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요약]
아르네 다니엘스외 1명, 『자본주의 250년의 역사』, 미래의창 , 2007.
○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불평등을 해소하고, 자신들의 장기 집권을 위해서 돈을 푼다는 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 19까지 겹쳐서 물가는 상승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예측하기 때문에 세금폭탄이 있어도 부동산은 계속 상승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호랑이가 될 수도 있고, 고양이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먹이감을 사냥을 할 때 자신은 육신동물이어서 단거리는 유리하지만 장거리는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몸을 숨기고 최대한 접근하고, 동료들과 함께 사냥하듯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2007년도 출판된 책이고, 독일 중심을 배경이지만 지혜를 얻기 위해서 펼쳤습니다.
○ 밭에서 공장으로(1760~1830)
= 1800년 무렵, 새로운 경제질서가 부상하기 시작하여, 봉건주의라는 낡은 지배체제는 붕괴되고, 시민이 기업을 세운다.
예) 아버지는 영세 수공업자로 지팡이를 만들면 자식들은 거리에서 팔았지만 하인리히 크리스티안 마이어는 1817년 회사를 설립하여 48세가 되었을 때는 3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일주일에 거의 90시간을 노동시켜서 , 산책용 지팡이 이외에 여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여,1848년 ‘지팡이 마이어’가 사망하면서 유산으로 남긴 돈은 무려 100만 마르크나 되었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사람들은 새로운 구상에 대한 호된 대가를 치렀다. 단순한 작업 단계로 철저히 전문화되고, 더불어 노동시간이 매우 길어지고 임금이 형편없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단계의 궁핍화가 시작된 것이다.
= 몰락하던 영주들은 자기 영토의 생산물을 팔아 새 상품을 사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으나 땅은 한정이 있기 때문에 침체되었지만 신흥 자본가들은 상품을 생산하고 그것을 팔아 자금을 만들고 투자하여 1850년과 1960년 사이에 서유럽 경제는 과거 600년 동안보다 평균 40~50배 빨리 성장했다. 신흥 자본가 계급은 옛 엘리트들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차차 몰아냈다.
= 스코틀랜드 출신의 도덕철학가이자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1776년 발표된 그의 대표작 『국부론』에서개인의 이기주의는 경제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선언하였다. 오로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어떤 투자가 가치 있고 어떤 제품이 어떤 가격일 때 구매자가 생기고 어떤 회사가 살아남는지를 결정한다.
○ 진보의 고통(1830~1918)
= 19세기 중반,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유럽 대륙을 점령했고, 그때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경제 발전 단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가난을 대가로 급속도록 발전하여
수십 년 만에 증기기관이 공장들을 점령했고, 기계화는 점점 빨리 진행되었다.
= 칼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역사는 계급투쟁의 연속이었다. 현재 비참한 사람들에게는 계급이 없는 사회라는 낙원이 손짓하고 있었고 착취자들은 몰락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서히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노동자들의 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 1883년 디리히 사(社)는 랑엔비라우 마을에 최초의 공장 사택을 지었고, 그로부터 15년 뒤 디리히 공장 부지에는 직원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까지 세워져서 200명의 노동자 자녀들을 돌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급부는 주로 자선행위로만 제공되었다.
○ 불황이라는 지옥으로의 여행(1918~1945)
= 저녁 7시 8분이 되자 그 빌어먹을 것이 마침내 침묵하였다.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의 전신 수신기는 하루 종일 폭락하는 주가, 날아가 버린 재산, 파괴된 꿈을 알리는 흉보들이 적힌 좁다랗고 긴 종이를 뿜어냈다.
시세는 계속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쳤고, 더 많은 주식이 매물로 나왔다. 그러나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식은 무제한으로 매도되었다. 투자자들은 실제로 소유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거액을 잃었다. 왜냐하면 증권거래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투자액의 겨우 10%만 자기자본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90%는 최고 20%의 금리로 빌려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돈을 투자신탁에 투자했고, 투자신탁은 그것대로 90%의 자금을 신용대부로 조달했다.
= 그래서 1달러만 가지고 있으면 100달러를 움직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난은 계속해서 주식시장들을 덮쳤다. 다우존스 공업평균지수는 1932년 7월 8일에야 최저점에 도달했다. 그 후 옛 수준으로 회복하기까지 무려 25년이 걸렸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은 세계 경제 역사상 최대 위기의 시작이었다.
= 대공황은 한 세대 전체에 큰 상처가 되었고, 그 최악의 결과는 아돌프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자들(나치스)의 부상이었다. 그들은 경제 재난과 그에 수반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체 체제에 대한 불신을 비열한 선전에 이용했다. 1918년 11월 9일 ‘인민대표위원회’가 공화국을 선포했을 때 위원회는 독일인에게 ‘아름답고 품위 있는’ 삶을 약속했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1930년대 수십 억 달러를 ‘뉴딜’ 정책에 투입하여, 도로와 댐, 공항이 건설되고 최저임금이 도입되었으며 노조와 사회복지제도가 강화하여 점차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모두를 위한 풍요(1945~1970)
= 전쟁 후에도 생산시설은 쓸만했고, 군비 증강으로 산업 기반이 확충되어 1960년대 중반 서독은 불과 20년 만에 폐허에서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와 텔레비전, 이탈리아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넘치는 나라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최고로 훈련되고 의욕이 넘치는 수백만 명의 근로자들이 일주일에 48시간 이상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품질도 우수했다.
○ 성장의 한계(1970~1990)
= 미국과 영국에서는 시장의 힘이 자유롭게 작용하는 것을 무조건 옹호하는 사람들이 승리를 거뒀다. 더 이상 수요를 조정하거나 지지하지 말고 낮은 세금, 유연한 노동시장, 최소한의 국가 규정을 통해 기업들의 숨통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쓰디썼다. 하지만 국민경제는 전체적으로 득을 본 것처럼 보였다.
○ 돈의 승리(1990~2006)
= 자본주의가 시작된 지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심지어 중국도 변화되어 완전해 보이는 자본주의는 데이터와 화폐 흐름이 컴퓨터와 인터넷 덕분에 하루 24시간 내내 시간 작동하고 있고, 거대한 컨테이너선 덕분에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스코틀랜드인 애덤 스미스는 230년 전에 경제 발전의 결정적 원동력이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주장한 것은 매우 효과적임이 밝혀졌다.
○ 느낀점
= 노동자의 삶의 질을 위해서 고용주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노동시간을 제안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노동자의 일자리를 잃게 하였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현실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어설픈 지식은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 코로나19 직전에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모의법정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발표하는 남녀 학생들이 대부분 키도 크고, 미남 미인들이라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엉뚱하게 우리 시대는 계층간에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 교육마저도 불공정하게 된 세상에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주장한다고 무조건 비판할 것만이 아니라, 필요성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점차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노인이 큰 병원에서 수술을 성공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운명한 적이 있습니다.
= 급변할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가 자유민주주의이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라는 항상 가슴에 품고 현혹되지 말고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