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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5. 31 수 맑음 글: 이계성
2)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스위스 취리히까지
독일-면적 : 356.885km2(남한의 3.5배)
인구 : 8천2백만명
수도 : 베를린(인구 350만)
기후 : 온난다습(연평균기온 9도)
민족 : 게르마니아 민족(99%)
언어 : 독일어
종교 : 개신교(36.4%) 카톨릭교(34.6%)
하이델베르그 관광
독일이 한국과 시차가 7시간이라 이곳 시간에 시계를 맞추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아침공기가 시원하고 상큼하게 느껴져 공해 없는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18시간 배행에 일행 모두 지친 모습이나 모두 건강하게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가지고 공항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르니 8시 20분이다.
아침공기가 선선하고 활동하기에 알맞은 날씨다. 차에 오르니 독일에 와서 6년째 음악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건장한 가이드 “백경석”이 인사를 했다.
비행기가 2시간 연착해서 여러 시간을 기다렸다고 하면서 대학에서 온다고 해서 젊은
학생들인 줄 알았는데 나이든 어머니들이라 놀랐다고 소감을 이야기 했다.
이번 연수생은 대부분 여성분들이고 남자가 7명 이었다. 그동안 날씨가 더웠는데 비가
내리고 난 뒤에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비가그친 뒤라서 화창한 봄 날씨다.
공항을 빠져나온 버스는 아우토반(아우토=자동차, 반=길, 독일말로 고속도로 하이웨이)
10차선 고속도로는 주행속도 120km라고 한다. 고속도로 양 옆에는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다. 고급벤츠로는 240km 스포츠카로는 340km 까지 달릴 수
있다고 한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없고 버스는 100km 이상은 달릴 수 없다고 했다.
공항에서 200km 거리에 있는 롯뎀브로 월드컵 경기장까지는 2시간 쯤 걸린다고 한다.
벌써 경기장 주변 제일 좋은 장소에 sbs 중계차가 자리 잡고 있는데 25억원이 넘는
방송장비가 실려 있다고 했다. 테러문제로 경기장 주변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어
일반인들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고 했다.
독일 대표 음식이 소시지, 맥주인데 공식적 맥주 상표만 5120개 동내의 전통맥주는
16000개나 있다고 한다. 독일인들이 맥주를 많이 마시는 이유는 그들이 먹는 물에
석회석이 함유된 석회수이기 때문에 석회를 정회시켜 배출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뮨헨 맥주페스티벌이 유명하고 하이델베르그에서는 40도짜리 맥주가 생산되기도
한다고 하는데 맥주는 처음에 수도원에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맥주에는 필스라는 탁한 맥주와 화이젠비어(막걸리식 맥주) 흑맥주(도수가 센 맥주)
등 여러 종류가 있다고 했다.
도시에서 벗어나니 길가에는 채소밭과 밀밭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숲 속에는
붉은 지붕에 산장 같은 저원주택들이 한가롭고 아름답게 보였다. 달리는 고속도로
주위에는 강이 흐르고 푸른 들이 있고 숲 속의 정원주택들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독일은 분단 45년만인 1990년에 분단에서 통일이 되었지만 동서독간의 경제 차이는
여전하다고 한다. 공산주의가 만들어낸 게으름 병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 모양
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아직도 공산주의를 그리워하고 찬양하는 무리들이 있고 북에는
거지같은 생활하는 동포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독일의 역사-게르마니아 민족 대이동 때 독일에 정착 후 로마의 지배로 신성로마제국
으로 내려오다 여러 왕조를 거쳐 1887년 비스마르크 수상 때 완전통일이 되었다고 했다.
1차 대전으로 희생자만 1천만 명이 희생되었고 2차대전으로 3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희생
되었다. 2차대전 중에 히틀러가 유태인을 600만 명이나 살해했다.
이유는 돈이 많은 유태인 남자가 히틀러의 어머니를 유혹해서 바람피우게 했고,
경제공황으로 독일 국민은 굶어 죽는데 독일 돈을 모두 긁어모아 수전노 노릇을
했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선민사상으로 다른 민족을 얕잡아 보았기 때문
이었다고 했다.
히틀러는 “내 사전엔 항복이란 없다.”며 잔인한 전쟁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고
최후에는 스스로 자살을 했다고 했다. 패전 후에 후에 독일인은 계속 반성을 하고
사과를 하고 있지만 일본인은 반성도 사과도 않고 있다고 했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는 길가에는 뾰죽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 아늑한 숲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어 고요와 평화 정경이다. 2시간을 계속 달려도 산은 하나
보이지 않고 구릉성 산과 넓은 들이 이어져 있다. 밀들이 익어가는 들판위에는 새
들이 날고 구릉성 언덕 위에는 풍력발전을 위해 세워놓은 풍차가 한가롭게 돌아
평화롭고 한가로운 시골마을의 풍경이 아름답다. 숲 속에 잠든 듯이 묻혀서 뾰죽
지붕만 보이는 집들이 동화속의 그림 같다.
(1) 첫 번째 관광 로텐브르그 성
오전 10시 30분 로텐브르그성(마을 담장 안에 있는 성)-로텐(로마로 가던 길)+
브르그(마을담장)-브로조아(자본가)란 본래 성안에 모여 살던 귀족에서 유래된
말이다.-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가던 길가에 있던 가장 아름다운 성이다.
중세모습 그대로 간직한 성으로 작은 도시가 담으로 된 성안에 있어 외부적의 침입
을 방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9-12세기에 번창했고 17세기경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1618년부터 시작된 30년 전쟁 때 프랑스군이 점령하는 곳마다 성에 불을 질렀는데
이 성도 프랑스 군대에 점령당해 소실 위기에 있을 때 프랑스군 사령관이 포로가
된 이 성의 시장에게 한숨에 맥주 3.2 리터를 마시면 성을 태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시장이 한숨에 3.2리터를 마셔 성을 지켰다고 한다.
지금도 성의 시청 앞 광장 시계탑이 있는 곳에 시간마다 종소리가 울리면 시청 3층
에 양쪽 창문이 열리고 거기에 맥주 마시는 시장과 프랑스 사령관의 석고상이 창 앞
에 나타나 그때를 재현하고 들어가 관광객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성안이 매우 넓어 시청과 광장과 마을과 넓은 정원과 도로까지 잘 가꾸어진 소도시
같았고 길이 미로처럼 나 있어 잘못 들어서 길을 잃어버리면 찾아오기가 힘들 것 같다.
작년에 라인강 가의 성들은 산속의 절벽 같은 요새에 세워졌었는데 로텐브르그성은
평지의 마을을 담으로 둘러 싼 성이라 그 용도나 방식이 완전한 귀족만을 위한 성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성이라는 점이 다르다.
① 이곳에는 많은 기념품가게와 식당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을 파는 가게를 들렀다. 들어가는 입구는 협소했으나 들어가 보니 여러
층으로 된 방에 갖가지 추리 장식품들이 현란하게 장식되어 눈이 부셨다.
② 성의 넓은 정원-전쟁 때는 성을 방어하는 진지로도 사용한 듯하며 거목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성 아래 수십 길 낭떠러지에는 강이 흘러 천연의 요새였다.
정원의 건너편의 집들이 숲 속에 각양 각색의 모양으로 자태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니 이곳 풍치가 무릉도원이나 에덴동산에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는 풍치 있는 산 계곡에 절이 있는데 독일에는 성이 자리 잡고 있다.
로텐브르그 성 안에는 500년이 넘는 많은 목조가옥이 아직도 남아 있고, 마르크트
광장, 프란시스코 교회, 풍치가 아름다운 공원 등 잘 갖추어진 작은 도시이다.
시청앞 광장에서는 과일도 커피고 팔고 있어 원복희 총무가 채리를 사서 몇 개
먹어보니 맛이 좋은 편은 아니다. 구경을 하는 동안 바람이 강하게 불고 빗발이
뿌려 날씨가 추웠다.
점심식사-로텐브르그 성 안에 있는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생선 함박스틱으로
점심을 먹었다. 입맛에 썩 맞지는 않아도 먹을 만은 했다. 맥주는 500cc에 2.7
유로화 (3400원) 정도이니 싼 편은 아니었다. 약간 도수가 높은 맥주라서
박회장님이 몇잔 드시고 취하시는 모양이다. 그래도 카메라 두개 메시고 사진
찍으러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점심을 먹고 버스에 올라 로텐브르그에서 하이델베르그로 가는 도중에는 가이
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독일의 통일일은 통일 전에 자유 왕래와 동독에서 서독
TV를 보게 되면서 부터 동독이 무너졌다고 한다. 북한이 남북한 왕래를 차단하고
남한의 TV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북한 동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북한동포를 생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북한정권을 지켜주기 위해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 효과도 없는 지원만 계속하고 했기 때문에 벌써 붕괴될
북한정권이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은 북한독재정권
보다 그들을 돕는 남한 정부가 더 증오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차창에는 계속 시골 농촌의 평화로운 정경이 계속 이어진다.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가고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 그림 같은 뾰죽 지붕의 집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푸른 들 아름다운 이국의 정취다.
독일은 대학까지 학비가 없고(한 학기 600유로) 복지대책이 잘 되어 일을 하지
않고 실업수당을 받아 생활하려고 하기 때문에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독일국민들은 여러 번 치른 전쟁 과정에서 치솟는 물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배었다고 한다. 교수가 빵 조각으로 점심을 때우고 책상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까지 모아서 먹는다고 한다.
강변 가에나 광장에는 벼룩시장이 열려 물물교환이나 안 쓰는 물건을 싸게 팔고
산다고 한다. 에너지 가격이 제일 비싸기 때문에 전년도 쓴 것을 기준으로 새해에
절약 계획을 세우고 에너지 절략을 위해 난방은 끄고 옷을 두껍게 입는 다고 한다.
그러나 복지정책으로 근로의욕이 상실되어 차츰 근검절약 생활은 사라지고 즐기는
문화로 변질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은 빙식지형이라 땅이 토박하고 비가 내려도 물이 잘빠져 홍수가 없다고 한다.
독일의 토질에 잘 맞는 감자와 밀이 주로 생산되어 감자요리가 매우 발달되었다고
한다. 유채와 해바라기도 많이 심는다고 한다. 들에는 해바라기가 한창자라고 있고
유채꽃이 진 곳도 있고 노랗게 피어 있는 곳도 보이는데 해바라기와 유채는 주로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 사용한다고 한다.
휴게소-휴게소에서 들려 소변을 보는데 변기가 두개 뿐인데 가는 곳마다 돈을 받는다.
유럽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 식당에 가서도 물 값은 별도로 내야하고 어디에 가나
유료화장실이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물과 공기 먹는 것과 화장실인데
그중에 물과 화장실이 불편하니 생활 전체가 불편해진다.
다시 버스에 올라 버스는 하이델베르그로 가고 있는데 날씨는 춥고 비는 오락
가락한다. 성악을 전공한다는 가이드가 우리일행의 요청으로 노래 두곡을
부르고 박회장님과 몇 분이 나와 노래를 했다. 성악가 노래를 듣고 노래 값을
내야한다고 1유로씩 거두자고들 하다 그만 두었다. 차창 밖에는 산비탈 까지
포도밭이 잘 가꾸어져 로렐라이 가는 길에서 보던 산비탈 포도 밭이 가끔 보인다.
독일의 포도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독일 사람들은 와인을 맛으로도 먹지만
향으로도 즐긴다고 했다. 서리 맞은 포도로 빚은 아이스 와인이 제일 맛이 좋다고
했다. 들판에 가끔 보이는 풀 뜯는 소들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인다.
녹지의 나라 독일 도시는 언제나 숲 속에 묻혀 있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인 나라다.
(2) 두 번째 관광 하이델베르그성
3시40분에 하이델베르그 고성에 도착했다. 하이델은 성스럽다는 뜻이고 베르그는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슐러스(귀족의 성)와 명문대학이 많아
유명하다고 한다.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9개 단과대학들이 분산되어 있다고 한다.
길에는 두 대를 연결한 전기 버스와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길에는 자전거 전용도로
가 있어 역과 버스는 자전거로 연결이 된다고 하는데 곳곳에 자전거 주차한 곳이
보인다. 어린아이부터 자전거 타는 법을 꼭 가르친다고 한다.
하이델베르그는 숲의 도시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찔레꽃이 피고 네케르강이 흘러
명소가 되었고, 첫 번째 관광지 로텐브르그에는 타우머강이 흐르고, 프랑크푸르트
에는 마인강이 흐른다고 했다. 이 도시에서 루터가 종교개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① 하이델베르그성
이 성은 깍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성을 세웠고 성 아래로 네케르강이 흘러 경치가
아주 빼어났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제수가 이 성에서 시집 온 공주였는데 공주의
부모가 혈통이 없이 죽자 공주의 땅이니 내놓으라고 2번이나 공격해서 성이 많이
허물어졌다고 한다. 성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
화 같다. 높은 성당의 탑이 솟아 있는 고색 창연한 구시가지와 붉은 기와와 뾰죽지붕
과 고층 건물들이 들어선 신시가지가 대조를 이룬다. 이곳 시가지는 숲이 적고
집들만 빽빽하게 들어선 것이 다른 도시와 다르다. 천길 밑을 흐르는 네케르강에는
알테브리케라는 교량이 있는데 여러 가지 장식으로 조각된 운치를 살린 다리다.
성에서 바라본 시가지와 주위의 풍치는 환상적이라 할 만큼 아름다운 풍치를 지니
고 있다. 이곳에는 종교개혁 발생지라 교회가 많은데 지붕위의 십자가 밑에는 닭이
있는 것으로 교회와 성당이 구별된다고 했다. 성은 붉은 벽돌로 쌓았는데 많이 무너
져 내렸으나 웅장함과 견고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무너져 내린 화약고를 보니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바위덩이를 싸놓은 것처럼 벽들의 두께가 3-4m도 넘는 것 같다.
들어가는 엘리자베스 문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가운데 광장에서 둘러보니
4각형으로 지어진 동서남북의 건물들이 다 모양이 다르다. 1400년대부터 축성이
시작되어 1600년대까지 축성이 되어 트로이 양식,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등
여러 양식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이 성을 다스린 제후들의
조각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지하에는 22200통이 들어가는 와인 통이 나무로 만들
어져 있는데 작은 와인통을 지고 올라가는 조각상이 있었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통이었다고 한다.
성을 대충 돌아보고 네케르강으로 내려와 올드브리지(오래된 다리)라는 알테브리케
라는 다리를 보았다 오래된 좁은 다리였으나 여러 건축양식이 조화된 다리였다.
그렌데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이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누런 흙탕물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강을 목격했는데 깨끗하고 맑은 강물은 보지 못했다.
② 시청앞 광장과 면세점
비가내리기 시작해서 시청 앞 광장 대충 둘러보고 면세점에 들렀다. 칼, 밥솥, 냄비
등 생활용품점이었는데 모두 한 가지씩 사는 것 같고 많은 물건을 사는 분도 있었다.
여행 나올 때마다 아무것도 사들고 오지 말라는 말이 세뇌가 되어 면세점 한 바퀴
돌아보고 시장광장을 돌며 가게를 둘러보는데 비가 내리고 날씨도 추어 면세점 쇼핑
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가이드가 길안내를 잘못해서 바로 앞에 있는 버스를
찾아 비를 맞으며 한바퀴 돌면서 투덜댔다.
버스에 올라 네케르강을 끼고 내려오는데 작은 강에 화물선이 석탄을 가득 싣고 가고
있고 유람선이 정박해 있는 것도 보인다. 독일의 우중충한 날씨가 방안에 틀어박히게
되어 유명한 철학자를 만들어 냈고 음악도 독일음악은 무겁고 중후하며 이태리 음악은
가볍고 경쾌하다고 한다.
(3) 코메르츠방크 라르메 월드컵 경기장
6월13일 한국이 토고와 첫 번째 경기를 갖게 될 월드컵 경기장에 갔으나 입구부터
통제되고 있다고 해서 경기장 두 기둥만 보이는 육교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6월 13일 한국이 승리하기를 기원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경기장 주위에는 숲으로 덮여 있고 주위에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국제도시로 금융, 주식, 은행이 발달된 유럽의 금융 중심지라고 한다.
과테의 고향이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고 한다.
(4) 저녁식사
7시 30분 신라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돼지불고기 된장찌개는 입맛에
맞았으나 김치가 너무 짜다. 식당 입구에는 불고기라는 영어 간판이 크게 붙어 있다.
3-4층 빌라 뿐 고층의 아파트는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이 18세만 되면 독립해서 나가
기 때문에 25-30평 소형 아파트가 많다고 했다. 마인강가에는 조정 경기 연습하는
청년들이 보인다. 독일은 6월에도 밤 10시가 가까워져야 어두워진다고 한다.
8시 반인데도 아직 날이 밝다. 우리가 탄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크로아티아 출신
50여세로 보이는 여자 운전기사인데 이를 치료한다고 온종일 물만 먹고 음식을
들지 못한다고 한다. 친절하면서도 운전기술이 뛰어났다. 8시가 넘으니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거리는 한산하고 인적이 드물다.
(5) 홀리데이 인 호텔(Hollday Inn)에 투숙
시내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 속에 자리 잡은 이 호텔은 C급 정도 되는 호텔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상큼한 느낌을 준다. 작년 여행 때는 이곳
에서 가장 높은 40층짜리 빌딩의 A급 호텔에서 편안하게 쉬었던 생각이 났다.
그 호텔에 남녀 혼탕이 있다고 해서 거짓말로 믿었는데 사우나에 갔다 온 분이
사실이더라고 했다.
장거리 비행에 계속된 관광에 너무 피곤해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었는데 박회장
님이 다리가 쥐가 난다고 해서 한참 주무르고 침으로 피를 뽑고 해서 겨우 진정이
되었는데 한 시간가량 지나니 또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해서 주무르고 침으로 따고
해도 안 되어 사무실에 연락을 해도 아무도 없으니 택시 불러 타고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박과장님께 전화하니 올라와서 피가 안돌아서 그렇다며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려놓고 주무르니 가라앉아 걱정을 하며 자리에 들었다. 연세도 많으신데 무거운
카메라 2대를 메고 뛰어다니며 사진 찍느라 무리를 한 것 같다.
18시간 비행에 10시간 관광에 체력에 한계점이 온 것 같다. 12시가 되어 집으로
전화를 하니 한국은 아침 6시라고 한다. 지방선거가 궁금해서 물으니 여당이 참패
했다고 한다. 시도지사 16석 중 여당은 1석 민주당 2석 무소속 1석 한나라당 13석
으로 관심이 집중되었던 대전도 한나라당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생각난다. 국민을 무시하고 편 가르기에 코드정치에 독단과 편견과 아집으로 한풀이
로 경제는 파탄내고 외교는 고립되어 언론에서 잘못을 비판하면 모든 잘못을 언론과
야당에 뒤집어씌우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를 국민이 매섭게 심판한 것 같아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