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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덕지맥 2구간
2011.5.15 (일)
산길 : 우산재~봉우재
거리 : 14.9km
구간거리
우산재~7.8~국사봉~3.2~숭덕산~1.7~토파이재~1.6~오봉산~0.6~봉우재 / 14.9km
Cartographic Length 16.7km Total Time: 07:32
텐트에 누운 채, 보름을 사흘 앞둔 둥그스럼한 달을 쳐다보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데 자정쯤에 차가 두 대 들어오더니 아이들 소리도 들린다. 우루루 강변으로 내려가더니 무소식이다. 집단으로 자살하러 왔는가 싶은 생각도 들고, 이안천 물소리가 끊기지 않아 잠이 들다 깨다를 반복하는 중에 날이 샜다.
밤에 들어온 무리들은 강변에 대형텐트를 쳐놓았다. 승용차 두 대에 아이들까지 낀 대군사가 그렇게 신속 간단하게 움직인걸 보면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사모님이 끓여주시는 아침밥을 먹고, 점심도 통에 담아 일을 나간다.
지도만 보고 봉우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신흥리 보건소 옆으로 난 차 한 대 겨우 들어갈만한 시멘트길인데 옆 골목길 두 번이나 어문데 찔러보고서야 제대로 찾아 올라갔다. 마을 사람한테 진작 물어봤으면 쉽게 찾았을거로, ‘공검 넘어 가는 길’이다.
신흥리 마을에서 봉우재 정상까지 좁은 시멘트길로 차 두 대 교행이 안되는 길이다. 꼬불꼬불 올라갔는데 마주오는 차라도 있었으면 아주 힘들었을 뻔했다. 봉우재 올라서면 오봉산에서 내려온 길에 넓은 공간이 있다. 차 한 대 대놓고 반대편 공검으로 내려갔다.
07:40 우산재
08:12 ×408
09:20 ×358
09:56 오봉산 갈림
10:46 비지재
11:27 국사봉
12:25 덕천재
13:13 숭덕산
13:47 아스팔트 도로
13:58 역곡건널목
14:02 중부내륙고속도로
14:51 오봉산
15:12 봉우재
우산재
우산재 (230m)
절개지 철망을 피해 우측으로 올라 10분 후 서쪽으로 트인 조망바위에 서면 우산리 마을과 어제구간 최고봉 능선이 보인다.
우측으로 휘돌아 오르면 ×408인데 새로 은척면을 접한다. 우측으로 틀어 완만하게 내렸다가 오르면 ×449봉이다. 붉은병꽃나무가 보이고 둥글레는 여전히 지천이다. 어제부터 이어지던 비닐끈은 계속되고 길도 좋다.
성황당 흔적이 남아 있는 고개를 지나 계속 능선따라 오르면 범산으로 가게 된다. 지형도에는 ×419봉이고, 영진지도에 범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419봉 300m 가량 못 미쳐 우측으로 공검면계를 따라 마루금은 이어지는데 능선이 아닌 비탈에 길 흔적도 없고 숲이 우거져 마루금 찾느라 애를 먹는다.
우산리
고문님 뒤로 어제구간 최고봉이 보인다
붉은병꽃나무
×358
급비탈이 다하면 펑퍼짐한 지형인데 고문님과 선두대장님은 그 와중에도 고사리 따느라 바쁘시다. 우측으로 돌아 오르면 대머리처럼 황토흙이 다 드러난 묘가 있는 ×358봉이다. 배낭 내리고 쉬었다 가는데 남쪽으로 노음산과 오봉산이 조망된다.
×358 내려가면 절벽이다. 묘터에서 내려오면 오봉산 갈림봉에서 왼쪽으로 이안천 따라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줄기가 다 보이고, 정면은 수직 벼랑이다. 왼쪽으로 돌아 나무를 부여잡고 겨우 내려섰다.
이안천 따라 휘도는 지맥
오봉산 갈림봉
오봉산(×311)은 남쪽으로 외서면계 따라 400m 가량 지맥에서 벗어나 있어 다녀올 생각도 없었다만, 길은 왼쪽 사면으로 질러가고, 오봉산으로 가는 길은 못봤다. 왼쪽으로 돌면 북동방이 되고 지도상 바로 아래가 이안천 물이 굽이치는 곳이나 조망이 되지 않는다. 낮고 평탄한 능선을 따라 ×233, ×254봉은 거의 오솔길이다.
비지재(166m)
웃등검에서 병암리로 가는 고개. 비(斜)+지(支, 只)+재(峴)=비지재. ‘벼랑’이나 ‘비탈’과 관계된 지명이다. ‘지’는 백제어로 ‘고개(峴, 嶺), 산’을 뜻한다. 같은 뜻의 지명으로 구미시의 ‘비산동(飛山洞)’과 경주기 내남면의 ‘비지리(飛只里)’가 있다.
콩비지가 아니라 비탈진 고개라는 뜻이다. 2차선의 아스팔트에 내려서니 열기가 후끈하다. 맞은편 숲을 보니 들어갈 만한 구멍도 안보여 왼편 아래 있는 임도로 들어간다. 과수원에 벌초작업 하느라 모터소리가 웽웽거린다. 묘터 뒤로 쳐올라 지맥에 붙었다.
비지재
국사봉 오름길 우측으로 나간 조망바위에서 노음산 오태지를 조망한다. 동막리 양정리 들판이 훤하게 열린다.
오태저수지 / 노음산
동막리
지도상 국사봉 △점촌26
국사봉 (國寺峰 339m △점촌26)
국사봉도 많기는 하지만 절 사(寺)자를 쓴 국사봉은 처음 본다. 상주시 자료에는 國師峯(공검면 예주리)으로 나오는걸로 봐서 지형도 표기가 잘못된 듯 하다. 싸리나무 우거진 봉우리에 조망도 없고, 지형도는 여기를 국사봉으로 표기했다만 정작 국사봉은 여기서 북동으로 500m에 있는 봉이 더 국사봉스럽다.
국사봉
국사봉 (×314m)
산불초소가 있고 공갈못산악회에서 만든 ‘국사봉’ 정상석과 국태민안 제단, 풍채 당당한 노송 세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노음산 왼쪽으로 오태지와 들판이 아주 넓게 보인다. 한쪽 팔이 불편한 장애인 근무자가 친절하게 답해준다. 오늘이 마지막 근무일(산방기간 종료)이라 하고, 공갈못의 유래와 위치, 그리고 이 봉우리의 소나무는 함창읍에서도 맨눈으로 식별이 된단다. 숭덕지맥 최고의 조망대를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아쉬워 시간은 덜되었지만 점심상을 폈다 (~12:00)
노음산, 오태지
멀리 공갈못이 보일똥 말똥이다
상주공검지(尙州恭儉池)
공검면 양정리에 있는 저수지로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와 더불어 삼한시대 3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공갈못이라고도 하는데 ‘공갈’이란 아이를 묻고 둑을 쌓았기 때문에 ‘공갈못’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저수지의 규모는 둑의 길이가 860보 이고, 둘레는 1만6천6백47척으로 봐서 그 규모가 웅대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폐허가 되어, 흔적만 남은 것을 1993년 확장공사를 벌여 수심 3.4m의 연못으로 조성하였다.
세계최고((最古 )의 수로시설이란다
하늘에서 본 공갈못 (다음지도)
동쪽 가마실로 내려가는 길은 조은데, 초소 근무자의 말씀대로 지맥 마루금으로는 길이 거의 없다. 잡목속을 헤엄치며 급비탈을 다 내려오니 어느정도 길이 보이는 듯하다.
덕천재(120m)
정면은 절개지 철조망이라 왼쪽 묘터를 통해 도로에 내려서니 ‘예주1리’ 버스정류장이다. 지도를 읽어 벽실마을을 통해서 마루금에 붙기로 하고 마을길 따라 들어간다.
덕천재 예주리(曳舟里) : 벽실에서 율곡리 새마로 가는 고개.
지도에는 득천재이지만 상주에서는 덕천재로 표기했다. 曳舟 배를 끈다는 뜻풀이가 되니 예전 이 동네에서는 배를 끌고 다녔나보다.
예주1리 마을회관
아이스케끼 파는 가게는 희망사항이고, 예주1리 마을회관 옆에 있는 수돗물을 트니 웽하는 모터소리와 함께 찬물이 콸콸 나온다. 머리를 쳐박아 라디에이트 냉각시키고 물도 보충했다. 마을 안쪽길 끝까지 들어가서 우측 수레길로 올라갔다. ×218봉에서 이안면계를 접하고 우측(동)으로 꺾인다.
고문님 말씀 깊이 새겨 명심해야겠다.
“마루금을 조금만 벗어나면 이리 조은 천국이 있는데, 뭐 먹고 살 일 있다고 마루금을 고집하느뇨~!”
은대난초
숭덕산
숭덕산 (崇德山 ×236m)
정자나무 한 그루가 숭덕의 품위를 나타낼 뿐 조망도, 공간도 없다. 숭덕지맥의 이름을 차라리 더 높은 채릉지맥이나 조망조은 국사봉이나 오봉산에서 취하는게 더 나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공검 들판이 보이도록 주변정리 좀 했으면 좋겠다. 잠시 숨고르기하고 200m 가량 나가니 ‘지적’이라 새긴 삼각점이 있다.
×208
숭덕산에서 남동으로 500m 떨어진, "이 봉을 옥녀봉이라하고 남쪽에 회암(回岩)이 있다”라 했는데 울창한 숲속이라 동서남북이 구분 안된다.
이 봉에서 도로에 내려서기까지 면계와 마루금이 벌어지는지라 미리 염두에 두고 조은 직진 길을 놔두고 우측 길로 들었다. 몇 걸음 내려가다가 왼쪽 숲을 뚫고 들어갔는데 이렇다할 길도 없어 방향만 맞춰 내려가니 과수원이다.
과수원 갓길을 따라 내려가면 아래 길가에 빨간, 파란 지붕 공장이 보인다. 공장 왼쪽 희미한 둑길이 마루금이 되겠다.
과수원 갓길로
아스팔트 도로(90m)
공검면 율곡리 발기미 마을이다. 길 건너편 과수원 한번 쳐다만 보고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간다. 논에는 물이 가득하고 모를 내는 일손이 바쁘다. 상주 지명유래에서 말하는 장파이고개가 여기가 아닌가 싶다.
가장리(佳庄里) 장파이재 (장파티 장판이재 長坡峙)
가장에서 공검으로 넘어 가는 고개.
잔(小)+받(山)+티(峙)=잔받티→장바티→장파티. ‘낮은 산에 있는 고개’의 뜻이다.
경북선 철도 역곡건널목
마루금쪽으로는 소가 있는 우사라 우측길로 피해 고개 넘어 내려가니 철길이다. 3번국도는 굴다리를 통해 지나고 왼편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 굴다리가 보인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토파이못
토파이못
榮陽 南一齊선생 유적비 앞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면 조그만 못이 있는데 이름도 요상한 토파이못인데 유래를 보면 알 듯도 하다.
이안면 가장리(佳庄里) 토파이 고개 [토판이 고개, 토판 고개]
가장에서 공검으로 이어지는 고개.《‘돋+받+고개(峴)=돋받고개→돋받이고개→돋바이 고개→토파이고개’로 본다. ‘돋’은 ‘도드라진’의 뜻이고, ‘받’은 ‘산(山)’이다. 숭덕산에서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낮은 산줄기를 넘는 고개지만, 지금은 국도와 중부내륙고속국도 개설로 워낙 낮아 산줄기로 보이지 않는다.》
이안면 이안리(利安里) 토파이못
토파이고개 북쪽에 있는 못. 토파이들의 남쪽에 있었는데, 4차선 3번 국도를 내면서 없어졌다.
토파이못 우측으로 올라가고 갈림길에서 왼쪽 과수원을 통해 마루금에 올라섰다. 은대난초를 보고 허리 숙이고 카메라 갖다 대는데, 고문님은 고사리, 취나물 뜯느라 허리를 숙인다. 같은 동작이라도 돈이 되는 사람과 돈 안되는 사람의 차이다.
△192.2
△192.2
오름 직전에 왼편으로 질러 가는 길도 있으나 삼각점 보러 올라갔다. 기반이 절반은 깨어져 반만 남아있다. 내려오니 고문님이 그 봉우리가 ‘서산’이란다. 서산을 내려오면 심실마을로 내려가는 고갯길에 시멘트 수조가 있다.
심실고개에서 오봉산 오르는 길에는 영월 석회암지대에서 흔히 본, 땅속으로 뻐꿈하게 구멍이 뚫린 데가 여러 곳 있다. 조은길 따라 올라가면 오봉산이다.
심실고개
나물조
오봉산 (240m)
아침에 못 가본 오봉산을 여기서 만난다. 해맞이공원 표석과 제단이 있고 아래쪽에는 정상석과 운동기구가 놓여있다. 내려가는 길은 가히 고속도로다. 오봉산은 이안 공검 함창읍 삼면봉이니 함창읍을 새로 만난다.
함창읍 신흥리(新興里) 오봉산(五峯山)
공검면 역곡리. 함창읍 신흥리. 이안면 이안리 경계에 있는 산.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고봉의 높이는 해발 238m다. 산의 북쪽과 동. 서쪽 기슭에는 고분군이 있다.
제1봉은 무지봉으로 꼭대기에 성제천(盛齊泉)과 냉천사(冷泉寺)가 있어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제2봉은 봉화봉으로서 옛날 봉화를 올리던 장소인데, 주위에 남산고성이 둘러쌓인 곳이다.
제3봉은 병풍봉으로서 주위의 바위가 병풍같이 생겼다고 하여 불리어진 곳이고,
제4봉은 밥봉으로서 바위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5봉은 매봉(묘봉)으로서 천지개벽할 당시 주변 침수로 묘같이 남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불리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송전철탑을 지나면 멋진 노송 하나와 절벽에 쇠파이프 난간을 설치한 조망대다. 함창읍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고문님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보니, 작약지맥 태봉산이 논 가운데 섬처럼 봉긋하다. 저게 지맥이라니.
봉우재(170m)
공검면과 함창읍 경계로 시멘트길 고개다. [신흥리(셋집마) 0.2km, 오봉산0.8km]이정표가 있는데 서쪽 역곡리에서 안내하는 오봉산 일반등산로다.
신흥리(新興里) 봉우재 고개
세집매에서 공검면 역곡리로 가는 고개. 봉(烽)+(우)+재(峴)+고개(峴)=봉우재고개. ‘봉’을 ‘보우’라고 소리 내었다.
봉우재
우산재로 차 가지러 가는 길에 공갈못 옆으로 지나면서 도로에서 카메라를 대 보지만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고문님 함창읍에 장보러 다녀오실 동안 씻을데를 찾는데 상주는 지대가 낮은 들판지역이라 어디처럼 계곡이 없다. 뺑뺑 돌다가 합수점 강에 가니 만장 같은 독탕이 있다. 홀딱벗고 퐁당 담궜다.
사대강살리기 낙동강 34/35공구 경계지점 둑방아래 텐트를 치고, 고문님 사오신 닭갈비 볶아먹고 DMB로 개콘보다가 잠들었다. 혹시나 싶었는데 강 건너편의 포크레인과 덤프트럭들은 야간에는 조용했다.
오목하게 들어온 곳. 조은 알탕소다.
개그콘서트. 달인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