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지기의 고등학교 후배 조정래 작가(사진)의 짧은 우스개 글을 소개합니다.
<태백산맥>을 쓴 소설가 조정래가 아닌 안동 출신 작가로서, 한때 조선닷컴 블로그에서 인기 작가로 文名을 날려 책도 몇 권 내기도 했는데, 그의 책은 前연세대교수 김동길 박사의 호평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의 문학 장르는 단편과 콩트 사이, 소설과 수필 사이라고 할까. 아무튼 사투리 섞어서 고향의 향취를 물씬 풍겨내는 글을 씁니다.
♧♧♧
국문학 교수와 너리티 할아버지
서울 모 대학 국문학 교수가 연구비를 타 먹었으니 논문을 만들어야 해서, 16세기 언어가 가장 잘 보존되고 있다는 안동지방에 언어 연구차 내려왔다. 안동에서도 외지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학가산 산골 마을로 사투리 수집을 하러 갔다.
헉헉, 산길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고추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옳다구나! 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질러 인사했다.
"누구시이껴?" 굽은 허리로 고추를 따시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예, 저는 서울에서 온 국문학 교수입니다."
"왜 카니껴?"
"논문 준비하려고 왔습니다."
"우리 웃때기 논물은 아레께 내린 비로 다 찼니더."
"논물이 아니고 논문요, 하하. 할아버지, 그건 그렇고, 이 지방에서는 ‘갑자기’ 라는 말을 뭐라고 합니까?"
대학교수 질문에 한참 생각하던 할아버지 왈,
"각중에 물으니 얼릉 생각이 안 나니더."
"아, 예. ‘갑자기’ 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고추 따고 있는데, 각중에 물으니 몰시더만."
"그럼 할아버지, ‘빨리’ 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뭐라 합니까?"
"빨리요? 그것도 퍼뜩 생각이 안 나니더."
할아버지는 대학교수가 묻는 말에 답을 못 드려서 미안스러운 표정으로 난감해 했다.
대학교수는 답답했지만, 한두 가지만 더 물어보기로 했다.
"할아버지, 그럼 이 지방에서 ‘바보’를 뭐라고 합니까?"
"죄송하이더. 당체 공부는 고사하고 멧골에서 고추농사만 짓고 사다 보이, 묻는 말에 대답을 쪼다리처럼 한마디도 못하니더. 우리맹이는 마카 터구씨더."
"할아버지, 그럼 끝으로 한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이 마을 이름을 뭐라 합니까?"
"너리티 카니더."
"너리티?"
"왜 너리티라고 합니까?"
"옛날부터 너리티라꼬 했니더."
"그래요? '너리티’ 라는 말이 무슨 말에서 유래되었는지 모르십니까?"
"잘 몰시더만, 맹 먹고 살기 힘들 때 이 산꼭대기에 너른 터가 있어서 사람들이 들어와 땅 파먹고 안 살았을니껴?"
"그렇겠지요. 그래도 ‘너리티’ 라고 마을 이름을 부르는 유래가 있을 것 같은데..."
"당체 배운 게 없어서 지송하이더."
고추 밭에서 일하는 할아버지와 헤어진 대학교수는 너리티 고개를 혼자 넘어가면서 중얼거렸다.
"아 그 영감님 참 답답하네."
정작 답답한 사람은 대학교수 자신이 아닌가.
첫댓글 전형진14.05.22 15:44
재미 있네요. 안동에서 걸출한 벼슬아치들이 많이 나서 그런지 단어는 대구지방보다 표준말이 많네요. 우리 고향에서는 안동 사람을 안동 끙끄이라 캅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