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여산(礪山)은 전라북도 익산시(益山市)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여량(礪良)과 낭산(朗山)이 합쳐진
지명이다.
여량현(礪良縣: 일명 礪良)은 백제 때에는 지량초현(只良肖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개칭하였다.
낭산현(朗山縣)은 백제의 알지산현(閼地山縣)인데 신라 경덕왕 때 야산현(野山縣)으로 바꾸었다.
940년(고려 태종 23)에 야산현을 낭산현으로 바꾸었고, 1018년(현종 9)에는 전주의 속현이
되었다. 1396년(태조 5)에 여량현이 낭산현을 병합하였고, 1399년(정종 2)에는 여산현이라
개칭하였다.
1436년(세종 18)에 여산군으로 승격되었고, 1699(숙종 25)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여양(礪陽)과 호산(壺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1896년 전라북도 여산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여산군이 폐지되고 관할 11개면이 여산면 등 5개면으로 통합되어 익산시에 편입되었다.
성씨의 역사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는 고려 때 진사(進士)로서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지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는 송유익(宋惟翊)이다.
이로부터 여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그의 선계는 중국 경조(京兆) 출신으로 당나라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한 송주은(宋柱殷)의
후손 송자영(宋自英)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고려 원종 때 4대손인 송송례(宋松禮)가 왕실을 위협하던 권신 임연(林衍) 일파를 제거하는
공을 세워 추성익대보리(推誠翼戴輔理) 동덕좌명공신(同德佐命功臣)에 책록되고 벽상삼한삼중
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광정대부(匡靖大夫) 문하시중판전리사사(門下侍中判典理司事) 상장군
(上將軍)에 올랐다. 더불어 여량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졌고 식입 1천호를 받았다.
이로써 여산송씨 가문의 기틀을 다졌으며, 후손들은 송송례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분적종 및 분파
송유익(宋惟翊)은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가 되었으며, 그의 아우 송천익(宋天翊)은 은진송씨(恩津宋氏)의 시조, 삼남 송문익(宋文翊)은 서산송씨(瑞山宋氏)의 시조가 되었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칠곡군 북상면 오평동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 심교리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상남리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풍유리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옥마리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여산송씨는 72,763가구 총 232,75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