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양평동초 스물여덟 행복이의 폰카시집-꽃보다 예쁜 우리들
나는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시를 쓰거나 시조시를 써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아이들은 글을 쓰는 일을 그렇게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놀아요.”
“글쓰기 싫어요.”
“어려워요.”
“어떻게 써야 해요.”
이구동성으로 글쓰기에 대한 반감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한두 명이 시작하고 나면 목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러는 중에도 글쓰기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멋쟁이도 있다.
“왜, 나는 좋은데.”
“뭐가 좋아.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이제 어른이 되어 아이들에게 ‘글쓰기가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는 하냐, 모든 공부의 기본은 글쓰기이므로 글쓰기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라면서 강요하거나 부탁하기도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 입장이라도 글쓰기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는 걸 더 좋아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 왜 그래.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에는 잘 썼잖아. 글감에 대한 경험이나 생각을 정리해 보렴.”
“모르겠어요.”
그동안 한 공간에 있으면서 겪어본 학생의 능력으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할 것 같은데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하다 보면 글쓰기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갈등하게 될 때도 많다.
이렇게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간혹 있지만, 글감이 주어지면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나게 쓴다. 글쓰기 앞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들이 귀엽고 재미있고 대견스럽다. 학생들이 쓴 글은 자기 의지보다는 학습과제의 특징이 많기는 하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감성을 중심으로 솔직하게 자신의 일상을 담아낸다.
아니 뭐가 그리 크냐
10년을 살았나
100년을 살았나
나도 크는 방법 좀
알려주라 제발
나는 키가 작아서 슬프다 - 이유성의 「키 큰 나무에게」
셀카도 한결같이 아리따우실 수가 있다니
정말 대단한 나 얼굴만큼 대단한 나 - 서나빈의 「공주 나빈」
풀아 너는 언제까지 그 자리를 지킬 거니
풀아 풀아 그 자리를 계속 지켜다오 - 박건형의 「풀」
운동장에 있는 오래된 나무를 보면서 자신을 생각하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으면서 자신을 사랑하기도 한다. 하늘이나 비가 내린 운동장에 생긴 웅덩이, 바람에 흔들리는 풀, 벌들이 윙윙대는 꽃들을 보면서 생각을 담기도 한다.
핸드폰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도구이다. 핸드폰 때문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도 많지만, 핸드폰을 빼고 이 아이들을 말할 수는 없다는 데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은 학원이나 학교에 다니면서 가지게 되는 학습 부담을 벗어나기 위해 핸드폰에 중독되는 일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책을 손에 들고 있기보다는 온종일 핸드폰을 손에 잡게 생활하게 된다. 핸드폰의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어떤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시기를 늦추려고 공을 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핸드폰이 주는 다양한 기능을 좋게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
친구들과 함께 대본을 만들고 영화를 촬영하고 앱을 이용해서 편집할 수 있다. 책을 읽거나 학습활동을 하면서 궁금한 것을 검색하거나 몇몇 앱으로 발표자료를 쉽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가고 싶은 여행지나 역사적인 공간을 사진, 지도, 블로그 자료들을 보면서 파악할 수도 있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좋은 것을 찾아서 올바르게 활용하도록 하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이 갈수록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스물여덟 명이 모인 우리들은 핸드폰을 들고 운동장을 나갔다. 눈에 보이는 장면을 촬영하고 그 장면에 어울리는 생각들을 글로 곁들여보는 시간을 가졌다.
《폰카시》, 핸드폰 카메라에 담긴 사진과 그 사진을 카메라에 담은 사람의 생각이 하나가 된다. 1부에서는 사진과 함께 짧은 생각을 곁들이도록 했다.
| #화산
구름이 터졌다 화산처럼 터졌다
어디로 가야 하지 |
생각을 담기 위해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후에 생각을 곁들이기도 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우정이나 놀이를 나타내거나 재미있는 장면을 담아내었다.
2부에서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장면에 어울리는 생각을 짧은 시로 곁들이기로 했다. 꼬마 작가들은 꽃, 웅덩이, 친구, 버려진 종이, 선생님, 운동장, 나무 등 학교 주변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내었다. 교실에서 앉아서 쓰는 작품들보다 폰카시로 담아내는 세상은 훨씬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고 솔직하였다.
| 내친구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친구 아버지, 어머니가 오래전에 다녔던 그곳이 앞으로 다닐 동생들을 위해 아무렇게나 파헤쳐지고 있다
- 이유준의 「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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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이곳 양평은 읍내에 계속해서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양평동초등학교도 내년부터 늘어나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여름방학부터 신축공사가 시작된다. 목련이 하얗게 피어나던 4월에 유준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보낸 추억이 있다. 공사로 인해 파헤쳐진 그곳을 보면서 오래전 다녔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다가 앞으로 이곳을 다닐 동생들까지 생각하였다. 이처럼 스물여덟 학생이 모두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학생들이 쓴 많은 글들은 시인이나 소설가들처럼 자기 주도적이지는 않지만, 그냥 덮어 놓기에는 너무나도 아깝고 아름답다. 그래서 모아놓는다. 모아놓았다가 학급신문으로 묶어서 살펴보기도 한다. 전문출판사에 부탁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서 pop 출판이나 독립출판으로 세상에 내어 놓아보기로 한다.
『책 한 번 써 봅시다』를 쓴 장강명 작가님은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죽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 한번 쓰고 싶은 것이 소원인 사람들도 많다. 우리 아이들은 서툴지만 일찍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경험이 훗날 아이들에게 소중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