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서재/인디언식으로 생각한다/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김둘

[박경선]

숲 속의 서재
김둘

내 시는 숲속 쪼그라진 어귀에서 나온다네
청설모나 다람쥐가 오가는 어느 비탈진 나무 아래

비 오는 날은 길다란 우산을 쓰고
쪼그리고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편다네

참 이상도 하지
나는 왜 오랫동안 꿈꾸던 멋진 서재도 없고
왜 날벌레 기는 벌레랑 숲속에서 시를 쓰는지.

시는 숲속에서 쓰는 거라네
온 생명이 함께하는 완전한 자유,
시인은 그 속에서 시인이라네

내 시는 쪼그라진 숲속 낭떠러지 끝에서 나온다네

<기후환경시>

 인디언식으로 생각한다
                         김둘


  나는 인디언은 아니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여긴다.

  나는 인디언식으로 생각한다. 저 높은 송전탑이 결코 인간의 존엄을, 나아가서는 이 세상 모든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된다.
  나는 인디언식으로 생각한다. 저 높은 송전탑이 낮으면 좀 어둡게 살면 된다. 이미 지구는 너무 밝다.
  나는 인디언식으로 생각한다. 땅은 인간의 것이 아니기에 땅덩어리를 돈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인디언식으로 생각한다. 저 송전탑이 낮으면 조금 불편할 뿐이다.
  송전탑이 낮아져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뭇 생명을 죽이는 일은 형제가 할 일이 아니다.
  한 피 섞인 형제에게 내려준 하늘의 사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
  저 송전탑이 낮으면 우리들은 좀 더 사랑할 수 있다.
  저 송전탑이 낮으면 우리들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나는 인디언은 아니지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여긴다.
  내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저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는 이 저주,
  나는 인디언식으로 생각한다.
  송전탑보다 형제를 먼저 선택하라!!!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김둘

  시를 쓰는 건 말이야, 아슬한 떨림 속에서
  안개 속을 헤매는 내면의 두려움에서 시작되어
  상처투성이로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는 일.
  그럴 때 누군가 다가와 손잡아 주면 좋겠어.

  시를 써 놓고 말이야.
  이렇게 써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하고 고개 흔들 때
  걷잡을 수 없이 샘솟는 시의 마음, 시의 몸, 시의 불!

  헐빈한 우리들의 시노트를 함께 채워주는 그 무엇,
  고독한 시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 내밀어 주는 그 무엇,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사랑을 알았어.
  이렇게 우리, 시를 쓰는 이 자리의 사랑이
  어딘가에서 빛이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이제 우리는 두렵지 않아.
  우리들의 시가 세상을 비추고 있다는 걸 확신하기에.
  우리는 미루나무숲에서
  섬광처럼 번뜩이는 눈으로 시를 쓰며
  아름다운 이 세상을 맘껏 노래할 테야.
  우리는 이제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