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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특강>
1. 윤동주의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덕향문학 편집국
1.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전문
우리나라 시를 한두 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이 유명한 시를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된 성래운 교수와 함께 기억을 한다. 70년대 중엽 초대면의 술자리에서 그가 처음 암송한 시가 바로 이 시였고, 그 뒤로도 그는 시를 암송할 때면 꼭 이 시를 앞에 놓았다.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면서 부끄럼 없는 삶을 살겠다는, 당시 유신 독재를 반대하다가 강단(연세대)에서 쫓겨난 그의 각오와 심경을 더없이 잘 보여 주는 시였던 것 같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하고 결연한 목소리로 외어가다가 한 박자 쉰 다음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하고 소년처럼 감상적이면서도 티 없이 맑은 가락으로 끝막을 때 자리는 늘 숙연해졌다. 이때 대개 비슷한 처지에 있던 청중은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겠다고 다 같이 속으로 다짐했을 것이다. 그는 윤동주 시인과는 또 다른 인연이 있으니, 출신 학교인 연세대 교정에 시비를 세우는(1968년) 일에 앞장을 섰었다. 그는 교육학자 또는 교육 행정가(잠시 문교부 장학실장을 지낸 일이 있다)로서의 자신에 대해서는 자괴심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윤동주 시비를 세운 일은 자랑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또 이 시와 더불어 생각나는 것은 70년대의 동아, 조선의 언론 파동이다. 정보기관의 언론 통제에 항거하여 동아와 조선일보 기자들이 언론자유수호 운동을 벌이자 정부는 광고 탄압으로 맞섰는데, 이때 언론자유수호를 지지하는 독자들의 공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구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었다. 그 어둡던 시절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젊은이들의 시대적 고뇌가 이 시에 담겨있었기 때문에 이 구절은 쉽사리 모든 탄압받는 사람들의 화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은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 감옥에서 마감한 짧으면서도 치열한 시인의 삶에 의해 더욱 돋우어졌으니, 실제로 그 무렵 이 시를 외거나 들으면 숨 막힐 것 같은 어둠이 조금은 걷히고 앞이 부옇게나마 밝아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또한 이 시에 넘치는 깨끗한 젊음과 개결한 의지도 독자들을 사로잡은 요인이 되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구절을 읽으면 권력과 돈이 판치는 흐린 세상에 한 줄기 맑은 샘물이 솟는 것을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윤동주 시를 좋아한 것은 훨씬 이전부터다. 특히 <새로운 길>을 좋아했는데, 이 시가 나로서는 처음 읽은 윤동주 시였다. 그의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가 아니고 김용호라는 이의 <시문학 입문>이라는 개론서였다. 6.25 다음 해 봄, 마을마다 장티푸스가 돌아 뒷산에 매일처럼 새 무덤이 생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이 시를 읽고 나니 문득 마을과 마을 앞으로 난 길과 길가에 핀 민들레와 길가의 미루나무에서 우짖는 까치가 밝고 환하게만 느껴졌다. 전쟁과 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가 죽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밖으로 나다니게 되었고 활기를 되찾았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새로운 길> 전문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같은 표현은 지금 보면 미숙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의 힘찬 리듬은 당시 금방 나를 사로잡았다. 더욱이 “민들레가 피고.... 바람이 일고”의 청순한 이미지는 이 힘찬 리듬에 상승으로 작용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신작로와 논둑길을 가면 절로 힘이 났고, 길가의 작은 들풀이며 돌멩이 하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비로소 이웃 마을로 전쟁통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동무를 찾아가기도 하고, 강까지 나가 물 위에 떠다니는 청둥오리를 구경하기도 했다. 좋은 시는 사람이 사는 데 힘이 된다는 구체적 예를 나는 지금도 <새로운 길>에서 본다.
윤동주 시인이 어떠한 생애를 살았는가를 알기 전이었으니 이 힘은 시인의 생애로부터 온 것이 아닌, 시 자체가 가진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구해 읽고 가장 좋아하게 된 시는 <자화상>과 <소년>이었으며, 지금도 나는 윤동주 시 중에서 이 두 편을 특히 좋아한다. 이 시가 가진 청순함, 개결함, 젊음이 좋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 전문
이미지니 상징이니 하는 시의 장치들을 이해하고 그런 것들을 통해 읽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이 시를 특히 좋아했던 것은 어째서였을까. 우물 속에 밝은 달과 구름, 하늘과 파아란 바람과 가을과 함께 서 있는 깨끗하고 젊은 시인이 떠올라서였지 않았을까. 또 그것이 장차의 내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였지 않았을까. 이 시를 읽고 나서 나는 밤에 여러 번 우물을 가서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우물 속에서 시에 형상화된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을 보았을 때의 기쁨, 어쩌면 그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일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소년>의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이 눈을 감아 본다”는 곧 그 무렵의 내 감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같이 생각이어서 나는 좋았다.
2.
연세대 구내(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 시절 지냈던 기숙사 앞이라고 함)에 세워져 있는 시비의 비양에는 <서시>가 작시 일자와 함께 새겨져 있고 비음에는 다음과 같이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윤동주는 민족의 수난기였던 1917년 독립운동의 거점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고 1938년 봄 이 연희 동산을 찾아 1941년에 문과를 마쳤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며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중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모진 형벌로 목숨을 잃으니 그 나이 29세였다. 그가 이 동산을 거닐며 지은 구슬 같은 시들은 암흑기 민족문학의 마지막 등불로서 겨레의 가슴을 울리니 그 메아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더불어 길이 그치지 않는다. 여기 시 헌 수를 새겨 이 시비를 세운다.”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를 한눈에 보게 해주는 글이지만 조부가 회령에서 살다가 북간도로 망명하여 황무지를 개척했다는 것, 아버지는 명동에서 교원으로 일했다는 것, 일가족이 그 무렵 들어온 기독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는 것 정도의 개인사와 함께, 그는 간도의 명동 소학교(용정에 있는) 시절 급우들과 등사판 문예지를 만들어 동시 등을 발표했고 광명학원 중학부 시절에는 연길에서 나오던 잡지에 동시를 발표했으며, 연희전문 시절에도 문과에서 나오던 <문우>지에 이미 <자화상>, <새로운 길>을 발표, 졸업하던 해에는 19편으로 된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할 계획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문학 이력은 알아두는 것이 윤동주 시인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할 것 같다. 이 사실은 대개의 항일민족시인이 항일운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시인이 된 데 반하여 윤동주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시인으로 살려니까 항일 사상가가 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의 시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해 주는 시집 제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스스로 지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로써 그는 일제의 강점하에서는 항일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아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직된 투사이기에 앞서 시를 쓰는 것을 천직으로 아는 타고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는 까닭이다. 그가 매 시편에 또박또박 제작 일자를 써 놓은 것도 장인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터로, 가령 그의 시를 읽으면 폴 발레리가 “불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기계에 의해 기술상의 구속을 받음으로써 유용한 것이 되며 비로소 원동력이 된다. 마찬가지로 시에 있어서도 적절한 속박이 있어 불이 소멸되지 않게끔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큰 자유는 큰 엄격성 밑에서만 얻어진다고 시 창작의 방법을 제시한 말이 떠오른다.
그의 시 가운데서 비교적 사람들의 입에 덜 오르내리는 <눈감고 간다>를 읽어 보자.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눈감고 간다> 전문
말할 것도 없이 이 시는 식민지 시대의 삶의 방법을 암시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 사는 “아이들”치고 누가 태양을 사모하지 않으며 별을 사랑하지 않으랴. 그러나 밤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쩌랴. 차라리 눈을 감고 가되 가진 씨앗일랑 땅에 뿌리고, 혹여 씨앗을 뿌리는 일을 막기라도 하거든 번쩍 눈을 뜨고 대어 들어라. 이 시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읽는 일 또한 어렵지 않다. 그러면서도 가락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불이 소요되지 않게끔 조정하는 적절한 속박이 있는 것이다. 그 큰 엄격성 밑에서 이 시는 큰 자유를 얻고 있는 터로, 장인정신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눈감고 간다>라는 제목으로 스스로 시의 대상이 되면서 자칫 고압적이 될 수 있는 명령형을 순화시키는 방법도 상당한 시적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3.
내게는 윤동주 시인의 개인사를 알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먼저 그 아우 윤일주 씨가 있다. 공학도로 시인이기도 한 그와는 <문학예술>지에 함께 시를 가지고 추천을 받았기 때문에 두세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기억으로는 그가 형에 관한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아마 나이 차가 많은 형과 함께 산 기간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뒤 윤동주 시인의 숙부가 되는 중국 문학가 윤영춘 교수(작고)와 한동안 꽤 가깝게 지냈다. 내가 관계하는 출판사에서 그의 번역으로 장자와 공자를 냈기 때문이다. 그는 술자리에서마다 글재주가 뛰어나고 그림도 잘 그렸다는 등, 심성이 맑고 깨끗하다는 등, 조카 윤동주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대개 책에서 읽었거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인 것 이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 간도의 용정 출신으로 명동 중학을 함께 다닌 문익환 목사를 만났다. 그는 윤동주 시인과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깨끗하고 치열했던 삶, 특히 그 영원한 젊음을 더없이 부러워했다. 어쩌면 그의 그 뒤의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은 윤동주 시인이 시로 만들어 놓은 세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는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는 스물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달 먼저 났지만
나한텐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절구절 늙어가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쿠오카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문익환 <동주야> 부분
그러나 윤동주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청순하고 개결한 젊음과 함께, 시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하늘과 바람과 별을 지향하는 밝음과 맑음, 빛의 이미지에 있다. 그의 시에는 유난히 해와 달과 별과 하늘이 많이 나온다. 비록 식민지라는 어둠 속에서 살면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등불을 밝혀 어둠을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쉽게 씌어진 시>), 또는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또다른 고향>)라고 분명히 그 어둠을 인식, 노래하고 있었으면서도, 밝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을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별 헤는 밤> 부분
별을 노래한 이 시는 분명 어둠이 그 배경이다. 그럼에도 시가 어둡지 않은 것은 밝음을 지향하는 푸른 젊음 탓이다. 윤동주 시에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푸른 가을 하늘빛이리라. 한편 윤동주는 국내 시인 가운데서는 백석 시인을 가장 좋아했다는데, 이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백설의 <흰 바람벽이 있어>에도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똑같이 나오고 있어 흥미롭다.