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자기
서기 1882년 분원의 관요가 폐지되고 잠시 민영화를 옮겨 운영되었으나 사실상 조선조 자기는
맥이 끊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민요가 생겨 운영되었다.
특히 일본의 통치하에 더욱 침체되고 일본과 서구의 산업도자 제품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도자기는
자취를 감추고 다만 몇몇 도공이나 그들의 후손들이 고려 청자나
조선조 백자를 외롭게 재현하였다.
한편으로 조선조 말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로 천주교인들이 산중으로 피신을 하면서 생활방편으로
옹기를 제작하고 있었으나 옹기는 실생활에 필요한 용기로서 장독,김치독 등 음식을 저장하기 위해서만
제작된 것으로 미적인 것을 무시하고 제작된 1000℃정도에서 구워낸 도기이다.
그러나 사라져 가는 도자기 제작이 완전히 맥이 끈기지 않고 맥을 이을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현대 도예가 시작된 때는 1945년 해방이후인 1950년대 후반에 대학의
응용미술계 학과의 교과묵중 도자기 과목이 개설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각 학교의 실습장 시설은 빈약했고 서성에도 여러가지
여건상 어려움이 많아 완성된 작품을 제작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1960년 초에 현대 도예의 선구자의 일원인 故 정규 선생이 서울 성북동에 있던 도예작업장을 없애고
경기도 이천군 신둔면 수광리에 재래식 가마의 작업장을 설치 운영하였을때 도자기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던 대학생들에게
개방하여 도예 전공 학생들과 작업장이 없었던 도예가 들의 공동 작업장이 되었다.
이때가 사실상 현대 도예의 태동의 초석을 이루었다.
당시 작품의 방향은 거의가 물레성형에 전통성을 바탕으로 한 현대 감각적 형태에 백유,색유 ,결정유 등을
시유하거나 음각, 양각, 등의 조각으로 표면처리와 서구에서 도입된 파라핀을 이용한 시유법 ,이장(흙물)붙이기등
다양한 표현방법으로 계속된 실용성을 겸한 미을 첨가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1970년 미 공고관에서 주최한 미국 현대도자조각전 이 전시되면서 젊은 도예학도들에게 큰 파문이 일어났다.
그 작품들은 전통적 기법이나 실용성은 완전히 배제 되었고 ,조각 작품처럼 조형적이며 작품에 따라
타 재료인 금속,새의 깃털,천 ,나무등 작품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무었이든 부착한 것도 많아다.
전통적인 제작방법에 약간의 현대화한 작업이 전부인 그들에게는 자극적인 작품이 아닐수 없었다.
그후에 프랑스 현대 도예전이 국립공보관에서 전시되고 1976년11월에 독일현대 도예전 등
조형미 위주의 작품이 계속 전시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신진 작가들이 서구풍의 조형작품
을 제작하고 후진들을 지도하면서 1970년대 초부터 조형성 도예 가 국내 학생들에게 관심을 받아 제작하는 경향이 많아지면서
현재 한국의 현대도예는 조소적이고 조형적인 작품으로 일변해 가는듯하다.
창작의 방법과 표현은 한없이 추구할수있고 또 계속 새로운 것을 창안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도예가와 일부 도예 전공 학생들은 도자공예의 기본인 물레성형,표면장식,유약처리방법,소성방법등
전통적인 제작과정을 기피하고 작품의 주제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하여 결국 내용이 부실한
조형 작품을 만드는 경향이 적지 않았다.
현대 도예는 전통적인 제작방법에 실용성과 현대적 감각의 미를 겸한 작품 경향과 전통적인 제작 방법을
터득한 후에 외국의 작품을 무조건 모방하지 않고 예술성을 바탕으로한 조형적 작품을 뚜렷한 주제를 갖고 제작한
작품들이 양쪽 모두다 고루 발전되어야 할것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괴테의 말을 되새기면서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유물의
뛰어난 예술적 창작적 감각을 이어 받아야 위대한 현대 도예가 창작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