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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용문산 기슭에 조용하게 자리잡은 사나사를 찾았습니다.
-사나사 소개- (네이버 백과)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 속해 있다.
923년 고려 태조의 국정을 자문한 대경국사(大鏡國師) 여엄(麗嚴)이 제자 융천(融闡)과 함께 세운 절이다.
1367년(공민왕 16) 보우(普愚)가 다시 고쳐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그 후 1698년 덕조(德照)가 다시 지었으며, 1907년 의병과 관군이 싸우던 중에 모두 불에 탔다.
1909년과 1937년 다시 고쳐 지었으며, 1993년에 정면 4칸, 측면 3칸의 대적광전을 새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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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돌담이 있었는데 돌담이 없어지고 범종각도 새로 생기고
전에 있던 요사채 자리에 크고 멋진 요사채가 새로 생겨 마무리 공사가 한창입니다.
일주문이 예전보다 작게 느껴진건 주변 도로가 넓어진 탓일까요?
일주문을 통과하여 주차장에 주차하고 숲사이 그늘진 길로 들어서면
길 좌측 숲속에 오래된 비와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비가 나란히 서 있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비는 '유명조선국경기좌도양근군당산계불양비'(有明朝鮮國京畿左道陽根郡堂山契佛養碑)인데
18세기경에 이 지방의 사람들이 계를 조직해서 체계적으로 사찰의 경영과 불사에 협조하였다는 내용이랍니다.
새로 세운 비는 '용문산사나사대적광전신건연기비'입니다.
이 비를 지나면 큰 은행아무 밑에 큼직한 바위돌로 의자같이 앉아 쉴수있도록 만든 쉼터가 보이는데
주변에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있는걸로 보아 가을철에는 단풍이 제법 멋질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새로 지은 요사채와 범종각이 보이며
우측엔 삼층석탑과 부도가 보이고 전면엔 대적광전이 보입니다.
요사채와 범종각은 수년전엔 못보았던 것으로 전ㅇ에 있던 요사채가 화재로 없어져 새로 지은것 이라 합니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을 비롯하여 법고와 운판, 목어의 사물이 걸려있습니다.
반대편의 삼층석탑을 둘러봅니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신라 탑의 모습을 따르고 있는데 그러나 규모가 작은 편이며
기단의 구성이 생략적이고,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3단으로 구성되어 약화된 점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들어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러나 하한은 고려 중기 이후로 내려오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삼층석탑의 뒤에는 원증국사선종이 있으며
이는 고려 말기에 사나사를 중건했던 원증국사 보우(1301~1382년)의 부도라고 합니다.
이 석종(부도)좌측엔 '원증국사선종비'가 비각안에 있습니다.
비문은 정도전이 지었다고 하는데 비의 보존상태가 좋질 않아 내용 확인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나사에는 대웅전 대신 대적광전이 있습니다.
대적광전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좌측엔 반야심경의 뜻을 알기쉽게 풀이해 걸어 놓았습니다.
대적광전의 좌,우,뒷벽면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는데 여기엔 8가지 그림만 있는듯 합니다.
① 심우(尋牛)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본성을 잊고 찾아헤매는 것은 불도 수행의 입문을 일컫는다.
② 견적(見跡)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수행자는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본성의 발자취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③ 견우(見牛)
동자승이 소의 뒷모습이나 소의 꼬리를 발견한다. 수행자가 사물의 근원을 보기 시작하여 견성(見性)에 가까웠음을
뜻한다.
④ 득우(得牛)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불성(佛性)을 꿰뚫어보는 견성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⑤ 목우(牧友)
동자승이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얻은 본성을 고행과 수행으로 길들여서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소도 점점 흰색으로 변화된다.
⑥ 기우귀가(騎牛歸家)
흰소에 올라탄 동자승이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무애의 단계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때이다.
⑦ 망우재인(忘牛在人)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소는 단지 방편일 뿐 고향에 돌아온 후에는 모두 잊어야 한다.
⑧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 빈 원상만 그려져 있다.
사나사 벽화는 팔우도까지만 있습니다.
십우도는 여기에 9번과 10번 내용의 그림이 더 있습니다.
⑨ 반본환원(返本還源)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깨닫는다는 것으로 이는 우주를 아무런 번뇌 없이 참된 경지로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⑩ 입전수수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이나 목동이 포대화상(布袋和尙)과 마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육도중생의 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속세로 나아감을 뜻한다.
대적광전 우측에는 극락세계의 부처님인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미타전이 있습니다.
미타전 뒤쪽엔 이 마을의 전설이 묻어있는 함씨의 시조를 모시는 함씨각이 있으며
함씨각의 좌측 위쪽으로 삼성각이 눈에 들어오며 또다른 각을 세우려는지 신축 전각이 보입니다.
대적광전의 좌측에는 미륵불상이 있으며 그 앞에는 샘물이 있지만
물이 나오지는 않고 말라 있습니다.
샘물옆에는 열매인지 꽃인지 확실치 않은 이름 모르는 나무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산사의 모습이 좋습니다.
종무소 앞 기와불사 접수 하는곳 옆에는 큰 보리수 나무도 있습니다.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텃밭에서 재배한 배추로 만든 김치와 나물, 방금 속아낸 상추와 된장으로 공양을 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옆의 '함왕혈'이란 곳을 들려 봅니다.
'함왕혈'이란 계곡물 속에 지름 약30cm정도 크기의 큰 구멍이 있는데 구멍 혈(穴)자를 써서 '함왕혈'이라 합니다.
고려 건국의 개국공신인 함왕(咸王)(=함규장군)이 바로 이 바위 구멍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고
이고장에서 태어난 나이 지긋하신 분이 설명도 해 주십니다.
계곡 또한 조용하고 깨끗하여 주말이면 더위를 식히러 많은 분들이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깨끗하고 조용한 사나사를 둘러본 후 귀가하는 마음은 한층 가벼워진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