나는 그걸 본떠서 새마을운동을 한 것뿐이었다. 당시 동일방직 노동자 시위에서는 “빨갱이 박정희 물러나라”란 구호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숭배하는 이른바 보수주의자들이 많은 것은 내가 오래 집권하는 동안 이 나라의 체제를 나의 식대로 맞추어 놓아 그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정책에는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비판이 잦았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 나라가 조용해진 역사적 사례를 본떠 지식인들을 없애야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나는 <사상계(思想界)> 등 잘난척하고 아는 체하는 잡지들을 폐간시켰다. 더 근본적으로 지식인 싹을 잘라내기 위해 나는 한글전용과 중고교 평준화를 단행했다. 사람들이 지식인을 조롱하는 풍조의 씨를 뿌렸다. 대중들이 지식을 이해(理解)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지식을 무시하며 무식을 당당히 자랑하는 풍조가 그 뒤로부터 만연되었다. 평등을 절대적인 가치관으로 보는 풍조 또한 나의 평준화 교육정책에 말미암은 것이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계승되고 있다. 요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평준화 교육정책의 개편을 반대하고 있는데 한 간부 선거 공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대구지역의 고교평준화 해제 여론을 저지하고, 평준화 확대■강화를 위한 여론 조성에 앞장서겠습니다.”
평준화 교육정책은 내가 후대에 남긴 여러 영향력 있는 정책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매우 큰 업적이다. 그러니 전교조는 나를 한국 참교육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하여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위원장과 간부들이 내 기념관 건립 반대 시위를 했다고 한다. 그들에 따르면 나는 스스로 일본군인이 되어 독립군 압살에 앞장섰고,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씨를 뿌린 4.19 혁명을 짓밟으며 군부독재로 민중의 인권을 짓밟은 자라고 한다. 내가 청산될 인물이지 결코 기념할 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여러 업적 중에서 교육정책과 관련해서 으뜸인 것이 중고교 평준화이다. 전교조는 나에 대한 반대를 철회해야 한다. 자신들의 오늘이 있게 한 바탕을 만들어준 은인을 그렇게 대접하는 것은 안 된다.
짧은소설집 <나는 이렇게 죽었다> (인터넷 출판 <영혼에게 듣는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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