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의 생/화현 손현희
어느 가을밤 시골 마을의 끝 집에서 부부싸움이 있었다.
남자는 사십 대 후반 여자는 사십 대 초반이었다.
남자는 늘 술을 즐겼고 여자는 늘 술꾼의 주정을 다 받아줘야 했으니 아이들 앞에서
내색도 못 한 체 눈물로 살았다
그날은 제법 큰 싸움이 일어나 여자는 많이 맞고 울면서 뛰어든 곳은 그녀의 옥수수
밭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우는 동안에 헤어질 생각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자식을 넷이나 두었으니 참고 사는 거였다.
남자는 성격이 괴팍하여 늘 불만스러운 모양으로 보였다 언제나 그 집은 하루라도
무사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여자는 늘 남편이 늦게 올 거라는 직감에 집안에 낫이나 칼은 숨겨 놓고 사용하는
현명한 여인네였다
그녀는 어둠이 무서워서 아니 어둠이 오면 남편이 오기에 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안절부절 심장이 요동치는 밤이 무서웠기에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밤길을 혼자 걸어
술꾼이라도, 그래도 남편이라고 마중을 갔었다
달도 밝지 않는 캄캄한 비포장도로를 걸으며 얼마나 무서웠을까?
여인은 얼마나 걸어갔을까? 멀리서 술꾼의 노랫소리가 온 산을 흔드니 여인은 뛰어가
남편의 팔을 잡아 준다.
집으로 돌아와 이불에 뉘이고서야 긴 한숨을 토해낸다
가을이 가고 겨울을 지나 봄이 찾아온 작은 마을은 밭 갈고 논 갈기에 바쁘다
손수레 가득 거름을 싣고 남자는 끌고 여자는 뒤에서 밀고 가는 것을 보았다
여자의 흰 고무신이 찢어지고 달아서 어린 마음에 봐도 눈물이 날 뻔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가게 되어 그 집을 잊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말씀 하신다
“그 집 남자가 여자를 칼로 여러 군데 찔려서 죽여 놓고 세상에 농약을 그 여자 입에다
발라 놓고 자살했다고 거짓말했다가 결국은 살인죄로 감옥 갔다”
그 말은 들은 난 한참을 멍하게 하늘을 보았다
천사처럼 곱던 여인네의 마지막 모습이 스치면서 눈물이 났다
세월이 흐른 뒤 남자는 출소를 하여 술로 살다가 결국 저세상으로 떠났다
어머니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자 보이지 않았던 자녀는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어린 날 가슴 조이며 얼마나 마음을 많이 다쳤을까?
가끔 고향에 가면 그 부부의 산소를 지나치는데 산소가 따로 되어 있다.
자녀가 어쩌면 따로 묻었는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행으로 보인다.
죽어서까지 함께 살면 더 큰 불행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잊었던 그 여인이 생각이 나는데 하늘에서는 행복했으면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