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주라는 인물이 실제로 함흥에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 하면, 두가지 이유로 문자작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첫째, 중국공산당 마적단이었던 동북항일연군이 러시아에서 조선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없으므로 문동기가 존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그의 형도 존재하지 않았다. 둘째로, 드라마 해경의 실제 인물 강수임은 나이가 14세가 더 많아 해방정국 때 30대 후반의 나이였다. 동년배의 딸을 문자작이 가졌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문자작이란 인물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그의 덕택에 출세한 박창주라는 인물 또한 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박창주와 닮은 두가지 캐릭터가 가능하다. 박창주의 일본군 신분으로 본다면 홍사익 장군이 조선인으로서 일본군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신 분이셨다. 그런데, 홍사익 장군은 드라마에서처럼 항일운동가 잡는 일본군인이 아니라, 항일운동가들을 수호하는 일본군인이었다. 종종 그는 헌병대장이 조선인들을 체포하러 하는 현장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면 투 스타 앞에서 헌병대장이나 일본군 장교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입술을 부르르 떨며 부동자세로 서서 경례한다. 홍사덕 장군은 "야! 풀어줘!" 한마디 던지고 지나간다. 그러면 일본인 장교들은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조선인 항일운동가들은 그 자리에서 풀려나 안전하게 된다. 이처럼 일제시대 때 홍사익 장군은 항일운동가들의 구명 운동을 하소연할 수 있는 한가닥 희망이었다. 실제로 드라마에서처럼 총독부 총독이나 총감에게 항일운동가 구명 운동을 할 이가 과연 몇이나 되었겠는가? 그러나 홍사던 장군은 같은 조선인이기에 서로 통할 수가 있었다.
만일 함흥에서 월남한 사실과 반공정신으로 따진다면 박창주에 가까운 캐릭터는 한경직 목사님이셨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조국에 여러 정당들이속속 창당되던 중에 국토가 분단되어 북한은 김 일성을 앞세운 러시아 군정의지배 하에 있게 되었다. 이런 시국 하에서 그 해 11월 16일 윤 하영 목사님과 한 경직 목사님 등 뜻 있는 인사들이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창당하던 중 공산당과의 충돌로장로 한 분이 살해되고 인근 교회가 불탔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의 항의 시위를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한 러시아군이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한 사건이 바로 신의주 학생의거이다. 이때 당국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목사님은 부득불 월남하셔야 했다. 그는 실로 민족 수난기에 고향을 잃고 흩어진 백성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서울 저동에서 현 영락교회의 전신인 베다니전도교회를 개척할 새 길을 열어 주신다.
그때 함흥에서 반공 학생들과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월남하였던지 영락교회는 금방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다. 지금도 함흥에서 월남하신 분들 중 생존자들이 많이 계신데, 그분들 가족들은 서울1945의 사실 왜곡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함흥에는 공산주의자들 발 붙일 곳이 없었어요. 북한에 소련군이 진주하자 조만식 선생을 중심으로 한 반공청년단이 있었습니다.함경도 지역에서는 함흥 사범학교 학생들이 주축이되어 거세게 저항했지요. 탄압이 심해지자 살아남은 청년들은 나룻배를 타고 삼삼오오 월남했습니다. 저의 친정어머니도 반공청년단으로 활동하다 6.25 전에 월남했고 같이 월남한 친척 오빠들은 6.25가 발발하자 유엔군에 들어가고 일부는 국군으로 입대하여 전쟁을 치뤘는데..이렇듯 역사를 제멋대로 왜곡해대고 있군요."
첫댓글이제 조금 생존해 계신 실증자들의 녹취를 부지런히 해놓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한 오로지 문서화된 것만이 팩트가 아닙니다. 그 문서는 때론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게 작성되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를 탐독하고, 또 당시를 살았던 분들의 증언과 국내외 정세를 아울러 살펴봐야 합니다.
첫댓글 이제 조금 생존해 계신 실증자들의 녹취를 부지런히 해놓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한 오로지 문서화된 것만이 팩트가 아닙니다. 그 문서는 때론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게 작성되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를 탐독하고, 또 당시를 살았던 분들의 증언과 국내외 정세를 아울러 살펴봐야 합니다.
한쪽의 시각만으로 판단한다면 이는 대단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금의 주사파들이 뇌까리는 짓거리가 바로 이러한 단적인 예입니다. 커밍스의 수정주의에 함몰된 자들은 지금도 학문이라는 미명하에 왜곡을 일삼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