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죽당선생일고(翠竹堂先生逸稿)]
<내용> 木板本으로 인출한 金應鳴 선생의 [취죽당선생일고(翠竹堂先生逸稿)] 2卷 단책권두에 壬寅(1902)季秋通訓大夫行慶山縣...眞城李彙載謹書. 通訓大夫弘文館副應敎行慈仁縣監松沙李適意謹序, 권말에 役於太上賓天後五載壬戌(1922)之夏五月閱數月而工告訖...九代孫[金]基호謹識가 있다. 상태 양호하다. <크기> 21.2×31.8cm<참고> 취죽당선생일고(翠竹堂先生逸稿)사림 金應鳴(1593~1647)의 문집. 표지서명은 ‘翠竹堂逸稿’, 권두서명․판심서명은 ‘翠竹堂先生逸稿’이다. 金應鳴의 본관은 慶州, 자는 而遠, 호는 翠竹堂, 慶州 慈仁縣 蔚谷里 출신이다. 祖는 奉事 奎年, 아버지는 遇鍊, 어머니는 瑞山 柳氏 監察 允洙의 딸이다. 부친 遇鍊은 임진왜란시에 가솔을 이끌고 忘憂堂 곽재우의 진영에 들어가 용감히 싸워 향촌에서 큰 명망을 얻었다. 金應鳴은 鄭逑, 張顯光에게 배웠으며 1618년(광해군 10)에 司馬試에 입격하였다. 인조대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鄕兵을 모집하여 서울로 진격하였으나 강화가 성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이후 三樂峰 아래에 翠竹堂을 지었으니 尊周의 뜻을 밝힌 이름이라 한다. 매월 鄕飮酒禮를 행하고 諸生을 교화하여 향촌의 명망있는 사림으로 활동하였다. 1700년(숙종 26)에 南川서원에 배향되었다. 첫머리에 壬寅年에 行慶山縣令 李彙載가 쓴 서문, 弘文館 副應敎 李適意가 쓴 서문 등 2종의 서문이 있다. 목차는 卷上 詞(登泰山小天下二首), 詩(鄕試發解而歸家大人甚嘉悅謹志一絶 등), 疏(復縣疏), 祭文, 行狀, 雜著, 卷下 附錄(世系, 年譜, 翠竹堂記, 輓, 家狀, 墓碣銘, 墓誌銘, 南川書院廟宇上樑文, 奉安文, 常享文, 南川廟宇重修奉安文)이다. 卷下 부록중의 墓誌銘은 崇禎五辛酉(1921년) 仁州 張錫英이 지은 것으로 여기에서는 ‘지금 公이 몰한 지 이미 3백년인데, 그 후손 基皥 등이 묘지명을 청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본서의 간년을 알 수 있다. 말미에 김응명의 9대손 基皥가 쓴 발문이 실려 있다. <소장자: 金相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