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에 만난 작가 –수필가 박태국
동짓달의 기다림
박 태 국
지하철 승강장에서 조금 있으면 도착하는 열차를 기다리듯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한겨울에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따스한 봄날의 훈풍을 기다리듯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96년 동안 길다면 긴 세월의 역경을 무던하게 이겨내고 단 하나의 슬픔이나 아쉬움을 간직하지 않은 체 홀연하게 제 곁을 떠난 당신을 기다립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동짓달 긴긴밤들이 당신을 그리워하게 하고 따스한 아랫목은 더욱더 당신의 아늑한 품을 생각나게 하지만,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요.
따스한 봄날 복숭아 꽃이 만발한 나무 아래에서 호미를 들고 파릇파릇 돋아난 냉이를 한 바구니 캔 당신은 저녁에 된장을 끓여서 먹자고 하셨지만, 그 된장국을 저는 아직도 끓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날 점심에는 삼겹살이 맛있다면서 저보다도 많이도 잡수시고 단번에 일어나시던 모습을 본 식당 주인은 백수까지는 문제없이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지금처럼 동짓달 긴긴밤은 당신과 함께하면 더욱 포근한 밤이 되겠지만, 당신을 만날 수가 없네요.
오빠 세 명과 언니 두 명 있는 채 진사댁 셋째 딸 막내로 태어난 당신은 양반집이라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 있었다는 서당에서 천자문과 한학을 공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여자 나이 16세 될 때까지 시집을 가지 않고 있으면 당시에는 일본으로 붙잡혀 간다고 할 때였다면서 집안의 아는 사람으로부터 중신이 일찍 들어 와 신랑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부모님의 결정으로 결혼을 승낙하고 1년 동안 친정에서 신부 수업을 한 후 당신보다 7살이나 많은 신랑에게 시집을 오셨다고 하셨지요.
3년의 시집살이를 하고 쌀 단지와 간장 단지를 들고 단칸방에 살림을 차렸고 한때는 정미소까지 운영하였으며 30리 밖에서 만든 문짝을 지게로 지고 와서 지금의 집을 지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다고는 하셨지만 96년이라는 세월 동안에는 기쁨과 슬픔이 참 많이 녹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어려움을 모두 이겨내면서 3남 3녀를 낳아 잘 기르셨고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는 살림살이도 넉넉하였지만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한평생 살면서 몸에 밴 것이라면서 매년 여름이 되면 삼배를 길이가 두 뼘 정도 되는 대나무로 만든 자를 들고 재단하여 자르고 재봉틀을 직접 돌려 바람이 잘 통하는 속옷을 만들어 주셨지만, 저는 올여름부터는 입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떠날 때까지 병원 입원 한번 안 하시고 지팡이 한번 안 짚고 다니신 건강한 당신이었는데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함께한 후 20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응급실에서 한마디 말씀도 남기지 못하고 가셨잖아요.
어쩜 저 역시 당신의 그러한 삶을 그리며 당신이 주신 삶의 지혜를 따라가도록 묵묵하게 이겨내며 새로운 드라마를 날마다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 지나가고 필름이 끊어진 것 같은 당신과의 이별은 아직도 꿈인 것만 같고 가끔 가려운 등을 쓰다듬어 주시던 손을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 했던 그 순간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제 곁으로 다시 오시리 라고 믿고 있으며 동짓달의 긴긴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아랫목에서 두툼한 솜이불을 당겨 덮으면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재회의 날이 있다면 그때는 못다 한 효도와 사랑이라는 것을 한번 더 해 보고 싶습니다.
다시금 복숭아꽃 냉이밭의 봄날로 되돌아 가 그대로 멈추어 있으면 합니다.
박태국 프로필
아호: 학산 /동양풍수지리학회 회장 /우성역리학술연구회 회장 /주현작명철학원 원장 /사)한국무예문화원 경북지회 회장 /사)대한민국무술총연합회 지도위원 /사)세계문인협회 정회원 /2012년 한국신춘문예 수필 등단/ 한국신춘문예 심사위원 /KCN 한중방송 출연 /주)스포츠닷컴 논설위원 /추적사건25시 기자 /한민족신문 해외특파원 /2012년 제6회 문화예술회관 창작가요제 입상 /작사: 내사랑 꽃망울, 멋진인생을 위하여 등 /저서: 만사형통 생활풍수, 천기 생활풍수, 비기보전 당사주, 양택풍수, 작명과사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