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記錄), 인생의 승패를 좌우한다”
글: 마오 전금주
기록이라는 말이 나오면 제일 먼저 메모(memo)라는 말이 떠오른다. 메모라는 말은 메모랜덤(memorandum)의 축약어로써, 원래 그 뜻은 ‘같은 회사의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간단한 내용의 쪽지’라는 의미의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망각의 속도가 빨라진다. 또한 현대 사회처럼 복잡한 일이 많을 때는 나도 모르게 기억이 오래 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그래서 어떤 내용을 오래 기억하려면 항상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내용이나 일들을 기록해야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고, 기자들 또한 한번 들은 내용을 간단히 기록을 남겼다가 나중에 풀어 전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록이란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의미와 중요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한번 소개받으면 그 사람의 이름을 오래 기억해서 바로 그것이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는 데일 카네기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순간적으로 상대방의 특징적인 내용을 간단히 기억해 두기만 했을까, 아니면 소개받은 후 그 사람의 이름과 특징적인 모습을 바로 메모해 두었다가 계속 기억을 되살리면서 머리 속에 오래 남겼을까? 후자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람의 기억력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최대한 망각의 시간을 줄여 기억의 탱크에 보관해야 한다. 이런 기억 탱크를 가졌던 사람이 바로 카네기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내 어릴 적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훌륭한 학자나 발명가 또는 저술가들은 평상시에는 항상 주머니에, 그리고 잠잘 때는 침대의 머리맡에 ‘P’ 라는 이니셜(initial)을 가진 두 가지의 물건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두 가지의 물건이 다름 아닌 paper와 pen(cil)이다. 사람이 일부러 무엇인가 쓸 것이 있거나 만들 것이 있어서 책상 앞에 앉아 생각에 잠기면 오히려 생각이 나지 않다가도, 길을 걷다가 우연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잠자리에 들기 5~10분 전에 가장 좋은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그 당시야 선명하게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겠지만 다음 정거장, 집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에 대부분의 생각은 날아가고 만다. 특히 잠자기 전에 떠올랐던 생각은 잠이 깨었을 때 돌이켜 보면 더욱 그러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필기구를 곁에 두고 있었더라면 그 내용을 대강 정리해 두었을 것이다.
이제 기록에 얽힌 한 토막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한번은 서울 사당동에 살고 있는 누나를 만나 뵙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도심의 복잡한 교통 상황을 보고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지금 이 복잡한 도로 위에 자력을 이용하여 공중에 또 하나의 가상의 선로를 부설하면 훨씬 더 원활한 교통 소통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누나 집에서 여러 시간 담소를 나눈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늦게 집에 도착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이 지나자, 얼마 전에 떠올랐던 그 좋은 아이디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3년 후 어느 잡지에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 아이디어와 비슷한 내용을 프랑스의 한 기관에서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있다는 내용을 읽었다. 현재는 거의 실현단계에 있다고 한다. 물론 나의 힘으로는 이루지 못할 일이었겠지만, 나로서는 너무나도 가슴이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이었던 것이다. 살다 보면 기억에 얽힌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허다할 것이다.
다음은 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록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자기 부인과 자식, 이렇게 셋이서 행복하게 사는 성실한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다. 남들이 보기에도 부러울 정도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 있었는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이 집 주인인 남편이 흔히 말하는 춤바람이 나서 조강지처(糟糠之妻)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부인은 하나뿐인 자식을 희망으로 삼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자식이 장성해서 결혼도 하고, 손자와 손녀까지 두게 되었다. 이제 과거의 모든 가슴 아픈 일을 잊고 자식과 며느리, 손자와 손녀 등과 함께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오래 전에 곁을 떠났던 이제 기억하기도 싫은 자기 남편이 아니던가! 한참을 말없이 수화기만 붙들고 앉아 있었다. 상대방은 울면서 애원하였다. 다시 자기를 받아 달라고 말이다. 자기를 버리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멀리 떠났던 그 사람이 이제 의지할 데가 없어 도와 달라고 애원하고 있으니 가슴이 터질 듯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한때는 부부로써 서로 사랑하며 다정한 사이로 살았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하고, 그날 밤 자식과 며느리를 불러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것인가를 상의하였다. 그 결과, 받아들이되 자기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골방을 내주기로 하였다.
한동안 식구들과 서먹서먹한 관계의 생활이 계속되었다. 눈도 서로 마주칠까봐 외면하며 지냈다. 그러나 얘들은 달랐다. 할아버지 곁을 자주 들락거리며 같이 놀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며 차츰 정이 들면서 거의 항상 할아버지 곁에서 생활하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특히 좋아하고 따르는 이유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이 아파트로 옮겨올 때, 자신의 짐 꾸러미에 챙겨 가져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기록하여 왔던 두툼한 일기장과 여러 가지 내용의 수필, 시(물론 동시도 있었음), 짤막한 단편 및 우스운 내용의 해학적인 이야기 등이 가득 적혀 있는 기록물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부인과 자식에게 속죄하는 마음 자세로 자기의 기록물에 있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손자들에게 시간이 있을 때마다 쉬운 말로 재미있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날이 갈수록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착해져서 부모님 속도 안 썩히고 자기 할 일을 자기가 하고 항상 웃음을 짓고 생활하는 얘들로 성장해 갔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이렇게 변화시키고 있는 할아버지를 차츰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가져왔던 미운 감정이 어느덧 살며시 사라지고, 이젠 집안에 꼭 필요한 옛날의 어른 모습으로 대하게 되었다. 얼마나 큰 변화인가!
우리는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안네 프랑크가 남긴 일기를 기억한다. 만약 어린 그녀가 그 어려운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오늘 우리들은 그 당시의 생생한 그들의 전쟁 중의 생활 모습을 이해할 수가 있었겠는가!
사회적으로 저명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면 유명하게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현명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보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나라 사람과 서양 사람의 역사에 대한 관심 정도는 바로 기록의 유무 또는 양에서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보아 온 그들과 우리들의 뚜렷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는 역사의 기록물(특히 상고사)이 너무 적어 잘못 기록된 것이나마 있으면 그것마저 정설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너무나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뼈저린 아픔을 겪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평상시에 기록하는 습성이 너무나도 부족한 것이 아쉽다. 지금부터라도 개인이든 나라든 기록을 많이 남겨야 한다. 이런 기록물들이 바로 역사가 되고 개인과 국가의 재산이 되는 것이다.
위의 여러 예에서 본 바와 같이 기록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물론 역사적인 관점에서부터 과학의 발명과 발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요구되지만, 무엇보다도 아주 작은 생활 주변 이야기를 기록하는 습관부터 기르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록하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기르게 하여 창의성 계발과 자신의 반성하는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인간과 동물과의 커다란 차이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문자의 유무인 것이다. 인간만이 문자를 가지고 있다면 그 문자의 가치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문자를 활용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문자를 통하여 최대한 인류 문명을 창달해야 하며, 또한 문자를 통해 발전시킨 문화도 더욱 보존하고 승화시키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