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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동학과 과학(2)
이 대담은 지난해 12월 17일 종학대학원에서 열린
김선배, 라명재, 이재웅 동덕의 대담을
라명재 동덕이 정리한 것으로, 두 번째 분량이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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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주養天主
김선배(사회, 이하 김)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강의를 듣는 종학대학원 학생이나
줌으로 참여하신 분들께서 강의에 대한
궁금한 내용이나 질문을 올리시면
두 분 교수님께서 답을 해 주시겠습니다.
이어서 양천주로 넘어 가겠습니다.
이 교수님 말씀하시지요.
이재웅(이하 이)
‘한울을 기를 줄 아는 사람만이 한울을 모실 줄 안다.’
양천주를 통하여 시천주의 능동성과 주체성이
명확하고 멋지게 빛납니다.
생명객체들의 근원적인 주체성과 천명의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주 모든 생명체들의 활동으로
새로운 정보가 창조되고 있고
우주의 재구성 순환(creating new information
and reformation of the universe)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주에 있는 일체 생명체들의
정성스럽고 생기 넘치는 삶이 바로
우주 정보를 새롭게 축적하고
우주를 새로이 길러 가는 일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의 양천주!
마음에 생기와 감명을 줍니다.
우리 인류가
지구행성에서 뭇 생명체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지구행성의 문명을 찬란히 이루어 가는 것이
우주에서 우리의 몫을
성실하게 담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우주의 스케일에 비하여 참으로 미미할지라도
그렇게 함이 우주의 일원으로서 마땅합니다.
지구행성에서 문명을 이루며
우리 인류의 역사를 굴려가는 것은
우리 모든 민중 범부들의 풍운조화입니다.
동학의 ‘시천주 조화정 양천주’로부터
제가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단군민족의 훌륭한 가르침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깊고 정대한 뜻을 새롭게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김) 잘 들었습니다. 라 교수님 이어서 말씀해 주세요.
라명재(이하 라)
역사는 몇몇 위인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수 많은 민중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실제 우리 역사에서 그런 각성이 일어난 게
동학혁명과 3.1 혁명입니다.
1910년에 조선이 망하는데,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1919년 독립선언서를 보면
왕정복구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고,
민주공화국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거든요.
그런 정신이 해방 후 오늘의
대한민국 헌법정신으로 이어진 게 사실이구요.
그런데 그 당시 전 국민을 그렇게 각성시킨 것이
동학이 아니고 누가 있겠습니까?
신분을 넘어 누구나
한울을 모신 신령한 존재라는시천주의 자각이
동학혁명에서 3.1 혁명까지 이어진 것이지요.
시천주의 수행으로 개인의 자각이 이어지면
개인의 양천주지만,
이렇게 전 민족, 전인류, 전 우주정신의 자각이라는
큰 양천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거지요.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관심이 가고 움직입니다.
한울님을 위하는 위위심을 잊고
각자위심으로 쉽게 빠질 수 있는 것이지요.
이를 경계하고 위위심, 모심, 외유기화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 것이 수심정기 공부입니다.
이를 이어가면 내안에 한울 마음이 자랍니다.
각자위심은 줄고 한울마음이 커집니다.
그것이 양천주고, 모심은
양천주의 수행으로 실천되고 확장됩니다.
즉 시천주는 나와 한울이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지만,
삶의 모든 것이 시천주가 되려면
양천주의 실천과 수행이 있어야 매순간
모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대각에 이를 수 있고,
그것이 인내천인 것이지요.
나아가 내안의 한울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만물을 위하고 본래 모습대로 도와주면
그 모든 것이 양천주가 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개별 생명체들의
정성스럽고 생기 넘치는 삶 자체가 바로
우주 정보를 새롭게 축적하고
우주를 새로이 길러 가는 일이라는
이재웅 동덕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김) 제가 생각하기는
해월신사님의 삶 자체가 양천주의 삶이셨습니다.
저는 해월신사 법설 독공편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젊었을 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옛날 성현은
뜻이 남다른 표준이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한번 대 선생님을 뵈옵고 마음공부를 한 뒤로부터는,
비로서 별다른 사람이 아니요
다만 마음을
정하고 정하지 못하는데 있는 것 인줄 알았노라.”
여기서의 정定자도 합기덕 정기심입니다.
주문 마지막에
‘명명기덕 염염불망즉 지화지기 지어지성
明明其德 念念不忘則 至化至氣 至於至聖’이라 했는데,
해월신사님은 삶으로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 주셨고,
이는 양천주 실행의 결과라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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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기연不然其然
김) 불연기연에 대하여
이 교수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이) 동학은 세상만사를
기연과 불연 두 측면으로 통찰합니다.
기연은
인과(cause and effect)로 이어지고 있는
측면입니다.
기연을 불교에서는 연기緣起라고 합니다.
기연과 연기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인과의 세계는
고전물리학(classical physics)이 적용되는
마크로(macro) 세계입니다.
불연은
인과의 흐름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파악할 수 없는
측면입니다.
불연의 세계는
논리적 추구가 끊길 수밖에 없는
극 지점 그 이면의 세계입니다.
스스로 그렇다고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자리를 가리킵니다.
현대물리학은 스스로
양자요동(quantum fluctuation)을 하고 있는
패턴(pattern)이 지배하고 있는
마이크로(micro) 세계를 말합니다.
현대물리학은 기연을 넘어선,
단순히 인과로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오묘한
또 다른 특성을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심학은
불연자리를 응시하는 경향을 크게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은
더디더라도 한발 한발 전진하며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인류 기연의 세계를
넓혀 가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심학과 과학이 적극적으로 조화롭게 어울리며
인류의 앎과 문명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기를 희망합니다.
첨언하면 전체집합인 우주 자체로는 모든 것이
기연지리其然之理 기연지사其然之事일 것입니다.
그것을 동경대전 불연기연 장에서
‘부지어조물자즉付之於造物者則
기연기연其然其然
우기연지리재又其然之理哉인저’라고 하였습니다.
매우 정직하고 정확한 서술입니다.
우리의 짧은 앎이 만사지萬事知가 아니고
모든 우주정보의 발현 그 자체가
진정한 만사지일 것입니다.
우리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그 특성상
무궁 무궁한 우주만사지宇宙萬事知의 바다를
계속하여 열심히 항해하여 나갈 것입니다.
김) 역시 과학과 잘 접목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라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라) 인간의 의식이 아무리 발달해도
무한한 우주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없습니다.
실제 현대 과학에서 밝혀낸 물질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무한한 우주 앞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지요.
현대 과학은 많은 것을 밝혀내고 있지만,
그만큼 인간이 얼마나 모르는 지도
새삼 알려주고 있습니다.
밝혀진 기연은 잘 알고 잘 활용해야 하지만,
모르는 불연은 심학이 필요합니다.
명확한 판단이 어려운 불연의 사안에는
한울님 입장에서, 우주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며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심신 삼단을 합해보고 나누어 보는
정시정문의 심법입니다.
또한 불연은 보이지 않는 근원
생명인 지기, 한울 성령을 뜻하고,
기연은 본체인 한울성령이 형상화 되어 나타난
현상세계 즉 작용을 뜻하기도 합니다.
무형의 한울과 유형의 사람이 둘이 아닌 하나임이
현대 과학에서도 밝히고 있고,
유명한 아인쉬타인의 방정식 E=mc2 에서도
유형의 물질이 무형의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불연의 우리 의식과 기연의 우리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입니다.
한울님 입장에서는 기연일 뿐이지요.
그러한 고전 물리학적 이분법, 심신 이원론을 극복한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양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고, 모든 곳에 존재하거나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은
동학에서 불연과 기연이 하나로 연결된
유기적 관계임을 파악한 것과 상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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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三敬
김) 삼경에 대하여 이 교수님 말씀하시지요.
이) 우주에서 생겨나서 살고 있는 생명체인 우리들이
어떻게 우주와 우주의 모든 현상에 대하여 깊게
경외하고 신뢰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구행성의 모든 물체,
모든 생명체들을 이루고 있는 물질 원소들은
초신성이 별의 일생을 마치고 죽을 때
초신성의 핵 속에서 만들어지고
대폭발로 주위에 흩어진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신기한 ‘별의 먼지(star dust)’입니다.
우주만상이 혼원지기의 조화 작용으로서
모두 그 안에 혼원지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모두 똑같이 정성껏 존중할 존재들입니다.
우주 그 자체도 존중하고, 우리 인간도 존중하고,
생명체가 아닌 물질도 역시
존중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우주자연의 조화와 그로 인한 신비한 생명체로서
자신과 주위 환경에
깊은 공경과 감사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므로 경천, 경인, 경물은 자연스럽고 합당합니다.
지구행성 최고 기적은
38억 년 전 첫 생명세포 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가 생겨나
그 삶의 첫 호흡을 한 것입니다.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LUCA의 경이로운 후손들입니다.
우리 인류와 근원적으로 정확하게
평등한 존재들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의 유전정보 저장 매체인
DNA의 기본적인 구조도 동일합니다.
모든 생명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의 역사 속에서 전체 생명계를 변화시키고
새로이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21세기 초엽 우리 인류는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며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라는 공동의 고향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동료들인 수많은 생명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인간 중심적인 시야를 속히 벗어나서
생명체 전체를, 지구의 생태계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경인을 경 생명체(敬生命體)로 확장해야 할 것입니다.
김) 라 교수님 이어서 답 해주시겠습니다.
라) 생명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생명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생명의 한계를 정할 수 있을까요?
현재 말썽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명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포막도, 세포질도 없고, 스스로는
움직일 수도 복제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LUCA는 그에 비하면 엄청난 고등 생명체입니다)
오직 유전정보 한 가닥(DNA는 이중 나선구조,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 가닥의 유전정보인
RNA 바이러스) 뿐입니다.
생명을 정의하는 기준에 거의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닥 유전정보만 가진 그것이
전 세계의 인류문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의 기준에서
무엇을 생명으로 볼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한울로 볼 것인가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이미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도
복잡한 호르몬과 면역체계를 가진
고등 생물임이 밝혀졌고,
작은 하나의 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원자도
내부에선 전자, 양성자등이 에너지를 가지고
활발히 움직입니다.
모두 한울의 원리에 따라
한울의 기운으로 움직이는 ‘한울’입니다.
그러므로 원자에 이르는 물건까지, 이 모든 한울을
공경하고 소중히 함은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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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수행
김) 마지막 질문입니다.
동학의 수행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 교수님 말씀먼저 듣겠습니다.
이) 모든 심학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체험과 정확한 믿음(正信)입니다.
체험은 심학 수행의 원동력이 됩니다.
심학수도心學修道중에 신비체험들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체험이 정확하고 깊을수록 그것이 힘이 되어
심학수행을 더 힘차게 끌고 갑니다.
더 깊고 더 넓은 새로운 진실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가 있습니다.
여러 종교들에서 하는 명상, 주문, 기도, 독경 등등
모든 마음공부, 마음 수련은 마음을 바르게 훈련하여
미지의 마음 세계를 크게 열어 체험함으로써
근원적인 진리에 계합하고 그 마음을
자신에게 정착시키려는 노력입니다.
동학의 어구로는
정심수도正心修道 합기덕정기심合其德定其心입니다.
동학의 수운선생님은 어려서부터
학문으로 유학을 익히고 습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동학을 창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며 여러 가지로 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평생을 구도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 애를 쓰던 중
경신년(1860년) 음력 4월 5일
그야말로 놀라운 신비체험을 합니다.
그 신비체험으로부터
동학의 탄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음공부에서는 마음이 열리고
크게 체험을 하는 것이 매우 핵심적입니다.
정확한 믿음(正信)은
심학수도를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저는 바른 믿음이라는 표현보다
‘정확한 믿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믿음이 바르고 확고한 것을 뜻합니다.
먼저 확고한 믿음이란
어떤 것을 믿을 때 스스로의 직접 체험을 통하여
마음이 확실하게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믿기 위하여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종교인이나 수련자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은 스스로가
정확하게 체험을 반복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냥 마음이 알고 있고 신뢰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으려고 매달리는 것은
아직 마음이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 생기려면
자신 마음의 정직하고 정확한 동의가 필수조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울님에 대한 ‘신앙’보다는
한울님에 대한 ‘신뢰’를 말하고 싶습니다.
믿음이 바르다는 것은
자신의 체험과 학습을 통하여 믿고 있는 견해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실에 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체험한 사실이나 배워 익힌 사상, 교리 등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철저히 따져 보아야 합니다.
수운선생님께서 경신년에 큰 신비체험을 한 후에
일 년을 넘게 그 체험의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적용해 보고, 깊은 사유를 하면서
체험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며
그것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를
확인한 후에 동학을 펼쳤음을 보십시오.
아마도 그런 과정이 없었거나 미흡했으면
큰 신비체험으로
크게 영험하고 좋은 무당이 탄생하였지
결코 우리 민족의 큰 외침이요
인류의 귀중한 자산인 동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수운 선생님이
대단히 훌륭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을 형성하는 데는
바른 견해와 바른 알아차림(awareness)이
중요합니다.
21세기 과학 시대에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사상적 견해나 믿음이
명확히 증명된 과학적 사실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사상적 미신입니다.
심학수도에서 큰 체험을 통하여
바른 진리의 세계로 날아들려면
통합적 각성(unified awakening)과
분석적 사유(analytic thinking)
두 날개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모호한 통합적 견해(unified view)와
애매한 분석적 견해(analytic view) 양쪽을
각별히 경계해야 합니다.
의암선생님 법설 중에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듣는 것은
성심신(性心身) 삼단이 합하여 보이고,
나누어 보임이니 세 가지에서 하나가 없으면
도가 아니고 이치가 아니니라.’라는 어구를
차분히 음미합니다.
김) 라 교수님 말씀하시죠.
라) 신비체험을 통해 그 의미를 찾고,
그것이 믿음을 강화하는 신뢰로 나아간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사실 천도교단 내에서도
스승님들이 체험하셨던 강령 등의 신비체험을
터부시하는 풍조가 있어왔던 게 사실이거든요.
단순히 잘 모르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자신이 확실히 이치를 알고 그를 체험으로 확인하여
정확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선순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객관적인 진실을 강조하신 것도 중요합니다.
대신사님도 논학문이나 팔절 등에서
제자들과 문답하는 과정을 보여주셨고,
우리 제자들도 각자 공부한 것을
동덕들과 토론하면서 잘못된 것을 교정하고,
잘못된 생각이 깨져야
한 단계 진리가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도담의 자리가
일상적인 교회 문화로 자리 잡길 바랍니다.
동학, 천도교의 수행은
시천주의 원리를 깨닫고, 체험하고,
일상에서 확장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스승님들의 전통적 가르침으로
주문 수행과 심고, 경전읽기가 있습니다.
그것을 현대 젊은이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호흡명상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접목해 알려주고,
매사에 한울님과 함께하는 심고의 구체성,
기운을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바른 자세(운동 포함),
바른 먹거리 등, 생활 속 실천 방안들로
구체화하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수행의 원리들이
현대 과학의 언어로 밝혀지고 뒷받침되고 있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한울의 큰 흐름입니다.
또한 진리를 아는 첩경인
경전의 이치 공부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쉬운 번역이 꾸준히 이루어져야겠고,
교인들 스스로도 자신의 언어로
쉽게 표현해보는 공부를 꾸준히 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시도들이 모여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쉬운 경전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한 가지 의학의 관점에서 제언한다면,
동학과 의학 강의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동학은 제인질병 하라는
한울님 말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개인적 질병이든
사회적 질병이든
지구 환경적 질병이든
얼마든지 적용하고 확장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대신사가 체험하셨고,
요즘도 수도원에서 체험하고 있는
개인적 질병부터 적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미 현대 의학은 세부 전공으로 나뉘어
질병 치료만 집중하고
환자 전체를 보는 안목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께 받은 신령한 영기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치유의 능력을 깨우는 프로그램을
마음공부와 병행한다면, 산사의 템플 스테이보다
훨씬 좋은 물약자효의 전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개인의 개벽을 모아 사회 개벽의 프로그램으로,
그리고 지구 환경개벽의 프로그램으로 확장하는 것도
역량이 확보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 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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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김) 2021년도 종학대학원
동학과 과학이란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교수님 마무리 답변 부탁드립니다.
이)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21세기에 동학을 포함하여 심학(心學)이
마인드사이언스(mind science)와
선순환 협력관계를 확보하고
인류 문명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기를 바랍니다.
동덕님들과 함께 그러한 일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럼에 있어서 심학이 주의할 점은
종교적 도그마에 갇히지 않는 것과 의사과학(pseudoscience)에 대한 철저한 경계입니다.
과학이 주의할 점은
과학우상주의(scientism)에 대한 경계입니다.
동학의 차세대 패러다임! 동학 천년의 꿈!
우리 스스로 새로운 시대의
동학 노래를 불러감이 어떨까요?
김) 라 교수님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라) 같은 도를 하는 동덕들의 도담은
즐겁고 공부가 많이 됩니다.
더구나 각자의 전공분야를
동학의 가르침으로 해석하는 것은
진리의 실천이기도 하고
수행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도가 많아지고,
도가 삶속에서 행하는 언어로 재해석되고
변주되면 좋겠습니다.
김) 저도 강의를 준비 하면서
21자 주문해의에서 그 근본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번 강의를 계기로 더 열심히
지화지기 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강의 준비하고 강의하시느라
두 분 교수님 수고하셨고, 마무리로 토론 하면서
이렇게 정리까지 하니 더 의미가 새로운 것 같습니다.
한 학기 특강에 같이 참여해주신
종학대학원생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강의와 토론 과정 중에 의문 나는 점은
지금 질문 해 주셔도 좋고,
추후 문자나 전자우편으로 연락 주셔도
강사진과 함께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학과 과학이라는 생소한 주제를
한 학기 강좌로 열어주신
임형진 원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막상 강좌를 진행해보니,
과학문명이 이끌어가는 현대사회에
과학의 언어로 동학을 설명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노력이
지속되길 바란다는 말씀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